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 - 발암물질에서 방사능까지, 당신의 집이 위험하다!
최병성 지음 / 이상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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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자극적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실이다. 책에 따르면, 1999년 8월, 경영위기에 처한 시멘트 회사들을 위해 환경부는 각종 쓰레기를 소각해 시멘트를 제조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쓰레기를 소각한 열로 시멘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를 만드는 원료가 쓰레기라는 사실이다.


책의 두 꼭지는 시멘트 회사와 환경부이다. 환경부는 당연히 시멘트 회사를 관리하고 환경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거나 생산과정에서 유출하지 않는지, 그리고 완성된 시멘트 상품이 유해한지 무해한지를 제대로 판별해야 한다. 그런데, 책에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가며 환경부와 시멘트 회사가 마치 상부상조하는 걸로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은 1998년 이후,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드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그 시멘트로 아파트와 집들이 지어지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나라 시멘트 제품 중 60퍼센트에서 지정폐기물의 기준치보다 더 많은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환경부는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면 시정 조치를 하고 각종 규제를 통해 시멘트 회사가 다시는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지 못하도록 해야 되는데, 경영 상황이 어려운 시멘트 회사의 편을 든다는 점이다.


이렇듯,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시멘트 회사 입장에서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으로 돈을 받고 시멘트 원료도 생기니 일석이조라는 점이다. 환경부 입장에서는 쓰레기 재활용 성과가 올라간다. 환경부에서 시멘트는 '소각'이 아니라 '재활용'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쓰레기 시멘트를 접하며 마음이 불편했고 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거나 규제하지 않고 있는 환경부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시멘트 회사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서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의 석탄재를 수입해 온다는 사실에서 그 원망은 절정에 다다랐다. 일본의 화력발전소 쓰레기인 석탄재를 수입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심지어 일본의 오염물질도 수입해 온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이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일본산 고철 수입을 중단했다. 그러나 한국은 방사능 오염의 우려가 있는 값싼 일본산 고철 수입이 증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사능에 오염된 고철이 적발되지 않도록 방사능 검사기가 설치돼 있지 않은 전북 군산항 등을 통해 일본산 고철이 수입되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용기와 집념, 투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시멘트 전문가도 아니다. 그는 목사이자 일개 개인이다. 수많은 저항과 비난, 심지어 고소를 당하면서까지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왜 그는 이렇게까지 이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일까?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목사인 내가 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쓰레기 시멘트와 한판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쓰레기 시멘트는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쓰레기 시멘트는 부도 위기에 몰린 시멘트 회사들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시작되었지만, 쓰레기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겐 생명이 달린 문제다."


그렇다.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시멘트 회사 사장의 자식들이, 환경부 직원의 자식들이 이 쓰레기 시멘트로 인해 암이 걸린다면 과연 그들은 이 행위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노무현 전 대토령의 자서전인 <운명이다>에서 다음과 같이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케이크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야!"


모든 일에 있어 내 자식이 그 피해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 자식이 백혈병에 걸렸다면 내 자식이 그러 인해 아토피에 걸렸다면 점잖게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욕이 먼저 튀어나오고 멱살을 잡으러 들 것이다.


32평 아파트에 들어가는 시멘트 값이 130만원 밖에 안된다. 그리고 쓰레기를 넣지 않은 시멘트를 사용하려면 여기에다가 50만원만 더 추가로 지불하면 된다. 단돈 50만원이다. 아파트값이 3-4억 하는 걸 생각하면 1퍼센트도 안되는 비용인데, 이 비용 때문에 쓰레기 시멘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비용 때문에 국민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산 시멘트는 발암물질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중국이 기술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다만, 중국은 1999년도에 전국적으로 시멘트 품질조사를 해서 8000여개 공장 중 4000여개 공장을 폐쇄했다. 그래서 중국산 시멘트는 발암물질이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규제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저자는 시멘트 제조에 사용하는 쓰레기 원산지 표시제, 그리고 시멘트 등급제와 성분 표시제 등을 입법화해 쓰레기 시멘트가 이제 사라지도록 국회의원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랜 기간 동안 홀로 싸우며 이제는 많은 국민들이 쓰레기 시멘트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제는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어 국회의원들을 움직일 때가 온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2015년 3월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2006년에 이미 쓰레기 시멘트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큰 이슈가 되었었다. 이슈가 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실상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책이 나오고 2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얼마나 상황이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가 총대를 매고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세상이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를 통해 이슈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그것을 바로 잡기는 어렵다. 한 명이 이슈화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바꾸기 위해선 온 국민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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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7-10-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모난 시멘트 아파트애 우리들을 구겨 넣으며 살면서 방법이 없을까 허탈합니다. 이렇게 싸워주시는 분이 계시니 고맙습니다.

데굴데굴 2017-10-16 16: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결국 다들 서울에 살려고 하니 더 복잡한 도시가 되는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시멘트 회사들은 사람들 건강은 생각하지 않고 최대 이윤을 남기려고 하고.

sprenown 2017-10-16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쓰레기 시멘트를 묵인한단 말입니까? 정경유착의 표본이네요!

데굴데굴 2017-10-16 16: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신뢰는 안 가네요ㅠ 그렇다고 이사할 때마다 1998년 전에 지은 오래된 집을 찾을 수도 없고..

yureka01 2017-10-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공공연한 비밀? 이었습니다..
쓰레기테우고 남은 재( 슬러지등)으로 만든 시멘트가 온 나라의 현장에서 사용되고 구조물화되어 갑니다.

특히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의 폐기물이 수입되고 소각되어 남은 재로 시멘트를 만들면
시멘트속에 방사능이 고스란히 남아 방사선을 뿌려 댈 것입니다.

데굴데굴 2017-10-16 16:59   좋아요 0 | URL
상상만 해도 무서운데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니 진짜 소름끼치는 것 같습니다 아토피 가진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요 이 나라는 언제 변할지...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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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 영화 리뷰를 통해 알게 된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책을 읽으며 소설에 감탄하여 테드창이란 작가와 그의 소설을 알게 해준 영화 '컨택트'가 오히려 고마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테드창의 단편 모음집이다. 2004년에 번역본이 나왔는데, 최근 영화 컨택트가 개봉되면서 발빠르게 번역본도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아마도,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은 출판업계에서 그 시기에 맞게 개정판을 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에서 2016년 11월에 개봉했는데, 번역본 개정판은 2016년 10월에 나왔다. 책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총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소재의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다. '바빌론의 탑'에서는 바벨탑이라는 거대한 소재를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바벨탑을 지어가는 과정과 생활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일흔두글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자인간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외계인을 등장시키며 우주를 이야기한다. 저자의 상상력은 우주의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우주 저 멀리까지, 그리고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종횡무진하며 그 상상력으로 하나씩 하나씩 파헤쳐 나가며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언어와 과학을 도구로.

 

물론 각 단편소설마다 친절하게 각주가 있다거나 배경을 따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단편소설이라서 빠른 시간안에 이 소설에서 설정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간파하고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거나 스토리의 전개를 못 따라갈 수도 있다. 그래서 특히, 소설 초반에 집중해서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SF소설의 묘미인 것 같다. 이번엔 도대체 작가가 어떠한 설정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일흔두글자'에서 나오는 논리는 현대 사회에서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인종의 우열을 밝히고 열등한 인종은 퇴보시키거나 멸종시키고 우등한 인종만 정책적으로 번성시키겠다는 논리와 똑같다. 이렇게 테드창은 현대 사회에서 논란이 되거나 이슈가 되는 내용을 소설 속에 집어 넣는다. 

 

“누가 아이를 가지고, 누가 가지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식견을 발휘한다면, 우리 정부는 국가의 인종적인 구성을 유지할 수 있을 거야... 하층계급의 인구 증가율은 귀족과 신사 계급을 능가하고 있다네. 평민들에게도 미덕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세련미라든지 지성이라는 면에서는 크게 떨어지지. 이런 형태의 정신적 빈곤함은 대물림된다네. 하층민의 환경에서 태어난 여자의 자식은 결국 같은 길을 가게 돼 있어. 하층계급의 높은 출산율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는 결국 조야한 멍청이들에게 점거당할 걸세... 임신율 저하에 관한 진실이 밝혀질 무렵 하층계급에 대한 이름 날인을 거부한다면 폭동이 일어날 게 뻔하니까. 물론 하층계급 역시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요컨대 그 수가 너무 늘어나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마지막에 수록된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도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단편소설에서 사람은 칼리라는 도구를 통해서 외모에 대한 호감을 중립적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외모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하는 도구가 '칼리'이다. 

 

이 단편소설에 주옥같은 문장이 많이 나온다.

 

"반장으로 뽑힌 아이는 얼굴 반쪽에 화상 흉터가 있는 여학생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의 행동거지는 보기에도 정말 편하고 자연스러웠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았습니다. 다른 학교였다면 아마 바로 그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당했겠죠"

 

"어떤 업적을 이루더라도 예쁘면 크게 각광받자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평가절하됩니다. 더 나쁜 경우가 있다면, 여자아이들 일부가 자신의 외모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수용하고 정신적 성장을 멈춰버린다는 사실이겠죠.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동적인 특징입니다."

 

"칼리가 혹시 성적인 욕구를 사라지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개인의 매력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가, 행동과 몸짓을 통해 어떤 일을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중요하겠지요."

 

"우리는 공평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방의 외모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자동적인 반응만은 억제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연구에서는 모두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외모가 매력적이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는 잘생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유능하고, 좀더 정직하며, 더 나은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니지만, 그들의 외모는 우리에게 그런 인상을 줍니다. 칼리는 눈가림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여러분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테드창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어디까지나 작가의 머리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즉, 다른말로 하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작품이 탄생한다. 따라서, 작가도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혹은,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내면을 드려다봐야 하는 것이다. 테드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대한 소설은 단순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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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 황약사 2017-10-1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 읽었어요.

데굴데굴 2017-10-16 13:0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데미안 2017-10-1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르 더 매력적이라서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한번 읽어봐야 겠디고 리스트에 추가합니다.

데굴데굴 2017-10-16 13:0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테드창의 다음 책도 읽으려고요!
 
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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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훌륭한 시민'으로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현직에서 사랑받지 못했지만 전직 대통령으로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고 봉하마을로 내려간 후, 수많은 국민들이 그를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전직 대통령으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대통령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 더 오래, 더 자주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는 '나는 언제나 양심과 직관이 명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쳤다.'라고 고백한다. 사실인 것 같다. 그는 평생 민주주의, 자율과 분권, 투명과 공정, 원칙, 진실, 정의 등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살았다. 그리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지식의 공유를 위해 고민하였다. 놀라운 것은 컴퓨터에 취미를 붙이고 직접 '노하우'라는 업무표준화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이 프로그램을 대통령이 되고 나서 'e-지원'이라는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노하우'를 개발하며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의 원리를 익혔다. 놀라운 일이다.

 

대의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대의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정당정치이다. 개인이 아니라 정당이 집권한다. 당연히 정당도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민주적 정당에 필요한 것은 대통령을 겸한 제왕적 총재가 아니라 분권적, 수평적, 개방적 리더십이다. 이것이 내 지론이었다. 당 총재가 대통령 후보가 되면 총재직을 떠나게 되고, 당선되어도 총재를 겸임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기회주의와 분열주의를 경멸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자신의 이권만을 위해 수 없이 흩어졌다 모였다하는 것에 이골이 나 있었고 실망을 많이 했다. 김영삼 등. 그래서 줄곧 한 길, 외길만을 걸어온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성향이 분열주의, 기회주의임을 그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지역을 분열시켜 표를 얻으려하고 기회가 있으면 당을 옮기면서 차지하려는 철새 정치가들. 이 두 가지 형태의 정치인을 몹시 싫어하였으며 이에 분노하였다.

 

그러나 정작, 정치에 모든 것을 바친 그는 '보통 국민들이 돈 걱정 취직 걱정 덜 하고 억울한 일 당하지 않으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목적인데, 정작 정치를 하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라고 고백한다.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전쟁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언론에 맞선, 언론의 독재와 편향성을 대놓고 폭로한 정치인, 혹은 대통령은 노무현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언론과 재벌에 대해 모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개혁 대상으로 여기는데 이 때는 재벌은 아직 그 대상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여러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노무현 정권은 삼성과 어느 정도 연결이 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2005년 엑스파일 때에도 대통령의 거절로 수사가 잘 진행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는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허례허식이 없었다. 재밌는 예화도 책에 나온다.

 

기나긴 논란 끝에 미국 방문 문제를 정리했다. "갈 일이 있으면 간다. 일이 없어도 한가하면 갈 수 있다. 그러나 바쁜데 일도 없으면서 사진 찍으러 가지는 않겠다." 갈 일도 없고 바쁘기도 해서 결국 미국을 가지 않은 채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미국에 가서 인사하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는 결국 가지 않았다. 갈 이유가 없으면 가지 않는다. 노무현은 이런 사람이다.

 

16대 대통령에 당선에 대한 그의 평가는 냉정하다.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들이 기적을 만들었다. 기적 같은 승리였기에 감격도 그만큼 컸다. 그것은 결코 당연한 승리가 아니었다. 일회적인 승리, 의외의 승리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도, 나의 당선도, 모두 이례적이고 특수한 조건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사건이었다.' 기적, 일회적, 의외의 승리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말하는데는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그의 확고한 관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대한민국 정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하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 보수 세력은 위쪽에, 진보 세력은 아래쪽에서 뛴다. 진보 세력은 죽을힘을 다해도 골을 넣기 힘들다. 보수 세력은 축구를 해도 쉽게 골을 넣는다. 나는 20년 정치 인생에서 이런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꿔놓지 않으면 앞으로 진보 세력이 승리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보수 세력은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하다. 이념적으로 튼튼하게 결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의 결속력도 매우 강하다. 공동체 이익에 근거를 둔 네트워크를 감정적 네트워크로 재조직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어느 지역 어느 집단에서나 돈 많고 권력 있고 지위 높은 사람은 거의 다 보수의 네트워크에 가입되어 있다. 게다가 보수세력은 인구가 많은 영남을 장악하고 있다. 큰 신문사, 큰 기업의 소유자, 큰 연구소를 모두 보수가 장악하고 있다. 법원, 검찰, 국정원도 그 본질적 특성상 보수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반면 진보 세력은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이념으로 분화되어 있다. 돈 있는 사람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단체가 별로 없다. 진보적 시민단체조차도 기업의 지원을 얻지 못하고 언론이 외면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 튼튼한 정책연구소도 거의 없다. 그런데 보수의 나라에서 진보가 행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두 차례의 대선 승리와 10년의 집권도 보수와 진보의 불균형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다. 보수와 진보의 격차는 '조선일보'와 '오마이뉴스'의 자산 규모 차이만큼이나 크다.


실제로 이명박, 박근혜는 뻥 축구를 했다. 문재인과 보수 세력은 죽을 힘을 다해서 싸웠지만 결국은 패하고 말았다. 올해 대선에서는 어떤 구도가 펼쳐질 것인가!
 
그는 분야에 따라 불확실성이 있는 전략을 택할지 없는 전략을 택할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안보 측면에서는 불확실성이 없는 예측 가능한 의사 결정을 한 반면, 경제 측면에서는 불확실하지만 안고 뛰어가는 쪽을 선택하였다. 


나는 위험한 채찍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학 밝혔고 그런 원칙을 견지했다. 내 카드를 노출시키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것도 때론 좋은 협상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전략은 이익을 나누는 협상에서나 쓸 수 있다. 민족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대사를 협상할 때는, 상대방이 나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나도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북핵 문제 협상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다투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협상이다.

 

여기서 신뢰는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신뢰, 도덕성에 대한신뢰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개방 전략은 아무리 정밀하게 연구하고 분석해도 위험과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선택의 폭도 좁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위험을 안고 뛰어들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하는 것. 이것 들뿐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면 장기적으로 FTA를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적어도 낙오를 면하려면 그 불확실성을 안고 뛰어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차피 뛰어들 것이라면 남보다 먼저 해야 앞서 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우리 국민의 역량을 믿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루어 낸 우리의 현대사를 볼 때 국민들이 FTA에 내포된 위험과 불확실성을 감당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 없었다면 한미 FTA를 추진하기로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농업이었다. 우리 농민들은 나이가 많다. 은퇴하려는 농민들은 은퇴할 길을 열어 주고 다른 국가 정책으로 안정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돕는 한편, 계속 농사를 지을 사람들은 세계 일류 수준으로 농사를 짓도록 하는 것이 농민을 위해서도 국민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국민들은 미르·K스포츠재단 문제를 '강제 모금'이 아닌 '정경유착'으로 판단했다. 모금의 강제성만 따지면 재벌 회장들은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뇌물을 바치고 사업의 특혜를 받는 정경유착이라면 박근혜 정권과 재벌 회장들은 가해자 공범이 되고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국민들은 법률과 상식을 짓밝으면서 권력을 휘두른 박근혜 정권과, 그 권력에 야합하여 이권을 챙겨먹은 기업인 모두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으며,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이 분노를 대변해 주기를 기대했다."

 

이 글은 2016년이나 2017년에 쓰여진 글이 아니다. 사실, 이 글은 책 <운명이다>에 나오는 내용 중, '일해재단'을 '미르·K스포츠재단'으로 '전두환'을 '박근혜'로 바꿨을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똑같이 반복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나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국민들은 일해재단 문제를 '강제 모금'이 아닌 '정경유착'으로 판단했다. 모금의 강제성만 따지면 재벌 회장들은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뇌물을 바치고 사업의 특혜를 받는 정경유착이라면 전두환 정권과 재벌 회장들은 가해자 공범이 되고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국민들은 법률과 상식을 짓밝으면서 권력을 휘두른 전두환 정권과, 그 권력에 야합하여 이권을 챙겨먹은 기업인 모두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으며,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이 분노를 대변해 주기를 기대했다."
 
정리하면, 그의 어깨는 너무 무거웠다. 그는 당당했고 자신 만만했고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현실의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히기 시작하며 그가 계획하고 생각했던 모든 정책들,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은 오히려 그에게 부담이 되었고 두려움이 되었다. 책임감이 너무나 강하였기에 좌절도 너무나 컸고 상심이 너무나 깊었다. 결국 그는 그 좌절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길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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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5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데굴데굴 2017-10-15 21: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진짜 두고두고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분입니다!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박미정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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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마음에 여운이 잔잔히 남는다. 현실에 쫓기기 싫어서 최대한 그 여운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잠깐 하는 사이 그 여운은 이미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 그 여운이 뭐였더라.(너의 이름은 따라하기)

 

컨셉 자체는 단순하다. 남녀의 몸이 뒤 바뀌는 환타지 컨셉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였고 운석으로 인해 망해버린 마을을 구하는 미션이 더해진 사랑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애니메이션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후기에 쓴 것처럼, 애니메이션을 먼저 구상하고 애니메이션 제작 중에 이 책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책에서 묘사하는 각종 음악적인 요소를 직접 내 귀로 듣고 싶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본 사람이 반대로 책을 읽는다면 좀 심심한 감이 있지 않을까 싶다. 
 
'꿈'이라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몸이 바뀌는 것을 묘사한 부분은 공감을 유발하고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꿈에서 막 깨어나서 그 꿈이 뭐였더라 하면서 멀어져가는 아려한 기억을 붙잡으려는 시도를 한 번쯤은 다들 하였을 것이다. 분명 꿈 속에서 만났던 사람이 꿈 속에서는 정확히 기억이 났는데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펑'하면서 기억에서 사라진 경험들.

 

책에서는 심지어 서로 기억하기 위해 적어놓은 글자마저 날라가 버린다. 마치, 꿈을 꾸며 내가 꿈을 꾼다는 것을 인지하고 꼭 이 꿈을 기억해야지하고 꿈 속에서 다짐하지만, 일어나자마자 그 꿈이 잊어버리는 것처럼. 중간에 자다가 깼을 때는 꿈이 기억났는데 다시 잠들었다가 일어났을 때 기억이 완전 백지가 된 경험처럼.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을 이해할 뿐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메모를 통해 나누게 되고, 서로의 가족, 친구들, 환경을 이해하게 되고 공유하게 된다. 여기서 상대방을 안다는 것이 단순히 '상대방' 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상대방을 안다는 것을 상대방의 생각을 아는 것 뿐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며, 그가 자란 환경와 전통,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공유할 때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이 튼다. 상대방이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사랑하고 중요히 여기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보다 더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에로스 러브), 정신적인 사랑(플라토닉 러브) 그 이상의 숭고한 가치이다. 그 과정과 출발점을 '너의 이름은'은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비록 환타지지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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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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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그저 대리기사에 대해서 궁금해서였다. 책에 나오지만 대리기사와 관련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대리 운전을 하고 난 다음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가'였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대리운전 회사의 셔틀이 각 거점을 돌며 태우고 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시원하게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책과 기사는 확실히 다르고 실제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는 영향력이 있다. 대학강사와 대리기사의 환경, 처우에 대한 여러 기사가 있었지만, 이 책 만큼 그 현실을 적나라하고 진실되게 전달하는 기사는 없었으리라.   
 
같은 대학 연구실의 동료로부터 원망을 듣는 부분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응원해주고 격려해줄 것 같았는데. 역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저자는 그곳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도 받는 위치를 가지게 되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곳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저자가 받는 스포트라이트는 그 곳을 박차고 그 이야기를 풀어낼 용기를 가진 자가 누려야 할 마땅한 헤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생긴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번 '자신의 틀을 만들고 스스로 사유해야 하며 끊임없이 불편해하고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믿으며 타인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경각심을 가지고 마음 속에 깊이 새겨야 하는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입시교육을 받은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 세대이다. 사유하지 않는 세대이다.   

 

몇 주 전에 우연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질문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왜냐고 물어보니 질문하는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고 그건 부끄러운 것이란다. 그래서 질문하지 않을거라고 했다. 
 
한국사회의 인식이 이렇다. 모르면 질문해서 배우고 익히면 되는데, 모르는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궁금해도, 물어보고 싶어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이 생겨도 그냥 따라간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문제는 최순실 국정농단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말, 한국사회 모든 문제의 결정판이 최순실 국정농단인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를 들이대어도 연결된다. 재벌문제, 정경유착, 중앙집권 정치체제, 부동산 문제 등등.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인생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정리하고 책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자도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누구라도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러한 삶의 태도를 얻었기에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글을 쓸 때 주제를 더 명확히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지금 묘사하는 주제와 반대의 입장에 있는 혹은 대조되는 주제가 무엇인지 비교서술 하는 것이다. 저자는 대리기사와 택시기사의 비교를 통하여 '공간의 주체'라는 주제를 좀 더 명확히 드러낸다. 대통령 글쓰기의 저자 강국원씨도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작성 관련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주장+논지+반대입장 이런식으로 연설을 구성할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저자는 매일 있었던 일들을 아무리 피곤해도 단 한줄이라도 메모하며 정리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큰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확실히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글은 (책이나 강의를 듣고나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 느꼈던 감정, 생각을 바로 적어놓지 않으면 금새 날라가버리고 다른 생각이 차지해 버린다. 그런 점에서 메모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고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나중에 좋은 글의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리운전 이용자 중에서 여러 대리기사를 부르고 가장 먼저 오는 대리기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이런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대낮에 호텔이 만원이라서 겨우 세 번째 호텔에서 주차했다는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비슷한 내용을 기사를 통해 듣기는 했지만 저자는 너무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아내와 2인 1조로 일하는 어느 대리기사는 한 달에 400-500만원 번다는 내용은 다른 면에서 충격적이었다.   
 
육아에 대한 생각도 좋았다. 그는 아내의 권유에 따라 파주에 따로 떨어져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글쓰기와 대리운전으로 번 돈을 꼬박 생활비로 부치며, 그것이 내가 맡아야 할 여러 역할 중 일부이고 가장 간편한 방식이라고 고백한다. 육아를 함께 한 사람만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 요즘 많은 가장들이 기러기 아빠가 되어 돈을 부치는데 급급한데, 그건 정말, 육아와 자녀 양육에 있어서 아주 일부이고 간편한 방식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을과 을의 전쟁이라고 표현한 카카오와 비카카오 기사들 간의 위화감도 저자의 뛰어난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하며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경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고 고백한다. 끝없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고 부지런해지지 않으면 도태하고 마는 현실이다.   

 

'대리사회'는 단순히 대리운전기사의 생태를 알게 하는 책이 아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의 이야기였고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함께 공감하며 고민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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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운 우리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네요

데굴데굴 2017-10-15 17:3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사회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드러내는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