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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얼마 전에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가 끝났다.
정적이 싫어 텔레비전을 배경으로 틀어놓는 경향이 있어서,
그 드라마도 처음엔 배경이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버렸고,
마지막회는 열광의 정도를 대성통곡으로 표현하며 봤다.
남들이 감동을 하는 대목에선 나도 같이 감동을 했으니 차치해 두기로 하고,
유독 공감을 했던 대목은 제시카와 강종렬의 대화였다.
인스타그램(?)을 하던 제시카는 부럽다는 소릴 듣고싶어했는데,
사람들이 힘내라는 댓글은 재빨리 달더라는 그 대목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자존감이 충만했을 때는 사람들의 말을 오해하거나 곡해하는 일이 없었다, 아니 적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듣고싶은대로 듣고 살았다.
그런데 작년에 그 일을 겪은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할 것 같아서,
그들이 해주는 위로에 어떻게 적절하게 화답해야 할지 몰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어 버렸다.
이 책은 알라딘 서재에 들어올때마다 곳곳에서 리뷰가 많이 눈에 띄어서,
게다가 내가 읽은 리뷰가 하나 같이 다 좋아서 찾아 읽게 되었다.
막상 책으로 읽으니,
좋았으나 아주 좋지는 않았고, 맹숭맹숭 했으나 흠을 잡을 만큼 맹숭맹숭한 맛은 아니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6쪽)'른다고 했는데,
난 아직 슬픔의 한 가운데 있어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나 보다.
어떤 글들은 읽는 독자의 추억과 맞물려 맛이 배가 되기도 덜해지기도 하나본데,
이 책에 나오는 추억들을 호들갑을 떨며 공감하는 세대들은 노안으로 책을 멀리하거나 산문집은 안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표제작 '참 괜찮은 눈이 온다' 속의 날은 이런 날이었다.
위로가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의, 내가 겪지 못했던 삶을 들어줄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른인 척하느리 그 사람과 마주앉았다. 함께 술도 마셨다.(57쪽)
안으로 움추러들지 않고,
위로가 필요해서 누군가를 찾아온 사람이라면,
나보다 오래 산, 성숙한 사람 따위가 필요한게 아니라,
단지 들어줄 귀가 필요한게 아니었을까.
때론 위로나, 충고 따위를 해주는 사람이 아닌,
그냥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술잔을 기울일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잘 읽었다.
내 자신을 북돋우고 다잡는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이다.
아마도 누군가에겐 추억이라고 부르는 그것들이, 내겐 어느 순간 정지되고 유폐되었다.
더 이상 과거를 추억하며 살지 않는다.
반짝이지 않고 눈 내리기 전의 가라앉은 잿빛 하늘이라도 머리 위로 이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려 애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