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두번째 애인인 아들이 대학교 2학년이라고 하면, 첫번째 애인인 남편에 대해선 더이상 묻지 않는다.

으레 그렇고 그런 과정을 거쳐 애정을 남발하기보다는 유지하는 쪽으로 가족 간의 유대관계를 이어가고 있으려니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이런 관계가 나름 괜찮은 것은, 애먼 데 에너지 소모를 안 하게 되기 때문이지만,

결정적인 한방 내지는 극적인 순간, 인생의 정점이라고 할만한 변곡점이 없다는 점에선 좀 아쉽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나의 유일한 樂은 사촌 여동생의 딸내미이다.

5촌 당숙 간이니까, '이모~, 조카~'하는 사이지만, 혈연적이나 유전적으로 유전적으로 유기적 관계를 따지기엔 아주 미미하지 싶다.

그런데 이 조카가 야무지고 똑부러지는 것이 내 맘에 쏘옥 들게 행동을 한다.

어릴때 나를 보는 것 같은 것이, 어찌보면 표정도 닮은 것 같고, 내 속으로 낳았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겠다, ㅋ~.

당연히 애정 표현도 과할 수밖에 없고, 응원하는 의미에서 해주는 칭찬도 항상 하이톤이다.

얼마 전 이 조카와 전화통화 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 두번째 애인은,

"엄마 그러는 거 아니지~,

 난 이제 다 커서 엄마가 의욕을 북돋워주려고 그냥 오버하는 거라는 걸 알지만,

 어린애가 그런 말 들으면, 정말 잘해야 한다는 뜻인줄 알잖아.

 이것 저것 다 잘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랑 비교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생각해 봤어?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애한테 맨날 뭘 잘해라, 열심히 해라 야?

 어릴땐 아프지 않고 잘 놀면 되는거지,

 좀만 더 커봐라, 걔도 학원 여기저기 다니느라고 엄마랑 전화통화 할 시간도 없달거다."

맹세컨대,

난 우리 아들에게 나와의 경쟁심을 불태워야 한다고 한 적도 없고,

앞만 보고 내달리라고 한 적도 없으며,

나를 닮으라고 한 적은 더더욱 없다.

반대로만 하는 청개구리 아들을 둔 청개구리 엄마 마냥,

산에다 묻으라고 하면 개울에 묻어 떠내려 가게 될까봐,

반대로 개울에다 묻으라고 했는데, 

청개구리 아들이 처음으로 엄마 말 듣고 개울가에 묻어서,

진짜 떠내려가게된 엄마의 신세라면 모를까~(,.)

암튼 내 뜻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조물주의 독자적인 창작품이 확실하다.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독특하다고 하는 것과 관련,

내가 아들 녀석을 볼때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한번씩 나랑 닮았을지도 모른다고 체념을 하게 될뿐이다.

 

분위기를 바꾸어, 인문학 강독회'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어떤 강연을 갈무리 한 것 같은데,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와는 또 다른 의미로 읽히는 것이,

그동안은 박웅현이 좋을때도 있고 별로일 때도 있었던 내게,

그만의 고유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그동안  이 책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독서록이라든지 서평집, 책 읽는 법에 관한 책을 좀 읽어왔었다.

그의 전작들을 포함한 그동안의 책들은 '왜 읽느냐'고 묻고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요번 책 '다시, 책은 도끼다'는 '어떻게 읽느냐'고 묻고 '천천히'라는 독법을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천천히 책을 읽는다'에서 '천천히'란 물론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을 얘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밀어 보는 일, 가끔 읽기를 멈추고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가끔 읽기를 멈추고 한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화자의 상황에 나를 적극적으로 대입시켜 보는 일, 그런 노력을 하며 천천히 읽지 않고서는 책의 봉인을 해제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6쪽)

'저자의 말'을 빌어 이렇게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문학ㆍ역사ㆍ철학'을 아우르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책을 막 시작할때까지만 해도, '인문학 강독'이라는 소제목과 첫 텍스트로 소개되는 '쇼팬하우어'의 '문장론'과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를 보고, 지레 겁을 먹었었다.

고백하자면, 이런 책들은 우리 말로 적혀 있어서 읽더라도 읽을 수 있다 뿐이지, 무슨 뜻인지 알아먹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었다.

뭐 좀 묵히고 이리저리 굴리고 둥글리다 보면 다른 해법이 나와줄지도 모르겠지만,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 책 한권을 상대로 묵히고 굴리기까지 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을 매달려야 하는데,

세상은 넓고 책은 무한정 많다는건 핑계고, 앞만 보고 내달리기 바빴으니까 말이다,ㅋ~.

 

그런데, 인문학을 막연하게 '문학ㆍ역사ㆍ철학'따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바꿔놓고 보면 한결 접근하기가 쉬워지는데,

내가 '인간'인 이상 지금 이 시간에도 숨을 쉬고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게 놓고보면 한결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접근하기가 수월해진다.

 

언제부턴가 나만의 리듬과 속도를 가지고 책을 읽을려고 노력해왔고,

책을 읽은 느낌을 나름 정리해 내것으로 만들려고 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많은 양의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나 읽은 느낌을 잘 갈무리하여 기록으로 남겨놓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 박웅현은 논어와 쇼펜하우어를 인용해,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닫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라고 하고 있으며,

지혜보다 높은 것이 있다. 느끼는 것

이라며 시인 고은의 목소리를 인용해 이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인데 반해서,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라는 것이며,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체를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말은, 책을 읽기만 해선 아무 소용이 없고, 읽었으면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하고, 깨달았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미이겠다.

 

이것이 인문학을 학문의 틀 안에서 접근하면 마냥 어렵지만,

살아 숨쉬는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바꾸어 놓고 보면 한결 수월해진다는 의미이겠다.

 

그러니 인문학서적을 계속 확장시키다 보면 우리가 읽는 도서 전체가 될 것이고,

그러니 인문학의 의미를 확대시키다보면 인간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 될 수 있는 까닭이겠다.

 

그러면서,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하며, 『생각의 탄생』에 나온 꽃을 그리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숨을 거두기 직전 '관찰'에 대해 한 말을 인용하는데,

"꽃을 보려면 시간이 걸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지"라고요. 마찬가지로 책도, 여행도, 생각도, 천천히 나의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57쪽)

가 그것이다.

 

이 얘긴 책도 제대로 읽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정도의 의미가 될 수 있겠으며,

바꾸어 말하면 각 연령대 별로 책이나 삶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된다는 의미이겠으며,

또 다른 의미로, 각 연령대 별로 삶의 방식 내지는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한다는 얘기이겠다.

 

때문에 인문학적인 독서를 한다는 것은,

읽은 것을 깨닫고 느낀 것으로 전환시키느냐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고,

독서를 시각적인 영역에서 오감을 이용한 공감각적인 영역으로 얼마나 잘 확장시키느냐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각 연령 대 별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얘기는,

전에는 읽으면서 재미없거나 내용이 이해가 안 된던 책들이,

나이가 들면서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에 따라선 재미있을 수도 있고 충분히 공감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저자 박웅현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와 몇가지 기행문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좋다고 설레발을 치면서 강력 추천하고 있는 책을 읽지않고 견딜 도리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지만) 그가 나이 지긋한 중년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만약 그가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이었어도,

(그는 인간을 주체로 놓고 이런 비교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ㅋ~.)

삶의 매순간순간을 아름답다고 했을 것이며, 매 순간을 우아하게 보내는 법 따위를 언급했을까 싶었다.

 

삶의 매 순간순간이 아름답게 보이는건, 연령대 별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얘기이겠고,

삶 대신 책을 적용시켜도 마찬가지 이겠다.

다만 연령대 별로 달라지는 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적용시킬려면, 살아온 날만큼 견뎌낼 수 있도록 책의 수명이 길어야 하겠고,

그런 것들로 고전을 적용시키는 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겠다.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고전들이 이제 무한감동을 주듯이 말이다.

 

젊은 시절은 서정적일 수가 있어요. 한 여자에게 반했을 때, 온전히 그 사랑의 긍정적인 측면만 보이죠. 오십이 되고 나면 그 뒤가 보여요. 그게 보이니까 사랑에 집중을 못해요. 그런데 젊은 시절에는 사랑에만 집중하기가 쉽죠.ㆍㆍㆍㆍㆍㆍ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한테 로맨스가 쉽지 않은 거죠.(247쪽)

 

 알랭 드 보통은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젊은 여자들이 자기 또래의 남자가 아니라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서투름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남자의 성격적 매력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주는 매력에 매혹된다는 거죠.(258~259쪽)

 

이렇게 젊은시절과 중년시절을 모두 아우르는 얘기들을 하는데,

젊은 시절을 통과한 중년의 그가 하는 얘기니까 수긍할 수 있는 것이고 멋져 보이는 거 겠지만,

만약 젊은 청춘이 이런 얘기를 관조적으로 늘어놓거나,

그 같은 중년이 젊은 청춘의 로맨스에 대해서 '로망을 갖고' 이런 얘기를 했다면, 

글쎄~, 처량 맞아 보이는 차원을 넘어서, 주책이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이 책에서의 '인문학'을 '인간의 삶 전반'으로 바꿔도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에만 집중하게 되는 젊은 날에는 안 보이고, 못 보고 지나갈지 모르는 것들인,

방귀뀌는 습관과 짜증내는 모습,이런 걸 다 알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다고 하지만,

중년에 이르면, 방귀뀌는 습관과 짜증내는 모습 따위, 우리의 삶에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산재해 있다는 걸 깨닫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누구도 거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토를 달지 않으니까 말이다.

 

박웅현은 마르케스를 현실적이고도 낭만적인 아름다운 이야기로 표현하며, 시대상와 문예사조로 설명하려 드는데,

난 사람마다 연령대 별로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쯤으로 바꾸고 싶다.

아무리 매혹적인 로맨스라도 너무 어렸을때 읽어선 그 의미를 모를 것이고,

사랑에 목숨거는 젊은 시절엔 머리는 다 빠졌고, 지팡이를 짚고, 의치를 끼는 중년이나 노년의 유대 방식은 이해불가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걸 그는 이렇게 멋진 말로 마무리 한다.

모든 사람의 독법은 저마다 다 다를 겁니다. 글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 삶의 모습과 닮은 부분들을 눈여겨본다면 공감이 되면서 더욱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말의 정글을 여행하고 나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길 거라고 믿습니다.(294쪽)

 

암튼, 여기까지 읽게 되면 '인문학'을 '인간의 삶 전반'으로 바꿔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될 뿐더러,

젊음이나, 청춘, 중년이나 노년 따위의 한 단어가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단어가 아니란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기존의 가치와 형식들이나 현재의 그것을 놓고, 어떤게 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따위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될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만이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자연과 인간 사이에 경계가 없어지게 되면서,

'죽음'도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난 개인적으로 '장자'를 참 좋아하는데,

이 책에선, 『천상의 두나라』에 나온 장자를 인용하고 있다.

 

땅이 내 관이 되고, 하늘이 내 묘비가 될 게야. 해와 달과 별이 내 무덤을 장식할 게야. 그보다 더 아름다운 어떤 것을 더할 수 있는가? 장례식 없이 나를 보내도록 하라. 나는 무덤을 원치 않는다.ㆍㆍㆍㆍㆍㆍ'하지만 독수리가 시신을 먹어 치울 텐데요. ㆍㆍㆍㆍㆍㆍ나를 묻지 않으면 독수리가 먹어 치울 것이다. 하지만 나를 묻게 되면 벌레들이 나를 먹어 치울 것이다. 전자보다 후자를 선호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187쪽)

성장하면서, 살아가면서,

각 연령대 별로 책이나 삶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수도 있다.

바꾸어서, 각 연령대 별로 삶의 방식 내지는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어느게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따위를 판단할 수 있는 가치 판단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나는, 나만의 리듬과 속도를 가지고 그렇게,

나만의 책을 읽을려고 노력해하고,

책을 읽은 느낌을 나름 정리해 내것으로 만들고,

깨달았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한 부분, 불교와 관련하여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어, 지인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이런 답을 주셨다.

나도 지인의 생각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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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데...
    from Insure safety distance 2016-06-20 14:46 
    때때로 누군 말로써 자신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 글이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또는 말과 글 양쪽 다 자신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웅현 님의 '다시, 책은 도끼다'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실전에 적용시켜 볼 수 있는 근사한 책이었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얼마 전, '다시 책은 도끼다'를 읽다가 혼란스러웠던
 
 
oren 2016-06-18 10:49   좋아요 1 | URL
저는 지인의 글이 오히려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지인의 말씀대로 `해탈의 세계는 연도 멸도 없는 것`이라고 했는데, 불교가 `해탈`이 목적이라면 지인의 말씀대로 `연도 멸도 없는 것`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거야 말로 박웅현 님의 글 속 주장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게 아닐까요?(비록 최종 목적이 `멸도 없는`이 아니라 `멸`이라고는 밝혔지만, 결국 그 뜻은 `다시는 무엇으로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궁국적으로는 `연도 멸도 없는 상태`를 말할 따름이니까요.)

지인의 글은 어쨌든 제게는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해탈`을 설명해 놓고, 뒤이어 곧바로 `해탈`과는 반대되는 말씀을 하시니까 말이지요. 곧 `연도 멸도 없는 상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새로운 연`을 이루고, 그 연을 따라 무엇이 되고, 또 무엇이 되는, 해탈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쪽으로 흘러가니까 말이지요.

양철나무꾼 2016-06-18 12:32   좋아요 1 | URL
네, oren 님의 입장 충분히 이해하고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불교의 목적을 `멸로 보느냐, 해탈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얘기이고, 이건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테면 용어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팔꿈치를 삐끗했을 경우, 병원 가면 어떤 사람은 부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염좌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며칠 치료하면 나을거라고 하는 것처럼 말예요.

박웅현 님 말씀에서 혼란스러웠던게 제가 인용한 저 문장`불교에서 수행의 최종 목적은 환생이 아니라 멸이랍니다`에서 멸을 환생의 반대개념처럼 놓았다는 것이지요. 그래놓고 그 다음에 설명되는 것들은 환도, 멸도 아닌 `해탈`의 개념이라는 것이었고, 님도 그부분을 명확하게 짚어 주셨구요.

제가 지인의 말에 수긍하겠다고 한 이유는 `해탈`이나 `空`의 개념과 관련하여서인데,
환의 반대 개념이 멸이라면, 멸의 반대 개념은 환이 되어야 하지만,
환생과 멸을 따로 떼어 있음과 없음 처럼 대척점으로 둘것이 아니라,
`환생과 멸이 있는 상태`를 한데 묶어 `있음`으로 보았고
`환생도 멸도 없는 상태`를 또 한데 묶어 `없음`으로 보았다는 것이지요.

아, 저는 이해가 가는데, 설명에 한계를 느끼네요.
박웅현 님 말씀대로라면, 이건 알아도 아는게 아닐텐데 말예요~ㅠ.ㅠ

2016-06-18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8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8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