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엎어라 - 드라마틱한 역전의 승부사 이세돌의 반상 이야기
이세돌 지음 / 살림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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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을 볼때, 류준열이 훨씬 좋았지만 바둑 기사 최택으로 분한 박보검도 싫진 않았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등장했는데, 새롭지 않았지만 추억을 돌이킨다는 의미에서 감동적이었다.

'응.팔.'과 동시대를 살았던 내게 생소한 직업이 있었는데 그게 바둑 기사였다.

바둑기사가 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는게 아니라, 바둑기사의 일상을 몰랐다.

 

간혹 텔레비전 뉴스를 통하여 엄청난 상금 액수를 듣고 부럽다 싶긴 했지만,

정규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도 몰랐고, 두통과 불면증으로 맨날 약을 달고 사는 것도 몰랐을 때의 얘기다.

울아들이 7세때, 바둑을 전문적으로 시켜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심사숙고했던건,

이 같은 지난함을 몰라서 였을 것이다.

 

전에 이런 궁금증을 해갈할 요량으로 조훈현의 고수의 생각법(==>리뷰 링크)을 읽기는 했었지만,

그 책을 볼때만 하더라도,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완 격이 다른 사람, 고수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는, 일종의 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정치가들처럼 출판 기념회용 도서라는 느낌도 살짝 들었었는데,

책을 내고 얼마후에 정계진출을 하더라~--; 

 

암튼 조훈현의 그것이 일종의 자서전이나 위인전을 읽는 기분이었다면, 이 책 '판을 엎어라'는 자기계발서의 느낌이 강하다.

인생을 먼저 산 엉아가 동생이나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덕담 같다.

그래서일까?

언뜻 보기엔 바둑을 두는 후배들이 대상인것 같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삶의 방향을 묻는 모든 이들로 확대 할 수도 있겠다.

일종의 덕담이니 일반론적이고 깊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겠다.

 

물론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것도 실력의 일부이긴 하지만 운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특히나 중요한 판에서 상대방이 실수를 안 해주면 역전승은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만 아무런 실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희망이 없는 국면에서도 상대의 어이없는 착각이나 실수로 역전승을 거둔 적이 많으니 내가 '행운의 기사'라는 말은 맞는 듯하다.(65쪽)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바둑을 남긴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한판의 바둑에서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런데 상대 역시 실수를 안 한다면 대국은 더 어려워진다. 좀 다른 얘기지만 내가 실수를 '못'할 때도 있다. 상대가 먼저 중반에 너무 큰 실수를 해버렸을 때가 그렇다.상대가 쉬운 수를 착가해서 큰 실수를 해버렸을 때가 그렇다. 상대가 쉬운 수를 착각해서 큰 실수를 하면 나에게는 실수할 타이밍이 없어져버릴 만큼 바둑이 허무하게 끝난다.(169쪽)

 

실력에 자만하지 않고, 실력이 비슷비슷한 상황에선 실수를 운과 동일선 상에 놓는 건 어찌보면 좀 멋지다.

 

내 경우에는 바둑을 둘 때 적당한 긴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편이다. 오히려 아무 부담 없이 너무 편한 마음으로 바둑을 두다 보면 자칫 기백이 빠진 무기력한 내용으로 흐르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긴장이 지나칠 경우에는 바둑의 행마(行馬)나 흐름이 경직되고 활발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긴장감 조절이 필요하다. 사실 '적절하다'는 게 말은 쉽지만 수치로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84쪽)

 

마인드 컨트롤도 마찬가지다. 대국에서 지고 자신감과 확신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억지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려고 하다 보면 오버 페이스가 되어 경솔해질 수 있다. 내 마음이지만 아무 때나 '내 마음대로'되지는 않는 것이다.

바둑판 앞에서든 바깥에서든 평소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상대방이 누구든,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하든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단시간에 만들어낸 자신감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 우승컵을 놓친 대가랄까?(90쪽)

긴장을 하고 부담을 갖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건 바둑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삶이라고 불리우는 일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지 않을까?

통증의 역치를 낮추듯이,

긴장과 부담의 역치를 낮추는 자기만의 비법을 개발해야지 싶다가도,

그게 반복되면 무뎌질지도 모를 일이니, 그걸 경계하는게 우선이지 싶기도 하다.

 

이세돌의 경운 그걸 극복하였고 적절한 긴장을 받아들이고 즐기는 듯 보이지만,

적절한 긴장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을 갖기 위해선 실력을 키우는게 우선이다.

실력을 갖춘 후라면 자신감은 저절로 생겨날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행운'이 따라오는 것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모한 자신감은 자신을 위장할 순 있을지 몰라도 타인을 설득할 수는 없다.

 

아예 잡념이 들지 않도록 그 싹을 잘라버릴 방법이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아무리 중요한 대국에서라도 무의식 속에서 느닷없이 치고 올라오는 잡생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렇게 예방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선책이 필요하다. 잡념이 생길 때 어떻게 처신하고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프로바둑기사라면 각자 성격이나 스타일에 맞는 비법이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억지로 뿌리치려고 애쓰기 보다는 오히려 잡생각에 잠깐 응답을 해준다, '오늘 이키면 삼겹살에다가 소주나 한잔하지''이따 대국 끝나고 전화해서 딸아이한테 물어보면 되잖아' 이렇게 정리하고 넘겨버리게 된다.

  잡생각이 들면 드는 대로 순응해서 넘겨버리고 나면 잠깐에 그치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팔자 좋게 이런 거나 생각할 때야? 바둑에 집중해야 될 때란 말이야'라는 마음으로 자책하면서 잡생각을 자꾸 떨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그 생각에 발목을 잡혀서 자꾸 떨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그 생각에 발목을 잡혀서 잡념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마음이 흔들리고 바둑의 페이스까지 잃게 된다. 강물이 흐르듯 순응하면서, 그 강물에 잡다한 이물질(?)이 흘러내려오면 그냥 흘러내려 가게 놔두는 게,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내게는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이다.(100~101쪽)

 

잘라내는 것과 가라앉히는 것은 고통이나 추억이라고 불리우는 나쁜 기억들에만 적용되는게 아닌 것 같다.

그걸 이 책에선 잡생각 정도로 축소시켰고,

잘라내는 것과 가라앉하는 것을 두고 어느게 더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이렇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자신을 구슬리고 타협하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어찌 보면 엉뚱한것 같기도 하고 사차원 같기도 한데, 내가 보기엔 멋졌다.

그의 이 같은 행동을 멋지다고 할 수 있는건,

짬뽕공 마냥 생각이 어디로 튈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닮음꼴이고,

우리는 흔히 자기랑 닮은 꼴이거나 사고방식의 사람들을 보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급 호감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인가 보다.

 

바둑기사라면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갓 프로가 된 신인이든, 정상의 자리에 오른 고수든 상대를 얕잡아보는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나쁜 습관이 생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이렇게 합리화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약하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데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잖아? 강한 상대와 둘 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두면 되지. 그게 페이스 조절이잖아."

얼핏 그럴듯하다. 상대가 약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바둑 두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신의 바둑 전체가 오염된다. 약한 상대인지 강한 상대인지 따지는 것도 나의 주관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심리가 조금씩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가 아닌데도 얕잡아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버릇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누구와 둬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바둑을 두게 된다. 그때의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ㆍㆍㆍㆍㆍㆍ자신의 대국 일정이나 컨디션에 따라서 페이스 조절을 하는 것과 상대가 약해 보인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158쪽)

 

여러 생각을 하게 하고,

그의 가치관이랄까, 인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다. 가령 호각지세인 길이 A에서 D까지 네 가지가 있다고 했을 때, 그런 상황에서 다른 기사들이라면 보통 B라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내 감이 '그건 느낌도 별로 좋지 않고 내가 둘 바둑이 아니다'라고 신호를 보낸다면 빨리 포기해 버린다. ㆍㆍㆍㆍㆍㆍ

실전으로 다져진 감이란 정말 무섭다. 호각지세인 여러 갈림길이 있을 때 어떤 게 내 스타일인가는 빠른 시간 안에 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감으로 초기 단계에서 경우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165쪽)

 

신변잡기 식이어서 생각을 깊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방면으로 생각거리들을 제공해주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 중에, 몇몇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이  있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하난, 바둑도 앞에 '내기'를 붙이게 되면 도박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겠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난, 그런 바둑의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 채택 여부를 논의하는걸 보니, 바둑을 스포츠로 분류해야 하는가 보다 하는게 다른 하나였다.

이 두가지 생각은 하나의 결과로 모두어졌는데,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를 지향해야 겠다는 것이다.

 

바둑이 스포츠라는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 부분은 실은 나이 40이면 은퇴를 고려한다는 부분이었다.

바둑처럼 정적인 것이 어느 정도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몰랐던 내겐 일종의 기준점처럼 작용했다.

 

이 책으로 궁금증들이 전부다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직 길 위에 있는 사람이고,

나머지 궁금증을 해갈하기 위하여 이창호가 기다리고 있으니,

그럭저럭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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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8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8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08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6-09-12 14:34   좋아요 1 | URL
전 어렸을때 할아버지를 따라 마실을 다녀서,
바둑이랑 장기를 쫌 둘 줄 압니다.
노인정 바둑과 장기라고 해야 하려나?
어깨 넘어로 배운게 야무진 눈썰미 덕인지(으쓱으쓱~^^)...
지금 노인정에 데려다 놔도 용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근데 화투는 짝도 못 맞춘다는 거~--;
하지만 그래도 남편 친구들이랑 내기를 하면,
판돈은 제가 다 쓸어 모은다는 사실~^^

지금은 아주 많이 나아졌는데,
아무래도 지고는 못 사는 성격 탓인 것 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6-09-09 06:45   좋아요 1 | URL
응팔 드라마를 통해서 저도 바둑에 대한 관심이 생겼었어요
그리고 저도 류준열을 좋아해서 `어남류`의 결말로 이루어지질 않아 어찌나 화가 나던지~~한 며칠 박보검 얼굴만 봐도 속이 쓰려서~~ㅜ
그러다 꽃청춘에서 박보검의 인성을 보고서 화를 달래고 마음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그러면서 박보검 하면 아직 사극을 보질 못해서 그런지 항상 바둑이 먼저 떠올라요!!
어릴적 생각해보면 응팔 그시절였던 것같아요!! 친정아버지께서 늘 바둑판만 잡고 계셨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그러고보면 그시절쯤 바둑이 유행이었었나?싶기도 하구요
암튼 바둑이라하면 어렵지만 괜스레 친근감이 가고 약간 추억의 스포츠 같단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라 생각하고 관심없었던 책이었는데 나무꾼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책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직장생활 하시느라 힘드시죠?
건강 조심하시고 다가오는 명절도 잘 보내시구요
(넘 이른 인사에 괜히 심란하게??ㅋ)

양철나무꾼 2016-09-12 14:39   좋아요 2 | URL
저 지금 이창호 부득탐승 읽고 있는데,
이세돌보다는 가독성이 뛰어나요.
거기다가 최택(박보검)의 설정이 전부 다 이창호에서 비롯되었지 싶네요.

전 시어머니가 살아 계실땐 명절에 시골 가는게 그리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남들이 다 가니까, 체면에 물려 형식적으로 오가는 것 같아서...시간 낭비이지 싶지만,
그래도 어쩔 수 있나요?
오랜 전통인데...악법도 법이다 이러면서 따라야죠~(,.)

님도 보름달처럼 풍성한 추석 보내시길~^^

2016-09-11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2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