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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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그저 대리기사에 대해서 궁금해서였다. 책에 나오지만 대리기사와 관련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대리 운전을 하고 난 다음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가'였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대리운전 회사의 셔틀이 각 거점을 돌며 태우고 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시원하게 그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책과 기사는 확실히 다르고 실제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는 영향력이 있다. 대학강사와 대리기사의 환경, 처우에 대한 여러 기사가 있었지만, 이 책 만큼 그 현실을 적나라하고 진실되게 전달하는 기사는 없었으리라.   
 
같은 대학 연구실의 동료로부터 원망을 듣는 부분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응원해주고 격려해줄 것 같았는데. 역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문제는 저자는 그곳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도 받는 위치를 가지게 되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곳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저자가 받는 스포트라이트는 그 곳을 박차고 그 이야기를 풀어낼 용기를 가진 자가 누려야 할 마땅한 헤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생긴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번 '자신의 틀을 만들고 스스로 사유해야 하며 끊임없이 불편해하고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믿으며 타인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경각심을 가지고 마음 속에 깊이 새겨야 하는 문제이다. 대한민국의 입시교육을 받은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 세대이다. 사유하지 않는 세대이다.   

 

몇 주 전에 우연히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는 질문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왜냐고 물어보니 질문하는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고 그건 부끄러운 것이란다. 그래서 질문하지 않을거라고 했다. 
 
한국사회의 인식이 이렇다. 모르면 질문해서 배우고 익히면 되는데, 모르는 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궁금해도, 물어보고 싶어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심이 생겨도 그냥 따라간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문제는 최순실 국정농단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말, 한국사회 모든 문제의 결정판이 최순실 국정농단인 것 같다.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를 들이대어도 연결된다. 재벌문제, 정경유착, 중앙집권 정치체제, 부동산 문제 등등.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인생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정리하고 책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자도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누구라도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러한 삶의 태도를 얻었기에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글을 쓸 때 주제를 더 명확히 드러내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지금 묘사하는 주제와 반대의 입장에 있는 혹은 대조되는 주제가 무엇인지 비교서술 하는 것이다. 저자는 대리기사와 택시기사의 비교를 통하여 '공간의 주체'라는 주제를 좀 더 명확히 드러낸다. 대통령 글쓰기의 저자 강국원씨도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작성 관련하여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주장+논지+반대입장 이런식으로 연설을 구성할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저자는 매일 있었던 일들을 아무리 피곤해도 단 한줄이라도 메모하며 정리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큰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확실히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글은 (책이나 강의를 듣고나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 느꼈던 감정, 생각을 바로 적어놓지 않으면 금새 날라가버리고 다른 생각이 차지해 버린다. 그런 점에서 메모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고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 나중에 좋은 글의 재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리운전 이용자 중에서 여러 대리기사를 부르고 가장 먼저 오는 대리기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이런 인간이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대낮에 호텔이 만원이라서 겨우 세 번째 호텔에서 주차했다는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비슷한 내용을 기사를 통해 듣기는 했지만 저자는 너무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아내와 2인 1조로 일하는 어느 대리기사는 한 달에 400-500만원 번다는 내용은 다른 면에서 충격적이었다.   
 
육아에 대한 생각도 좋았다. 그는 아내의 권유에 따라 파주에 따로 떨어져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글쓰기와 대리운전으로 번 돈을 꼬박 생활비로 부치며, 그것이 내가 맡아야 할 여러 역할 중 일부이고 가장 간편한 방식이라고 고백한다. 육아를 함께 한 사람만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 요즘 많은 가장들이 기러기 아빠가 되어 돈을 부치는데 급급한데, 그건 정말, 육아와 자녀 양육에 있어서 아주 일부이고 간편한 방식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을과 을의 전쟁이라고 표현한 카카오와 비카카오 기사들 간의 위화감도 저자의 뛰어난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하며 을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또 다른 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분노는 주변의 을이 아닌 저 너머의 갑을 향해야 하고 공고하게 구축된 시스템에 닿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경계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고 고백한다. 끝없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고 부지런해지지 않으면 도태하고 마는 현실이다.   

 

'대리사회'는 단순히 대리운전기사의 생태를 알게 하는 책이 아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의 이야기였고 바로 나의 이야기였다. 이러한 책들이 많이 나와서 함께 공감하며 고민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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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운 우리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네요

데굴데굴 2017-10-15 17:3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사회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드러내는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