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서재 - 길에서도 쉬지 않는 책읽기
이권우 지음 / 동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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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를 들으니,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20여분간 불어로 연설을 한게 이슈더라.

박 대통령은 한국어, 중국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소개되고 있었는데,

이번 불어 연설의 저변으로 40여년전 프랑스 파리로의 6개월 동안의 유학을 들고 있었다.

난 여기서 여러가지 딴지가 걸고 싶어지는데 꾹참고,

'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자국어도 아닌, 현지어를 구사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것 하나와,

대한 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국어를 구사하는 건 당연한건데,

저렇게 '한국어'까지 꼭 집어넣어서 5개국어가 되어줘야 하는건가...하는 두가지만 언급하겠다.

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그렇지 않고는...하나도 중요하지 않은것 같은데,

그럼, 바꾸어서...과연 박 대통령은 프랑스 현지인이 불어로 묻는다면, 말귀 알아먹고, 의사소통할 수 있을까?

나 혼자만의 쓸데없는 기우이기를 바란다.

 

난 익숙하고 길들여진 것에 연연해 하는 부류이다.

바꾸어 말하면, 낯선 여행이 번거롭고 서툴다.

'이권우'식으로 얘기하자면, '지적 호기심'이 영 꽝이다.

낯선 장소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안되는 대화를 하고,

그리고 정체 불명, 출처 불명의 이상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게 괴롭다.

 

차리리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맨날 먹던 음식을 먹고 내 형편과 분수에 맞춰 사는게 낫다.

 

물론, 내가 처음부터 '여행'을 번거로워 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덜 성숙한 나이에, 공부를 핑계로 외국에 체류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나를 제대로 번역'은 커녕 간단한 의사소통도 힘들어 손짓, 발짓을 동원하면서도 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느꼈던 지독한 고독감은 그 무엇으로도 상쇄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외로움은 외부적인 요소이고, 고독감은 내부적인 요소이다...라고 얘기하고,

또 누군가는 외로움은 Loneliness이고, 고독감은 Solitude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전자는 '혼자 있는 고통' 을, 후자는 '혼자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여행'이라는 사실(fact)을 가지고도,

누군가는 '혼자 있는고통'을 느낄 수가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혼자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나의 경우는 그게 고통이라는 중압감으로 다가왔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구구절절 사설이 긴것은,

이 책이 '이권우'님의 책이 아니라면 내가 들춰볼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서둘러 답을 말하자면, 지식인에게 여행은 번역이구나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행기 곳곳에서 번역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문맥마다 서로 다른 뜻으로 쓰고 있으나, 결국 지적인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해준다 싶었다.

 

행간이 많고 품이 넓은 원작을 번역할 때 좋은 문구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까닭은 외국어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번역자가 모어母語의 풍부한 가능성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까닭에 문장을 성숙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괴테는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비슷한 의미에서 외부의 맥락과 부딪히는 와중에 내가 모어 사회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러면 상대의 사회와 비교할 수 있는것처럼 모어 사회의 상황을 내가 대변하듯이 말해도 는지 ㆍㆍㆍㆍㆍㆍ  이때 상대의 사회와 모어 사회 사이에서 외관의 유사함에 의지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접점을 발견하려면 또 다른 번역 능력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느낀 바를 설명한 대목이지만,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이보다 좋은 여행론이 없을 듯싶다. 안에 있을 적에는 잘 알고 있다 싶으나 바깥에 나가야 비로소 깊이 알지 못했다고 깨닫는 법이다.ㆍㆍㆍㆍㆍㆍ "원작의 생명력을 보존하려면 번역자는 그 원작을 낳은 토양을 지반째 옮겨야 하지만, 결국 번역에서 가필하거나 새로 쓰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번역은 원문이 지니는 가능성의 폭 안에서 그 생명력을 되살려내는 금욕적 실천이다."(35~36쪽)

암튼, 지식인에게 여행이 번역이고 아니고, 의 여부를 떠나서,

번역이라는 말이 '지적인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말이고 아니고, 의 여부를 떠나서,

그동안 내가 출처를 알 수 없었으나, 늘상 마음 속에 새기고 살던 문장의 '원전'을 알 수 있게 되어서 의미가 있었다.

'행간이 많고 품이 넓은 원작을 번역할 때 좋은 문구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까닭은 외국어 능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번역자가 모어母語의 풍부한 가능성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까닭에 문장을 성숙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라는 문장 말이다.

원전의 번역가는 얼마나 제대로인지, 훔쳐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근데, 얼마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을 보면서도 느낀것이지만,

작가가 아무리 훌륭한 지식을 자랑하고 눌변이라도,

내가 거기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

책이 재미없어 지기도 하더라~--;

때문에 이 책도 그렇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나는 주목한다. 그는 베이징을 여행하고 나서 그 체험을 중국연구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베이징에서 그는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만났다. 혹은 실제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뇌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했다. 그의 모습은 지역 연구자인 내게 연구와 아울러 여행의 의미마저 다시 생각하도록 이끈다.

 

 무릇 지식인에게 여행이란 추상에서 구체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지식이란 어차피 회색을 띤 이론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푸른 생명의 나무는 없다. 그러니, 박차고 나가 생명의 나무를 찾으려 할 수밖에. 물론 구체성으로서 여행은 다시 추상으로서 여행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두 범주의 충돌에서 우리는 특수성이라는 빛나는 대목을 만나게 된다. 여행기가 결국 문학의 한 갈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41쪽)

위 단락은 그 연장선 상이기도 한데,

우리가 흔히 지식이라고 하는 것들,

그것들은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동반하지 않은 ' 것'이었을때는, 이론뿐인 추상에 불과하다.

무릇 책이 그렇다.

책의 내용들을, 책의 이론들을...

이해하고, 체화하여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것은 그냥 한낯 공허한 이론일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과 공식과 지식이라도,

내가 거기 흠뻑 담굴질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내 것'은 아니다.

'번역자가 모어母語의 풍부한 가능성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한 까닭에 성숙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문장' 인 동시에 '추으로서의 여행'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여행이 왜 필요한가?

이 책에서는 '물고기를 잡아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된다면 모국어의 고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세살의 여행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많은 걸, 깊게 생각하게 하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아래 인용된 책의 저자가,

아무리 세상에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소외 계층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문장은 화려한 수사를 사용하여 훌륭하기 그지없지만,

과연 모국어의 본뜻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세살 아이의 여행은 호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차라리 '세상에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소외 계층'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생각이 짧은 사람 정도로 치부해 버리면 됐을테니까 말이다.

 

세상에는 유희가 생략된 유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단다. 따스함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단다. 네게는 세 살부터 시작된 이런 여행이, 한평생을 다해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사치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많이 있단다. 나는 네가 그런 사람들을 부단히 많이 보아서, 끝없는 속도전에서 비롯되는 초조와 이기심으로 차갑게 마음이 식어버렸을 때마다 스스로 발광하는 태양처럼, 스스로 네 마음을 뜨뜻하게 덥힐 수 있기를 바란다. 가진 것을 느끼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부터 나누고, 함께함으로써 더 많이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웅숭깊은 사람으로 자라주렴. 네가 살아있는 한 온 세상이 너의 것이다. 몸과 마음을 담그고 느끼거라. 그 안에 네가 안아줄, 너를 안아줄 모든 것이 다 한데 어우러져 있단다(115쪽)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어떤 얘기가 빈말이고 어떤 얘기가 알차고 충실한 얘기인지 체험하지 않아도 용케 알게 된다.

빈말은 아무리 성찬이어도 공허하고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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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06 03:40   좋아요 0 | URL
음... 세 살 아이한테 저런 말을 하면서 여행을 한다면... 좀 재미없지 않을까 싶어요 ^^;;;

세 살 아닌 여섯 살 아이하고 늘 이곳저곳 함께 다니는데,
아이들은 그저 뛰어놀기만 하면 넉넉해요.
스스로 뛰어논 적 없는 아이들은 사회를 읽는 눈도 떨어지리라 느껴요.

그나저나 이권우 님은 스스로 '지식인'이라 여기는군요.
지식인 아닌 '보통 사람'으로 여길 수 있으면
여행이 한결 가볍고 즐거울 텐데.

..

예전에 김대중 님이 대통령이 된 뒤에
미국에 가서 영어로 아주 '유창'하지는 않고 '전라도 사투리 섞은 말씨'로
기나길게 연설을 해서 신문마다 '칭찬'을 한 적 있어요.
아마 1998년이었지 싶어요.
어느 신문도 '한국말 냅두고 영어로, 게다가 통역자 냅두고 영어로 말한' 일을
나무라지 않더군요.

박근혜 님한테도 틀림없이 통역자가 있을 텐데
통역자가 할 일을 왜 그분들이 스스로 하면서
지식 자랑을 하려는지 참으로 안쓰럽지요.

1998년에 한국에 온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사람이라 네덜란드말 하지만,
네덜란드말 통역자가 제대로 통역을 못하니
영어 통역자를 붙여서 영어로 말했어요.

아마, 대통령들께서는 영어 통역자나 프랑스말 통역자가
마음에 안 드시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