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연찮게 남편이랑 아들이랑 동네 호프집에서 축구를 보게 되었다.

축구에 별 흥미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호프집 분위기에 휩쓸려 큰소리로 응원을 하며 보게 되니 재미있었고,

참으로 즐거웠다.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아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지금 좀 힘들더라도 열심히 해서 나중에 행복한게 낫겠니, 지금 행복한게 낫겠니"라고 하였고,

아들은,

"열심히 한다고 나중에 행복할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이만큼의 행복을 즐기겠다."

며 뺀질거렸다.

 

 

 

 김서령의 家
 김서령 지음 / 황소자리 /

 2006년 3월

 

 

이 책은 예전에 사서 가지고 있던 책이다.

언제부턴가 부쩍 전원주택에 관심을 가졌던 터라,

책꽂이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내가 예전에 이런 종류의 집얘기에 관심이 있었나 했었는데,

조금 읽다보니 김서령 님의 글이 좋아서 구입한 책이었다.

가만보니 이 책은 10년도 전의 책이고,

여기에 실린 스물두 집은 2003년 봄부터 2004년 여름까지 '중앙일보' 주말판에 실린 글인 걸 보면,

세월이 좀 흘렀다.

집이란 것은 곳곳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을테니,

이 책에 나오는 집 중 어떤 것은 고대로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은 고풍스러워졌을 것이고,

어떤 것은 세월을 고스란히 맞이하고 낡았을 것이며,

어떤 것은 없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예전에도 한번 읽은 기억이 나고,

겸사겸사 집의 외관이나 살림살이 따위는 궁금하지 않은데,

김서령 님이 매 대목을 어떻게 살려냈었는지 궁금해서 들춰본 셈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운이 아주 오래가는 말이었다.

"생이 아무리 윤회해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천국에 가도 지금 우리 집만큼 좋은 공간이 있을까요?"(235쪽)

문수원 이연자 님의 목소리를 빌어서 얘기한 이 대목은 지금 나의 행복론과 가장 가깝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인데,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아껴둔다고 한들,

미래에 행복을 누릴 여건이 되었을때 사랑하는 누구 한사람이 빠진다던지,

아프진 않더라도 노쇠하여 더불어 누릴 여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담을 수 있는 행복의 크기는 요만큼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요만큼의 행복을 즐기겠다.

 

경북의 종가문화시리즈로 엮은 이런 책도 있다.

 

 

 

 지금도 어부가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 안동 농암 이현보 종가
 김서령 지음 / 예문서원 / 2011년 12월

 

작년엔 이런 책도 내셨다.

 

 

 여자전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여러 종류의 집 얘기를 다루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조은 님의 사직동 집 편이 좋았고,

또 얼마나 아늑하길래 사람들을 잠으로 인도하는지 궁금했다.

"내 시는 어두워서 ㆍㆍㆍㆍㆍㆍ."하며 조은이 시집 한 권을 건네준다. 왜 어두운 시를 쓰느냐고 물을 일이야 없다. 삶이란 깊이 응시할수록 어둡게 마련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세상은 아랑곳없이 아름답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거기 올망졸망 사람 사는 집이 있기 때문이고 그 안에 곧 흙으로 돌아갈 제 목숨을 불꽃처럼 피워올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와 조은 시집의 속 글을 읽었다.

'사람이 달라지는 데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257쪽)

 

조은 님의 시는 본 일이 없는데,

이 글을 읽는 순간 가슴에 파르르 하는 떨림이 있다.

찾아 읽어봐야겠다.

 

 

 

 옆 발자국
 조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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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8-29 09:14   좋아요 1 | URL
엄밀하게 말하면 이승에 태어난 것도 내 뜻과는 무관하죠~^^
그러고보면 인생이란 수많은 불행과 아주 작은 행복 들의 연속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지금 하고 있는 이 직업만 아니면 뭐든 다 할 것 같은데,
이것 말고는 밥 벌어먹을 정도로 할 줄 아는게 없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밥은 먹고 살아야 겠고 말예요.

한분야에서 10년이상 한사람에게 상이라도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20년 이상이면 상 플러스 전원주택이나 별장 같은 상품도 같이요, ㅎㅎㅎ.

CREBBP 2018-08-28 18:29   좋아요 1 | URL
ㅋㅋ 빤질거렸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만, 그 말에 완전 동감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8-08-29 09:23   좋아요 0 | URL
저도 말에는 공감하지만,
저런 말을 한 아들이 방년 스물셋이라는게 서글펐습니다.
한창 꿈꾸고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쓸 나이니까 말예요.
다른 한편으론 너무 일찍, 너무 많은 것들을 소진해 버린게 아닐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