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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ㅣ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평점 :
볕이 좋아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더니,
거리에 이쁜 화분을 놓고 피는 트럭이 있더라.
'이쁘네~'하고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똘똘한 애들은 다 골라가 버리고,
약간 어정쩡한 애들만 두개 남은거라,
그 두 개를 가져오며 봄맞이를 했다고 잠시 뿌듯하였다.
나는 시인 장석주와 장석남을 혼동한다.
그들의 문체라던가 시풍을 혼동하는게 아니라,
사람 이름 한끗을 혼동한다.
이 시집도 '주'인지 '남'인지 잘 모르고,
그래, 누구라도 상관없다...하면서 집어들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장석남이었다.
여린 눈을 가졌고,
꽃 밟을 일을 근심하는 시인.
아니나 다를까, 시집의 뒷표지에서 소설가 '권여선'은 그를 이렇게 얘기한다.
한때 그는 망명한 자였고 앓는 자였고 숨죽여 우는 자였으리라. 내가 그를 알기 전의 일이다. 내가 아는 그는 술 퍼먹고 무언가를 묻는 자였다. 그의 질문은 사소하여 철학적이었다.
내가 읽은 그는 시 속에서 웅얼웅얼 답하는 자였다. 그의 대답은 절박하여 미학적이었다. 삶과 시를 오가며 그는 자해하듯 자문자답하는 자였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의 꽃겹 속에 갓 태어난 노인이, 노파의 얼굴을 한 연인이 있었다. 시인이 아닌 그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이제 그는 꽃 밟을 일을 근심하는데 이미 밟아놓은 후다. 그는 죄지은 대장장이, 녹아도 사라지지 않는 쇠를 응시하는 자이다. 이토록 사뿐하고 육중한 몸의 문답이 있을까. 이토록 눈부신 울화가, 이토록 뉘엿뉘엿한 돌파가 있을까. 아무도 이 어눌한 생을 사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영원히 쓰라고, 나는 근심스레 말한다.
이런 권여선의 뒷표지 글로도 충분히 좋은데, 해설은 신형철의 그것이라 더 좋다.
전에 '뺨에 서쪽을 비치다' 때도 느꼈던 것인데,
꽃밟을 일을 근심하였을 그의 섬세함이 느껴져서,
그게 철학이나 어쭙잖은 선문답의 형태를 띤게 아니라서,
묘한 설레임으로 한걸음 다가가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시가 여럿인데,
춘분인 어제 읽었던 '입춘 부근'이라는 시도 좋았다.
이 시의 일부분은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하였다.
입춘부근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쫒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이 시는 내게 생존으로 읽혔다.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은 것도 그러하지만,
밥을 먹느라 앉아 쉬던 것일지도 모를 기러기를 쫒는 행위로 이어진다.
먹는다는 건 살기 위한 일이지만,
삶이라는 건 발을 땅에 붙이고 있어야 이어지는 실존적인 일이 아닐까.
그 근원에는,
꽃만 피고지는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러기도 철새여서 머물고 날때가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피어날 꽃들에 마음 환해지지만,
날아가는 기러기를 아쉬워하는 것 또한, 입춘부근, 그 무렵이다.
또 좋았던 시는 '파란 돛'
시는 좀 어려웠지만,
색깔의 선명한 대비가 느껴져서 좋았다.
파란 돛
바다는
어디서부터 가져온 파도를 해변에, 하나의 사소한 소멸로써
부려놓는것일까
누군가의 내부를 향한 응시를
이 세계의 경계에 부려놓는 것일까
바다는 질문만으로 살아오르고
함성을 감춘 질문인 채 그대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천상 돛을 하나 가져야겠기에
쉬지 않고 사랑을 하여
파란 돛을 얻는다.
'오래된, 오래되었다는 고백'도 좋았다.
오래된, 오래되었다는 고백
그에게 남은 말은 없고
서서히,
선반의 백자 항아리에 먼지가 앉듯이
말을 꺼내게 될 것인데
약간의 분홍빛이 섞인 억양으로
솟은 어깨에 펼쳐진 빛무리와
머릿결의 갑작스런 쏟아짐에 머물다가
종내 그에게 남는 말은 하나도 없이
나의 입술은 풀입처럼 마르고
날고기처럼 피 흘리리
이 밖에도 좋은 시가 많았다.
'사랑에 대하여 말하여주세요'도 좋았고,
'다섯켤레의 양말'은 오랫동안 입안에 굴려가며 읽었다.
시각적 잔상이 청각적으로, 아니 공감각적으로 바뀌는 묘한 경험을 했다.
늘 내뱉는 말은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손으로 써내려가는 문장들은 자연스레 둥글려지는듯 조심성이 없다.
내 조심성 없음을 가지고, 시인은 몸서리 치는 듯 하다.
다섯켤레의 양말
각색 양말을 빨아 방바닥에 널어놓고
나도 모르게 짝을 맞춰 그리해놓고
나는 그리해놓았다
전에는 없는 일이라 핸드폰으로 찍어놓고
나는 흐뭇하다
나의 디자인, 이 구성진 디자인
궁상각치랑 우 도레미 도레미
썰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내 낚시에 끝까지 걸려들지 않던 어린 날
참으로 아름답던 다섯마리 물고기의 유영을
나의 방바닥에서 본다
그러나 오, 다섯켤레의 혀들
나는 내 혀가 지은 죄 때문에 내 혀를 끊을 용기는 없었다
내 혀는 나를 말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 혀는 자주 나의 것이 아닌 것
내 손이 써나가는 문장을 차라리 내 혀라 말하고 싶지만
세상은 혀끝에서만 머문다
양말 다섯켤레가 각 다섯 방향으로 널려 있다
나의 혀와 살아온 날들의 교감들이
또 미래의 그림자 같은 족적들이
수십만석의 농업으로 나를 닦아세우고 있는
이 만다라의 순간이 나는 싫지만
꼼짝할 수 없고 염주를 꿰 돌리며
양말을 빨고 난 후의 그 땟국몰이 혹
욕조 바닥 가장자리에 남아 있을 것을 염려한다
그것마저도 혀가 되리라
참으로 아름답던 다섯마리 물고기의 유영을
나의 방바닥에 풀어놓고도
나는 몸서리를 친다
이봄,
난 아지랭이를 밟을 일도 없으면서 날아오를 것 마냥,
꽃이 채 피기도 전에 꽃 밟을 일을 근심하는 것이,
마냥 수선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