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식물에 물이 오르고 꽃망울이 맺히는걸 보니 봄인가 보다.

 

아니, 춘곤증에 시달리는걸 보니 정녕 봄인가 보다.

요즘 같을땐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잠깐 눈이라도 붙여주면 오후 시간을 한결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

오늘은 점심시간과 동시에 뚱뚱한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두꺼운 솜 외투를 걸치고 등에는 대형 백팩을 멨는데, 입구에 꽉 들어찼다.

접수에서 점심시간이 막 시작했으니 다녀오시라고 했으나,

엉덩이를 들이밀어 앉더니 '허어~!' 목을 풀었다.

무슨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몸 전체가 울림통인양 쩌렁쩌렁 울린다.

한쪽에 누워서 눈만 감은 난 통성 기도의 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었다, 고 생각했는데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좀 젊은 목소리가 말했다.

"예수님의 성령으로 천국으로 부름을 받으셨다구요?"

"네,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전 이미 천국으로 부름을 받았거든요."

"근데 아까 기도 하는 걸 내가 조금 들었는데,

 일부러 들은건 아니구요...목소리가 크시니까 자연 들리더라구요...

 세어보니 병이 열네 가지던데요.

 병원에 올거 뭐 있어요, 천국으로 그냥 가면 되지?

 부름을 받았으면 그에 응해야지,

 아자씨 말대로 그렇게 훌륭하신 예수님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도 경우가 아닌거죠.

 하긴 공공장소에서 혼자만 부름을 받겠다고 이렇게 떠들어대는 걸 보면 원래 경우가 없는 분이신것두 같네요.

 천국 가셔서 아버지 만나시거든 제가 가정 교육을 그렇게 시키신게 맞냐고 여쭤봤다고 말씀 드려 주시구요."

 

 

 

 

 탁월한 사유의 시선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다보면 중국에서 만난 도사 얘기가 나온다.

 

사실 제 전공이 도교인지라 가끔 도사들을 만날 일이 있습니다. 도사라고 하면 구름 타고 다니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도교라는 종교의 교회를 도관이라 하고, 도관에서 활동하는 성직자를 도사라고 합니다.ㆍㆍㆍㆍㆍㆍ제가 만난 도사는 시골에서 수양만 하던 촌 도사였는데, 그 촌 도사가 저한테 전공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제 전공이 철학이라고 했더니 그 도사가 대뜸 이랗게 말합니다.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다. (71~72쪽)

 

위의 뚱뚱한 남자와 좀 젊은 할머니의 대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책을 읽다보면 또 이런 구절도 나온다.

 

그런데 탁월한 시선으로서의 철학적 사유라는 것이 그리 쉽게 되는 일은 아닙니다. 마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익숙하게 언어를 사용하지만, 시인이 하는 것처럼 언어 자체를 들여다보거나 또 시적인 높이에서 언어를 지배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차원이 달라지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시를 이해하는 사람과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는 세계를 보는 통찰의 깊이와 높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를 지배하는 시인과 언어를 단지 사용할 뿐인 보통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시선의 높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를 지배하는 시인과 언어를 단지 사용할 뿐인 보통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시선의 높이, 그 차이는 매우 클 수밖에 없죠. 사실상 철학은 아주 높은 차원에서 탁월하게 이루어지는 고도의 지적 활동입니다. 그래서 타고나지 않는 한, 훈련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97쪽)

 

 

 

 시인일기
 박용하 지음 / 체온365 /

 2015년 9월

 

내가 아마도 박용하의 '시인일기'를 읽지 못 했다면 저 부분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작인 '오빈리 일기'와 더불어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이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영혼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던 터라 감흥이 더했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스스로 제외된 개인'이라 답하겠다. 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말에 걸린 자, 말에 질린 자, 말에 올라 탄 자'라 답하겠다. 또다시 시인이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어둠이 되는 자, 빛에 긁힌 자'라 답하겠다. 이 황사 쳐들어오는 난감한 봄날,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무용지물, 무용지물, 무용지물, 천하의 무용지물'이라 답하겠다. 다시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순간을 감별하는 자, 순간을 범하는 자, 순간을 데우는 자'라 답하겠다. 또 시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언어가 생각하게 말하는 사람'이라 답하겠다. 봄비 추적거리는 거리에서 시인이란 무엇인가 재차 묻는다면 '고통하는 사람, 슬픔 받는 인간'이라 답하겠다.ㆍㆍㆍㆍㆍㆍ('시인일기', '서문'인용)

시인은 시를 쓰지 않았으면 무엇이었을 것이며, 무엇에 열중하고 살았을까 라고 반문한다.

책을 읽고 리뷰나 페이퍼로 느낌을 옮기는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에도 열중하지 못 했을 것이다.

 

이걸 최진석버전으로 옮겨보면 이렇다.

레고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덴마크의 한 컨설팅 회사를 찾아가서 해결책을 구하게 됩니다. 그 회사는 고객이 가져온 문제를 우선 철학적인 문제로 바꾸어서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레고는 원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 컨설팅 회사의 조언에 따라 기존 질문을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으로 바꿉니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95쪽)

 

황사가 쳐들어오지만, 봄비가 추적거리지는 않이서 다행이다.

낮잠을 제대로 못 자서 툴툴거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 페이퍼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춘곤증을 이겨내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다가 외부의 방해로 실패했다...정도가 되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7-03-1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오늘 낮에 어찌나 졸리던지요. 쿠키 아작아작 먹으면서 잠을 쫓았어요. 왜이리 잠이 쏟아지던지...
세상엔 별별 사람 참 많아요^^

양철나무꾼 2017-03-17 09:20   좋아요 0 | URL
요즘 낮에는 졸립고, 아침에는 배고프고 그래요.
저녁 때는 당근 춥고요~^^
세가지가 한꺼번에 오면 거지라는데, 따로따로 와서 거지는 면했어요.

저는 커피 한가득 타서 님처럼 쿠키 먹으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