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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을 번역하라 - 원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글맛을 살리는 번역 특강
조영학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그러고보면 번역가들의 이런 책을 좀 읽어왔다.
한때 장르소설을 엄청 좋아했었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이 날림으로 번역되는 걸 보고선,
젊은 날의 치기로 '그럼 내가 번역을 해봐?' 했었지만, 실력부족을 깨닫고 접었다.
외형적으로 놓고 보면,
책을 좋아하고,
언어습득 능력이 빠르며,
엉덩이가 무겁기도 하다.
실력은 배우면 느는 것이니 도전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중간에 깨끗이 접어버린 것은 박한 번역료 때문이었다.
엉덩이가 무겁다는건 굼뜨기도 하다는 뜻.
웬만큼 해서는 산입에 거미줄 치기가 딱이겠다 싶었다.
마이클 코넬리나 로버트 크레이스, 빈스 플린의 저자 후기를 보다보면 이런 사람들은 자기 관리와 시간 관리에 철저하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가들의 고군분투 하는 이런 책을 읽다보면,
번역가들도 시간을 정해놓고 철두철미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겠다.
이들 모두가 번역에 대해서 남다른 소신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같은 날림 번역을 하냐,
여기에 대해서 조영학 님은 자신의 예를 들며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 마감에 쫒기고,
요즘은 불황으로 번역료마저 깎는 판국이니 더 많은 텍스트를 번역해야 하는 고통의 악순환에 대해서 얘기한다.
바로 전에 "번역가의 오역, 오류를 용서해주세요"라고 징징댔지만 그렇다고 오역과 오류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 강조하는 말이 하나 있다 "번역가가 되고 싶다면 이제 권리는 잊고 의무만 생각해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생계조차 꾸리기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번역서를 내놓아야 할 의무마저 저버릴 수는 없다. 오역, 오류를 최대한 줄이라는 요구다. 지망생들이 배우러 오고 내가 가르치는 이유다.(60~61쪽)
조영학 님은 책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한다.
조영학 님은 얼마 전에 읽었던 정영목 님과는 또 다른 입장이다.
정영목 님이 저자의 언어를 존중해주자는 입장이었다면,
조영학 님은 독자를 존중해주자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책이 지향하는 번역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최대한 우리말 체계와 언어습관에 가까운 번역. 번역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를 지향한다. 독자의 언어로 번역하라.(119쪽)
조영학 님은 초창기에 장르소설을 주로 번역하셨단다.
내가 초창기에 좋아했던 스티븐 킹 부터, 로버트 해리스,
내가 열광하는 데니스 루헤인의 주옥같은 작품들,
간간히 마이클 코넬리,
자살의 전설의 데이비드 밴,
존 윌리엄스의 아우구스투스, 등 나의 장르소설 독서 이력은 조영학 님과 일정 부분 교집합이 있다.
이제 조영학 님의 스타일을 알겠고,
손이 빠른 번역가 라는 말 속에 숨은 뜻도 충분히 알겠다.
그렇지만, 조영학 님의 번역본에서 오역이나 오류를 만난다면,
난 어김없이 툴툴거릴 것이다.
나는 조영학 님의 전작주의를 꿈꾸며 설렁거리며 읽었지만,
번역을 공부하거나 번역이나 출판 관계 일을 꿈꾸는 사람에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조영학 님은 이 책에서 번역은 기술이라고 했는데,
난 이 책의 제목을 인용하여 여백까지 번역하는 힘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감정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일.
번역이 기술이기만 해서는 아우를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멋지게 번역을 했더라도,
독자가 몰입할 수 없고, 읽지 않는 책은 종이뭉치일 뿐이니까 말이다.
260쪽에 김석희, 정영묵, 이종인 등인데 ==>정영목 의 오타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