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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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러니까 난 그 사람의 글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 사람의 글만큼 그 사람을 잘 반영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대본, 시나리오처럼 허구의 그것이든지, 붓가는 대로 쓴다는 수필이든지 간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소설처럼 허구의 그것이라도 개연성이나 핍진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인간의 그것을 비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김연수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그게 다 핍진한 문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84쪽)

 

내가 이 글 처음에 밝힌 저 문장은, 김연수에게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내가 김연수에게 느낀 심심함은 다른 사람들 또한 그렇게 느꼈는지,

ㆍㆍㆍㆍㆍㆍ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그 소설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를 말하지 않고 나의 어디가 잘못 됐는지를 얘기했다. "그렇게 숫기가 없어서 무슨 소설을 쓰나?" 이런 말도 들었고, "소설가가 술을 그렇게 못 마셔서야!" 이런 말도 들었고, "연수씨는 정신을 좀 내려놓고 에고에서 해방되어야만 해요", 이런 말도 들었다. 소설을 고치라면 고치겠는데, 나를 바꾸라니. 그건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100쪽)

그는 책을 빌어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근데, 이게 소설가에게만 국한된 일이라곤 할 수 없는게,

나도

"그렇게 숫기가 없어서 무슨 큰일을 하나?"라든지,

나의 직업을 들먹여 가며,

"OO가 술을 그렇게 못 마셔서야!"

"넌 정신 줄을 좀 놓을 필요가 있어."

따위의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국 '소설가의 일'이란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직업이 소설가인 사람의 일이고,

이건 바꾸어 얘기하자면, '사람의 일'정도 되겠고,

한마디로 줄이면 '삶'정도 되겠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은 나와는 다른 삶을 살거라 생각하고,

내일은 오늘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인생 뭐 별거없다.

다른 사람의 삶도 나와 크게 다를 바 없고,

내일의 삶이 오늘과 크게 다르지도 않을것이다.

 

그러면 이 평범한 삶을, 오늘과 크게 다를게 없는 내일을 다르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난 그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람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사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짓을 하다보니까 그 선입견은 삶의 신조가 돼버렸다. 남들이 안쓰럽다고 혀를 차는데도 나만은 재미있다면, 그건 평생 해도 되는 일이다.(32쪽)

 

나는 힘쓰는 일은 잘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뭘 짊어지고 다나는 걸 본 사람 있는가? 오직 책, 내가 그 어떤 물건보다도 사랑하는 책만을 나는 짊어지고 다닌다. 그러니 생고생은 피할 수 없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생고생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사랑이 없다면 피할 수 있었던 그 많은 생고생들이 이를 증명한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이 생고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뜻이다. (46쪽)

 

꼭 남몰래 연애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욕한대도 나만은 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이입이란 그런 것이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건 마치 사랑 같은 것이다.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머리로 설명한다고 되는게 아니다.(164쪽)

 

'작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쓴다'는 동사일 뿐입니다. 잘 쓴다도 못 쓴다도 결국에는 같은 동사일 뿐입니다. 잘 못 쓴다고 하더라도 쓰는 한은 그는 소설가입니다.' 삶을 이 말에 대입시켜보자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살다'라는 동사일 뿐이다. 잘 살아도, 못 살아도 살아있는 한 사람인 것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암튼, 자기가 쓴 초고를 보고 약간의 구토 증세를 느끼는게 자기 잘못이 아니고,

이 우주가, 아니,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고,

'좀 쓸 만한 단어는 그런 너저분한 단어들을 뚫고 가야 나오(75쪽)는 것'이듯이,

내 삶을 돌이켜보고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하는 것 또한 이 세상이 이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후회없는 삶이란 너저분한 삶을 뚫고 가야 나오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의 밑바닥을 치거나 너저분한 삶을 살아도 후회없는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더라.

 

삶은 행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미있는 삶이란 행위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것은, 엉뚱하게도,

'데이비드 미첼'의 '유령이 쓴 책'을 우리나라에 전한 사람이 김연수 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유령이 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삶에 있어서 손가락 안에 꼽는 그런 책이고,

그런 책을 만나서 읽게 됐다는 걸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흔히 이런 경우, 우연이나 운명 따위를 빚대어 얘기하는데,

운명같은 책은, 책이 나에게로 오는 것 같이 느껴진다.

시기적으로 좀 빠르게 또는 더디게, 의 차이는 있지만, 언젠가는 읽게 된다.

 

운명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인연이 아니라고 하여, 내가 억지로 피한다고 하여 피할 수 있는게 아닌것 같다.

시기나 장소 등의 차이는 있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다.

 

그걸 김연수는 소설가니까 소설가답게 이렇게 얘기하고,

난 삶에 대입시켜 이렇게 리뷰로 갈음한다.

생각 속에서 물은 0도씨에서 응고돼 얼음이 되지만, 감각 안에서 얼음은 펄펄 끓고 있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학술적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한 번 나를 안아주는 것만 못하다. 그건 못해도 너어어어무 못하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소설가는 늘 이 감각적 세계에 안기기를 갈망해야만 할 일이다.(225쪽)

 

또 한가지, 내가 요즘 고민하는 장서와 관련하여,

내 서가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진다. 한 부분은 읽은 소설, 또 한부분은 읽은 비소설, 나머지는 읽지 않은 책들이다. 읽은 책들은 내가 보기에 좋은순서대로 꽂는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책이 맨 앞에 있고, 뒤를 이어서 그다음 좋은 순서대로 책들이 쭉 꽂힌다. ㆍㆍㆍㆍㆍㆍ그렇게 해서 평생에 걸쳐서 소설 365권과 비소설 365권을 선정한 뒤 일흔 살이 지나면 매일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비소설을 읽으면서 지내고 싶다. 그러니 내 노후대책이라면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730권의 책을 마련하는 것이랄까.

 아직 나는 730권의 절반도 책꽂이에 꽂지 못했다. 신간을 보면 베스트 365에 들지 못하는 책이 태반이다.(168쪽)

이런 얘기를 한다.

 

현재 나도 책을 세부분으로 나눈다.

읽은 좋은 책, 읽은 전공 관련 책, 읽지 않은 책.

난 이걸 통틀어 500권 정도로 줄이려고 노력한다.

더 단출하게 줄일 수 있으면 줄이고 싶다.

 

지금도 느끼는 것이지만,

삶의 지혜나 선인들의 말씀 따위는, 

책 속에 있지않고,

삶 속에, 또는 행동 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삶 속에서 느끼고 깨달은 그것은,

잘못되면 시행착오라 불리우고 다시 행하면 되지만,

책을 잘못 읽었다고 하여,

어느 누가 우리에게 바로 잡아주거나 하지 않는다. 

 

 

소설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아름답고 살만한 것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간다는 것이다. 

 

책도 그렇다.

혼자 읽고 덮어버렸을 때는,

잘못이나 오류가 있는지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고,

그걸 바로 잡아줄 사람은 더더욱 없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소셜 네트워크가 좋은 것은,

 

이렇게 남기는 리뷰나 페이퍼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게 되면서,

 

편견이나 독단, 사상의 오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암튼, 이 책의 '소설가의 일'이란 제목은 잘못된것 같다.

소설가가 아닌 우리 모두, 사람이라고 해야할 것 같고,

'일'이라고 제한하기 보다는,

삶을 살고 숨을 쉬듯,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사이의 그런 짧은 일상 까지도 포함하는 '짬'을 통틀어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일상 얘기가 이렇게 재밌고 흥미진진해 보기는 처음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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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12-15 19:45   좋아요 0 | URL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유령이 쓴 책>을 찾아 떠납니다.^^

양철나무꾼 2014-12-16 12:20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님 페이퍼 보고 try to 한거 잖아요.
님 덕분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