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기간동안 서해안 고속도로가 도로 위 주차장이 된 걸 본 누군가는 나들이 차량이 아닌 효에 방점을 찍었다가 빙점을 찍은 꼴이 되었다고 자평을 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나라는 5월이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그리고 스승의 날 등을 소소하게 챙기는 그런 '동방예의지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23장)
영화 '역린'을 보았다.
영화 '역린'은 '중용'23장으로 시작해서 중용 23장으로 끝난다.
'중용'을 도올의 그것으로 읽을라치면,
저 23장 한장만 비교해 보더라도 내용은 차치하고, 해설을 볼것 같으면,
일본의 20세기 사상사를 연구했는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사람과 헤겔이 등장해 주시고,
중국역사의 답보 상태가 어쩌구, 주자학의 해체가 어쩌구, 하는 얘기를 한참하다가,
성실하다는 뜻이 보수적인 중용이 아니라 끊임없이 화化를 이룩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게 엉뚱하기가 짬뽕공이나 메뚜기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던터라,
저렇게 근사한 구절이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역린'의 내용을 '네이버 지식백과'를 통하여 검색해 보니,
"용은 성질이 유순하므로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 길이가 한 자나 되는 ‘거꾸로 솟은 비늘[逆鱗(역린)]’이 있으니, 용을 길들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약 이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를 죽인다. 군주한테도 역린이 있은즉, 군주를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역린을 건드리지 않아야만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영화를 이해하기가 좀 부족하다.
아니, 나는 좀 부족했다.
지난주엔가 '라디오 북클럽, 방현주입니다' 에서,
영화 '역린'의 모티브가 됐다는 소설 '역린'의 작가 '최성현'이 나왔었다.
그런데 방현주 아나운서가 게스트의 긴장을 풀기 위하여 '방송전에 이렇게 많은 물을 마시고 시작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라고 하는데,
난 최성현을 이현세의 '버디버디'의 스토리작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렇게 유명작가도 긴장을 하다니, '신선한걸, 오홀~^^'하면서 흘려 듣고 말았다.
아직 2권은 출간 전이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뒷힘이 부족한 스타일인가 보다.
난 영화는 충분히 재밌게 보았다, 부디 건투를 빈다.
[세트] 역린 세트 - 전2권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역적의 아들, 정조
설민석 지음 / 휴먼큐브 /
2014년 5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 완간 세트 -
전21권 (본책 20권 + 조조록 사전 + 가계도 + 브로마이드)
박시백 글.그림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난 영화의 이해를 위하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빵빵하게 전질로 갖추어 놓았지만, 아직 손도 대지 못해 주시고,
설민석의 '역적의 아들 정조'를 훑어 보았는데,
쉽고 재밌게, 설명과 요점 정리가 되어 있어서,
나처럼 국사, 역사에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난, 설민석의 '역적의 아들 정조'를 읽기 전까지는,
정조를 조선시대 성군의 한명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지,
그가 그렇게 불우한 유년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매사는 겉보기와는 같지 않다고,
겉으로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학문에 힘쓰는 문예부흥에 앞장선 인물처럼 보였었다.
김탁환 소설 '열하광인'이었나(?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백탑파가 등장하던 소설을 보게 되면 정조는 서얼들을 차별하지 않고 실력에 따라 등용하는것처럼 보이는데,
그들사상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참신한 문체는 문체반정이라고 하여 탄압하는 것이 아이러니컬 했었다.
분노가 가장 참기 어렵나니
사람이 드러내기는 쉽고 억제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분노가 가장 심하다. 이를테면 분노가 막 치밀어오를때, 사리를 살피지 않고 먼저 소리를 지르고 성질을 부리면, 분노가 더욱 치밀어 일을 도리어 그르치고 마니, 분노가 사그라진 이후에는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비록 깊이 성찰하는 공부는 없지만, 늘 이것을 경계하고 있다. 어쩌다가 분노가 치밀어오르면, 반드시 분노를 삭이고 사리를 살필 방도를 생각하여, 하룻밤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일을 처리하니, 마음을 다스리는 데 일조가 되었다.
(『홍재전서』중에서, 설민석의 역적의 아들 '정조')
우리는 가문이나 혈통이나 출신 성분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한다.
난 이런 얘기가 나올때마다 광분하는데,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아무리 죽을 똥 살 똥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의 부모를, 가문이나 혈통이나 출신 성분 따위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을 해서 되지 않는 그런 것들을 모두,
팔자나 운명으로 돌려 버리고 퍼질러 앉아 버린다면,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것 없이 그냥 주저 앉아서,
금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날 수 있도록 그 누군가에게 팔자나 운명 따위를 점지해 달라고 기원만 하면 되는 것이지,
죽을똥 살똥 열심히 살려고 노력 따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흔히, 관점 차이나 입장 차이라는 말을 한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또 비교를 할때는, 기준이나 조건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말도 한다.
그동안 난 영조, 사도세자, 정조에 이르는 죽음과 왕위 계승의 과정을,
보통 부자간의 그것이라고 생각하고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평민으로 살다가 왕이 된 영조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그 사건의 전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가만히 있으면 넌 별일 없을 것이다.'의 그 말뜻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정조의 암살 계획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게 아닐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살수집단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게 아닐 것이다.
정조를 암살할 살수는 정조의 주변 곳곳에 오랫동안 쭈욱 포진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용23장을 다시한번 떠올려줄 필요가 있겠다.
오랫동안 사람 주변에서 사람의 저런 사람됨을 겪게 된다면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그게 한나라의 임금이라면 어떠할까?
작은 일은 더 사소한 일로 여겨질 것이고,
그렇게 사소한 작은 일에까지 최선을 다하여 정성스럽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게 한두번이 아니라 오랜동안 지속된다면,
그런 감동이 살수라는 사람을, 삶을,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책은 조선시대 서책을 담당하고 관리하는 내시를 일컫는 호칭이기도 하지만, 가장 좋은 대책을 얘기하기도 한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할 정도의 인물이고, 조선시대 문예부흥기에 우뚝 선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장용영이라는 군대를 설치하고 무예도보통지를 완성할 정도로 군사력도 소홀히 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문과 무의 조화, 말과 행동의 조화, 즉 '중용'의 묘를 알았던 성군이 아니었나 싶다.
가만 보니, 오늘 우리의 그분께도 적용되어야 할 논리가 아닐까 싶다.
부디, 당신께서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닫고,
그리하여 감화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공부가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까지 이어져야 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테고,
그리하여 중용이 학문으로 그치지 않고, 통치 이념이자 덕목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난 큰 인물이나 큰 그릇이 될 위인이 아니어서 그런가,
작은 일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중용 23장의 첫구절을 그대로 따를려고 꾸준히 노력은 하건만,
그 다음 구절로 단계를 밟아 넘어가지 못하고,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김수영'마냥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옹졸해져 가는 삶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되풀이하는 것인지, 원~--;
어느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