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 시인선 437
김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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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이라고 하면 '마음 사전'으로 처음 만나고,

'시옷의 세계'라는 산문집으로 입지를 굳혀셔 그런지,

'수학자의 아침'이라는 시집을 읽는데, 왠지 낯설었다.

어렵지 않은, 일상의 흔한 낱말들을 시어로 썼는데도,

이상하게 다가오지 못하고 자꾸만 겉돌아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처음엔 이게 '마음사전'의 그 방식이랄까 형식이 강하게 각인되었던 터라,

익숙한 예전의 산문형식을 구태여 운문 형식에 꿰어맞출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녀가 낯설게하기 기법을 취한 건,

산문과 운문이라는 형식적인 면이 아니라,

단어나 낱말의 고정관념이 주는 선입견 같은 거였나 보다.

 

왜냐하면 요번의 그것도 시집의 형식을 취했지만,

시라기보다는, '정의 내리기'가 특징인 사전 형식으로 씌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 하면,

'자연이나 삶에 대하여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글'이 시라는데,

이 시집의 것들은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라기보다는 대표성을 띤 것이,

살짝 관심을 분산시키면 중언부언 말이 길어지는 것이,

내가 보기엔 산문 형식에 가깝다.

 

오, 바틀비

 

  모두가 천만다행으로 불행해질 때까지 잘 살아보자던 맹세가 흙마당에서 만개해요, 사월의 마지막 날은 한나절이 덤으로 주어진 괴상한 날이에요, 모두가 공평무사하게 불행해질 때까지 어떻게든 날아보자던 나비들이 날개를 접고 고요히 죽음을 기다리는 봄날이에요, 저것들을 보세요, 금잔화며 양귀비며 데이지까지 모두가, 아니오, 아니오,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루를 견뎌요, 모두가 아름답게 불행해질 때까지 모두가 눈물겹게 불행해질 때까지, 온 세상 나비들은 꽃들의 필경사예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몰아쉬는 한숨으로 겨우 봄바람이 일어요, 낮달이 허연 구멍처럼 하늘에 걸려요, 구멍의 바깥이 오히려 다정해요, 반나절이 덤으로 배달된 괴상한 날이에요, 모두가 대동단결하여 불행해질 때까지 시들지 않겠다며 꽃잎들은 꽃자루를 꼭 붙든 채 조화처럼 냉정하구요, 모두가 완전무결하게 불행해질 때까지 지는 해는 어금니를 꽉꽉 깨물어요,

 

위 시는 문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장이 끝났나 하고 쳐다보면 쉼표가 단정히 박혀 있다.

심지어 문장의 맨 마지막 진짜 마침표가 오지 않을까 기대만발한 그곳까지 쉼표가 들어 앉았다.

 

낮달이라는건 어쩌면 때를 잘못 찾아 하늘에 걸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달은 항상 떠 있는 것이고,

태양이랑 너무 가깝지만 않으면, 태양빛을 반사해서 비치게 되어있는  것이다.

암튼, 낮달은 푸른 하늘에 하얀 색으로 걸리는 것이고,

가끔 보는 낮달보다

늘 보는 하늘과 하늘빛이 오히려 다정한건 당연지사다.


이 시는 또 어쩔 것인가?

이 시 또한 어렵거나 처음 접하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정관념과 선입견에서 탈피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주동자

 

장미꽃이 투신했습니다

 

담벼럭 아래 쪼그려 앉아

유리처럼 깨진 꽃잎 조각을 줍습니다

모든 피부에는 무늬처럼 유서가 씌어 있다던

태어나면서부터 그렇다던 어느 농부의 말을 떠올립니다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을 경멸합니다

나는 장미의 편입니다

 

장마전선 반대를 외치던

빗방울의 이중국적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 모두 다 아는 일이 될때까지

빗방울은 줄기차게 창문을 두드릴 뿐입니다

창문의 바깥쪽이 그들의 처지였음을

누가 모를 수 있습니까

 

빗방울의 절규를 밤새 듣고서

가시만 남아버린 장미나무

빗방울의 인해전술을 지지한 흔적입니다

 

나는 절규의 편입니다

유서 없는 피부를 경멸합니다

 

쪼그려 앉아 죽어가는 피부를 만집니다

 

손톱 밑에 가시처럼 박히는 이 통증을 선물로 알고 가져갑니다

선물이 배후입니다

장미 꽃이 떨어지는 걸, 투신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걸 보면 시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그동안 노력을 하면 웬만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문학적, 내지는 예술적 감수성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노력으로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과 자질은 어찌할 수 없더라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예술적 감수성을 많이 접하다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난 간혹 어느 만큼 타고난 재능이고,

어느 만큼 노력에 의해서 연마가 가능한 부분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암튼 부럽다고 퍼질러 앉아 좌절할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는 수밖에ㆍㆍ.

주제파악을 하고 나아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그게 글 잘하는 사람의 공통점 아니던가?

난 노력하는 것 만큼은 자신있으니,

주제파악하는 능력만 키우면 될 듯~^^

 

수학자의 아침

 

나 잠깐만 죽을게

삼각형처럼

 

정지한 사물들의 고요한 그림자를 둘러본다

새장이 뱅글뱅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겨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안겨 있는 사람을 더 꼭 끌어안으며 생각한다

 

이것은 기억을 상상하는 일이다

눈알에 기어들어 온 개미를 보는 일이다

살결이 되어버린 겨울이라든가, 남쪽 바다의 남십자성이라든가

 

나 잠깐만 죽을게

단정한 선분처럼

 

수학자는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숨을 세기로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의 이항대립 구조를 세기로 한다

 

숨소리가 고동 소리가 맥박 소리가

수학자의 귓전에 함부로 들락거린다

비천한 육체에 깃든 비천한 기쁨에 대해 생각한다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살고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요

 

잠깐만 죽을게,

어디서도 목격한 적 없는 온전한 원주율을 생각하며

 

사람의 숨결이

수학자의 속눈썹에 닿는다

언젠가 반드시 곡선으로 휘어질 직선의 길이를 상상한다

수학자의 삶은 시인이나 수필가의 그것과는 다르리라고 생각하지만, 선입견 되시겠다.

시인의 시어가, 수학자의 기호이다.

나름대로의 규칙과 논리를 가지고 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쩜...자신의 논리와 가치관의 잣대를 가지고 타인을 평가하려 들지 않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잣대는 자신을 벼리고 다잡는 잣대로서만 효용을 발휘할 수 있다.

들숨과 날숨의 크기를 세어 이항대립구조를 만드는것 또한,

누구의 들숨과 날숨인가 라는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러워 하지도 않을 것이고, 낮추어 조롱하지는 더 더욱 않을 것이다.

위험해, 조심해, 괜찮아...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과분하게 넘쳐나지는 않는지 말이다.

다독이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간에...

넘치지 않아야 잠재우고 다독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 누구도

조롱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한다

위험해, 조심해, 괜찮아,

하루에 한 가지씩만 다독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여행자' 부분)

이 시집의 발문은 황현산이 썼다.

'슬프지만 씩씩한 소연이에게'란다.

난 김소연의 시는 왠지 실험적인 것 같아서 불안했지만,

그래도 황현산 님의 발문은 신뢰가 간다.

혼자서

 

상가의 컴컴한 내부가 최대한 컴컴해진다

칼을 대어 틈새를 도려낸 듯 빛이 새어 나와도

 

간절함은 저렇게 표현돼야 한다

최대한 입을 꽉 다문 채

 

뺨에 접착된 핸드폰을 꼭 감싸고

최대한 고개를 숙인 저 사람처럼

 

귀는 아가미가 되었다

물고기가 되었다

흘러 다녔다

 

현수막은 최대한 환해진다

달은 관람차처럼 최대한 가까이 다가온다

 

저 마네킹은 눈동자가 있다

저 조각상은 눈동자가 없다

 

최대한 인간을 닮기 위해서

 

밤은 가장 춥다

분노는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최대한 급진적으로

집은 구겨진다

쓰레기차가 쓰레기봉투를 쓸어 담듯

마지막 아버지를 최대한 쓸어 담고서

 

컴컴한 내일들이 박스처럼 쌓여 있다

오늘이 내일을 벼랑으로 데려간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온다

휙, 내 냄새가 난다

 

반대말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

컵에게는 반대말이 없다 설거지를 하고서

잠시 엎어 놓을 뿐

 

모자의 반대말은 알 필요가 없다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할 뿐이다

모자를 쓰고 집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게 가끔 궁금해지긴 하겠지만

 

눈동자 손길 입술, 너를 표현하는 너의 것에도 반대말은 없다

마침내 끝끝내 비로소, 이다지 애처로운 부사들에도 반대말은 없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나를 시인이라고 부를 때에

나의 반대말들은 무용해진다

 

도시에서

변두리의 반대쪽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지구에서 변두리가 어딘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뱅글뱅글 지구의를 돌리며

 

이제 컵처럼 사는 법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우편함이 반대말을 떨어뜨린다

나는 컵을 떨어뜨린다

완성의 반대말이 깨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쓸쓸함의 절정은 고고함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시들이 등장한다.

 

연두가 되는 고통

 

왜 하필 벌레는

여기를 갉아 먹었을까요

 

나뭇잎 하나를 주워 들고 네가

질문을 만든다

 

나뭇잎 구멍에 눈을 대고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나뭇잎 한 장에서 격투의 내력이 읽힌다

 

벌레에겐 그게 긍지였겠지

거긴 나뭇잎의 긍지였으니까

서로의 흉터에서 사는 우리처럼

 

그래서 우리는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준다

 

물조리개를 들 때에는 어김없이

산타클로스의 표정을 짓는다

 

보여요? 벌레들이 전부 선물이었으면 좋겠어요

새잎이 나고 새잎이 난다

 

시간이 여위어간다

아픔이 유순해진다

내가 알던 흉터들이 짙어진다

 

초록 옆에 파랑이 있다면

무지개, 라고 말하듯이

 

파랑 옆에 보라가 있다면

멍, 이라고 말해야 한다

 

행복보다 더 행복한 걸 궁지라고 부르는 시간

신비보다 더 신비한 걸 흉터라고 부르는 시간

 

포개어진 의자

 

앉을래?

의자가 의자에게 말했다

서성일래,

의자가 대답한다

 

나무들이 서 있길래

뉘어주려고 폭풍이 들이닥쳤다

우리는 누운 나무를 보며

재앙을 점쳤다

 

잠든 사람의 조금 벌어진 입술이 기어코 천진해질 시간에

계절이 바뀌었고

틈을 벌린 채 나무는 새에게

가지를 내어 주기 시작한다

 

의자 하나가 그 곁에 있고

나무의 그림자에서 의자가 쉬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의자에 앉는다

 

아주 잠깐 고달픔을 잊기 위해

찻집 창가에 앉아 있는 여자애에게

기어코 한 남자가 다가가듯이

 

의자가 되면 의자에 앉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되면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의자가 의자에 앉아 본분을 잊는 시간

우리는 재앙을 점치지만

열애처럼 사람은 떨어져버린다

입을 약간 벌린 채로

씩씩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새로운 형식을 취하면서도 당당하고 망설임 없이,

돌아가고 구부러진 곡선이 아니라,

직선의 형태로 시가 쓰여졌음을 일컫는 것 같다.

난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때문에 김소연의 이 시집이 좋은 것은,

나에게 좋은 것은,

나도 노력하면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안겨주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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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2-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김소연 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솔직히 김소연 시인이 별로 시인 같지가 않아요.
시가 주는 긴장감도 없고, 운율도 그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소연 시인은 시보다는 에세이를 잘 쓸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3-12-05 17:03   좋아요 0 | URL
헤헷~^^
평점에 속으시면 안된다는 말씀.
그래도 이 시집 전 돈 주고 샀고,
읽느라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 만드느라고 베어넘겨진 나무를 생각하면,
평점이 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여, 죄송~(__)

kkeujaka 2019-06-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다 수학자의 아침이라는 시가 얼마나 잘 쓴 시인지 모르시고 이런 농을 던지시는 것 같아서 놀랍고도 슬픕니다. 김소연 시인은 기본적으로 시를 잘 쓰는 시인입니다. 못 알아보셨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에라도 다시 한 번 시를 펼쳐서 읽어보셨으면 싶습니다. 긴장이 없고 지루하다면 그건 소설처럼 에세이처럼 시를 읽으려고 해서 그러신 것 같네요.

양철나무꾼 2019-06-26 14:38   좋아요 0 | URL
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거겠죠.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을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니 썩 유쾌하진 않습니다만,
그런 의도의 댓글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