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라는걸 텔레비전에서 방송해 주던 때가 있었다.

유독 얼굴도 이쁜데다가 몸매도 착해뵈는 후보가 나와,

태극기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감격의 눈물이 난다고 하는데 같이 울컥해졌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의 사절이니만큼, 스피치교육까지 따로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건 한참 후였다.

 

이젠 텔레비전에서 더 이상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를 방송해주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도 뉴스나 보도 프로그램 정도가 고작인데, 보기만 하면 폭풍눈물을 흘려대는 통에 뭘 볼 수가 없다.

 

옛날엔 드라마를 보면서,

개연성 있고 현실감 있게 잘 만들어졌다고 하며 열을 올렸었다면,

요즘은 텔레비전의 뉴스나 보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사실일리가 없다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고 고개를 젖고 혀를 내두른다.

 

용산참사가 그렇고,

쌍용차 사태가 그렇고,

세월호가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체육관이 무너지고 어디에선 환풍구가 붕괴되고 어디에선가 화재가 일어나지만,

장소와 때는 달리하는데,

사건 원인을 분석하려고 하면 하나같이 똑같다.

이럴땐 어쭙잖게 책 한권 읽는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책 말고는 내가 답을 구할 다른 무엇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러 권을 같이 읽고 있는데,

그중 '이상수'의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서대원'의 '주역강의'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데,

서대원의 그것보다 더 개념적이고 원리적으로 쉽게 접근한다.

 

주역책을 맘 잡고 읽어 볼려고 하면,

쉽게 쓰여진 책이건 어렵게 쓰여진 책이건, 일단은 한자가 나와서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한자를 우리말로 억지로 번역해 놓아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말로 해석한다고 해서, 무작정 우리말로 꿰어 맞히려 들지도 않았고,

때문에 껄끄럽지 않게 잘 읽힌다.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이상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14년 9월

 

 주역강의
 서대원 지음 / 을유문화사 /

 2008년 1월

 

게다가 이상수의'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 초반에는 이 시대를 사는 내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어서 좋았다.

ㆍㆍㆍㆍㆍㆍ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직장을 옮기는 등 자기 삶에 주요 고비가 닥칠 깨마다 주역점을 의뢰했다.

ㆍㆍㆍㆍㆍㆍ현대 사회를 사는 이들의 삶을 씨줄로, 《주역》을 날줄로 삼아 교직해 읽다 보니, 일정한 시간이 지나자 《주역》을 지은 이들의 의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주역점을 쳐보지 않고  《주역》의 문장만 읽었더라면 《주역》지은이의 의도를 이렇게 명확하게 깨닫기는 어려웠을 것이다.(17쪽)

작게는 책속에서 주역의 문장만을 읽을게 아니라, 직접 주역 점을 쳐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나아가서는 삶속에서 일일이 점을 쳐보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삶은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통과했을때만이 진정 자기의 것이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미리 정해져 있어서 극복할 수 없는 팔자라는 뜻은 아니오. 당신이 만약에 간절하게 현재의 상황을 바꾸고 싶다면 이런 것들을 찾아내 바꾸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오. 밑창은 막고, 인생에서 걸리적거리는 바윗덩이와 가시덤불은 걷어내고 말이오. 고맙잖소?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입 밖에 꺼내기 힘든 이런 얘기들을 《주역》이 대신해서 시원시원하고 진솔하게 다 말해주니 말이오. 지금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흉한 괘와 흉한 효가 나왔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삶을 황무지로 만드는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사는 방식과 사람에 대한 태도와 가게의 분위기가 좀 더 유연했더라면 더 다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면 삶에서 무언가 다른 기회와 마주칠 가능성도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23쪽)

이런 주역 책을 너무 어려서 읽는 것은 지양하는 게 좋지않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를 독선과 독단에 빠뜨리는 그것,

다른 이름으로 맹목적이라는 말로 불리우기도 하는 것,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만의 일들로 그렇게 그렇게 살고,

그걸 향하여 맹목적으로 치닫는다.

가치관이나 신념이라고 하지만,

독선이나 독단, 편협함과 다른 의미일수 있는 것은,

잘못됐거나 틀린줄 알았을때, 맹목적이지 않고 수정가능하다는 것이다.

황무지가 된 땅은 복원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삶은 유연할수록 다양한 기회와 인연을 만날 수 있고,

그리하여 윤택해진다.

 

《주역》은 운명의 지도다. 지도는 길만 보여주지 않는다. 길이 아닌 곳도 함께 보여주어야 제대로 된 지도다. 《주역》은 그리로 가면 가시밭인데 왜 그리로 가느냐고 질문을 하는 책이다. 이것이 《주역》이 우리에게 주는 지혜의 본질이다. 그러나 길이 아닌 가시밭에 치명적인 유혹이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주역》은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역》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개입해 발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절실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24~25쪽)

 

이 이야기들은 우리 인생의 한 단면을 베어내어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 예외없이 길함과 흉함이 교차해 등장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주역》은 어떤 면에서 예순네 가지의 새옹지마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주역》은 반드시 인간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32쪽)

 

이렇게 텔레비전을 볼때마다 하도 울어서,

우는걸 직장동료에게 들킬때마다 벌금을 내다보니,

벌금을 내느라 집을 팔아야 될 정도라고 하여 '집.파.녀.'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별명과 관련하여,

아니 나의 헤픈 눈물과 관련하여,

내 이름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진단을 했었다.

'조정에 은혜를 다하라'고 하여 여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란다. 

 

암튼, 어제는 화개장터의 화재소식 때문에,

오늘은 쌍용차 사태가 대법원에서 기각된 그 소식때문에, 한방울씩 맺혀 들던 그것이 폭풍 눈물로 이어졌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은 왜 읽나?

책을 읽고 깨달음의 눈물을 흘려대더라도 행동이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못하면...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어쩜 내가 오늘 할 일은,

책 한권을 읽는 것보다는 느끼고 깨닫는 일이고,

느끼고 깨달았으면 행동이나 실천으로 이어져 삶에 어떤 자그마한 변화라도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냥 눈물만 흘리다가는 '집.파.녀.'에서 헤어나오지 못할테니 명심할 일이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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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4-11-28 22:11   좋아요 0 | URL
이상수씨가 한겨레에 이상수의 고전중독 연재하던 그분이신가요? 글 좋던데.. 흠.
눈물부터 멈추시길.

양철나무꾼 2014-12-02 16:13   좋아요 0 | URL
이 이상수 님이 그 이상수 님인지는 모르겠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건 보통의 내공으로 되는 일이 아니죠~^^

감은빛 2014-11-29 02:47   좋아요 0 | URL
두 권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언젠가 읽다 만 주역 책이 어느 구석에 있을텐데, 못 찾겠네요.
뭐 찾는다해도 읽을 틈이 없습니다만.

참 어려운 시절입니다.
눈물을 넘어 분노로 살아남아야 할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4-12-02 16:19   좋아요 0 | URL
얼음왕국 생각나요.
눈물을 흘리면, 다 얼음으로 변해버리는~ㅠ.ㅠ

눈물이 되었건, 분노가 되었건,
칼날이 향하는 곳을 꼭바로 인지할 필요가 있고,
그렇다고 하여 칼자루를 우리 후대에 넘겨주어선 안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