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 박찬일 셰프의 이 계절 식재료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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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ㆍㆍㆍㆍㆍ뜨거운 밥을 퍼서 양념장 해서 입에 딱 넣으면 '나 잘 살았다, 오늘 떠나도 여한이 없다'고 느껴져. 음식이 주는 그런 행복이 있어."

어느 방송에서 이영자가 한 말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맛있는 음식 한 그릇을 먹고 '나 잘 살았다, 오늘 떠나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게 되진 않는다.

그저 '맛있게 잘 먹었다'정도가 내겐 최고의 찬사이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방송 따위를 보면 먹방이 대세다.

먹는 것도 그냥 맛있게 잘 먹기만 해선 부족하고,

'맛있게', '잘'과 더불어 '많이' 먹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선 누가 카메라 앵글 밖에선 먹은 걸 '다 토한다더라' 해가며 이슈 몰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먹방의 취지는 이영자의 저 말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나 잘 살았다, 오늘 떠나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것일텐데,

그런 사람이라면 먹은걸 다 토하는 만행은 저지릴 수 없을 것 같다.

 

'박찬일 셰프의 이 계절 식재료 이야기'라는 소제목을 단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를 읽었다.

어디선가 박찬일은 셰프라는 말보다 주방장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것 같다.

그렇다면 원하는대로 '박찬일 주방장의~'라는 수식어가 그럴 듯하지 않았을까 잠시 딴지를 걸어보고 싶었을 뿐이고, ㅋ~.

 

박찬일 님의 요전 책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를 좀 재미없게 읽었다.

어쩜, 여행 안내서 내지는 맛집 안내서 형태로 된 정보를 전달하는 책을 가지고.

재미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 하지만,

박찬일 님의 글이 주는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좀 아쉬웠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바로 다음 책이 나와줘서 감사할 일이다.

내용은 뭐 색다를 것이 없다.

박찬일 님의 전작들을 즐겨 읽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접했을 얘기들을,

말로 풀어내도 이렇게까지 맛있었을까 싶은 얘기들을 글로 맛깔스럽게 버무려낸다.

 

11쪽에,

'전국 대합 고교야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전국 '대항'이 아닐까 싶다.

 

내가 박찬일 님의 문장에 혀를 내두르는건 이런 문장 때문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가게별로 주 전공이 있다. 대구를 잘 다루는 '은하네'가 읶고, 문어라면 '진성수산'이요, 고등어라면 눌러만 봐도 뭘 주로 먹고 살았는지 아는 '진성집'이 있으며, 병어 한평생의 '품길상회'도 있다.(72쪽)

가게마다의 전공을 나누는건 오랜 발품을 파는 사람들이라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라고 쳐도,

고등어를 눌러만 봐도 뭘 주로 먹고 살았는지를 안다는 표현은,

고등어가 한가지 먹이만을 먹는 어종이 아니라,

아무거나 먹어치우는 잡식성이라는 걸 안다는 전제 하에서 얘기되어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걸 먹는 방법이 좀 그렇다. 불판 위에 그대로 올려 구워버린다. 하긴, 어느 텔레비전 '먹방'을 보니 해물탕에 산낙지를 넣는 장면에서 박수를 쳐대는 출연자도 있지 않았나. 자막에 '산낙지, 산 채로 투하!' 뭐 이런 저렴한 문장을 새겨넣으면서. 인간이 처먹는 거야 본디 대상에 고하가 없지만, 그걸 남에게 보여줄 때는 예의가 있는 법이다.(99쪽)

장어를 얘기하며 등장하는 이런 문장도 편하지는 않았다.

이 글의 논리대로라면 장어만 그렇겠으며 산낙지만 그렇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먹방'에 대한 경계의 끈을 다잡게 되는데,

먹는 대상은 물론이거니와,

먹는 걸 남에게 보여줄 때에도 예의는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한국의 기후 온난화에 따른 포도생육에 대한 얘기도 유용했고,

선상에서 먹게 되는 갈치회 얘기도 재밌었다.

ㆍㆍㆍㆍㆍㆍ갈치는 선상에서 회가 된다. 선장님이 잘 벼린 칼날로 회를 뜨는데, 족보도 없는 칼솜씨이건만 속도와 효율 하나는 끝내준다. 갈치 살점이 척척 발라져 접시에 오르고, 나는 그저 나무젓가락을 딱, 하고 갈라서 깔아둔 김치를 지분거리며 횟감을 기다리면 된다. 회 맛이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탄탄하게 씹히다가 이내 녹아버리는, 갈치가 먹은 온갖 바다 생물의 맛이 응축된 살점이 혀에 축축하게 젖는다.(191쪽)

 

요즘은 어지간한 음식은 계절에 상관없이 나와서 딱히 제철음식이란 것이 없어졌다.

어떤 재료들은, 이를테면 오징어 따위는 더 이상 잘 잡히지 않아 서민의 식재료라고 할 수가 없다.

(며칠 전, 작은 물오징어 두 마리를 이만원에 구입하였다.)

 

이 책의 글들은 '하퍼스 바자'와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것을 엮은 글이란다.

어디선가 봤던 느낌이 들었던 것은 그런 연유인것 같다.

다시 읽어도 충분히 재밌고 글맛이 좋았다.

다른 책이 나와도 기꺼이 사서 읽을 의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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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6-17 17: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99쪽 문장을 보니 인간의 음식이 되는 생물들의 최후를 촬영하는 미디어의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살아있는 닭의 모가지를 칼로 쳐서 죽이는 방식이 잔인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미디어는 그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요. 그러나 펄펄 끊는 탕에 문어가 산 채로 넣어지는 장면과 살아있는 낙지를 잘게 썰어 낙지회로 만드는 장면은 편집없이 그대로 나와요.

양철나무꾼 2019-06-18 08:44   좋아요 3 | URL
님의 얘길 듣고 보니 더 실감이 나네요~^^
우리는 자꾸 동물이나 어류 따위에 대해서만 언급하는데,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식물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거 같아요.

그나저나 날 더운데 이 여름 잘 지내시나요?
따로 댓글을 달진 않았지만,
가끔 님의 서재에 가서 글을 읽다보면,
님의 독서편력사랄까, 글쓰기 스타일의 변천사 따위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아요.
비슷한 시기에 알라딘 서재를 시작한 동지애 같은거 말예요.

님의 꾸준한 독서생활과 글쓰기생활을 응원하겠습니다~ㅅ!^^

cyrus 2019-06-18 12:17   좋아요 3 | URL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알라딘 서재에 활동한지 딱 10년이 되네요. ㅎㅎㅎㅎ
10년 전에 알라딘 서재에 활동했던 분들의 닉네임이 뭐 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네요. 우리 20년까지(그때도 알라딘이 있을까요? ㅎㅎㅎ) 쭉 여기서 무탈하게 글을 쓰면서 지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