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우스개 소리로 쌍둥이도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맹난자의 ''주역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한날 한시에 태어나더라도 각기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쌍둥이다 싶을 정도로 취향이나 사소한 습관, 심지어 영혼의 찝찌름한 냄새까지 똑같은 이를 만나게 될때가 있다.

우연히 일어날 경우의 수가 늘어나면 필연이 되고,

그걸 우린 절대적인 운명이니,

"사랑이 동시에 시작되긴 어렵겠죠?"

따위의 미사여구로 얘기한다.

 

 

 

 

  

 

 

 

 

 

 

사람들은 날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성격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의 성격이 아니고 만들어진 성격이다.

일찌기 할머니랑 고모들 손에서 큰것도 그렇고,

난 그걸 일종의 부모로부터의 배신이라고 생각했었고,

그걸 시작으로 나름 참 많은 배신을 당했었고,

그리하여 아무도 안 믿었고,

어느 누구를 향하여서도 마음 한켠을 내어주는 일 따윈 없었다.

누군가를 내 안에 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는 바꾸어 말하면, 나 또한 그 안에 머무를 수 없음에 다름 아니었다.

 

때문에, 사람 사는 세상 어디나 불을 피우면 따뜻해진다는 말은 시집에나 등장하는 멋들어진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사랑을 하면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보인다는 말 또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핑크빛의 따뜻한 정도와 가슴을 간질이는 분홍분홍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나랑 쌍둥이라고 할 정도로 같은 감성을 지닌 사람을 만나게 되자 두려워졌다.

세상이 어쩌면 불이 피워도 더 이상 따뜻해지지 않을까봐,

사랑 따윈 할 수 없고 그리하여 핑크빛 대신 온통 잿빛 우울함으로 무장을 하고 다녀야 하는게 아닐까 두려워졌다.

동진이는 지독하게 감성적인 녀석이었다.

뭐라고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야 하는데 나는 그런 걸 못한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크게 취했다.(2권 44~45쪽)

보통 감성적인 사람과 이성적인 사람으로 나누어 얘기하지만,

지독하게 감성적이어서, 나처럼 머리를 옵션으로 들고다니냐는 소리를 듣는 사람도 '감성'만으로 똘똘 뭉쳐 있을 수는 없다.

이성적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얼마든지 변화 가능한 것이다.

통계도 마찬가지이다.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 변수를 어떻게 잡느냐, 조건을 어떻게 걸어주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자리에 사람을 대입시켜도 마찬가지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는 소주 한병을 말없이 같이 마시는게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네는 그것과 다름 아니다.

 

또 어떤 관계에 있어서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말없이 그저 지켜보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대상이 마녀여도 상관이 없다.

지켜보는 그를 혹자들은 스토커라고 할 수도 있다.

삶이란, 예로부터 기준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

이를테면 나로 비롯함이냐, 나로 말미암음이냐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주역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우리는 흔히 역易을 '변화'로 얘기한다.

욕심과 본심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인간의 그것도 '변화'가 될 수 있다.

변화가 멈추는 어느 순간,

귀가 트이는 순간,

물리가 트여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그 순간, 을

성불했다고 하기도 하고,

득도했다고 하고,

또는 도통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역은 64괘로 끝이 아니고, 다시 건위천으로 돌아가니 다시 시작이다.

영원한 도돌이.

이 얘기는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된다는' 프랙탈'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인간의 윤회도 어찌보면 이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그런의미에서 '맹난자'의 '주역에게 길을 묻다'는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동서양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주역'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들을 되짚어내고 있는데,

내가 주역을 해독할 깜냥은 되지 않는 고로, 이 책의 해석에 대해서 할 말은 없고,

다만 주역 해설서라는 인문학 서적으로 봤을때 뿐만 아니라, 여행기나 수필집이라고 하는 문학 서적으로 봤을때도 완성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 공자의 아버지 61세에, 어머니 17세 였다는 말로 가볍고 재밌게 시작한다.

요즘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세기의 로맨스라고 해도 기가 찰 나이 차이를 자세한 설명없이 훑고 지나간다.

그러면서, 구렁이 담을 넘듯 타임머신을 타고 공간과 시간 이동을 하여,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도 공자를 존경하여 자기집 서재에 공자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조석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다소 황당한 얘기를 의뭉스럽게 펼쳐 놓는다.

유럽의 한 쪽 끝에서 동아시아의 한쪽 끝에 있는 나라의 공자를 존경한 이유로,

신비함이나 기적을 말한 바 없이 인간을 교화한 공자의 인간성에 감격하여서, 라고 하며 공자의 초상화 앞에 이런 시를 적어놨었다고 한다.

"공자는 유익한 도리만을 해설한다. 그는 사람들을 미혹함 없이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젖힌다. 공자는 성인으로 도를 말했지, 결코 예언자로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믿었다."(38쪽)

 

 

그러면서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에서 노자의 도덕경으로 또 슬쩍 넘어간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개념이 등장하는데,

유가에서 말하는 인의예지는 인간의 분별지에 의한 작위이기 때문에,

도에서 가장 멀어진 상태를 예禮로 보았다.(45쪽)

 

 

역학은 귀신에게 사람의 운명을 묻는 점술의 차원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밝히고 자신을 성찰하는 학문의 하나'라는 것과,

한날 한시에 태어나더라도 각기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조상이 어떤 분이며 조상의 영혼과 DNA, 그리고 그분의 정신과 가정교육이 후손의 운명에 절대적인 운명을 미친다는 것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내가 이쪽의 책을 보면서 제일 불만인 내용이 이제부터 등장하는 운명을 감정할때는 '환ㆍ혼ㆍ동ㆍ각(環魂動覺)을 참조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환(環)이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우리 인간에게만 있다는 것. 

혼(魂)은 자신의 운명은 반드시 조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동(動)은 사람의 운명은 태어난 시대에 따른다는 것이며,

각(覺)이란 인간의 깨달음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

우리가 조상을 섬기는 유교적 국가여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자신의 운명이, 내가 어떻게 선택할 수 없는 조상에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운명일 따름이지, 자식에게 되물림되지 않는다고 했던것 같은데,

또 그렇게되면 부모나 스승 등, 웃어른과 조상을 섬기고 연연하는 걸 뭘로 설명을 해야 할까 싶기도 하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자신이 벌을 받되, 자식에게 되물림 되지는 말아야 한다.

한날 한시에 태어나더라도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을 조상의 영향, 다시 말해 유전적인 요인으로 볼게 아니라,

배움이라는 정신적 교감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넘나듦이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길이 어렵기는 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이 필요하리라.

 

나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챘는지,본문의 내용은 못미쳤지만

 저자는 챕터의 큰 제목은 '지극한 성실은 신명과 통한다'라고 뽑아냈다.

 

만화 '마녀'에서는 처음에 남자주인공의 캐릭터를 '도박사'로 하려다가 나중에 '통계사(데이터 마이너)'로 바꿨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박사와 통계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도박사는 확률 따위는 상관없이 일확천금을 꿈꾼다는 것이고,

통계사는 확률에 의지하여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 변수를 어떻게 잡느냐, 조건을 어떻게 걸어주느냐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에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전생을 믿지도, 윤회를 믿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운명이라는 것이 내가 조상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 가 신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을 하면...

앞으로 성실하게 살고는 싶어질 것 같다.

 

암튼, 다음 세상을 또 살게 될지 어떨지...는 살아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고,

오늘 하루를 나름 재미나고 신 나게 살고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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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12-24 16:39   좋아요 0 | URL
마녀가 단행본 4권이나 되는 분량이군요.
저는 웹툰으로 봐서 분량이 많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마녀와 주역이라니!
역시 양철님의 내공은 대단하네요!
감탄 또 감탄합니다!

양철나무꾼 2013-12-30 09:27   좋아요 0 | URL
마녀가 네권이나 되더군요, 히힛~^^
전 칭구가 하도 좋다고 설레발을 쳐서 봤는데,
그냥 그랬다는~--;
아무래도 마녀 따위를 믿지 않는, 메마른 감성 때문이겠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