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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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들이 알고 지내던 스물네 살 짜리 청년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아들이 형이라고 부르던 그 청년은 키와 몸무게의 숫자가 막상막하여서 주변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할 정도였단다.

장례식장에 간 아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 형의 부모가 이혼을 하여 살아 생전 엄마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단다.

위로 누나들이 있었으나 일찍 출가를 하였고,

그 청년 혼자 비만이라는 질병과 싸우다가 그렇게 세상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뭐, 내가 남의 가정사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고,

인생의 한창때를 의지하고 의논할 부모가 없이 산다는건 참 외롭고 불우한 일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개인적으로 그냥 스릴러나 장르소설보다는 사람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그런 류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 책도 그런 류의 심리소설인줄 알고 시작하였으나,

열두 살 아이의 심리 상태를 왠지 어설프게표현한다.

어쩜 아이의 심리 상태가 어설픈게 아니라,

쉰 다섯이 넘었을 작가의 심리 상태가 자꾸 개입을 해서 아이가 애늙은이처럼 표현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시선으로 열두 살 아이의 마음을 개입하고 간섭하려 하니 좀 삐그덕거리는 것일까.

어쩜 프랑스 아이들은 우리보다 조숙한 것일 수도 있고,

이 책의 앙투안 또한 부모가 일찍 이혼을 한터라,

애늙은이 같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앙투안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다.

 

내용이나 줄거리 따위는 책 소개를 봐도 알 수 있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언급되니 차치하고,

(실상 줄거리가 중요한게 아니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느낌을 말해 보겠다.

 

열두살 짜리가 여섯살짜리 아이를 때려죽인 것은 그렇다 치고,

그런 후에 혼자 고민하고 갈등하고 그런 과정이 작가라는 어른이 개입한 열두살짜리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내가 여기서 속상했던 것은 열두살짜리 아이의 시선이 겉늙어버려서가 아니라,

부부가 이혼하고 엄마와 단둘이 자라는 외톨이 아이의 그것 때문이었다.

만약 이 아이가 누군든 어른과 속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적어도 어른과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 수 있었다면,

내지는 함께 얘기를 나눌 친구라도 있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엇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이 아이가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을 하거나 의견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어른들이 이 아이를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보호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여기선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제하겠다.)

「앙투안, 네게 혹시 고민이 있다면 말이다ㆍㆍㆍㆍㆍㆍ」

의사는 나직하고도 억제되고도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ㆍㆍㆍㆍㆍㆍ

「만일 내가 널 입원시켰다면ㆍㆍㆍㆍㆍㆍ일은 다른 식으로 진행됐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ㆍㆍㆍㆍㆍㆍ? 하지만,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ㆍㆍㆍㆍㆍㆍ.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온 거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ㆍㆍㆍㆍㆍㆍ그러니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넌 날 찾으면 된다고, 날 부르면 된다고 네게 말해주려고 말이야ㆍㆍㆍㆍㆍㆍ언제든지 부르면 돼ㆍㆍㆍㆍㆍㆍ. 자, 그거야. 불러서 내게 얘기하면 돼ㆍㆍㆍㆍㆍㆍ. 언제든지.」

  앙투안도 그리고 이 마을의 그 누구도, 디윌라푸아 박사가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만일 앙투안이 자기 말을 듣고 있다면, 이 말의 메시지를 충분히 받아들일 시간을 주기 위해 오랫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 다음 일어나서 아까 들어왔던 것처럼 방을 나갔다. 마치 어떤 초자연적 존재처럼.(158~159쪽)

앙투안을 돌보러왔던 의사의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그것처럼 비춰져 눈물겨웠다.

 

그리고 열두살의 나이로는 이해하기 버거운 어른들의 애정 관계도 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지만,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볼 수 있는,

진짜 어른들의 사랑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지난한 삶의 과정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떠오른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삶의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때,

질병으로 고통받을때,

의지하고 의논할 부모나 형제자매, 친구가 없이 산다는건 참 외롭고 불우한 일이다.

그리고 이건 어린 나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린이건 어른이건 외롭고 불우한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까 말이다.

 

어떻게 무게중심을 잡으며 살아나가야 할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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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5-24 11:30   좋아요 1 | URL
가정이라는 그릇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발에 의해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발이 한 개여도 서 있을 수는 있겠지만, 서로 의존했을 때 보다 안정적으로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양철나무꾼 2018-05-24 11:43   좋아요 2 | URL
이 책에서는 결국 어머니와 누군가 보이지않게 앙투안을 배려했다는걸 앙투안이 아주 오랜 후에 깨닫게 돼요.
하지만 사건을 저지르고 어쩌지 못해 할때 적절한 도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 위에 표현되는 의사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와 방법으로 위로와 도움을 주려하는데...

아이에게 적절한 부모의 역할이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관심은 갖되 간섭은 않는,
아이는 부모의 애정과 관심 속에 무럭무럭 크는 존재들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