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고백하자면, 난 소싯적에 고 김광성의 마직막 공연이었을지도 모를 뉴욕공연을 보았었다.

그게 아마 낯선 곳에서 한참 외롭고 고독해서 힘들었던 내 자신에게 주는 연말연시 선물 같은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땐 공부에 치일 때여서 막상 외롭고 고독함 따위에 제대로 침잠하지도 못하고 시늉만 했을 때였었다. 

그는 공연에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를 부르며, 아니 노래를 채 부르지도 못할 정도로 울었었는데,

그의 노래를 통해서 외롭고 고독한 감정의 위로를 받고자 했었던 나었었지만,

그의 진한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혼자서(같이 할래야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어 같이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를 그토록 아프게 만든 노래에 필시 무슨 사연이 있을거라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그리고 김광석의 죽음 소식을 아주 나중에 접했고,

그리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가 김광석의 자작곡이 아닌 '류근'이란 시인의 작품이란건 더 나중에 김도언의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를 읽다가 류근이란 시인의 존재감을 발견하고 난 뒤였다.

 

사실 이 책을 처음 붙들고는,

책 뒷표지에 아무리 그럴듯한 이들('이어령'과 '이외수')의 추천사가 폼나게 들어있었다고 해도,

책을 읽으면서 좀 실망스러웠던게 사실이다.

책의 부제는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인데,

책 속의 내용들은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걸러지지 않았고,

('조낸'과 '시바' 어느게 더 많이 쓰였는지 비교해 보는게 무의미 할 정도다~--;)

술과 애인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으며,

'백수래 백수거'라고 공공연하게 외쳐댈 정도로,

젊고 건장한 남자가 백수로 지낸다.

 

시인들은 죄다 허여멀건하고,

그리하여 시래깃국만 먹고 사는지라...

아무리 젊고 건장해보여도 육체노동 따위는 할 수 없는,

실연의 아픔만을 '상처적 체질'로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일요일이면 방바닥에 궁둥이 딱 붙이고 누워 입만 동동 거리며 사는 나처럼, 거의 대부분의 날들을 그렇게 탕진해버리는 그런 존재들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허구헌날,

'결론적으로 나는 내일 오전중으로 방을 빼야 한다', '일주일 안에 독립하시오', '유씨 나이가 몇이유?' 따위의 소리나 듣는단 말인가?

 

내가,

우리나라 시인들의 삶이 열악하고,

그들은 특별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발휘하는 특별한 감수성을 우리가 한번씩 감상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시집도 열심히 사주어야 한다...

는 생각을 평소에 하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렇게 자칭 '무한 백수'가 이렇게 시시껄렁한 글이나 쓰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멋지게 봤던 '김도언'도 '이, 뭥미?'하고 다시 보게 됐으며,

책 뒷표지의 '이어령'과 '이외수'의 추천사를 두고도 '뻥이 대단히 심하다, 이 정도 되면 대국민 사기극 수준이다.'라고 생각할 즈음,

 

사실, 이때까지는 시인들의 일상이 꾸밈없이 '레알'로 찬조출연한 덕에 집어던지지 않고 읽어온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안동의 안상학 시인께서 천기를 누설하시는 바람에...라든지,

익히 명성을 들어 알고 있던, 이정록 시인의 단독 리사이틀...이라든지, 따위 말이다.

 

주인집 아저씨가 등장해 주신다, 짜자~ㄴ♬.

주인집 아저씨가 등장하면서부터,

(산문은 시와는 또 다른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의 글들은 탄력이 붙고 쫄깃해진다.

그러니 이 책의 일등 공신은 '주인집 아저씨'이다.

이 책의 앞부분 만을 읽고 괜찮다 싶은 사람들은 이 시인과 코드가 잘 맞는것이니 상관할 필요가 없고,

나처럼, 애먼 '김도언'이나 '이어령'또는 '이외수'에게까지 화살을 날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여기까지만 참고 견디면 된다는 팁을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ㅋ~.

 

ㆍㆍㆍㆍㆍㆍ이봐유, 유 씨! 유 씨 시방 나이를 얼마나 잡쉈수?

 

나        그건 왜요?

아저씨  보아하니 국민핵교 다닐 나이는 한참 지난 거 같은데 허구한 날 헛구역질이나 하고 앉았으니 한심해서 그러지유.
           유 씨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세계를 알어유?

나        내. 면. 의. 아. 름. 다. 움ㆍㆍㆍㆍㆍㆍ이요?

아저씨  그 나이쯤 잡쉈으면 인제 내면의 아름다움 정도는 저절로 알고 가꿔야 하지 않겠슈?

나        (조낸 어이없다)

아저씨  뭐 원래 유 씨는 몰르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없는 양반이란 거 내가 애저녁에 다 알아봤지만서두

           인제는 내면의 아름다움 정도는 알아야지유.

나        (시바, 가뜩이나 속도 아픈데)

아저씨  내면의 아름다움을 몰르느까 그게 어디서 오는 건지도 몰르지유?

나        그게 어디서 오는 건데요?

아저씨  강. 인. 한. 체. 력!

나        강인한 체력ㆍㆍㆍㆍㆍㆍ이요?

아저씨  물론이쥬. 강인한 체력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이 싹트는 거유. 유 씨는 강인한 체력이 준비 안 돼 있으니까

           내면의 아름다움도 몰르고 그러는 거잖유. 택도 없는 술 작작 마시고 인제부터 우유나 들어유.

           그러다 뼈 삭겠슈.

 

정말 재밌어진다, 장난이 아니다.

방심하다간 빠진 배꼽을 찾으러 다녀야 할 정도이다, ㅋ~.

 

하긴, 시인에겐...

산문집 중후반 뿐만 아니라,

전반 1/3의 정조가 또한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암튼 건투를 빈다.

 

그리고 주인집 아자씨에 이 말 한마디 전해주기 바란다.

우유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은 성분의 칼슘이 함유되어 있지도 않거니와,

사람에 따라서는 우유의 칼슘을 제대로 흡수해 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물을 먹어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지 않나?

같은 술을 먹어도 헛구역질이나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는 사람들에겐 모두다 잊어버리는 좋은 처방약이기도 하다.


사람이 외롭고 슬프고 고단하더라도 내내 외롭고 슬프고 고단하게만 살 수는 없다.

상처적 체질이라도 상처를 끌어안고만 살아갈 수는 없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고 옹이가 생길것이고, 상처가 났던 기억조차 잊혀질 거이다.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모든 삶이 그렇듯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어제까지의 상처와 상처가 있던 자리쯤은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잊어버리고,

훌훌 떨고 그렇게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너무 아팠던 사랑의 상처 따위,

삶의 질곡 따위, 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연연해 할것이 아니라,

미래를 꿈꿀 희망이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오늘 현재를 치열하게 살면 된다.

그걸로 충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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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0-28 05:34   좋아요 0 | URL
헌책방 사장님이
가끔 이런 말을 하지요.
책방 일을 하려면
첫째로 책을 좋아해야 하고
둘째로 힘이 좋아야 한다고.

예부터 아침에 일하고 저녁에 책 읽는다 했듯이
몸으로 일하고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참으로 아름다운 빛이 이야기로 태어나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