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무 창비시선 368
정희성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은 내년이면 나이 70이다.

예전에는 '고래로 드물다'고 해서 고희(古稀)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요즘은 인생은 60부터다, 아니다 70부터다, 설왕설래할 정도로 흔하
다.

그런 의미에서, '논어'에 나온다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從心所慾不踰矩)'를 줄인 종심(從心)이 내겐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암튼, 내년에 나이 70인, 종심(從心)인 시인은 시집 말미의 '시인의 말'에서 '시가 어지간히 짧아졌다.ㆍㆍㆍㆍㆍㆍ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겠는가. 그저 손을 들어 소리의 높이를 가늠할 따름이다.'라며, 사람은 나이가 들면 단출해져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몇년전 불혹을 지난 난, 아직도 세상에 미혹하기만 할뿐이고...

그동안 없었던 말들이, 참았던 하고 싶은 말들을...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다 하고 살자는 주의로 바뀌었다.

한의학적 진단명 중에, 매실의 씨가 목에 걸려 있는것처럼 목에 걸려 뱉어지지도 삼켜지지도 않아 가슴이 답답한 '매핵기'라는 게 있는데, 그것만은 막아보자는 심사에서이다.

 

며칠전 먼곳에 있어 자주 못보는 친구가 술마신 얘기를 했다.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누구 누구 따위의 같이 마신 사람들을 열거하는데,

난 제대로 열받고 빈정이 상해버렸다.

우리 나이가 되면 친구 사이에 성별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 모두를 '우리', '내가 이뻐하는', '내가 좋아하는' 따위의 수식어로 꾸며주는 패밀리 의식은 과한 오지랖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난 친구가, 나의 질투심을 부추기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수식어들을 구사하는 줄 알았다.

난 나이가 들면서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욕심을 내려놓겠다고 했었고,

주류가 아니어도 괜찮다, 배경으로 주인공을 빛내줘도 좋겠다...라고 말은 했었지만,

마음을 다 비워내지는 못했었기에...한번씩 나를 시험하는건 줄 알았다.

 

친구는 술을 마신 기분에...호기롭게,

그 친구의 우리 OO와 친구가 이뻐하는 OO를 연결시켜 줬다는 걸 자랑하고 칭찬도 받고 싶었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가 준'울'이나  '내가 이뻐하는', '내가 좋아하는' 따위의 수식어로 꾸밀 수 있는 패밀리 의식은 특별한 몇몇 사람에게만 사용해주길 원했었다.

그 친구는 내가 그리운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비껴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내 나도 그친구에게, 그 친구도 내게 '그리운 나무'같은 사람일 수밖에 없을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시집을 읽었다.

 

그리운 나무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그렇다면, 난 '그리움'이 되어야 겠다.

아니, 시인이 되어야 하려나?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라니...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있단 말인가, ㅋ~.

 

시인

 

그대에게 가닿고 싶네

그리움 없이는 시도 없으니

시인아,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아라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어디 가 조용히

혼자 좀 있다 오고 싶어서

배낭 메고 나서는데 집사람이

어디 가느냐고

생태학교에 간다고

생태는 무슨 생태?

늙은이는 어디 가지도 말고

그냥 들어앉아 있는게 생태라고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해서 그러는지는 모르고

봄이 영영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그런다고는 못하고

*이상국의 시 「그늘」의 첫행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같은 경우는 내겐 서러워서 황홀한 시다.

어쩜 좋아?

꽃이 마구 피었다 지니까 심란한 시인의 마음을,

이 가을 나뭇잎이 마구 땅으로 떨어지고 쓸쓸히 빈 가지만 허공으로 매단 나무들을 보면서,

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겠다.

 

친구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얘기하며 그래도 바꾸고 고쳐서 '나아지게 해서 써야한다'는 건설적인 얘기를 들려줬었는데,

시인은 '묵침의 님'을 읊는다.

서로 다른 곳에 있고, 다른 생각을 하고, 그리하여 다른 삶을 산다고 하여...

그리워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 편에 향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은 그리운 사람이 있어 바람 에 실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아코디언

 

이것은 가슴을 여는 소리

설레는 내 마음 들었느냐

오직 너만을 그리워하는

골 깊은 이 가슴 보았느냐

 

 

  어떤 이는 세상에 시인이 나무보담도 흔하다며 너도 시를 쓰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시인이 많은 게 무슨 죄인가 전국민이 시인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밥을 굶으면서도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다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 시인이 정치꾼보다 많기 때문 아닌가('우리나라가 아름다운 것은'중 '일부')

 

교감


전깃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어린아이가 그걸 보고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만
"내려와아, 위험해애"

교감은 나와 새가 다른 종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우선이지만,

그보다는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먼저다.

전짓줄을 올려다 봤으니,

내려와...라고 했겠지?

새들은 거기가 자기 집일 수도 있는데...ㅋ~.

아마, 새들의 입장에서 였다면,

"니가 더 위험하다, 얘~.

 어서 올라와, 폴짝~!"

이랬을지도 모르는 일, ㅋ~.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10-27 07:05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모두 나무와 같은 숨결이요,
나무와 함께 숲에서 태어난 목숨이기에,
나무가 그립고, 나무를 그리며, 나무를 곁에 두고 살아가고픈 마음이 되며
이러한 시들이 태어날 수 있으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