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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작가의 붓'이란 책을 보다보니,
만능 엔터테이너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럿 등장을 하는 것이고,
'글도 잘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다 잘하면 어쩌자는 거야. 세상은 참 불공평해.'
하면서 툴툴거릴 무렵, 헤세가 나오는데...
거길보면, 융이 헤세에게 치료의 목적으로 그림을 권했다고 되어있다.
다시말해, 헤세는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게 아니고,
나이 마흔에 시작한 그림 그리기가 '정말 놀라운 일'일 정도로,
그림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더 인내하게 한다고 하며,
심지어 말년에는 글은 안 쓰고 수채화 작업에만 몰두한다.
내가 헤세의 문장론, 이책을 읽게 된 것은,
13세때부터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그가,
말년에 글을 접고 그림만을 그리게 된 이유를 혹시 알 수 있을까 해서였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 풍요로운...그러나 무사안일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때부터 내가 숨쉬고 살아온 세상은 궁하여 누구에게 손벌릴 정도는 아니었고,
머리도 아주 나쁘지는 않아 그런대로 넉넉하게 교육을 받았다.
때맞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의 사업실패로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뭐, 삶에 악다구니가 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세상은 언제나 눈물겨웠고,
책속의 세상은 나에게 다른 말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 말들을 읽으면서도,
의미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난,
비껴가고 어긋나기만 했을뿐, 인식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화려한 수사법이겠거니 했다.
ㆍㆍㆍㆍㆍㆍ
우리에게 혼란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시에서는 명백하고 간단해진다.
꽃은 웃고, 구름은 비를 뿌리며
세상에는 의미가 있고, 침묵하는 것은 말하는 법.
(335쪽,『시집』'언어' 중 부분)
그동안 내가 어른들과 학교에서 배웠던건 벽을 견고하게 쌓아올리고 나를 무장하는 법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바라본 세상은 벽이 필요없을 정도로 허허로웠고,
의미파악을 할 수 있게된 책에선 중의적이고 양가적인 감정을 얘기했다.
기준이나 경계따위는 필요 없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을 얘기하니,
모양이나 실체가 없는 바람이나 공기 따위에 대해 얘기하니 혼란스러웠다.
다시 말해, 내가 읽은 책에서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기만 해서는 소용없고,
책을 읽고 행동으로까지 옮겨져야 된다고 계속 외쳐대고 있었는데,
난 그말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꼴로,
읽은 책보다 많은 읽을 책들에 대한 욕심으로 책탑을 쌓아갔으니 말이다.
그런데 세기를 달리하긴 하지만,
두번의 큰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나보다 훨씬 지난한 삶을 겪었을 헤세는,
독서의 양이나 질에 있어서,
문장이나 문학성에 있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데도 불구하고...책욕심이 없고 겸손하다.
헤세는 사람들이 책이나 신문을 지나치게 많이 읽는다고 생각한다. 책은 의존적인 사람을 더 의존적으로 만듦으로써 다독으로 부당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책은 생활력이 없는 사람에게 값싼 기만적이고 대체적인 삶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이와 반대로 책은 삶으로 이끌어가고 삶에 도움이 되고 유익할 때에만 하나의 가치를 지닌다. 약간의 힘, 되젊어지는 예감, 새로이 원기가 솟는 느낌이 생기지 않으면 책을 읽는 시간은 모두 낭비되는 셈이다." 양서나 좋은 취향의 진정한 적은 책 경멸가나 문맹자가 아니라 오히려 다독가라는 것이다.ㆍㆍㆍㆍㆍㆍ헤세에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그는 좋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골라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남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깊고 넓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삶과 맥, 아니 그 전체와 활발히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ㆍㆍㆍㆍㆍㆍ헤세에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사람의 본질과 사고방식을 알게 되고, 저자를 이해하려 하며, 그를 어떻게든 하나의 친구로 삼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개개인마다 자신에게 친근하고 잘 이해되며, 사랑스럽고 소중한 책의 목록이 있는 법이다. 누구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기자신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 인생은 짧으므로 무가치한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고 해로운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독서의 질 자체이다. (9~10쪽)
헤세가 니체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게 놀랍기는 했지만,
다르게 보고 뒤집어보는것,
이건 일종의 '낯설게하기'가 아닐까 싶다.
익숙한 것은 타성이란 이름에 다름아니고, 구태의연과 이음동의어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방적'이지, 결코 쌍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 '작가의 임무'이지, 단순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하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작가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사람이지, 의미심장한 것을 헤아릴 수 있는 몇몇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헤세는 다르게 보고 생각하는것, 뒤집어보는 것을 중시한다 이른바 가치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작가의 임무는 단순한 것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심장한 것을 단순 한 것을(문맥상 '하게'아닐까?) 말하는 것이다."라는 빌헬름 셰퍼의 문장에 감명을 받는다.(17쪽)
ㆍㆍㆍㆍㆍㆍ또 그런 사람은 이 새로운 것, 이 풍요로운 것과 깊은 생각을 얻게 해준 이가 시인인지 철학자인지, 비극작가인지 재기 있는 만담가인지 굳이 구별하지 않을 것이다.ㆍㆍㆍㆍㆍㆍ반드시 읽어야만 하고, 행복과 교양에 필수적인 도서목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자 나름대로 만족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상당량의 책은 존재한다. 이러한 책들을 서서히 찾아보는 것, 이 책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것, 되도록 이 책들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늘 소유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각 개개인에게 주어진 자신의 개인적 과제다.(45쪽)
다독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이 더 많이 쌓여 있어야 불안하지 않았으며,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언제 읽을지도 모르면서, 단연코 전작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며 책을 꾸역꾸역 사모으던 행태를 반성하게 된다.
과연 내게 있어, 맛볼 수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꼭꼭씹어 소화시켜 자양분이 되게 할 책들은 존재할까?
책을 읽기만 하는데서 끝내지 않고 행동으로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
나의 실행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만한 책은 존재하지 않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