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인 단 하나의 계획을 찾기 위해 지나치게 시간과 공을 들이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다 효율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막상 가족이 볼 때는 무지하게 비효율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데, 소음인인 경우가 많다. 대충 넘어가도 되는 걸 일일이 따지고 있는 모습이 가까이 있을수록 잘 보이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 비효율적으로 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런 효율성이 작은 집단에서는 중요하다. 기본적인 동의가 되어 있는 집단내에서의 일, 즉 당여에 강한 이유이다. 하지만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되면 기본부타 다 맞춰가야 비로소 본격적이고 구체적인 일에 들어갈 수 있는 소음 경향이 좀 갑갑할 수 있다. 역시 극복하는 방법을 공부해야 할 것이다. (180쪽)
태음인 아이에게 속도를 강요하는 것은 곧 아이를 교심에 빠져들게 만드는 짓이다. 태음인은 폭을 확보한 뒤에 깊이를 가진다. 폭과 깊이가 확보되면 비로소 핵심을 찾아낼 줄 알게 된다. 그 뒤에 비로소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얻어지는 속도를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아직 자신의 장점을 키워 약점을 메울 수준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약한 부분을 자꾸 요구받으니까, 남을 흉내내는 방식으로 도망가게 된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이 교심이 강해지면 잡다한 지식을 줄줄 나열하는 모습, 문제의 답을 외워서 발표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폭에서 바로 속도로 건너뛰는 방식이다.(205쪽)
소음인이 생각하기에, 분명히 자신의 논리가 맞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를 안 받아들인다. 그런데 기본 가정을 검토할 생각은 못하고, 논리만 다시 점검해본다. 물론 논리 자체야 틀린 부분이 없다. 그러면 " 아, 목소리를 더 높여야 되나보다"라고 어설프게 소양인을 흉내 낸다.
보통 소양인의 말투가 공격적인 경우가 많다. 양인은 부정적인 것의 축소 쪽에, 음인은 긍정적인 것의 확대 쪽에 각각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에 대해서 가장 공격적인 사람은 긍심이 강한 소음인이다. 소양인의 공격은 강하기는 해도 화끈하고 뒤끝이 깨끗한데, 긍심이 강한 소음인의 공격은 아주 집요해서 정말 짜증나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이 긍심이 강한 소음인을 대하게 되면 결국은 지쳐서 "그래, 네 말 맞다"고 그냥 인정해준다. 하지만 다시는 그 사람을 접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면 "기본 수양이 안 되어 있는 놈"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놈"이라며 인신공격을 하는 수가 있다. 그러면 소음인은 "논리에서 지니까 치사하게 인신공격이나 한다"고 또 받아친다. 아니다. 사람들이 논리에서 졌다고 다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왜 자신만 인신공격을 받는가에 대해서 겸허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애노희락의 심리학' 211~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