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책 한권을 읽고 이렇게 두들겨 맞은 듯 머리가 멍해지고 온몸이 무거워져 보기는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책의 제목이 다분히 중의적이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도 후르츠 펀치라고 할 수 있고,

권투에서 상대를 훅 가게 만드는 한방도 펀치라고 할 수 있다.

방인영이 먹던 사과 음료는 나중에 모래의 남자가 먹게 되는 음료와도 묘하게 연결이 된다.

그냥 읽어버리고 말면 그뿐인 책이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입시켜 읽을라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것이...

눈이 퀭해지는게 한뼘은 꺼지고 심장은 저만큼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맨 뒷장을 펼쳐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위로 갈수록 읽은게 많았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고,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최근 것으로 박일문, 이만교, 김혜나의 '제리'가 있고,

전석순과 최민석은 구해놓고는 아직이다.

때문에 기억에 남는것이라곤 김혜나의 '제리'가 있겠는데,

난 '영 아니올시다'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다, 괜찮다...해도,

이 책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쳐뒀었는데,

좋다.

왜 엄지손가락이 두개밖에 없는지 한탄할 정도는 아니어도,

별 다섯개를 꽉꽉 눌러 채워줄 수는 있겠다.

 

아쉬운 점이라고 해야 할까, 무서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한방에 훅 가는 펀치에 비해, 얘기를 빚어낸 필채는 경쾌하다 못해 좀 가볍다.

개연성의 확보 면에서도 좀 아쉬운 생각이 드는데,

여고생에게, 친부모를 향하여 그렇게 맹렬한 살의를 갖게 만든 이유가 구체적이지가 않다.

실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어쩜 이 책에 나오는 방인영이 나처럼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라면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아쉽고 무서웠다.

 

 

 

 

 

 

 

 

 

 펀치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책을 읽고 내가 제대로 된 펀치를 맞은 느낌을 받았던 것은,

뒷표지의 "독자들의 윤리관과 도덕관에, 그리고 삶에 남겨 둔 약간의 기대에 펀치를 날린다'는 문구와 난폭한 냉소와 당돌한 폭력으로 무장한  반성하지 않는 10대 소녀라는 표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윤리관과 도덕관이란 무얼 얘기하는 걸까?

과연 그 기준이란 무엇이며,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걸까?

반성하지 않는 10대라고 했는데, 무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 책은 요즘 세상을, 가치관의 부재,혼란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윤리관과 도덕관이 땅에 떨어진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봐야 할 것은 어쩜 존속살해의 개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존속살해를 하고도 어쩜 반성조차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 아니라,

존속살해라는 건 어디까지나 소설적 장치일 뿐이고,

이를 통하여,

10대 소녀가 어떻게 자아를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지,

다시말해, 자립하는지의 과정을 엿보아야 하는것이 아닐까?

깊은 곳에 저장된 자신감이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 속의 직유가 깊이 침범해

내 자존감을 조금씩 갉아 냈다.

성교육 시간에 본 낙태 동영상에서 태아를 긁어낸 것처럼,

아이가 기계를 피해 도망가듯 내 자존감도 달아나려 안달했다.

이젠 더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자존감은 내 안에 있는 거지 사람들이 볼 수 있거나

그들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란 걸,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깨달았다.(187쪽)

 

내가 이 책의 방인영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쉽고 무서웠다고 한 것은,

우리집안이 이 책의 방인영의 그것만큼 하이 레벨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친인척의 관심은 이 책의 방인영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아들이 이 책의 방인영과 얼추 비슷한 또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위로 생각하려 든다.

내가 어른들의 집요하고 과한 관심에 숨이 턱턱 막혔었으면서도,

지금도 그때의 잔재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우리 아들의 장래에 간섭하려 든다. 

아들이 원하는 직업을 향하여 한번도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고,

그걸로는 밥 벌어먹고 살 수 없으니,

일단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간 후에 취미활동으로 하라고 한다.

밥을 빌어먹고 살아도 그건 네 운명이라며 쿨하게 넘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친구 중 하나는,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모범적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걸 이 친구에게 사주하는 과정에서 이 친구 또한 별천지를 경험하게 되었을테고,

근데 이 친구는 나와는 태생이 다른지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내색을 한다.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니 충분히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경우, 친구도 비슷한 부류이기 쉽다.

누구의 심장은 웬만한 열에는 끄떡 없는 강철로 만들어 졌고,

또 누구의 심장은 아주 작은 체온이나 온기로도 녹일 수 있는 얼음으로 만들어졌겠는가?

게다가, 그게 사람의 감정 따위,

시간이나 세월에 비례하여 쌓여가는 정이나 미움 따위의 문제였을 경우,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어쩔 것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친구를 강신주에게 보내야 겠다.

착해지지 말란 말입니다.

나빠져도 괜찮단 말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강신주 말고 또 누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이 친구에게,

그동안 살던대로 바른생활과 윤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사주라도 하였단 말인가?

매 순간순간을 살면 되는거다.

매 순간순간을 가열차게 살면 되는거다.

 

나는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 것이고,

울아들도, 이 친구도 그럴 수 있도록 자리를 넓게 펴주는 수밖에 없다.

옛날에 '넓은 맘과 깊은 속'의 뉘앙스를 몰라서 한참 고민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친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터득하였다.

넓은 맘과 깊은 속.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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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2 16:35   좋아요 0 | URL
책은 언제나 스스로 불러들이기 마련이라고 느껴요.
이 책을 불러들인 삶을 즐겁게 사랑하면서
십이월 추위도 기쁘게 맞아들이는 하루 누리셔요.
펀치는 푸른기와집에서 지내는 분들도 좀 맞으면 좋겠네요~

양철나무꾼 2013-12-17 10:31   좋아요 0 | URL
전 오늘 아침 우리나라 젤 오래된 문학지라는 '현대문학' 사태랑 관련하여 맘이 영 꿀꿀합니다.
아무리 매서운 검열의 시대에도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덩여.
사전 검열의 형태인지,
알아서 기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씁~쓸~해서 더 춥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