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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우리 영혼은
켄트 하루프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0월
평점 :
어두운 침실 바깥에서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열린 창안으로 거세게 밀려들어오면서 커튼이 이리저리 펄럭거렸다. 그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는게 좋겠어요.
꼭 닫지는 말아요. 냄새가 예쁘잖아요. 지금 가장 예뻐요.
정답이에요.
그가 일어나 약간만 남기고 창문을 닫은 뒤 침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109쪽)
너무 행복한 순간을 맞게 되면 오히려 불안해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기면 되는데,
어렸을 때부터 항상 준비하고 대비하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인지,
정상 다음은 내리막길 뿐이란걸 예감하기 때문인지,
날아가 버리거나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동안 앞만 보고 내달려와서 삶을 잘 몰랐었다.
아니 삶을 살아왔지만, 삶에 대해서 깊숙히 들여다 본적이 없다고나 할까.
삶의 숨은 이면들.
나이 들어가면서 산다는건 죽음을 대비하는 일이란걸 가끔씩 생각하게 되지만,
산다는 것은 더 멋지게, 더 잘 산다는 것으로 연결될 뿐이지,
죽음을 대비하는 것으로까지 여겨지질 않았었다.
그래서 였을까?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이, 노년의 사랑법이,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기서 '사랑법' 자리엔 '삶'으로 대신해도 좋겠다.
기실, 노년의 사랑이라고 하면 이 책의 누군가 처럼 남우세스러워 좀 쭈뼛거리겠지만,
노년의 삶으로 바꾸어 얘기하면 좀 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친정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자유분망한 삶을 살아오셨고,
시아버지도 몇 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아주머니 한분을 만나 새로운 삶을 꾸리셨다.
게다가 내 직업이라는 것이 남녀노소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상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아프다고 맘 놓고 치료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린시절의 나는 착한 아이였다.
공부도 제법 했고 행동거지도 모범적이었다.
근데 그게 내 안의 울림을 따른, 내가 하고 싶은 대로의 삶이 아니라,
어른들이나 선생님, 책에 나와 있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삶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남편을 만났고,
남편은 내게 무엇을 시키지도 않았고,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주고, 내 의견을 북돋워주었기에,
그게 맏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예스, 맘'표 결정장애인줄 몰랐었다.
넌 이곳 사람들을 지나치게 걱정하는구나.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이제 안 한다. 그걸 배웠지.
그녀한테서?
그래. 그녀한테서.
진보적이라든지 행실이 나쁜 아주머니로는 생각 안 했는데.
행실이 나쁜 게 아니야. 무지한 소리다.
그럼 대체 뭔데요?
자유로워지겠다는 일종의 결단이지. 그건 우리 나이에도 가능한 일이란다.
십대 소년처럼 구시네요.
십대 시절에도 이러지 못했다. 그럴 엄두조차 못 냈지. 하라는 일만 하며 자랐으니까. 내 생각엔 너도 너무 그렇게 살아왔어. 나는 네가 자발적이고 추진력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ㆍㆍㆍㆍㆍㆍ
아빠가 이런 얘기 할 때가 정말 싫어요. 난 나대로 살게 해줘요, 아빠. 내 인생은 내가 살 거예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ㆍㆍㆍㆍㆍㆍ(61쪽)
이젠,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하여 현재를 살기는 싫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다.
나는 그런 건 신경 안 써요. 어차피 다 알게 될 거고요. 누군가가 보겠죠. 앞쪽 보도를 걸어 앞문으로 오세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 갖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너무 오래, 평생을, 그렇게 살았어요. 이제 더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이렇게 뒷골목으로 들어오면 마치 우리가 몹쓸 짓이나 망신스럽고 남부끄러운 일을 하는 것 같잖아요.(13쪽)
누가 됐든 밤에 따뜻하게 해줄 사람을, 함께 이야기나 나눌 늙은이를 대충 찍은 줄 알았어요?
ㆍㆍㆍㆍㆍㆍ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친절한 사람이요.(27쪽)
이 책이 분명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 맞춤한다고는 못하겠다.
미국은 의료보험제도도 열악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노령 연금 등 공적부조에서 의료보험이 지원되는 것일까?
우리나라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여도 이렇게 멋지게 느껴졌을까?
혼자 자신의 먹거리를 해결하고,
빨래,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하며,
집의 외부를 돌보고 가꾸는 것을 하고,
여력이 있어서 '밤에 우리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어르신들이 몇 명이나 될까.
거기다가 젊은 시절보다는 죽음에 노출될 확률이 많아지는데,
그렇게 서로 의지하다가,
누군가 먼저 세상을 달리한다면 그 상실감은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암튼 중요한 것은 내 몫의 삶은 내가 사는 것이고, 내 취향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선택이 나의 몫인만큼, 책임도 나의 몫인 것이다.
내게는 언제일지 모르는, 가까울지 멀지 모르는, 미래를 대비하라는 소설일텐데,
현재에 충실하라고 읽히는 것이,
참 묘한 일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