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담 醫對談 - 교양인을 위한 의학과 의료현실 이야기
황상익.강신익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맨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그런데 쳇바퀴에서 일부러 벗어나기를 꿈꾸지도 않는다.

그니의 이런 루틴 같은 일상은 빠짐없이 적혀 있고, 기록되고, 예정되고, 규정되어 있는 '80일간의 세계일주'의 그것을 닮았다.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는 그것을 돌아다니길 좋아하지 않고, 규칙적인 사람, 진짜 기계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급기야 기계를 섬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얘기 한다.

 

그러니까, 그니는 누가봐도 좀 독특한 감성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변덕이 죽 끓듯 하기가 일상다반사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두드러지는 인간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니가 직업과 관련하여,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현실과 그니가 생각하는 이상향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

'빨리 빨리', '직빵으로', '세게', '독하게', '한번에 쇼부를 볼 수 있게' 같은 말들은 너무 흔하게 듣는 멘트이다 보니,

그니가 생각하는 '명의'란,

'빨리 빨리', '직빵으로', '세게', '독하게', '한번에 쇼부를 볼 수 있게' 같은 말들과 관련된,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추상명사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황1  과거에 생각했던 '명의'라는 개념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왜냐하면 진료하는 방법이 모두 표준화 되었거든요. 이제는 의사 개인만의 독자적인 치료법이란 없다는 뜻입니다. 한의학과의 차이점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표준화'라는 게 필요하지요. 그래야만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용한 의사에 대한 신뢰는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의사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수 없겠지요. 진단과 처방이 의사마다 다르다면 기준이 없으니 누굴 믿겠어요?

  '한의학의 과학화'라는 점은 바로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의사들마다 진단방법이나 치료법이 달랐어요. 지금도 그런 경우가 있죠. '체질'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병원마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한의사라 해도 1년 전과 현재 진단이 다른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만큼 표준화, 과학화가 쉽지 않다는 얘기겠지요. 현대에는 과학화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해서 계량화, 과학화했는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한의학이 더 쇠락의 길로 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과거처럼 나만의 비방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아닙니다.

ㆍㆍㆍㆍㆍㆍ

강1 과거의 명의에게는 예후가 중요했거든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능력보다는 환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환자를 정해진 유령 속에 넣어 규격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유령'이 아니라 '유형'이겠지~--;)

황1 ㆍㆍㆍㆍㆍㆍ환자가 의사를 믿는 일도 참 중요합니다. 일단 내 몸을 맡겼으면 믿어야 해요. 믿지 못하겠으면 다른 의사에게 가야죠.ㆍㆍㆍㆍㆍㆍ믿는 것이 복이다, 하고 믿었어요. 그래야 효과가 있거든요.(50~51쪽)

그러던 중,

그니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진료하는 방법이 표준화되고,

그리하여 '표준화'된 잣대를 드리운다면...

규칙적인 사람, 진짜 기계 같은 사람과 무엇이 다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표준화된 잣대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독특한 개성이라고 생각했었던 그니였었는데 말이다.

 

표준화된 잣대에서 벗어나게 되면,

의료보험 수가는 차등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삭감'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사용하여 지급되지 않는다.

 

'명의'가 아무리 의미있는 타이틀이라고 해도,

환자가 있어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게 '의사'라는 존재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진료하는 방법이 표준화되고,

그리하여 '표준화'된 잣대를 드리우게 되고,

거기서 비껴가지 않는 규칙적인 사람, 진짜 기계 같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의사보다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더 제대로된 데이터를 뽑아내 진단을 하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책은 두 의학자들의 대담으로 쓰여진,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 의료 대담집이다.

인문학이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을 위한' 내지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내지는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자 하는' 정도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독특하고 두드러진 곳을 다듬어 넣고, 두들겨 넣고...하여서는 인문학을 가장한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나는 이 책이 진정한 '인문학'서적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다시말해, '인문학'서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담'에 실천과 행동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리고 대담집인데...독자들의 질문을 수록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맹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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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3-09-16 18:09   좋아요 0 | URL
표준화는 산업 현장에만 적용되는 기준이 아니군요. 전 대부분 산업현장과 연계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