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부의 서재 - 어느 외주 교정자의 독서일기
임호부 지음 / 산과글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맨날 완전 생얼로 다니면, 날 아는 사람들은 질색팔색을 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가 꾸미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속한다, 뻔뻔스러운거다, 낯 두껍다...어쩐다 해가면서 그런 무모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는 말들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백옥같이 고운 살결을 자랑하느냐 하면,

켈로이드 피부에다가(얼씨구~) 햇볕에 검게 내려앉은 스팟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한마디만 하자면,

이건 자신감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 일종의 무장해제이다, ㅋ~.

 

요즘,

아니다...요즘 뿐이 아니라, 언제나 사는 건 장난이 아니게 치열했었다.

그 치열하고 가열찬 삶에 휴식 같은 것이 책이고 이곳 알라딘 서재이고 했었다.

다만,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

그동안은 책을 들입다 팠다면,

이젠 책과 더불어 적절하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모부의 서재, 이 책은 외주교정자의 독서일기라고 하지만...

한 섬세한 영혼의 내적독백이자 자아성찰이며,

이 치열하고 가열찬 세상을 살아가는, 내지는 건너가는 방법론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글들은 크게 네개의 나뉘었는데,

사는게 참 치사하다, 소리 내 울다, 당신 거기 있어요?, 백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내가 전에 이곳 서재에서 읽은 글들도 있들도 있고, 처음 보는 글들도 있으나,

이렇게 제대로 된 제목을 달고 책의 형태를 갖추니 울림이 배가 된다.

사는게 참 치사하다,

소리 내 울어도 괜찮다,

당신 거기 있어 줄거죠?

숨어 있기 좋은 백개의 방까지는 아니어도 백개의 서랍,

난 이렇게 내 맘대로 해석해가며 읽었다.

 

내가 처음 이분의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책에 나온 날짜가 맞다면 2010년 8월 무렵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는 글의 시초가 된 페이퍼를 보고나서였다.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

 

서울 지하철 6호선 합정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플랫폼에 들어서면 벽 한쪽에 시 한편이 걸려 있다. 대개는 교정지가 하나 가득 든 가방을 둘러메고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어서 집에 가서 어머니 저녁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해질 때라도, 나는 시 앞에 멈춰 서서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여러 번 그 시를 읽곤 한다. 이런 시다.

ㆍㆍㆍㆍㆍㆍ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고, 대개의 삶과 별다를 것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내 몫의 다름이 없지 않다는 것, 그 차이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아닐는지. 두렵지만 위안을 주는, 그림자이면서 동시에 그늘인 마음처럼.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 그럼 됐지 뭐, 그럼 된거야.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다시 무거운 가방을 힘차게 둘러메고 노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씩씩하게, 밥을 하러 간다. (131쪽)

고백을 하자면...이 페이퍼를 읽었을때, 여자분인줄 알았었다.

그래서 '효녀 ㅇㅇ님'으로 시작하는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 페이퍼를 읽으면서 잘난 척 한다고 할까봐 겉으로 드러내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난 '프렉탈이론'을 떠올렸다.

'부분은 전체를 대표한다'쯤으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사는 그것과,

어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오늘이지만 내몫의 다름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순환성(recursiveness)으로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미세하고 미미한 변화이지만 순환이 만들어 내는 원은 눈곱만큼씩이라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는,

자연계의 모든 것...이를테면 해안선의 모습, 동물혈관 분포형태, 나뭇가지 모양, 창문에 성에가 자라는 모습, 산맥의 모습, 우주의 모든 것을 프랙탈로 보았고,

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네들 사는 것도 다 똑같은 아니, '다른 것이 없지는 않다'는 프랙탈 구조를 읽어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까레니나의 첫 문장도 잠깐 떠올랐었고,

지지고 볶고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깨달음이 나름 위안을 주었다.

 

그러고 나니까 세상에 대하여,

사람들을 대하기가,

세상을 살아나가기가,

좀 홀가분하여졌다.

이제는 화장을 안한 맨얼굴만 뻔뻔하게 아무에게나 들이밀 수 있는게 아니라,

내 자신을 치장하거나 내숭떨지 않고도(나쁜 의미의 변장이나 용인술이 아니라) 내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보이고,

그리하여 내 감정을 들켜서...

손해보는 일이 생긴다면 그래 좀 손해보고 말지 뭐,

욕을 하면 욕을 좀 먹지 뭐, 욕먹으면 오래산다잖아...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삶에 지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내 등을 다독다독 두들겨주는 듯한 구절들로만 되어 있다.

 

옛날에 독서 처방전이 있다면 이떤 형태나 형식을 취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가 떠올랐다.

아니, 독서처방전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지난한 우리네 삶에 대한 36.5도짜리 따뜻한 감성의 위로이자 쓰다듬이자 격려이다.

 

앞으로도 이런 지지고 볶는 삶을 같이,

한쪽 어깨가 됐든,

발가락 한개가 됐든,

마음 한켠이 됐든,

책의 한구절이 됐든,

같이 이고 사는 하늘의 하얀 구름 한점이 됐든지 간에...

떠걸고 의지하고 살아가자는 프로포즈로 들린다.

 

좋은 책이다.

다 옮겨적을 수 없다, 부디 일독을 권한다.

 

ㆍㆍㆍㆍㆍㆍ퇴지 (退之) 한유(韓愈)의 문장에서 힌트를 얻었다.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 내 운다. 초목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소리 내 울고, 물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치면 소리 내 운다. 솟구치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고, 내달리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며,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에 불질을 했기 때문이다. 금석(金石)은 본디 소리가 없지만 두들기면 소리 내 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어쩔 수가 없어서 말을 하는 것이니, 노래를 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고, 우는 것은 가슴에 품은 바가 있어서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들은 모두 평정치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ㆍㆍㆍㆍㆍㆍ(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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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21 13:48   좋아요 0 | URL
고운 책들로
언제나 고운 마음 잇도록
삶밥 기쁘게 누리시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