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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ㅣ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한때 '다마고치'라고 하여 '전자 애완 동물 사육 게임기'가 한창 열풍이었었다.
난 다마고치에는 별 관심 없었고,
'하얀 마음 백구'라는 강아지 한마리가 집을 찾아가는 인터넷 게임은 몇번 해봤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말과 나의 이야기, 앨리샤'라는 게임을 하는 걸 보게 되었는데,
헐~, 이 게임이 묘하게 중독성이 있더라.
여러 말끼리 레이스를 펼치는 게 주 게임이지만,
게임에서 획득하는 점수를 가지고 마구와 안장 따위를 살 수 있고,
말의 품종도 다양하게 분양받아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말에게 먹일 여물과 사료도 다양하게 택할 수 있었으며,
레이스에서 다치면 치료도 정성스럽게 해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좀 다른 얘기인데, 존스칼지가 쓴 '노인의 전쟁'에 보면 75세 이상 된 사람들 중에서 우주개척방위군에 스스로 인간병기가 되어 투입된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내가 좋아하는 '테드 창'의 이 책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란 이 책은,
내가 장르소설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인지,
아님 광고를 대대적으로 하지 않아서인지,
7월에 나온걸로 되어 있는데 지난 주말에서야 나온 줄 알게 되었다.
어쩜 번역자가 내가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우리나라 장르소설이 발전하길 누구보다 간절히 염원하는지라,
외면이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하여 바로 잡았을때,
언젠가는 번역의 완성도가 나아지리라 기대해본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넷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사람 둘, 그들이 키우는 일종의 가상 애완동물(virtual pet)인 디지언트 둘 또는 셋.
디지언트를 둘 또는 셋이라고 하는 것은 복제양 돌리처럼 쌍둥이 복제물이기 때문이다.
전직 동물원 조련사인 여자는 신생 게임 회사(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사교 게임인 '데이터어스'에 가상 애완동물(virtual pet)인 디지언트를 제공하는 회사)에 백지 상태의 디지언트를 교육시켜, 인간 사회의 언어와 지식, 사회성을 익히도록 훈련하여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남자는 신생 게임회사 소속 애니메이터이다.
데릭은 경험이야말로 최상의 교사라는 블루감마사의 AI 설계 사상에 공감하고 있었다. AI에게 지식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 능력을 갖게 해 고객이 직접 가르칠 수 있는 AI를 판매하는 것이 블루감마사의 목표였다. 그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그런 고객들의 흥미를 끌어야 했다. 성격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겉모습인 아바타도 귀여워야 한다. 전자는 개발자들이 맡고 있었고, 후자는 데릭의 몫이었다.(18쪽)
여기서 말하는 디지언트라는 것은, 인터넷 상의 아바다에다가 로보트를 결합한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좀 쉬울 수가 있겠다.
이쯤에서, 내가 이 글의 처음에서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을 언급한 이유를 밝혀야 겠다.
'노인의 전쟁'에서는 내일 죽어도 두렵지 않을 노인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좀더 나은 쪽으로의 '인간병기'화 되는 것만을 얘기했었는데,
이 책은 제목에서 '소프트 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고 하여,
어찌보면 '객관화'를 지향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몰입하고 감정이입하는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객의 흥미를 끌기 위하여'라는 미명하에 학습 능력과 귀여움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고자 하는데,
이 학습 능력이라는 말 속에는 자체적으로 깨닫고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이 숨어있음을,
귀여움이라는 말 속에는 성장이라는 복병이 숨어있음을,
간과하고 인정하지않는다.
먼저,
아주 기본적인 맞춤법부터 틀리고 있으니 신뢰가 안 생긴다.
"ㆍㆍㆍㆍㆍㆍ. 이따(가) 봐."가 되어야 한다.
'있다/없다'와 '이따/지금'의 상관 관계를 생각하면 쉽다.
ㆍㆍㆍㆍㆍㆍ복잡한 정신은 자체적으로는 발달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야생화한 인간 어린애들도 그렇지 않은 다른 어린애들과 같아야 한다. 정신이란 그냥 내버려 두어도 혼자서 쑥쑥 자라는 잡초처럼 자라지는 않는 법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고아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해야 할 것이다. 정신이 그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다른 정신들에 의한 교화敎化()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이런 교화야말로 데릭이 마르코와 폴로에게 주려는 것이었다.(81쪽)
이 책의 번역을 갖고 툴툴 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위 단락의 요지는,
복잡한 정신은 자체적으로 발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야생화한 인간 어린애도 그렇지 않은 다른 어린애들과 같아야 한다.
정신은 자체적으로 자랄 수 없다.
잡초는 혼자서 쑥쑥 자란다.
=>정신이란 그냥 내버려 두어도 혼자서 쑥쑥 자라는 잡초처럼 자라지는 않는 법이다.
위의 내용으로 볼때, 만약 그렇다면 고아원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해야 할 것이다...가 되어야 한다.
'이중부정은 강한긍정'이라는 영어식 어법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가져오다보니,
우리 문장에서는 뜻을 알 수 없는 엉뚱한 문장이 되어 버렸다.
암튼, 이 책은 깊이 파고 들어가다보면,
애완동물, 반려동물,
컴퓨터를 비롯한 가상 현실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 등,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 하는 것,
제대로 된 교육의 의미와 정의,
등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마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 등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더불어,
이 땅의 아이들이 우리가 가르치는 데로만 성장하고,
그들 스스로 부쩍부쩍 자라나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책임 의식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름 자신의 페이스대로 자라고 있는 데,
왜 우리 기준과 우리의 틀에 가두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결국 이 책의 주인공 여자는 자신의 틀에 가둔 덕분에,가상의 애완동물인 디지언트를 왕따로 만들고...
주인공 남자는 위험 요소를 걸러내지 않아 성에 노출시키게 되고 그때문에 성상품화를 시키게 된다.
우리는 항상 사랑의 존재 여부만을 가지고 얘기한다.
사랑만 있으면 될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인터넷, 무생물을 향한 과도한 사랑은 집착이 되고...
번지수를 잘못 찾은 사랑은 배송 사고가 난다.
무엇보다도 사람과 컴퓨터의 차이는, 예외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예전 같지 않으면 우린 사랑이라고 하지만,
컴퓨터가 예전 같지 않으면 우린 '에러'내지는 '고장'이라고 하여
방전시키거나 전원을 꺼버리거나 리셋시키거나 한다.
나날이 과학이 발전하고,
그러면서 공상과학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우리 주변의 현실이 되었다.
이럴때일수록 중요한 건 제대로 된 가치관의 정립인 것 같다.
생명이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살아있는 애완동물의 그것에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하여야 하나?
그렇다면, 컴퓨터 상의 아바타로 대표되는 가상 애완 동물이나 로봇 기타 등등에 대하여서는 우린 어떤 취급을 하여야 하나?
나름대로 중심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가치관 마저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하루하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