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차리는)남자? 상남자! - 삶이 따뜻해지는 다섯 남자의 밥상 이야기
조영학.유정훈.강성민.이충노.황석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조선시대 궁중요리사는 남자였고, 사옹원에 소속되어 숙수라고 불렸다는 얘기는 새로울것도 없거니와,
그러고보면 그 당시엔 단순히 음식이라기 보다는 치료의 개념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쿡방, 먹방이라고 하여 쉐프라는 이름의 남자 요리사가 대세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럭셔리한 요리의 반대 급부로 엄마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회자되기도 한다.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조영학 님과 글항아리 강성민 님이 필진이어서 망설이지 않았는데,
읽다보니 메디치출판사다.
메디치출판사의 책만드는 감각이 나의 독서 취향이랑 비슷한가 보다, 비껴가지 않게 된다.
띠지를 따로 만들지 않고 띠지처리한 겉표지도 맘에 들고,
작가들의 얼굴을 세밀화로 그려낸 것도 맘에 든다.
이 책은 여는글에 적힌대로, 요리책이 아니다.
상남자 5인방의 솔직한 가족사이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한 끼의 식사'를 정성스럽게 차려내는 평범한 사내들의 무용담이다.(8쪽)
이 책의 필진이 작가들만 있는 것도 아닌데,
글이 하나같이 군더더기가 없고 그래서인지 오히려 큰 감동을 준다.
요리의 솜씨나 내용으로 내공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을 하다가 아내를 위한 밥을 짓는다는 조영학 님은 아무래도 보통이 아니지 싶다.
텃밭농사를 지어 식재료를 조달하는 것도 그렇지만,
당신 손으로 직접 맥주와 막걸리를 빚는다는 것은,
솜씨가 좋아서가 아니라 좋은 재료로 정성껏 빚기 때문이라고 겸양을 부려도,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어릴때부터 야한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리를 하기 위해 엄머의 외출을 기다렸다는 강성민 님의 글도 맛깔스럽다.
먹는 일은 즐겁다.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먹는 일에는 정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가꾸는 것이리라. 뭐가 그렇게 바쁜지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에 마음을 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해서 환경 자체가 음식에 친화적이다. 책 속에도 있고 책 만드는 사람들 속에도 항상 음식 이야기가 있다. 음식을 빼고 글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문학도 음식이고 역사도 음식이다.(108쪽)
강성민 님의 글은 맛깔스러울 뿐만 아니라 소박하고 정겹다.
ㆍㆍㆍㆍㆍㆍ"민어가 민물고기야?"라는 소리를 들었던 민어매운탕 등 요리하는 일은 창조였으며 재료와 소통하는 일이었다. 맛내기에는 자주 실패했지만 사람들이 즐겁게 동참해줘서 요리하는 일이 즐거웠다. 어느 날 부지런히 음식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는 나를 보고 아내는 "그걸 왜 먹을 때마다 찍어?"라고 묻는다. 내 대답은 "곧 사라지니까. 한시적인 존재잖아." 모든 음식은 아름답다. 한시적인 존재인 인간이 그런 것처럼.(120쪽)
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음식 이야기를 돌아보면, 음식을 통해 대단한 뭔가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음식은 삶이기도 하고 역사이면서 시이기도 하다. 음식이라는 카테고리를 머릿속에 떠올리면 거기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는다(124쪽)고 하고 있는데,
이쯤되면 글도 음식만큼이나 정갈하다.
쿨해서 멋지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실은 이충노 님이 아니고 아들 은규였다.
다행히 은규는 양평 일진들에게 쉽게 휩쓸리지 않았다. 하지만 선후배는 물론, 친구 하나 없이 아빠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중3 아이의 모습은 몹시 안쓰러웠다.
"쪽 좀 팔린다고 여기서도 그러면 안 되죠."
"비굴해지더라도 피해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얘들이 너무 세게 나올까 봐 걱정이에요."(144쪽)
글에서도 로맨틱함이 베어나는 사람은 영화 번역가 황석희 님이었다.
그는 요리가 즐거운 건 맛있게 같이 먹어줄 아내가 있기 때문이란다. 배가 차는 알약 하나만 있어도 그만 이고 평생 라면만 먹으며 살아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그는, 혼자가 된다면 당장 요리를 그만 둔다고 선전포고를 할 정도로,
즐거운 무엇도 아내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You say, it's done.(당신이 원하면 뭐든지 이루어 드리리.)"는 조영학 님이 "사랑해"와 함께 입버릇처럼 아내에게 들려주는 얘기란다. 근데 이게 립서비스가 아니라 아내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란다.
이쯤 되면, 이 책이 요리책이 아니라, 솔직한 가족사이고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에 마음을 내는 사람들의 진솔한 얘기라는 것을 알겠다.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동안의 난,
궁금한게 많아서 먹고싶은게 많다고 할 정도로, 식탐도 많았었고,
들이는 책이 읽는 책의 속도를 훨씬 앞지르는데도,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보면 괜히 셀레여서 어쩌지 못하곤 했었다.
체증에 보대끼더라도 젊었을 때는 치기로 극복할 수도 있었던 것들이,
이젠 상호적이고 어울려야 한다는걸,
말이 안 통하는 재료와도 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겠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 나와 다른 것들을 욕심내지 말고,
내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고,
내 자신의 속도로 살라고 가르쳐 준다.
나름의 속도를 찾으니,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도 않게 되고, 체기가 무서워서지만...맛있다고 과식하지도 않게 된다.
이 책이 모든 이들에게 나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나름대로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살면 된다고 가르쳐준 멋진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