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시선 369
권혁웅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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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시적 감수성을 가진것도 아니고,

감성적인 사람은 더더욱 아니지만,

함민복 님의 '긍정적인 밥'에 나오는 '시 한편에 삼만원'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

시집을 열심히 사들이고 있다.

 

근데, 권혁웅의 이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를 처음 접했을때,

'권혁웅이 누구지~?@@'하며 한참 말똥을 굴렸었다.

권혁웅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은데,

이상하게 그가 썼다는 시 한편의 제목은 고사하고,

그의 시 한구절도 떠오르지 않는거라~--;

암튼,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독이 아니라,

내 기억력은 원래 소박하고 착했었던 터라...나이듦을 탓할 건덕지는 전혀 없다.

 

한참, 말똥을 굴리다가,

'이영광'의 '홀림, 떨림, 울림'에서 그의 시를 소개했었던 기억이,

그때 그의 시도, 시 해설도 너무 좋았었던 기억이, 났다.

(막막한 세상을 건너는 방법<--링크)

 

호구(糊口)

 

조바심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입을 봉해서, 입술 채로, 그대에게 배달하고 싶다는 거다

목 아래가 다 추신이라는 거다

 

이 짤막한 시를 통해서, 그를 각인시켜놔서 그런가...

시집 속의 시들을 보니 좀 낯설었다.

그는 이미 '미당 문학상'을 받는 등 시창착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데,

그가 '문학평론가'라는 선입견 때문에 그런지 참여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고, 완전 참여시라고 하지도 못하겠는 것이,

참여시면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들어야 할텐데,

그렇지는 않은 것이,

우리 주변 사람들의 지난한 일상사를 담고 있는데,

그 고달픈 하루하루를 객관적이고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게 아니고,

시인은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따뜻하고 눈물겨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것 같다.

 

난, 시이고 수필이고 소설이고를 떠나서 언제부턴가 '화려한 수사'가 싫었다.

화려한 수사는 글을 돋보이게 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용을 반감시킨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취향일뿐,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쓰인 수사야말로, 시를 시일 수 있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그냥 단지 주변 사람들의 지난한 일상사를 곧이곧대로 전달하기만 할거라면,

굳이 '운율이 있는 언어'와 '함축적인 표현'을 취할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다.

 

어떤 의미로 봤을때는, '운율이 있는 언어와 함축적인 표현'이야말로 '강한 여운'을 줄 수 있는 임팩트 있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궁정식 연애에 관하여

 

애인을 애마에 태워 밥 먹으러 갔지

식당을 지키는 풍선인간 하나

호들갑스럽게 우리를 맞네고삐를 맞기고 들어서자

전국에서 모여든 기사들

마상시합 전의 난전처럼 떠들썩하네

애인은 궁정식 연애의 주인공이 된 듯 들떠

우아하게 손을 들어 메뉴를 가리키네

불고기백반, 저건 우리의 사랑을 시험하는 거야

우리는 불의 시련을 통과할 거야

고등어자반, 저건 우리 경쟁자들의 운명이지

토막 난 채 소금에 절여진 패잔병이야

우리는 돌솥밥처럼 끓어올라

기사들 사이에서 사랑을 맹세했네

옆구리를 드러낸 자반 옆에서

달달한 불고기 국물 앞에서

기사들은 이쑤시개를 장창처럼 꼬나들고

혹은 자판기 커피를 성배처럼 받들고

청량리로 군자교로 혹은 장안평으로

너도 나도 흩어졌네

잘 아시겠지만 이 기사담의 결말은 누룽지,

눌어붙은 밥알들이 책임지는

물에 불은 한때의 고소함에 관한 이야기였다네

 

이런 걸 중의법이라고 하던가?

이렇게 재미있는 풍자는 오랫만이다, ㅋ~.

돈키호테와 로시난테가 풍차에 맞서 칼을 휘두르는 것만 '궁정식 기사도' 라고 할 수 있나?

때론 애인을 애마에 태운 다소 호들갑스런 그것이어도

기사들 사이에서 사랑을 맹세하면 '궁정식 연애'가 되는 것이다.

잘 아시겠지만...으로 끝나는 결구도 매력적이고 맛깔스럽다.

'궁정식 기사도'와 '궁정식 연애'의 공통점은 그러고 보면 누군가 '책임지는'사람이 있다는 건가 보다.

아, 이런 시도 참 재밌고 좋다~^^

 

'할머니가 익어간다'는 제목의 시도 그렇다.

'ㆍㆍㆍㆍㆍㆍ

아랫목에서 익어가는 청국장 냄새를 할머니 냄새라 말하지 마라

저승, 그 미지의 땅을 정복하러 가는 전사의 비상식량이다'

같은 발상 자체가 기발하기 짝이 없다.

그의 시는 아무래도 콩이 그렇듯,

달리지 않아도 이미 숨이 가쁜,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노랗게 굳은 요구르트가 그렇듯,

발효를 거쳐 장수를 누릴 기미가 보인다.

 

'첫사랑', '짝사랑', '포장마차는 나 때문에', '환절기'...다 좋았지만,

무슨 뜻인지 내용은 이해불가여도,

이상하게 분위기가 적당히 애잔한 것이 '서해에서'가 오래 내마음을 잡아 끌었다.

 

서해에서

 

인간이 버린 것들을 천천히 되밀어오는 해안

나의 해안선은 늑막염처럼 쓰리다

모래에 묻어둔 병은 담장에 박아둔 병과 똑같이

경계를 넘는 이들의 발을 베어버린다

나는 오래 일몰에 길들여졌다

필라멘트 끊어지기 전의 한순간

물에 던져 넣은 백열등 하나, 항응고제처럼 잦아든다

그러니, 그런 것이다, 누가 손을 넣어

가슴의 불을 끄는 때가 있는 것이다

상한 우유처럼 철벅이는 파도 앞에

드문드문 귀신들이 서 있다

자꾸 쓸려가는 자신의 그림자가 위태로워 못 떠나는가?

흔적과 연애하는 자가 귀신이다

파도는 스팸 전화처럼 자꾸 와서는

여보세요, 말하기 전까지 침묵을 지킨다

말도 안돼, 자백을 강요하는 장사꾼이라니

하지만 가당치 찮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얼토와 당토야말로 귀신의 영토다

지워질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강역이다

상한 우유처럼 나는 누설해야 한다

이곳은 너무 눅눅하다고

내일이 되어도 일출은 볼 수 없을 거라고

서성이던 귀신 하나가 다가와

아저씨, 불 좀 빌립시다, 말을 건다

흔적과 연애하는 자가 귀신이란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가 귀신이라는 말과 같은 뜻일 수 있겠다.

모래 위에 그린 그림처럼 파도가 한번 휩쓸고가면 지워질 수 있는,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흔적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다.

 

'ㆍㆍㆍㆍㆍㆍ자신의 그림자가 위태로워 못떠나는가?'는 자기애라기보다는 미련쯤 되겠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가슴의 유리병 속의 불빛은,

누군가 와서,

안되면 세찬 바닷바람이라도 불어와서,

또는 누군가가 가슴속에 손을 넣어 전원을 차단시키듯,

불을 끌 수 있도록 가슴을 내어놓는게 오히려 현명할 수도 있겠다.

 

'불 좀 빌립시다'가 결코 자신의 가슴 속 유리병 속 타오르는 그 불은 아닐것이므로,

아니, 아니어야 하므로...

 

무릇 서정시의 탈을 쓰고 말만 앞세우는 시들이 남발하는 시대에,

권혁웅의 시는 그런 의미에서 몸소 경험한 체험의 산물인듯 하여,

애착이 가고 미련이 남든다.

하지만, 흔적과 연애하는 자가 귀신이란다.

귀신 잡는 해병대가 될 것도 아닌 다음에야,

과거에, 흔적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가열차게 사는게 우선일 게다.

 

사는 건 현재를 가열차게 살아야겠지만,

난 그래도 이 시인의 앞날이, 장래가 참 궁금하다, ㅋ~.

 

언제던가, 누가 써는걸 사주겠다고 하고는...날 어디 유명한 순대골목으로 데려갔던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순대를 써는 아주머니를 향하여,

"순대 썰지 말고 그냥 길게 통째로 주시구요. 포크랑 나이프 하나만 주시겠어요?"

라고 했었다.

그래서인가?

난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라는 제목을 자꾸 내맘대로 '애인은 순대를 토막내고 운다'로 바꾸어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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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29 16:08   좋아요 1 | URL
언제나 시와 노래 즐겁게 누리시면서
하루하루 아름답게 일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