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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던가, 좀 오래전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였던 것 같다.
남자와 여자의 이별장면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아낌없이 주어 미련이 없다고 하는데,
그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때 난 '아낌없이 주어 미련이 없다'는 말의 이면을 들여다 보려 한 것 같은데,
아낌없이 주는 것은 좋지만, 그것으로 끝~!
떠나고 났을때 자기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여력은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했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나는, 달링턴 경께 모든 걸 바쳤습니다. 내가 드려야 했던 최고의 것을 그분께 드렸지요. 그러고 나니 이제 나란 사람은 줄 것도 별로 남지 않았구나 싶답니다."(298쪽)
달링턴 경의 집사로서 그에게 모든걸 바친 것은 알겠지만,
이젠 미국인 페러데이를 모시는 입장에서 그에게 줄 것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처럼 들려 씁쓸했다.
이러다 보니 생각은 널을 뛰어,
'아낌없이 주어 미련이 없다'는 것은 좋지만,
아낌없이 줄때도 '자기 자신'은 불살라버리지 말고 남겨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게 되었다.
암튼 우리의 집사 스티븐스 씨는 달링턴 경 사후 미국인 페러데이를 새로 모시게 된다.
페러데이가 미국에 다니러 간 사이에 휴가가 주어지고,
페러데이의 적극적인 권유로 난생 처음 여행을 가게 된다.
여행의 목표는 한때 달링턴 가문의 총무로 있던 켄턴 양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그 여정에서 스티븐스는 자신이 섬겼던 달링턴 경을 부인하기도 하고,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다소 허세로 비춰질 수 있는데 상당한 돈을 쓰기도 한다.
사실 난 이 여정이 자기 자신을 돌아다보는 계기가 되고,
그리하여 어떻게든 마음을 고쳐먹게 될 줄 알았는데,
돌아보기는 돌아본것 같은데,
그 과정이 시종일관 자기변명으로 일관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기 마련이다.(57쪽)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보니,
그동안 그가 지켜온 품위로는,
그런 그의 삶을 돌이켜 반성을 하게 된다면,
여태까지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니까 쉽지 않은 일일것 같다.
이 대목을 읽고는, 심지어, 달링턴 경 밑에 있었다는 걸 부인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우리 세대는 임금이나 휘하 직원의 규모, 화려한 가문의 명성만을 고려해서 이직을 결정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직업적 권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의 도덕적 진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ㆍㆍㆍㆍㆍㆍ우리 세대는 세상을 사다리가 아니라 '바퀴'와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147쪽)
자신의 모든걸 걸었던 주인의 도덕성에 흠결이 있다는걸 깨달았을 때의 상실감을 충분히 짐작하겠다.
더불어 자신의 새주인 페러데이에게 이혼한 숙녀가 재혼하는 걸 들어 옛주인을 정당화하는 것도 이해하겠다.
"ㆍㆍㆍㆍㆍㆍ흔히들 이혼한 숙녀가 재혼하여 새 남편 쪽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했을 때는 첫 결혼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요. 저희 직업에도 그와 유사한 관습이 있습니다, 나리."ㆍㆍㆍㆍㆍㆍ오늘날, 달링턴 경에 대해 어리석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내가 그분과의 관계를 좀 난처해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진실보다 깊을 수는 없는 법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달링턴 경에게 35년을 바쳤다. 그리고 그 기간만큼은 나 자신이 가장 진정한 의미에서 '저명한 가문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말하더라도 그리 부당한 주장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내가 지금까지의 경력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만족은 주로 그 시절에 성취했던 것들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었음에 오늘도 나는 자랑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161쪽)
사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이름이 일본식이어서,
소설이 그다지 영국적이지는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다보니 켄폴릿의 '20세기 3부작 시리즈'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지극히 영국적이다.
그런 작가가 감정이입한 인물인 스티븐스 집사가,
여행 중에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때, 혼란스럽지 않았을까 싶었다.
“ㆍㆍㆍㆍㆍㆍ왜냐하면 우리가 지난날 바로 그 권리를 위해 싸웠기 때문이지요.”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선생님, 에덴 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적인 면에서요. 지위 고하,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제 생각이 옳은가요?“(233~234쪽)
마침내 켄턴양을 만나게 된 그가,
그 또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영감님'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나이가 들었는데,
켄턴 양의 변화만 두드러지게 읽어내는 장면이 좀 아이러니컬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이에 더 많은 것들, 세월이 그녀에게 남긴 더 미묘한 변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켄턴 양은 '약간 느려진'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대체로 침착해지니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나도 한동안은 그렇게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이 분위기는 삶의 고단함에 다름 아니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날 그녀를 때로 들뜬 사람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활기차게 만들었던 생기의 광체가 이제 사라진 듯 보였다.(285쪽)
이 책의 마지막에 보면 스티븐스는 낯선 노인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속내를 드러내는 듯도 싶다.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293쪽)
"ㆍㆍㆍㆍㆍㆍ만날 그렇게 뒤만 돌아보아선 안 됩니다. 우울해지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요, 이제 당신은 예전만큼 일을 해낼 수 없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사람은 때가 되면 쉬어야 하는 법이오. 나를 봐요. 퇴직한 그날부터 종달새처럼 즐겁게 지낸답니다. 그래요, 우리 둘 다 피 끓는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 거요."
그러고 나서 그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300쪽)
하지만, 그는 새로운 주인 페러데이에게 부응하기 위하여 농담의 기술을 발전시키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 애기를 끝내게 된다.
결국 그는 심기일전하여 '남아있는 나날'동안 새 주인에게 충성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책은 스티븐스의 삶을 통하여 그의 지독한 고지식함을 '품위'라는 말로 설명하는데,
만약에 나라면,
품위 따윈 됐으니 개나 줘 버리고,
빌어먹거나 날품 팔이를 하더라도,
오늘 이순간, 나의 삶을 살겠다고 하겠다.
인간은 '홀로', '품위있게'는 살 수 없다.
감정을 느끼고 살을 보대끼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괜찮다고 자위하고,
새로운 주인 페러데이와 농담 코드에 맞추겠다고 세뇌시키지만,
그게 어긋나기라도 한다면,
그 상실감을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남아있는 나날 동안 이젠 부디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