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을 권함
김한민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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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이 싫다.

여행을 즐기기에 난 일상이 주는 무료함과 편안함에 익숙해졌다.

작금의 난, 그의 말대로 '겨우 1박 2일 엠티를 와서 온수 샤워를 못한다고 투정 부리는 사람(192쪽)'에 속한다.

그렇지만 마인드만은 아직도 여유를 부리며 떠나는 여행보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빠듯하게 떠나는 그런 여행을 선호한다.

 

난 젊은 시절의 한때를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머물렀었다. 처음 그곳에 가게 되었을때는 결심도 야무지게, 우리말이나 글 따위는 하거나 읽지 못하는 벙어리 흉내라도 낼 요량이었다.

우리글로 쓰여진 책은 컴 공부를 하려고 가지고 간 책 한권이었는데, 있다보니 우리말이나 글이 사용하고 싶어 미치겠는 날의 연속이고...그리하여 난 그 책을 너덜너덜해 질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여행지에서 먹는것은 과일이나 인스턴트식품을 선호하다보니, 아직도 나의 식성은 아이들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고...

입는 것은 한창 젊을 때여서 누더기를 입어도 반짝거릴때였으니 관심 밖이었고,

잠은 전에도 얘기했듯이 엉덩이 붙이고 눈만 감으면 잘 수 있어서 이또한 예외였다.

 

생각해보면 책 한권으로 외로움을 달랬던것 같다.

때문에 아직도 책은 내게 있어서 친구요, 애인이요, 스승이다. 내게 있어서 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난 남편과도 독서 취향이 다른고로,

남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남편이 없어도 며칠 정도는 끄덕없지만, 책이 없으면 며칠은 커녕 단 하루, 단 몇 시간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중언, 부언 길었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난 여행을 떠날때 짐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그곳 시장을 돌다가 아무거나 걸쳐 입고 신으면 되고,

먹는건 과일이나 음료, 어딜 가나 패스트푸드 점이 있으니까 끄덕 없다는 거다.

그런데, 여행을 가게 되면 가는 날짜 수의 배가 되는 우리 말 책을 챙겨 가방을 낑낑거리면서 들고다닌다는 거다.

 

이런 나의 무식한 여행습관을 고쳐볼 요량으로 택한 게, 이 책'그림여행을 권함'이다.

그가 그림 여행을 권하는 이유는,

글 쓰기가 물론 좋은 작업이지만...

늘 '언어의 그물'(이라고 그는 표현하는데, 난 언어의 늪이라고 표현하고 싶다.)에 허우적거리는,

늘 혹사당하는 언어중추의 휴식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릴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쉼과 치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행에서 기대되는 처방과 동일하다, 쉼과 치유~!

 

그의 그림들을 처음 봤을때, 좀 별로였다.

게다가 그가 쓴 한글은 개발새발, 완전 깨는 느낌이었다.

알파벳이나 한글을 크게 쓴것은 캘리그라피처럼 멋들어진데,

공책 한귀퉁이에 적어넣은 작은 글씨들은 초등학생의 글씨 같다고 해야 할까~?

책을 읽는 중간에, 책 앞날개에 적힌 스리랑카와 덴마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의 양력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지만, 그러고 나서도 저 그림들을 보기 전까지는 그럭저럭이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이 책은 그의 그림실력을 뽐내기 위한 게 아니다.

여행을 가는 한 방법,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중의 한가지로 '그림여행'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후 보아야...그의 엉뚱함과 창의성에 슬쩍 미소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도 그림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그릴 수 있다고 독려하기 위해서인듯,

그의 어머니의 그림으로 처음을 시작한다.

그가 그리는 그림들은 단순한 것이 처음 봤을때는 대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주의깊게 관심을 갖고 살펴보니까,

그림 속의 인물들이 가지각색의 표정과 나름의 동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세심한 관찰, 다시말해 애정을 갖고 바라봐야 그려낼 수 있는 정확한 것들이다.

그림에서 많은 것을 생략하고 선을 단순화했다고 해서,

희미해지거나 있어야 할 최소한의 것이 누락되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표정과 동작이 풍부하고 역동적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건 금방이지만,

마음 씀씀이가 진지하고 따뜻하다는 걸, 책에서 읽어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김한민표 어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글이 멋지구리하다.

 

초라함만이 줄 수 있는 둘도 없는 소중함과 재미는 초라함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만 향유가 가능하다. 초라함에 대한 세상의 통념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정말로 초라해진다.(61쪽)

 

 

골목의 흡인력은 어디서 오는가? 아기자기한 동시에 관능적인 기묘한 매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평범하고 뻔한데도 훔쳐보고 싶은 이유는 뭘까? 골목의 저편을 상상하며 조금 더, 조금 더 멈추지 못해 빨려 든다. 학창시절 물리 시간에 배웠던 공식이 떠오른다. 베르누이의 정리의(에) 의하면, "유체가 흐르는 관에서 관이 좁아지면 속도가 빨라지고, 압력은 낮아진다." 그 워니를 나의 경우에 대입해 본다. '골목을 거닐때 나의 속도는 빨라지나, 그 발걸음은 가벼워진다.ㆍㆍㆍㆍㆍㆍ우리는 너무 새것, 깨끗한것, 매끈한 것, 다듬어진 것들을 선호해 왔다.ㆍㆍㆍㆍㆍㆍ전혀 다른 시간이 보존된 공기를 맡을 수 있다. 기억의 장소에는 관광객들도 겸허해지도록 만드는 힘이 서려 있다.(68~69쪽)

 

하지만,

암튼,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그의 이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것이 별다른 느낌이나 감흥이 없었다.

 

 

 

 

그의 이 그림들을 보게 되면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오는 것이,

비오는 날의 정서가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오는 것 같다.

그동안 여행중에 비가 오면 불편하다고 툴툴거렸는데, 이 그림들을 보고...제대로 기우제를 한번 지내보고 싶어졌다, ㅋ~.

 

분위기를 다시 바꾸어,

여행이나 이사 때 가장 큰 애물단지이면서...책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더우기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걸 싫어한다.

품절이나 절판인데 갖고 싶으면 책을 빌려서라도 디카로 찍어 하드에 보관하는 방법을 취한다.

 

오늘도 알라딘 서재 마실을 다니다가 너무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더 이상 책을 들이지 않기로 한 결심은 무너지고,

친구가 팥빙수를 사주겠다고 하는데,

팥빙수를 사먹을 돈이나, 그돈으로 책을 사나...하면서 책을 들이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하여 내가 책을 몇권 넘긴 그 친구는,

내가 준 책의 일부를 방출하겠다고 하여,

날 몹시 속상하고 서운하게 했다.

책을 날 보듯, 나인듯 여기겠다고 할때는 언제이고...~--;

물론 그 친구에게까지 책탑에 깔리는 악몽을 재현하도록 하고 싶지는 않지만,

방출이라는 말 속에 담긴,

기준과 우선 순위를 정하여 들이고 내고 한다는 뉘앙스가 서글펐다.

 

이미 준 것은 내 손을 떠난 것이다.

연연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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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10 00:18   좋아요 0 | URL
학교교육에 얽매이지 않으면
누구나
마음을 담는 그림이니까
다 잘 그릴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서양미술 흐름'에 맞추어
아이들을 학습시키니,
아이들이 스스로 즐겁게 꿈을 꾸듯이
그림을 못 그리게 되고 말아요.

아이 마음이 되면
언제나 그림이 즐거울 수 있구나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3-07-10 17:54   좋아요 0 | URL
어려운 얘긴 모르겠고,
암튼 어제 님 서재 페이퍼의 그림은 죽음이었습니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