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컴퓨터를 끼고 살지만, 하도못해 요즘은 인터넷이 되는 스마트폰까지 끼고 살지만,

그걸 통하여 정보나 뉴스를 접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인터넷 대형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라는 것이,

'인기'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나한테는 생소한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시대에 한창 뒤떨어진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들고,

그럴때면 한번씩 주의깊게 들여다본다고 들여다보는데,

다 그넘이 그넘 같이 생겨서 분간이 안 가는데다가,

전하는 정보나 뉴스도 나름의 일정한 주기를 갖고 리바이벌하는 것 같아서,

진지하게 맘 먹고 접근했다가도 이내 시들해져 버리곤 했다.

 

그런데 요며칠은 가수이자 라디오방송 진행자로 알고 있었던 조영남에 진중권이 합세했는지라,

궁금함이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조영남과 대작 작가의 입장은 다들 알고 있을테니까 차치하기로 하고,

내가 알쏭달쏭 야릇한건 진중권의 코멘트이다.

 

난 미술계의 관행은 물론이거니와 팝아트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고로,

이런 쪽에 훌륭한 책도 쓰시고 고명하신 서울대 미학과 출신 진중권 님의 코멘트를 인용해 보겠다.

화가 난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렇다고 사기죄로 고소한 것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조영남이 사기범이라면 그걸 도와준 사람(대작한 사람)은 공범이죠. 그러니 본인의 주장이 옳다면, 논리적으로 고소를 할 일이 아니라 자수를 했어야죠. 그의 분노와 좌절, 수치와 모욕감에는 충분히 공감하나, 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죠.

ㆍㆍㆍㆍㆍㆍ

생각해 보세요. 검찰과 언론과 여론이 달려들어 사기죄로 처벌 한다고 합시다. 검찰과 법원의 미적 교양수준이란 게 믿을 만한 게 못 되니, 그 인민재판의 분위기 속에서 단죄가 되면, 그게 어디 조영남으로 그치겠습니까? 그럼 애먼 다른 작가들까지 줄줄이 말도 안 되는 이유에서 곤욕을 치르겠죠.

 

진중권 님의 논리에서 궁금한 것은,

애먼 다른 작가들까지 말도 안되는 곤욕을 치른다고 해서,

그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것이,

그게 잘못된 관행이어도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니까 답습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누가 한말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가수에겐 목소리가 지문 같은 것이고,

배우에겐 몸짓이나 행위가 그런 것이란 얘길 들었다.

그렇다면,화가에겐 붓터치라고 뭉뚱그릴 수 있는 필체랄까, 그림체가 고유지문 같은 것일게다.

 

내가 글씨가 좋은 사람에게 홀릭한다는 얘긴 누차 반복했었고,

언젠가 조영남의 글씨체를 보고는 그의 그림체와 어울리지 않길래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난다.

 

조영남을 향하여 궁금한 것은,

다른 화가들이 그러하듯

그 또한 기초부터 탄탄히 쌓아올린 것인가 하는 점과,

그런 연후에 작품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대작화가인 조수에게 그림의 90퍼센트의 과정을 맡겼나 하는 것이다.

오늘은 '판화'라는 말까지 하는 걸 보면 90퍼센트 이상인 것 같다만~--;

 

군대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는데,

자신이 그렇게...그림을 구상하고 방향을 설정하여 오랜시간에 걸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그렇게 그림 한점을 완성하는데 드는 시간과 수고와 노동을 체험했다면,

군대시절부터 여지껏 오랜 세월동안 그림에 관심을 갖고 그려왔다면,

가수로서의 그 만큼이나 화가로서의 그도 몸에 각인되었을텐데,

그런 자신의 그림을 향하여 판화를 찍어내듯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며,

자신의 아이디어와 예술혼이 담긴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면 말도 안되는 헐값에 대작 의뢰할 수 있었을까 하는거다.

 

어쩌면, 진중권 님의 말대로 그게 미술계의 관행이고 사기죄까진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음악을 하고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대중에게 보일, 적어도 자신의 그림을 대신 그리는 작가에게, 체온만큼의 온기를 가지고 대했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젊어서부터 그림을 그려 그 정도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면 더 더욱 치사하고 졸렬한 착취이다.

 

피카소도 그렇고 단원도 그렇고,

대중들이 접근하기 쉽게...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들도 기본기부터 탄탄히 한다.
 
이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지극히 절제됐다는 차원을 넘어서 소박한 느낌마저 드는데,

그것은 후끈한 열기가 아니라 따뜻한 온기이다.
다다르지 못함이 아니라, 최고의 경지에서 구사할 수 있는 덜어냄이고 비워냄이다.

조영남, 그가 가수와 화가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화수'일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 어떤 호칭 앞에서도 '대중'이란 말은 빼야 한다.

 

대중이란 말은 자기가 아이디어를 냈다고 우기고, 자기가 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 주어지는 수식어가 아니라,

적당한 온기를 지녀,

지친 마음을 감싸고 어루만지고,

그리하여 위로가 되어줄 때 붙는 '헌사'이다.

 

그는 더이상 대중가수도 아닐뿐더러, 팝(대중)아트를 하는 화가도 아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곽진언 - 정규 1집 나랑 갈래
곽진언 노래 / 로엔 / 2016년 5월

 

 

 

그런 의미에서 난 곽진언이 좋다.

그의 무색, 무취, 무미의 목소리가, 담박한 노래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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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5-19 18:38   좋아요 0 | URL
저두 진중권님이 코멘트 달았대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군요.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철나무꾼님 말씀처럼 관행이니까 괜찮다는 논리도 생각해봐야할 문제 같아요.
그리구 저두 인터넷으로 기사보면 믿음이 안가서 잘 안보게 되더라고요. 오늘만해도 한강 작가님의 책을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 인가, 무튼 그분이 한국책을 번역하기 위해 6년을 공부했다, 7년을 공부했다,9년을 공부했다 등등 매체마다 달리 이야기하더라고요 ㅋㅂㅋ. 이럴땐 신문이 최곤데 구독할 수 없어서 입맛만 쩝쩝 거리며 아쉬워지곤 하더라고요 ㅋ

양철나무꾼 2016-05-21 09:11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건 차치하고라도 대작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그 자리에 조영남이 있었느냐 아니냐, 가 관건인것 같아요.
연애하랴, 사람들 구설수에 오르랴, 방송활동하랴,
맞다, 최근까진 쎄시봉인가 그것까지 하느라 바빴을 그가,
손오공처럼 머리카락을 뽑아 분신을 여럿 만들지 않고서야 그 작품을 어찌 감당했을까 싶었어요.
언젠가 `나를 돌아봐`인가에 나온걸 보니까 옷도 혼자 못 갈아입는 할배더구만~--;

맨부커 상만 해도 그렇죠.

일단 한강 님의 맨부커상 수상은 축하드리고요~!
그니나, 영문 번역자를 가지고 뭐라고 하려는게 아니라,
우리나라 언어라는게,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이라는게 6년이나,9년, 10년 정도 공부했다고 해서,
정서까지 제대로 번역할 수 있는 그런 거라고 합디까, 어디?
데보라 스미스인가 하는 사람이 맨부커 상 후보에도 오른 작가라지요?
그리고 영문본으로 읽은 사람들 말에 의하면 완전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났다고들 하고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들 하기도 합니다만,
우리나라 말로 출판될때 보면 편집될때 토씨하나 건드리는걸 원치않는 작가들도 있다고 하던데,
생각해볼 꺼리가 많은 문제이긴 합니다.
이래 저래 저는 할일없이 영문판 `채식주의자` 한권 읽게 생겼습니다여~ㅠ.ㅠ


2016-05-19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21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