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간혹 어떤 말의 사용함에 있어서,

그 낱말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 때문에 문장이나 구절 속에서의 호응이나 대구를 놓고 혼란에 빠질때가 있다.

나의 경우엔 '보수'나 '진보' 같은 것이 그렇고, '민주 주의' '사회 주의' 할 때의 '민주'와 '사회' 같은 것들이 그랬다.

육체노동자인지라 노동의 정직함은 경험 내지는 몸으로 체득했다고 생각했었던 터라,

한때 경제 중심의 신당 발언을 했던 안철수 의원 측이 이번엔  노동을 중심 의제로 삼는다고 하고,

진보정의당은 사회민주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려고 한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경제'라는 단어와 호환되어 쓰인다는 게 생경하고,

'사회'와 '민주'와 '노동'의 단어 조합이  마냥 어색하기만 했다.

 

이런 것들과 관련하여, 내 속에 들어왔었던 것처럼  명쾌하게 정리해준 책이 이 책이다.

_ 학문의 영역이 잘게 나뉘어 있고, 철학같이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학문은 비현실적이고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들 하잖아요. 삶은 철학과 관련이 없고 철학은 사는 데 도움도 안 되고 돈벌이와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_ 그게 자본주의 논리예요. 돈이 안 된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뭉뚱그리는 거죠. ㆍㆍㆍㆍㆍㆍ(62쪽)

 

제글이 쉬워지고 편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대중성의 차원이 아니라 사람들과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해서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편하게 읽는지를 알아요. 지금 사람들 문제의 보편적인 구조도 알고요. 그러니까 글이 편하죠. 대중적으로, 쉽게 쓰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핵심이에요. 핵심을 찌르고 진짜 그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에 들어가는 것이 대중성이고 애정이죠.(71쪽)

 

처음 이 책의 출간을 접했을 때는, 다른 책마냥 일단은 콜렉션을 위한 사재기였다.

장르소설을 읽던 시절부터 책에 남 다른 집착을 보였는데...그게,

어느 날 자고 깨어보니 품절이나 절판이더라...하는 상황이 되어 있을까봐 일단은 사서 쟁여두고 본다.

그게 꼭 기우만은 아닌 것이 얼마전 50% 세일을 했던 '야생종'같은 경우가 그런 예였다.

암튼, 이 책을 조만간 읽을 지를 고려하지 않고, 사재기를 한 이유는...

그동안 내가 알던 강신주는 겁나게 쿨했으니 차치해 두고,

지승호는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의 인기와 지명도에 편승하여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터라...

요즘 나의 독서 방법인 정독에, 숙독까지 해야 할 목록은 아니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이 책의 '프롤로그'를 들추는데, 뭔가 '훅~!'하고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그동안의 다른 인터뷰집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어떤 진지함이랄까, 깊숙함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작업을 했던 김규항이나 정봉주, 우석훈 같은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같이 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다보니,

그의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느낀 바에 애기해 보자면,

인터뷰이들이 어떤 색깔이나 견해를 가졌든지 간에...

인터뷰어로서 다소 중립적이거나, 보기에 따라서 소극적이거나 주춤해 보일망정,

인터뷰집의 전체적인 색깔이나 견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걸로 미루어 요번에도 별반 기대가 없었다.

게다가, 철학이야말로 어렵고 난해하여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가능한 부문이고,

강신주 같은 경우 성격 까다롭고 깐깐하기로 유명한데다,

제 할말 다 하는 성격으로 알려져 있는지라...

둘의 조합이 과연 어떤 행보를 그려낼 수 있을지,

그동안 10여권이 넘는 저서들을 낸 철학자에게 질질 끌려가 버리는게 아닐지 궁금했다.

좋아서 공부할 요량으로 책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강신주의 책들을 그의 의도대로 명확히 읽어낼 수가 없을테고,

밥벌이를 위해 억지로 하기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일테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방향을 잡지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는 배가 산으로 가버리거나 꿀먹은 벙어리 노릇을 해버리고 말텐데,

그렇게 보기에는 그동안 내가 강신주의 책들을 읽으면서 쌓아올린 신뢰의 탑이 높고 견고했다.

암튼,

요번 인터뷰집 한권으로 인하여,

그가 그동안 전문 인터뷰어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던게 아니라,

그의 자질을 알아주고 믿고 멍석을 깔아주는 인터뷰이를 만나지 못했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질문의 방향을 명확하게 잡는다는 것이 책을 읽는 독자와 책을 낸 저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독자에게는 글의 요점을 명확하게 잡아내는 이점이 있고,

저자 강신주에게는 그동안의 그의 저작들을 돌아보고 반추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을 터이다.

그동안의 저작할동을 나름 매듭짓고, 한단계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았다고나 할까?

나에겐 그동안 안 읽은 그의 저작들을 찾아 읽어보는 지름신이 강림하는 기회가 됐을 뿐이고 말이다.

 

 

솔직히 인문학, 인문학...말은 많이 하면서도 설명을 해보라고 하면,

뭘 인문학이라고 해야 할지 막막했었다.

강신주는 이걸 쉽게 설명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

바꾸어 말하면 직접 경험의 중요성.

자기가 공감하면 다른사람도 공감한다는 거...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의 차이를 들어 설명하는데 인상적이다.

잡스의 '자기가 해본다는 데서 오는 그것'을 '인문학 정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자기가 하려는 일이 우선이라는 점, 자본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이런 심정으로 안 싸우고 서로의 호스피스가 될 때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그런 글을 쓸때가 있는데 그런 글은 쓰면 안 된다고요. 이 여자가 미우면 막 싸워야 해요. 살아 있으면 싸워야 해요.

  죽을 때까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나이 든' 사람들을 싫어해요. 그건 원숙함이 아니에요. 지침의 표현이죠.ㆍㆍㆍㆍㆍㆍ(105쪽)

 

몇몇 멘토나 지식인들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주의적 혁명 같은 것, 공산당이 중심이 되는 혁명 자체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느리게 느리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돌 수 있는 그날까지 계속 가는 것, 그리고 스스로 못 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서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김수영이 꿈꿨던 혁명이에요. 인문주의자죠. 진짜인문주의자.(153쪽)

 

제일 중요한 것은 직접 경험이예요. 직접 경험은 진짜 중요한 거예요. 감정이 일어나는 것, 이게 인문학의 핵심 정신이죠. 분노의 감정이 안 일어나는데 분노에 대한 글을 쓰면 안 돼요. 이눈학 책은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을으켜야 해요. 그 감정이 분도든 뭐든. 사회과학이 인문학은 아니지만, 좋은 사회과학 서저은 분노도 일으켜야 해요. 요즘 사회과학 서적들은 너무 건조해요. 사람은 감정이 움직여야 움직이거든요. 철학은 멀리로 들어와서 마음까지 흔들어야 좋은 철학이에요. 시는 마음으로 들어와서 머리를 흔들어야 하고요.

  좋은 철학책은 지적인 이해와 분석을 요구하는데, 책이 딱 끝나면 마음 속에 확 들어와요. 후배들이랑 원전 강독할 때 '책이 네 마음을 울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에 대한 논문을 써야 한다. 그걸 써나가는 과정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과정이고 그 사람에게서 독립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논문을 써야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나중에 독립된 저자로서 살 수 있다'라고 조언해줘요. 하지만 대개 안 지키고 중요하다는 텍스트가 있으면 인용하고 요약해서 논문을 쓰죠.안타까워요.ㆍㆍㆍㆍㆍㆍ(186쪽)

 

 

 

실은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이런 어렵고 힘든 철학과 인문학의 얘기들을 독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듯 조곤조곤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그걸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독자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책을 사서 읽을 사람들의 타겟을 잘 잡았고,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사랑에 빚대어,

김수영과 김수영의 아내,

제대로된 인문정신에 대해서,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인 보수와 진보와 개혁의 정의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게 만든다.

 

 

거기다가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쯤이면 '적중'했다, ㅋ~.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5-31 22:36   좋아요 0 | URL
오늘 하루도
마음으로 스며든
좋은 책 하나
곱다시 품으며
밝은 달과 별 노래하는
밤 누리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