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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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에 대한 줄거리를 어느정도 담고 있다. 이점 참고 하시라.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할 것없이 섞여서 더불어 사는 것이 세상이니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완득이. 유명한 유머소재로 만득이가 있었던 것 같고, 내 고등학교 동창 중에 완덕이란 이름의 친구가 있었는데, 글쓴이도 알았을런지는 모를일이지만 아무튼 흔치않은 이름을 지은 것 같다. 이는 아마 완득이가 처한 환경이 참으로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완득이네 가족들을 살펴보자. 아버지는 춤을 사랑하는 춤꾼이자 또한 키가 몹시 작아 난쟁이로 놀림받는 어른이다.  완득이 삼촌을 제외한 아무도 어른으로 대우해 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완득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 그 아버지의 키를 넘어섰다고 하는데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겠는가. 그 다음으로는 완득이의 삼촌 남민구이다. 안타깝게도 완득이의 삼촌 또한 평범하지 않다. 키와 생긴 것 모두 멀쩡하지만 약간의 정신지체가 있다고 하고 또한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아,아,안녕하세요. 저, 저는, 나, 나, 남밍굽니다'라고 말해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난닝구로 오해하는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한다. 자, 이제는 완득이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베트남처녀로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시집온다. 완득이의 아버지와 결혼하지만, 브로커가 완득이 아버지의 상태를 숨겼기 때문에 이에 대해 모르고 결혼했다. 다문화가정의 탄생인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일까 한국인남편과의 결혼으로 한국국적을 취득하고 완득이가 조금 컸을 때에 집을 떠난다. 따라서 한부모가정으로 어머니 없이 살아간다.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깨어진 가정이랄까...


  거기다 완득이네 가족들의 수입은 변변찮다. 완득이 아버지와 삼촌은 둘다 카바레에서 춤꾼으로 일한다. 집도 좁디좁은 옥탑방이어서 사는 것이 편리하지는 않다. 게다가 옆건물 옥탑방에는 완득이 담임인 동주-완득이는 똥주라고 부른다-가 살고 있다. 맨날 완득이를 불러서 햇반-경제사정이 어려운 수급대상자를 위해 나오는 밥, 선생 동주는 완득이를 수급대상자로 만들어주었다-을 던져 달라느니 난리다. 거기다 똥주 선생은 욕이 입에 붙은 사회선생이다.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한번은 누군가 수업에 충실하지 않는다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린 것을 두고 '니들 잘나가는 학원에서, 유치원 때 초등학교 마스터하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마스터하고, 중학교 때에 고득학교 다 마스터하고 오잖아. 근데 나한테 뭘 가르쳐달라는 거야. 대학교 꺼?'라며 학생들을 향해 윽박지른다. 이런 선생이 옆 옥탑방에 살고 있으니 좋을리가 있을까.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나쁜일만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되먹지 않아 보이는 동주선생을 통해 어머니 소식을 듣게도 되고, 그가 외국인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된다. 또한 어떤 사건-소설을 통해 확인하시라-을 계기로 반에서 일등인 정윤하와 가까워지게 된다. 친구하나 제대로 없이 스스로 외롭게 살아온 완득이었는데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 뒤에 숨어 살았으며, 세상과 자식앞에서 떳떳하지 못했던 완득이 아버지를 완득이 어머니가 설득하여 완득이가 원치않는 소설가가 되는 대신 그가 잘하는 운동-킥복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완득이는 어떠한 어른이 될까. 내 생각으로는 장애로 인해 세상앞에 떳떳하지 못한 그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는 되지 않을 것 같다. 몹시나 궁금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은 이 책에 나와있지 않다. 그 어느것도 이룬 것이 없이 소설은 종결된다. 이점은 보통의 성장소설과는 다르다. 열린결말을 취한 것은 아마 여러가지 다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독자가 어떤 상상을 해도 괜찮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상상처럼 아마 완득이는 대한민국의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든 그런식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상상하기를 바란다. 모든 것은 열려있다. 아직은 젊기에 말이다. 아마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10대~30대가 될 것 같다. 또한 나는 10대~30대가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가능성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를 바란다. 환경의 핑계를 대지 않기를 바란다. 완득이처럼 그 혹독한 환경속에서도 꽃은 피는 법이니깐 말이다. 부디 어려운 환경속의 당신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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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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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는 과연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그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듯, 우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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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 이운경 옮김 / 한문화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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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우리에게 어떠한 효용이 있는 것일까. 아마 철학의 효용은 우리에게 우리자신이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갖게 해준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의문. 자신과 세상을 인식하는 것과 자아와 세계를 구분짓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는 실존하는 것인가하는 것까지 철학은 의문을 갖게 하고 주어진 현상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질문의 대상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우리가 세상에 대해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이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러한 질문을 잃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라고는 고작 정보와 지식에 대한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식은 확장되어 가지만 우리는 질문하는 힘을 잃어가고 이에 덩달아 사유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나는 우리가 철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철학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할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철학을 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철학은 우리가 세계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사상(思想) - 우리가 세계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에 대한 고민과 결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주어진 세계를 의심없이 그저 받아들이지 말고 적당하고 온당한 의심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갖자. 
 
우리는 세계에 대해 의심해야한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회의주의라고 부른다. 앞서 말했듯 적당한 회의는 필요하며 이는 우리를 현명하게 한다. 하지만 지나친 회의주의는 비관주의로 변질될지 모를 일이다. 이는 주의해야 할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의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회의는 의심을 넘어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에서 경험을 통해 진정한 앎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확신을 얻게 될 것이다.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효용은 무엇일까. 이 책은 영화 매트릭스를 매개체로 하여 독자로 하여금 철학의 세계로 입문하게 해준다. 바로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가령 우리가 지각하는 것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실재란 무엇인가? 가령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하는 것 등이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허구에 반응하는 것일까? 기계는 인공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질문은 답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저자들이 생각한 답이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앞서 의심해 볼 것을 주장했다. 회의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독자는 옳고 그름에 대해 곰곰히 따져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드디어 이 책이 주는 효용에 대해서 말할 준비가 되었다. 결론은 이것이다. 이 책의 효용은 독자가 던지는 질문과 그 답에 달려 있다. 이 책은 하나의 도구로써 독자들의 생각을 자극하며 사상에 대한 의심의 폭을 넓혀준다. 또한 질문을 던지게 하며 답을 찾게 한다. 이를 통해 기존에 갖고 있던 사상에는 틈이 발생하게 될 것이며, 더나아가 우리는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토대로 이제 당신은 어떠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당신이 누릴 수 있는 이 책의 효용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의문들이다. It's the question that drives us. <매트릭스 대사中>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시켜 줄 것이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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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영문독해 기술 - 한국인을 위한
전영 지음 / 어학세계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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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책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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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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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자신의 세계관을 사물에 투영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것들에는 지극히 자신의 감정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래의 그림을 보도록 하자.
 


 

무엇으로 보이는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가 아니면 체스말과 유사하게 보이는 흰빛의 기둥이 보이는가. 처음에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살펴보라.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볼 수 있다. 가령 위 그림에서 당신은 당신이 보고자 하는 모습에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의식 중에 혹은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며 이는 당신만의 시각을 반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경아는 위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 속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환쟁이(화가) 옥희도씨가 그린 그림을 보고 말이다. 그녀는 그 그림을 처음 볼 당시에는 고목(枯木)으로 보았으나, 훗날 환쟁이(화가) 태수와 결혼한 뒤 옥희도씨 유작전시회에서 볼 때에는 나목(裸木)으로 인식하게 된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p.284)
 
그것은 왜였을까? 이는 옥희도씨를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초래한다. 우리는 이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는가, 우리를 둘러 싼 세계는 변하는가? 여기에 우리는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변화할 수 있다. 그러한 변화는 실제적이므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떨까?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실제적인 변화가 없는 경우 말이다. 이럴 경우에도 우리는 세계가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바라본다. 또한 우리가 가진 세계관(혹은 관점)의 변화는 우리 자신이 인식하는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관점이 바뀌었을 때 우리는 물리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물을 보면서도 그것이 변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적당한 가격의 시계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면?  여전히 똑같은 시계일까? 헤어지기 전보다 그 시계의 가치는 한없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물리적이며 실제적인 변화가 그 시계에 없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세상은 변할 수 있다. 실제로 변화가 있을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말이다. 우리가 지닌 관점(세계관)의 변화가 있을 때에 우리자신을 둘러싼 세계도 함께 변화되기에.
   
당신은 어떠한 세상을 원하는가?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당신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당신은 위에서 살펴본 그림을 볼 때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을 볼 때에도 또한 세계를 바라볼 때에도 모두 당신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당신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꿈꾸길 도전한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2.
이번에 읽은 나목은 박완서씨의 초기작품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저자의 개성과 완숙미가 넘치는 문장들을 살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초기작품이라는 풋풋함과 앞으로의 소설들에서 드러날 작가만의 필체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6.25사변)을 경험한 작가의 경험들이 이 소설 속 인물들과 배경 곳곳에 손때묻어 있으니 더욱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3.
현재의 이야기 - 나와 사람들
                     (가족: 큰아버지댁, 어머니 / 직장동료들 : 환쟁이들, 사장, 미숙, 다이아나)
과거의 이야기 - 아버지가 돌아가신, 오빠들이 죽게된 이유(폭격, 꿈틀대는 고깃덩어리) 
                      큰아버지가 우리집에 미안해 하는 이유.
                      어머니 曰 '어쩌다 계집애만 살아남았노'
다시 현재의 이야기 - 어머니를 미워하는 나(애증) 또한 큰집에 신세지지 않으려는 나,
                              계속된 방황의 종지부를 찍다(태수와의 결혼, 옥희도씨의 유작전)  
  
 

4. [밑줄긋기] 

 
p. 38
전쟁은 누구에게나 재난을 골고루 나누어주고야 끝나리라. 
 
p. 97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아녜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p. 150
아아, 전쟁은 분명 미친 것들이 창안해 낸 미친 짓 중에서도 으뜸가는 미친 짓이다. 
  
  
p. 290
남들은 잘도 잊고, 잘도 용서하고 언제 그랬더냐 싶게 상처도 감쪽같이 아물리고 잘만 사는데, 유독 억울하게 당한 것 어리석게 속은 걸 잊지 못하고 어떡하든 진상을 규명해보려는 집요하고 고약한 나의 성미가 훗날 글을 쓰게 했고 나의 문학정신의 뼈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 박완서,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p.123
 
그때 내가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래, 언젠가는 이걸 소설로 쓰리라, 이거야말로 나만의 경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집념하고는 달랐다. 꿈하고도 달랐다. 그 시기를 발광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정신의 숨구멍이었고, 혼자만 본 자의 의무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살 만해지고 나 또한 보통사람으로서의 무사안일을 누리는 동안 그건 짜릿한 예감이 되어 나의 안일에 잠복해 있다가 발병처럼 갑자기 망각을 들쑤성거리곤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상에 글장이로 선을 보이게 되었을 때의 감상도 꿈을 이루었다든가, 노력한 결실을 거두었다든가 하는 보람보다는 마침내 쓰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안도와 체념에 가까운 거였다. - 목마른 계절, 작가의 말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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