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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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가운데 있을때는 나무는 볼 수 있어도 숲 전체는 볼 수 없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자기가 사는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인줄 안다.

 

내게 책은 두가지 상반된 용도로 읽힌다.
양 한마리, 양 두마리...잠을 부르는 수면제로 쓰일 때와,
눈을 '말똥말똥~@@' 말똥을 굴리다가 밤을 꼴딱 새우게 만드는 각성제로 쓰일 때이다.

이 책에 관한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터였지만 이상하게 나를 비껴갔었는데,

요번에도 책의 초반부를 읽다가 집어던질뻔 하였지만,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또 다른 날 보고 있는 듯 하여 심기가 불편하여서였고,

그걸 견디고 나면,

근간에 보지못했던 훌륭한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겉표지에 '일단 읽어라!' 라고 되어있는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 난 이렇게 덧붙이겠다.

평일밤에는 시작하지 마라.

한번 손에 쥐면 결코 내려놓을 수가 없어,
말똥을 굴리다가 아침을 맞이하게 될테니까 말이다.

 

책을 읽느라 밤을 새워본게 너무 오랫만인지라, 이 책의 흡입력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책의 시작에서 끝을 짐작할 수 있으니 내용이나 줄거리는 특별할게 없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며 쉽다.

 

인간의 심리를 이렇게 리얼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품은 무척 오래간만이다.

보통 인간의 심리를 묘사할때,

날씨가 어떻고 자연경관이 어떻고 잔뜩 복선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단도직입적이다.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머리 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 시간에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악하기 때문에 악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선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다가 그렇게 될 뿐이다.'

                                                                                            - 윌스톤크래프트 -

 

책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난 이 문장을 읽다말고, 살짝 비틀어 보았다.
선과 악이 상반되는 관계의 조합이라는는건 알겠는데,

그럼 행복과 상반되는 말은 불행이어야 하지 않을까?

저 문장의 논리대로라면 선은 행복이어야 하는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을 살아왔지만,
선을 추구하는 과정이 그리 행복하기만 하던가 말이다.

 

난 이 책의 화자인  행크가 일을 벌이고 자신을 납득시키고 정당화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남의 일 같지 않았었고,

그리하여 일부러 감정이입하려고 상상할 것도 없이, 완전 몰입하여 아프게 읽었다.

 

농장을 하시며 빚에 허덕이던 부모님은 불의의 사고로 행크가 결혼하기 일 년전 유명을 달리하셨고,
고교 중퇴인 세살 위 형은 아직 결혼 전이고, 겨울이면 변변한 일자리도 없어 실업수당으로 살아간다.

행크는 집안에서 최초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였고,

방 세개짜리 집을 소유하고, 아내는 임신중이고, 사료상의 부지배인이라는 직업도 가지고 있다.

화자 행크의 입으로 중산층의 삶을 산다고 하는데,

이 중산층이라는게 경제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것인지, 삶의 질 전반에 관한 문제인지, 를 놓고 봤을때는 '글쎄~'다.

 

내가 지루할 정도로 행크를 자세히 설명한 것은,

행크의 이런 면들이 어떤 점에서는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어릴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결혼해선 남편이 시키는 대로,

직장에선 직장 상사가 하라는 대로,

내 뜻이라는 걸 가져보지 못했다.

말 잘듣고, 착한, 공부 잘하는 아이였지만,

내 나름대로의 주관이나 가치관을 갖지 못하였고, 그래도 되는 것인줄 알았다.

 

이후 며칠 동안, 세상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ㆍㆍㆍㆍㆍㆍ이 모든 자발적인 배려는 놀랄만큼 너그러웠지만, 나는 그 때문에 이상하게도 불안했다. 전에는 정말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의 인생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친구가 전혀 없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정확히 집어낼 수 없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친구가 있었다. 아내에게는 친구가 많았다.그러나 어쩌다 보니, 델피아로 이사 온 뒤로, 친구들이 사라졌다. 우리는 그 자리를 새 친구로 채우지도 않았다. 친구가 없어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외롭지 않았으니까-그냥 그 사실에 놀랐다.그렇게 오랫동안 폐쇄된 생활을 해왔다니, 서로에게 전적으로 만족하며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바깥세상과 연결되려는 욕구가 없었다니, 나쁜 징조 같았다. 건강하지 않은 것 같았고 비정상적인 것 같았다.ㆍㆍㆍㆍㆍㆍ이웃은 우리가 너무 비사교적이고, 너무 반사회적이고, 너무 비밀스러워서 전혀 놀라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언제나,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었다. 외로운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348~348쪽)

 

내 나름대로의 주관이나 가치관이 없었을 때는 차치해두고,

난 내 스스로 담을 높이 쌓아올리고 '외로워, 외로워'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언제부턴가,

가식적인 웃음과 형식적인 인사말을 스펙으로 장착하였고,

사람 좋아보이는 농담과 초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장하였었다.

걱정하는 척 하였지만 진심으로 걱정하진 않았고,

칭찬을 하면서도 샘이 나 속은 타들어갔었고,

웃어도 즐겁고 유쾌한 줄 몰랐었다.

 

알라딘 서재, 이곳에서도 통용되는 법칙이었지만, 이제 제법 수위를 조절하는 법을 알겠다.

인간 관계란 거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관한 문제인가 싶었을 때가 있었는데,

거리나 네트워크가 아닌 마음에 관한 문제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배운 셈이다.

 

이들은 담을 허물기는 커녕, 더 높이 쌓아올리고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감옥에 갇히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유폐시킨채 하루 하루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죽음으로써,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태어난 딸아이가 사고로 장애아가 된다.

처음엔 왜 부모의 죄가 자식에게 되물림되나 싶어서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들의 딸은 어린시절, 그 무렵에 정지되어 스스로 생각과 판단이라는 걸 할 수 없으니,

행복한지 불행한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것도 낙관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딸아이의 부모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 벌 중 최고는 자신의 그런 자식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앞으로 남은 날들을 그렇게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갈 것이다.

 

어려서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을때는 가정과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이 중요하고,

크고 나이가 들수록 고착된 생각을 바꾸기 힘들겠지만,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는 할 것이다.

책이나 그밖의 것들도 사람의 가치관과 인간성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행크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행크의 잘못되고 외통수인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만한 사람도 책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이가 들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털어놓을 대상이 없어,

독백하듯 돌이켜보는 행크를 보면서,

마음을 열고 의지할 상대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나마 담을 허물고 대할 수 있는 친구라도 있어서,

책을 향하여선 담을 쌓아 올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굳고 단단해지는 면이 있지만,

그러면서 사고도 고착되어, 유연해지기가 어렵다.

 

내 자신이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할수도 있지만,

나는 사람들과의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의 나의 위치와 위상은 바라보기 힘들다.

그래서 관계가 필요한 것이고, 우물 밖을 내다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우물안에 갇힌 개구리들의 경우, 우물을 만든건 적어도 개구리들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담 안에 갇혔을 경우, 그 담을 만든건 사람이다.

 

갑자기 '살다가'라는 이 노래가 생각났다.

이 노래가 이들에게 위로가 되긴 힘들것 같고, 이들의 주제곡쯤이라고 해야겠다.

기꺼이 이들을 숲 밖으로, 우물 밖으로...인도해 줄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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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2-13 13:57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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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적인 웃음과 형식적인 인사말을 스펙으로 장착하였고, ~ 웃어도 즐겁고 유쾌한 줄 몰랐었다." 까지의 문장이 와닿네요.
저도 아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듯해요.
누구나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양철나무꾼 2014-02-20 10:37   좋아요 0 | URL
사회생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의 애환이 아닐까 싶어요.
거기다가 자기가 가진 실력에 비해 욕심만 무지 크다면...저 같이 악순환의 반복일테고 말예요~--;
욕심을 줄이는게 먼저일지, 실력을 키우는게 먼저일지,
맨날 궁리만 하다가 날이 저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