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중국의 탐사선이 달의 뒷면에 착륙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탐사선 만으로는 지구와 교신을 할 수 없어 통신 위성도 쏳아올렸다는 기사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탐사선이 달의 뒷면에 착륙했다는 것도 그러했지만,
그게 중국의 그것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이 책 '삼체'를 읽는 중이었다.
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이 책의 뒷표지에 보면 휴고상, 네블러상, 로커스상에 빛나는 '데이비드 브린'의 이런 서평이 나온다.
"최첨단 과학을 바탕으로 다채롭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류츠신은 어떤 언어로 읽어도 최고인 픽션을 만들었다."
어떤 언어로 번역되더라도 멋진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과학적 용어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바꾸어 얘기해 컴퓨터의 원리나 물리학ㆍ천문학적 용어가 낯설다면 진입하기 힘든 소설이 되겠다.
과학적 상상력과 다채로움을 빵빵하게 장착한 과학 전용 고급 부페 같은 느낌이지만,
과학적 상상력이 빈약하거나 그쪽으로 노출이 없다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난 이 책이 다른 의미에서 좀 힘들었는데,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쁜 놈을 죽이려다가 어처구니 없이 남편이 같이 죽게 되거나,
난세가 되면 사람을 탈수시켜 돌돌 말아들고 다니다가,
어떤 탈수자는 불태워지거나 다른 사람이 주워 먹어버리기도 하고,
항세기가 되면 물에 들어가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이건 물론 게임 속 가상현실이지만 말이다.
이 책 속에 레이철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 중요하게 언급된다.
나도 언젠가 읽기는 했었지만, 그냥 스치듯 읽었던 터라,
큰 의미를 부여하진 못 했었는데,
예원제와 문화대혁명을 비교하여 인용하니 무게감을 알겠다.
이 책이 내게 의미있게 다가온 건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대자연의 시각에서 본다면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일뿐, 미미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 것도 아닌, 그저 살충제 남용이 환경에 미치는 위해를 말하고 있는 책이었지만 작가의 시각이 예원제를 뒤흔들었다. 레이철 카슨이 쓴 인간의 행위, 즉 살충제 사용은 예원제가 보기에 그저 정당하고 정상적이며 적어도 중립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대자연의 사각에서 보면 위 행위는 문화 대혁명과 별 차이가 없었다. 우리의 세계에 끼치는 폐혜는 마찬가지로 심각했다. 그렇다면 자기가 보기에 정상이거나 심지어 정의라고 생각되는 인간의 행위 중 사악한 것이 얼마나 된단 말인가?(113쪽)
이런 구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신들의 생각을 교란하는 거지. 사람을 죽이면 다른 사람이 나타나겠지만 생각을 교란시키면 과학은 끝이거든.(156쪽)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이 책은 중국 문화혁명 당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께도 버림 받은 여자-에원제-의 인류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복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우리가 왜 기초과학에 집중해야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됐고,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인간의 목숨이, 삶이, 그리 대단할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하찮기만 한 존재도 아니다.
적당히 묻고 적절하게 대답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겠다.
3권은 아직 번역 전인 것 같고, 2권은 대기 중이다.
2권은 우주대함대의 격투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RPG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재밌게 접근할 수 있겠다.
중국에선 영화로도 나왔다는데,
과학이론이나 과학적 상상력을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궁금하다.
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