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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에코 하우스 - 레알 도시 여자의 적당 생태 백서
고금숙 지음 / 이후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
요즘 내 삶의 주된 관심사는 공방과 전원생활이었다.
공방이라고 하면 물건을 파는 행위로까지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서 내가 쓰는 일종의 자급자족의 삶을 원해서였다.
전원생활도 자급자족의 연장선 상에서 얘기하고 했는데,
그럼 되돌아오는 대답은 전원생활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둥,
상추에 달라붙은 달팽이를 보고도 경기를 일으키는 니가 잘도 견뎌내겠다, 면서 기함을 토해내곤 한다.
그런 이들을 향하여,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내가 꿈꾸는 공방과 전원주택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머릿속에 뒤죽박죽 얽혀서 그럴듯한 대답을 못해주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환경'이나 '생태'라고 하면 어떤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거창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당근 내용은 무겁고 들어보지 못했으니 이해불가-재미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깔깔대며 웃다보니 그동안 내가 그려왔던 공방과 전원생활이라는 것이,
그녀와 이 책의 그것과 똑같은데 적절한 용어를 찾지못해서 빌려쓰고 있었던 것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적절한 용어를 찾게된 지금도 '환경'이나 '생태'라는 말은 사용하고 싶지않다.
난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현모양처'놀이나 코스프레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요즘의 공방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눈여겨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재활용이나 리폼에 주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프로방스, 북유럽, 킨포크 따위 내가 알도보도 못한 지역명에다가 '스타일'이라는 말을 붙여서 만든,
재료를 새로 구입하거나 심한 경우 그 지역의 재료를 수입하기도 한,
'그린'이나 '에코'라는 말을 심심할때마다 한번씩 사용하기는 하지만,
전혀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는 형태와 럭셔리한 가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보여지는 결과물은 나와 다르지만, 나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나의 행보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딴지를 거는 이들에게 이 책 한권만 들이대면 될 것 같다.
ㆍㆍㆍㆍㆍㆍ물론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핸드메이드 라이프'는 참으로 값지다. 그런데 자급적 삶을 위한 실천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만족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이라면, 차라리 대안 제품을 조금씩 구매해 아껴 쓰는 편이 나은 것 같다.(289쪽)
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여러가지 책들을 인용하며 나열한,
작은 집에서 작은 살림으로 심플하고 군더더기없이 사는 삶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손이 가는 공간과 물건을 줄이고 욕심을 내려놓는 대신,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보며 구름의 움직임을 살피고, 생각나는 사람들 안부를 묻고, 동네 고양이들을 살피며 산책하는 삶이라고 정리한다.
ㆍㆍㆍㆍㆍㆍ책을 사도 이사할때 책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생각이 났고, 공짜로 주는 사은품도 내용물을 확인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면 거절했다. 책과 사무용품은 지금 가진 책장과 서랍 용량을 넘지 않도록, 옷과 가방, 장신구 등은 옷장에 들어갈 만큼만 허용해 웬만하면 살림 규모를 '지금, 이대로' 유지하는 걸 목표로 했다.(210쪽)
고 하고 있다.
나의 그것도 공방과 전원생활이라는 용어로 불리우지만,
심플라이프나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한다는 걸 알게 됐지만,
이 모두를 강제적으로, 전투적으로 행할 마음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직접 내몸을 부딪혀 움직이며 살다보니,
필요한 것이 별로 없어지고 소박해져서 몸에서 배어나오는 몸이 먼저 느끼는 깨달음이었으면 좋겠다.
그걸 그녀는,
ㆍㆍㆍㆍㆍㆍ사람마다 포기할 수 없는, 그리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사치가 하나쯤 있다고 인장하기로 했다. 우리 모두 귀농해서 비전력 삶을 살거나 스몰 하우스에서 실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극적으로 인생을 리셋할 필요는 없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각자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더, 꾸준히 실천해 나가면 된다.ㆍㆍㆍㆍㆍㆍ나도 화분과 커피 내리는 도구는 내 인생의 사치로 여기고 조금씩 늘어나도 내버려둔다. 각자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사치를 한두 가지 정한 다음, 나머지는 뺄셈으로 일관해 보자.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며 보태지 말고, 즐겁게 감당이 될 만큼 비우는 뺄셈의 자세를 갖자는 것이다. 스몰 하우스는 공간과 살림의 크기를 통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철학을 보여 준다.(218~219쪽)
라는 말로 나에게만 하는 말은 아닌데, 나를 강하게 위로한다.
그녀의 그것이 나와 다른 점을 들라면,
그녀의 그것이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근거한, 말 그대로 10년을 버텨온 것이라면,
나는 살면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이며,
조금 부족하거나 못하는 것이 있어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나만의 기준과 속도를 가지고,
소신껏 살겠다는 말의 다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를 하면 그녀의 것이 부럽지 않아야 하는데,
비전력스피커는 쫌 부럽다.
비전력 스피커(<=고금숙 님의 홈페이지 링크)
이 책이 적절한 일러스트와 공간 배치를 사용해 답답하지 않고 쉽게 읽히고 재밌을 뿐만 아니라,
참고서적과 그 밖의 참고자료, 집을 장만할때의 체크리스트 따위가 꼼꼼하게 적혀있는 훌륭한 책임에 틀림없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녀의 그것들이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환경'이나 '생태' 또는 재활용이나 리폼이라는 말만 듣고 구질구질하거나 지지리 궁상을 연상할 수도 있을텐데,
사진이 하나도 실리지 않아서 이해와 공감이 반감될 수도 있겠다.
링크한 홈페이지에 가보면 알겠지만,
이쁜 사진들이 적당히 실려서 이해가 훨씬 수월하고,
자연스레 시도해 보고 싶어진다.
특별히 의식있는 사람이나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아니어도,
마음 먹고 하고자 한다면 시도해 볼 수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진이 없으니 좀 추상적으로 느껴졌었다.
이 책을 읽고,
소박하게 살겠다거나 느리게 살겠면서,
삶의 내용이나 속도 따위 내지는 질적인 면을 가지고 공약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만의 삶의 내용과 속도를 가지고,
내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자 서로의 삶을 살겠지만,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그녀에게 하는 응원은 '힘내라'가 아니라 '힘내자구요'이다~!
하긴 요며칠 나에게 소홀하고 삐딱한 친구에게 '제대로 삐치는 수가 있다'며 경고를 하였더니,
'난중에 보자'는 답이 돌아왔지만,
난 지금 이순간이 중요할 뿐이다.
나중에 보자는 사람은 하나도 안 무섭더라, ㅋ~.
모든 권리에는 의무와 책임이 뒤따른다.
돌이켜 뉘우치고 반성하는 사람이 나중에 보았을때 한뼘쯤 훌쩍 성숙해 있을것이다.
나중에 제대로 보기 위해선,
돌이켜 뉘우치고 반성하는,
예를 들어 리뷰나 일기라도 쓰는 삶을 평소 생활화해야 하겠다.
고로, 나중에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지만,
나중에 보자는 말이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난중 일기라도 써야 한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