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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평점 :
김훈을 읽다가 울컥하였다.
울컥한 대목은 이 대목이었는데, 울컥한 이유는 상상에 맡기겠다.
내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소와 그 노인의 아내의 묘소가 바로 이웃이다. 묘비를 보니까, 노인의 아내는 40대에 죽었고 자식은 없었다. 노인은 늘 혼자서 아내의 무덤에 왔다. 제사음식도 없고, 절도 하지 않았다. 낫 한 자루와 호미 한 개를 들고 와서 풀을 깎고 잡초 뿌리를 뽑았다. 그 묘지에는 넝쿨이 우거져서 봉분을 덮었다. 걷어내려면 한나절이 걸렸다. 노인은 힘이 부쳐서 자주 쉬었다. 나는 노인의 작업을 거들어주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 노인은 무덤을 향해서 나 간다, 라고 말했다.(24쪽)
시동이 걸린 건 장기에서 象상을 잘 쓰던 사람 얘기에서 였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을 더 눈물을 찔끔 거리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꺼이 꺼이 울다가 대성통곡을 하기도 하였다.
울기는 하였지만 마음 속에 애잔함이 남아있다기보다는,
오래간만에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그리하여 지금 황홀하고 행복하다.
이게 내가 김훈에게 바라던 글이고, 그런 맞춤한 김훈을 읽으면서 누리는 행복이다.
단정하고 똑 떨어지는 느낌.
입말로 쓰여진 것이 아닌데도,
읽다보면 소리내어 읽고 싶어지고,
그렇게 발음하다보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처음 연꽃이 등장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시각적인 연꽃이 등장하는게 아니라,
소리내어 읽히는 청각이 먼저 오고,
연꽃 내음 후각이 뒤따른다.
그리고는 이내 차례차례로 온갖 공감각이 잘 버무려져서 몰려드는 느낌이랄까,
흡족하게 온 감각기관을 열고 온몸으로 샤워하듯 받아들이면 된다.
'호수공원의 산신령'만 하더라도 읽고나면 호수공원을 사뿐사뿐 꽃이 등장하는대로 동선을 밟으며 산책을 한 느낌이 든다.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 거리는 느낌이 아니고,
슬립온 따위를 단정히 꿰어신고 또박또박 한걸음씩 내딛는 느낌이랄까.
모든 꽃이 지는 순간을 어슬렁거릴게 아니라,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듯이 또박또박 한걸음씩 내딛으며 온몸으로 누리고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쩜 이 책은 너무 젊거나 어린 사람들은 읽어도 그 맛을 모를 수도 있겠다.
나도 아들의 일을 겪지 않았으면, 매일 만나는 환자의 많은 부분이 노인인데도 불구하고,
김훈의 노년이 이렇게 깊숙이 이해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호수공원의 산신령' 속 노인이 듣던 레파토리는 남인수와 배호이다.
요즘 내 핸드폰 속 주요재생 목록은 최백호의 '아씨', 정미조의 '개여울', 김진호의 '가족사진' 따위이다.
이 글을 인용하며 책을 읽은 소감을 갈음하여야겠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76쪽)
매년 만나는 봄이지만 올봄은 유난히 흐드러진다.
그런 흐드러짐이 오히려 사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