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골트 이야기
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 한겨레출판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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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친구에게 지루하다고 툴툴거렸더니,

친구는 '아일랜드 작가네'라고 하며,

'아일랜드는 아일랜드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덧붙였다.

난 아일랜드를 '비긴어게인'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처음봤는데,

윤도현이 버스킹으로 '나는 나비'를 불렀던 곳으로 알고 있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나서 보니,

이 작가의 기본적인 정서가 이해되면서,

'여름의 끝'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추천글에 언급된 '보스턴글로브'지의 '슬픔의 깊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한번 읽고는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 한번 더 읽은 것은 책 뒷표지를 보고 따라한 것이라는 것은 안비밀이다, ㅋ~.

 

이 책은 그러니까 외롭고 고독한 소설이다.

이 책을 아일랜드와 영국의 일이라고 놓고 보면 설정이 과한 것도 같고,

골트 부부가 좀 오버하는 것도 같고 그렇지만,

이런 상황은 우리와 일본의 역사에도 대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어른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것이고,

물론 아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서 그랬겠지만,

세상을 좀더 맑고 유연하게, 천진난만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책의 첫부분에서 골트 부부보다는 헨리에 힘주어 설명하는 부분이 의아했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사람은 낳은 사람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라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일정 부분 기른 사람을 닮게 되어 있다.

루시가 이 책에서 느리지만 분명하고 단호하게 묘사되는 것은,

책 내용의 흐름 상 당연한 결말이지만,

책의 첫 부분에 헨리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헨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런 때는 늘 최악을 가정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 불행이 닥쳤을 때 엉뚱한 길로 가는 결과만 얻는다고 말했다.(19쪽)

 

이런 부분을 읽다보면 추천글에서 말한 '슬픔의 깊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나중에 루시는 바닷가를 따라 집으로 걸어갔다. 몰려오는 어둠 속에 혼자였다. 그녀 옆의 사나운 겨울 바다는 제멋대로 날뛰었다. 바닷가에 나오면 늘 그러듯 아이는 개가 돌어와 있기를, 비틀거리며 절벽을 따라 쏜살같이 달려 내려오기를, 전에 그랬던 것처럼 짖기를 바랐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유일하게 들리는 건 바람의 쉼 없는 흐느낌과 파도 부서지는 소리뿐이었다. "가까이 오지마." 아까 <오렌지와 레몬>을 부르면서 놀이를 할 때 이디 호스퍼드는 아이와 닿는 것이 싫어 또 그렇게 말했다.(123쪽)

 

이런 표현도 재밌다.

라이알 씨는 키가 작고 콧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남자였으며 부인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와 대조를 이루었다. 급속히 붙는 살을 부주의하게방치한 그녀는 자신에게 너그러웠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너그러운 성정은 몸의 풍만함과 태도에 반영되어 있었다. 두 아들이 게으르다는 것도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은 남편의 분야다. 그녀는 말버릇처럼 그렇게 말하여 걱정이 그가 즐기는 일임을 은근히 암시했다.(147쪽)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위스키를 마셨고 그녀는 막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음이 슬금슬금 다가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러 번, 죽음이 그렇게 다가오는 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자연의 긴축을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웃음을 지었고, 그녀도 웃음을 지으며 아버지가 병적인 기대를 물리치는 과정을 함께했고, 아버지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느린 여정 동안 예전에 그가 어땠는지를 기억했으며, 아버지를 말없이 책망한 것을 용서받았다.(337쪽)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수선 부리지 않고 담담하게 내려 간다.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어떤 소설은 줄거리를 따라읽어야 하는 소설이 있지만,

이렇게 조용히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소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 바로 전에 정영목 님의 책 두 권을 읽으며 입장을 들었기에 좀 누그러졌지만,

솔직히 이 책의 번역이 맘에 들지는 않았다.

그때,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렵게 썼거나 작가의 문체가 그러할때는 작가를 그대로 번역해주는게 맞다'고 입장을 분명히 하셨었다.

이 책은 번역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문장이나 단어들이 겉도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번역문의 문체가 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배어들지 못한 느낌,

나만 까탈을 부리며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정영목 님이니까 소심하게 소신을 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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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4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4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18-07-04 13:52   좋아요 1 | URL
분명히 아일랜드, 거기 터가 좋은 모양이예요.
천재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말입죠. @@

양철나무꾼 2018-07-04 14:06   좋아요 1 | URL
네, 터가 좋던지 내지는 물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냥 떠오르는 작가만 해도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등 좀 되네요.
제가 좋다고 힘주어 얘기하는 켄폴릿은 아이랜드 출신은 아닌 듯 한데,
아일랜드의 역사에 빠삭한 걸 보면 그쪽으로 여행을 많이 다닌 것 같습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