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티스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1. 어린시절 영화라하면 웨스턴무비로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존 웨인의 허세스러운 걸음걸이와 셰인의 마지막 말을 타고 유유히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의 이미지와 하이눈의 게리 쿠퍼의 매력적인 중년의 남성스러움이나 무엇보다 정의로운 백인이 야만스럽고 잔인한 인디언과 맞붙어 그들은 몰아내는 멋진 서부영화에서의 매력은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죠, 와이어트 어프가 OK목장에서 나쁜놈들을 물리치던 이야기도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이후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리우는 장고와 황야의 무법자시리즈들도 기억나구요, 여하튼 전형적인 서부영화속의 광활하고 메마른 황야를 카우보이가 먼지를 일으키며 말로 달려나가던 장면은 또래의 모든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죠, 그때 그시절에 6연발의 권총 한자루면 모든 것이 완벽한 시절이였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영화속의 무수한 장면들이 내보인 세뇌는 정말 과한 헐리우드식의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했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든 정의로운 보안관과 악을 처벌하는 이들은 백인이고 그것도 아주 잘난 모습의 차별화된 영웅이 등장하죠, 뭐 영화니 그럴 수 있습니다(근데 이게 함정이라능).. 그리고 이들에게 적으로 다가오는 범죄자들은 언제나 백인의 삶을 침범하는 우범자들입니다.. 초창기의 서부영화에서는 항상 인디언이 그러했죠, 어린시절 저에게 인디언은 미국사람이 사는 곳에 인디언이 해꼬지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잔인하고 야만스러운 모습들이었죠, 그들에게서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과 자기들만의 비명과 고함을 질러대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타고 활을 쏘고 칼로 머리가죽을 벗겨내던 그 극악스러운 잔인함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 마땅한 이들로 보였습니다..


    2. 신대륙을 발견하고 아메리카에 유럽의 사람들이 발을 들이기전 이 대륙에서는 약 150만명에 이르는 원주민이 살았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인디언들이죠, 그들의 영토에 영국의 프리머스에서 시작된 청교도 이민자들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미국에 도착한 후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세기 초에는 30만명 정도의 종족만 유지하게 되죠, 미국의 동부에서 시작된 개척의 시대는 조금씩 그 자리를 넓혀 서부로 향합니다.. 미지의 땅인 서부까지 가는 길은 험하고 힘들었지만 그곳에는 수백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있었죠,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삶을 이어가지만 문명이라는 이유로 야만으로 몰고 잔인한 동물적 근성을 가진 위험한 이들로 치부된 인디언은 수없는 차별적 죽음을 당합니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신들만의 방법을 이용해 합리화시키고 당연시하게 됩니다.. 그 중심에 섰던 것이 영화적 발상이고 이 발상은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2차대전의 독일의 파울 괴벨스의 대중선동정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동적 세뇌의 방법은 여전히 잘 적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중 하나입니다.. 대중이 감응하는 모든 매체를 통한 우월적 의식의 공동화는 중요한 목적중 하나죠, 이러한 점은 미국이라는 나라속의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과거를 이해하고 수긍하고 그들 내부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서부개척시대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 힘겹게 동부에서 서부로 나아간 개척의 시대를 자화자찬하곤 하죠,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커다란 애정을 가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근데 사실 거대한 땅덩어리인 미국이라는 나라의 땅은 정말 대단하긴 하죠, 지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어느 나라보다 자신의 땅을 잘 지키던 미국이 훼손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만큼 땅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과거의 흔적들은 여전히 매력적인 과학적 접근이 가능할겝니다.. 이제는 타계하신 마이클 크라이튼도 그러한 미국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에 대한 이야기를 돌아가신 후에도 보여주시네요, 맞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쥬라기공원'의 원작자 고 크라이튼 슨생, 이번에는 크라이튼이 타계한 후 그의 부인이 발견한 유작입니다.. 그의 초기작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드래곤 티스"입니다..


    3. 1870년대의 미국의 동부는 어느정도 유럽풍의 문명의 삶이 지배하는 곳이고 그의 미국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이었죠, 미국에 첫발을 디딘 시점에서 100년이 지난 1770년대 독립을 한 후 100여년간 동부는 비약적 발전을 하고 조금씩 서부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광활한 영토의 끝은 미지의 세계인만큼 일확천금을 꿈꾸고 철도가 이어지지 않은 곳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기란 힘들죠, 이 소설의 주인공인 월리엄 존슨은 필라델피아의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남부럽지 않은 금수저의 삶을 살아가는 말썽많은 10대후반입니다.. 그리고 예일대 학생이죠, 그런 그에게 허세스러운 내기를 건 친구때문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려고 한 계획을 서부로 바꿉니다.. 쉽게 떠나기에 두려움이 앞서는 서부를 가보지 못한 것을 깐족거리는 밉쌍 친구에게 선언을 해버린거죠, 인디언과 전쟁을 치루고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이 벌어지는 곳으로 갈것이라 약속을 해버린 월리엄 존슨은 어떤 방법으로 서부로 향할까 고민중이던 중 고생물학을 담당하던 마시 교수가 과거 공룡의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콜로라도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사진기술을 배워오라는 그의 요구에 따라 사진을 배워 마시교수의 일원으로 공룡화석 발굴을 위해 기차에 오르죠, 하지만 마시 교수에겐 그의 운명의 라이벌이 있었으니 그는 필라델피아 대학에서 고생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코프 교수였습니다.. 코프 교수 역시 마시와 마찬가지로 공룡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떠나는 시점이었고 이들은 서로 경쟁하며 서로를 의심하고 배척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월리엄이 스파이로 의심을 받고 서부로 향하던 중 홀로 남겨지게 되는데,,,,


    4. 푸석푸석한 흙먼지 냄새가 책을 통해서 코로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과거 토요일마다 보여지던 웨스턴 무비속의 광활한 미국의 메마른 중부와 서부의 영토속에서 갈증나리만큼 건조한 이미지가 작품속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나죠, 게다가 그 푸석한 흙을 파내고 털어내어 그 속에 잠들어있는 고대의 거대한 지구를 지배하던 파충류의 종을 세상밖으로 숨쉬게 한다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1870년 중반의 미국의 중서부는 인디언과 금을 찾아 떠도는 무적자들의 골드러시의 시대였죠, 온갖 혼란과 욕망이 가득한 시대적 상황이 주는 긴장감이 이 작품의 의도와 적절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그 시대의 미국의 중서부는 대단히 험악하고 야만스러운 곳이었죠,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째려보고 마음에 안들면 나와, 하고 나서서 스무발 걷다가 빵야,하고 죽거나 죽이거나 하던 참으로 미개한 시대였으니까요, 이 작품속에서도 그런 이야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합니다.. 야만스러운 인디언을 피해 달아나고 죽음을 당하고 범죄자들과 자신들을 속이는 인간들의 혼란속에서 끝까지 자신을 지켜내고 그가 선택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모습은 흔한 웨스턴 무비의 영웅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속에서는 서부의 이야기속에 그때만해도 흔하지 않은 공룡의 세상을 살며시 드러내죠, 아직 이름조차 지어지지 못하고 땅속에 잠들어있던 과거의 뼈들이 흙먼지를 털어내고 역사의 중심으로 숨을 내뱉는 이야기는 실존 인물인 마시와 코프라는 고생물학 교수의 이야기속에서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이들의 경쟁적 스토리는 역사속에서도 치열하게 다투었다고 합니다.. 허구와 역사가 뒤섞인 이야기의 진행은 시대적 인물들의 출연들로 독자들로서는 흥미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서부영화의 홍수속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와이어트 어프나 와일드 빌 히콕과 잔인한 인디언 수족과 기병대가 전투를 벌였던 리틀 빅혼 전투를 어린시절 끝없이 눈으로 봐왔기에 그 이야기가 옳든 그르든 이 작품 역시 과거의 즐거움이 되살아나게 되더군요,


    5. 이 작품 '드래곤 티스'는 제목의 의도와는 다르게 서부영화의 컵셉을 따라갑니다.. 그 설정속에서 중심이 되는 스토리라인이 공룡화석을 발굴하는 이야기인셈이죠, 초창기의 습작처럼 공룡의 과학적 지식이 쥬리기공원처럼 집요하게 독자들에게 스며들지 않고 단순한 설정적 소재로 적용된 것으로 보아 이로 인해 마이클 크라이튼은 끊임없이 공룡이라는 지구의 한시대대를 정복했던 파충류의 이야기에 조금씩 접근해나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흔한, 우리가 익히 경험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적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저만 그런지는 모르지만 재미는 있으되 아마추어적 느낌이 지배적이라는 것이죠,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지지만 그가 설정한 주제로 보이는 '드래곤 티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 아마도 작가의 사후에 발견된 유작인만큼 초창기의 습작의 모양새로 서부적 스토리속에 하나의 모티프로 등장시킨 공룡 화석을 발견해나가는 인물적 구도이다보니 그의 대표작인 '쥬라기 공원'을 끌어들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고로 조금은 그런 의도로 인해 작품을 대하게 되면 실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은 제가 말씀드린 어린시절 제가 보고 자랐던 서부영화적 이미지와 상상과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종의 백인 특유의 우월주의적 시선과 편협한 관점은 조금은 세계적 작가로 떠오르기전의 흔한 대중작가처럼 보이더군요, 그래서 스토리는 즐겁지만 내용은 깊게 고민하고 볼 것이 없습니다.. 특히나 이 작품의 실존 인물로서 설정의 중심이 되는 마시와 코프라는 고생물학의 대가이자 공룡학의 대표학자인 이들의 이야기는 초반의 이야기와 달리 중반을 넘어서면서 힘이 딸리고 흐지부지 사라져버리죠, 후반부는 오롯이 월리엄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그가 생존하고 끝까지 지켜내는 새롭게 발견된 공룡 이빨을 중심으로한 메마른 서부의 버려진 도시에서의 생존극을 다루니만큼 큰 의미부여가 없어보입디다..


    6. 이 작품은 긴장감도 넘치고 스토리상으로 과거 제가 어린 시절 접한 서부영화속의 두근거림이 가득한 스릴러소설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한 어린 젊은이가 미지의 세상으로 나가가 성장하는 스토리는 언제나 매력적이죠, 그것도 혼란의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속의 공룡화석 찾기라니 이 얼마나 흥미롭습니까, 모든 것이 정제되고 사회적 규범과 문명이 가득한 미국 동부의 사회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총질을 해대고 야만스러운 죽음이 난무한 세상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이야기니 읽는동안 즐겁기 그지없습니다.. 집중이 잘되다보니 금새 읽게 되더군요, 허나 남는 것은 없습니다.. 가벼운 대중소설의 맛으로만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재미진 작품이지만 '쥬라기공원'을 상상하고 선택하시면 조금 실망스러운 선택이 되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시고 더이상 만나볼 수 없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유작이었다는 점과 무엇보다 그가 작가로서 발돋움하고 세상에 알려지기 전 일종의 데뷔작처럼 신선하고 조금은 허술한 과학적 접근의 방식과 구성은 오히려 그가 세계적 작가가 되기까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어보여서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반갑더군요, 많은 아쉬움을 주고 떠나신 작가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독자들에게 선보여진 그의 초창기의 작품을 통해 더이상은 볼 수 없을 그의 신작에 대한 안타까움을 풉니다.. 혹시라도 크라이튼을 사랑하시고 그가 보여준 오락만점의 스릴러소설의 미력과 과학적 접근과 미래적 상상이 가득한 세상을 떠올리면서 그가 보여주는 대중적 즐거움이 궁금하시면 아쉬우나마 이 작품을 읽어보셔도 좋으실 듯 합니다.. 물론 그러려니하는 마인드도 함께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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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고바야시 히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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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물은 자신만의 아이를 잉태하여 사랑으로 키우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겠죠, 가장 근원적인 생물의 진화적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잘은 모르지만 그게 우리가 생존하고 삶을 이어가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40억년 이상의 나이를 먹은 지구에서 잉태된 모든 생명들은 그렇게 자신을 닮은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납니다.. 하지만 고작 300만년도 채 되지 않은 인류라는 종족이 지구에서 생존함에 있어서 만들어낸 역사는 참으로 기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인류처럼 머리속에 뭔가 생각을 하기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지는 약20만년 정도라하니 더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그기간동안 자연을 따르면서도 거스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자신들의 삶과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며 이를 합리화하려는 거짓된 속성과 욕망과 의도로 신을 찾죠, 신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류는 신의 모습을 따라 그들이 창조한 세상은 잔혹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스스로 내보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살아온 수많은 인류의 역사의 모순적 민낯을 쪽팔려서 드러낼 수 없는 것이죠,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물중에서 가장 잔혹하고 가장 이기적이고 무엇보다 가장 이율배반적인 존재들이죠, 그럼에도 인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십만년동안 소멸되어도 무방할 정도의 잔혹함을 견뎌온 인류지만 왜 이토록 끈질기게 스스로를 지켜내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자기반성이라는 또다른 자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2. 물론 앞서 끼적댄 이야기는 오롯이 저 개인적인 편향적 생각이라는 점을 이해하시고 거부감이 드시면 넘기시면 됩니다.. 많은 이들이 왜 그렇게 잔혹하고 잔인하고 지저분하고 무섭고 공포스러운 이야기들만 읽느냐, 좋은 자기계발이나 감성적인 에세이나 삶에 도움이 되고 감정적으로 편안한 작품을 읽지 않느냐, 혹여라도 아이들이 당신이 읽는 책에 손을 대거나 그러면 걱정되지 않느냐, 그런 책을 많이 읽으면 생활하는데 화나 분노를 주체못하거나 어려움을 겪을 지도 모리지 않느냐, 근데 말입니다, 제가 읽고 제가 탐닉하는 잔인하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잔혹한 전혀 값어치가 없는 대중소설보다 당신네들이 끊임없이 감정몰입하고 빠져드는 TV드라마나 뉴스에서 하루에서 수십번씩 등장하는 우리네 주변의 이야기는 어떠하나요,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가하고 욕짓거리를 모멸감이 뚝뚝 떨어지게 쏟아내는 가부장적 어른들의 꼰대짓, 막장으로 치닫는 치정극의 감정소모에 대해서는 그냥 즐기면서 인간의 잔혹한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네 삶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겉과 속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이중적 속성이기 때문에 우린 인간을 알지 못합니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버려지고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가정폭력에 고통받고 수없이 많은 아이들이 이 순간에도 소외당한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린 여전히 자신밖에 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아니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가집니다.. 어떠한 방법이건 우린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아가 있으니까요, 그런 자아를 전 어줍잖게도 남들이 말하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지저분한 대중소설에서 만나곤 합니다.. 그렇다고 이번에 읽은 작품이 그렇다는건 아닙니다.. 이 작품은 대단히 매력적인 짧은 중편같은 작품이지만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고바야시 히로키라는 아직은 젊은 작가의 뛰어난 작품 "Q&A"입니다..


    3. 오랜기간 사람이 살지않는 폐허가 된 연립주택에서 한 성인남자가 살해됩니다.. K경감은 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사체의 모습속에서 죽음을 당한 남자가 전혀 고통스럽지 않게 살해당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감식관 G에게 듣습니다.. 기이한 현장의 모습속에서 G는 자신이 발견한 의문의 노트를 K에게 건넵니다..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와 단서를 노트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G는 외국어로 쓰여진 노트를 K에게 통역을 부탁하며 경찰서로 가는 길에 내용을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노트는 Q&A라는 제목을 단 체 담백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끄집어 냅니다.. 첫장에서 Q는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내놓죠, A가 답을 해야되지만 이야기는 과거의 한 아이의 일기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과거의 한 시점에 버려진 체 성당에 모인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을 하죠, 자신을 버린 부모들이 누구인 지, 무엇보다 자신들이 누구인 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세상에 자신들의 실체가 있는 지 조차 의심을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름도 부여받지 못한 체 숫자로만 불리어지죠, 어느날 아이들은 성당 밖에서 부모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걸어가며 웃음을 터트리는 한 아이를 보며 자신들에게 주어지지 못한 행복의 근원에 대한 증오를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증오의 잔혹함을 드러내죠,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진 자신들에게 주어진 잔혹함과 자신들이 느낀 증오에 대한 잔혹함을 당한 타인을 보면서 세상은 끝없는 잔혹함의 연속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럼 이 잔혹함이 지금 발견된 성인남자의 살인사건과 연결이 되는 것일까요, 조금씩 이유가 드러날때쯤 진실은 또다른,,,,


    4. 아휴, 상당히 짧은 중편입니다만 내용이 대단히 찰집니다.. 하나의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야기는 노트에 담긴 과거의 진실입죠, 한 아이의 삶과 인생을 담아낸 짧디 짧은 노트속의 삶은 이 작품이 주는 모든 것입니다.. 내용 역시 그렇게 길지 않음에도 문장과 이야기의 행간속에 담긴 감성이나 인간이기에 공감가능한 철학적 의도가 무척이나 강하게 와닿는 것이죠, 그렇다고 막 어렵고 고민스러운 철학적 질문들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살이의 가장 근접한 삶의 잔혹함을 다룬 작가의 스토리 구성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무엇보다 작가는 노트라는 매개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그려내는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툭툭 던집니다.. 처음이 살인사건의 중심이 노트로 모든 것이 옮겨가버리는거죠, 아주 단순한 살해된 남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직접적인 추리적 의문만 가지고 독자들은 작품속의 또다른 진실의 노트에 집중하게 됩니다.. 특히나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펼쳐지는 진실의 장은 아주 아주 긴장감과 집중도가 꽉 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문장을 읽어내려가며 느껴지는 또다른 인간의 내면적 부조리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질문은 충분히 어려울만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머리속으로 스며듭니다.. 잘난 체, 똑똑한 체, 철학이 무어니, 사상이 무어니, 인간의 근원적 모순이 어떠하니,,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아주 영리하게도 스토리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자신이 의도한 세상속 인간의 이중성과 잔혹함을 흔한 공감으로 끄집어냅니다.. 또한 작가는 그의 이야기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드러내놓지도 않습니다.. 이 작품을 보며 생각하는 독자의 공감은 여러가지일테니까요,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는 작가가 무얼 의도했든 그의 작품속 인간의 아픔과 고통과 소외와 잔혹함에 대한 충분한 대중적 공감을 발견하리라 생각됩니다..


    5. 이 작품속의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합니다.. 영어의 이니셜로 불리거나 기호나 숫자로도 불리우죠,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방법론이겠지만 오히려 이런 구성으로 인해 독자들은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적인 인물적 명이 후반에 등장하는 반전에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도 한 목적이긴 하겠죠, 단순한 질문과 답을 제시한 노트로서의 'Q&A'의 의도와 또다른 이면의 명칭으로 등장하는 이중성은 작품이 주는 또다른 매력중 하나라봐도 무방하겠습니다.. 허나 이러한 작품적 구성과 방법론으로 인해 독자는 작가가 인간의 이중성과 세상의 잔혹함을 그려내는 철학적 질문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 모습이 주는 묘사에 있어서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노트속에서의 글쓴이의 주체에 들어선 작가의 시점과 의도에 대해 아무래도 인간의 내면과 세상의 이면적 충돌을 다루다보니 조금은 어려울 수 있는 철학적 물음이 생길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소설의 시작점인 범죄사건과 관련된 살인에 대한 부분과 그 해결점에 있어서 독자로서 조금은 허술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결말부의 작가적 방법론은 이 작품이 주는 모든 해결적 측면을 이끌어내긴 했지만 무엇보다 추리스릴러독자로서의 결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모든 답은 Q&A속에 있으니까요,


    6. 200페이지 가량의 작품인데다 소설의 판형도 손안에 잡힙니다.. 중편소설입죠, 하지만 대단히 매력적이고 느낌이 좋은 작품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뒤에 계신 분이 우리 어머니가 확실하듯이 말입니다.. 비록 내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내가 느낀 어머니의 감성은 진짜 어머니마냥 가슴속에 확실히 살아납니다.. 인간의 본연의 극악한 삶의 잔혹성을 그 대상이 된 버려진 아이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는 이야기는 독자들이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고 들여다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게다가 사건의 내막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한몫을 하죠, 중간중간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가 느끼는 감정선 또한 독자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소설속 형사가 바로 대중 그 자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작가인 고바야시 히로키라는 인물은 이제 갓 20세를 넘긴 젊은 작가임에도 그가 그려낸 작품속의 인간의 내면과 철학적 물음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또한 작가의 의도로 명명된 인물들의 이름들 또한 작가가 의도한 세상속에서 인식이 제대로 되지 못한 인물들의 모습과 중심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론으로 대단히 영리한 포석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게다가 짧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는 방법은 독자로서 큰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죠,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며 그 이야기속에 담겨진 인간의 내면과 그 이중적 속성에 대한 처절함을 아직 세상의 많은 부분을 경험해보지 않은 젊은 작가에게서 느낀다는 점은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어리다고 놀리지말아요, 맞습니다.. 어설프게 나이나 먹은 저같은 어른보다는 제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뛰어난 젊은이가 열배 더 낫습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필히 기대하겠습니다.. 고바야시 히로키, 기억해두겠습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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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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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들은 불안해합니다.. 아니 두려워한다는게 더 적확한 표현이겠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부모들의 눈치를 봅니다.. 혹시라도 자신들이 혼날까봐, 혹시라도 자신때문에 부모들이 싸우는 것일까봐, 혹시라도 자신들이 버려질까봐, 아이들은 부모없이는 혼자서 살 수가 없죠, 아버지가 한번씩 내지르는 윽박에, 어머니가 항상 꾸짖는 잔소리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돌봄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다들 스스로의 자아가 어느정도 형성될때까지 말이죠,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의 눈높이를 잘 이해해주고 포용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세상 부모들의 양육의 삶이 다 그렇게 되진 못하죠, 제각각일겝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쉽진않죠, 하지만 아이들은 한결같이 좋은 부모를 원하죠, 그리고 아이들은 좋은 엄마, 아빠를 바라며 부모의 의도에 따라 그들의 요구와 사랑과 훈육을 배우고 익히고 착한 아이가 되고자 합니다.. 자신들의 부모가 옳고 그름은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부모에게 인정받고 이해받고 사랑받는 아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요, 하지만 부모들은 그렇지 않죠, 자신이 옳고 그름은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훈육방식이 어떠하다는 것 역시 스스로 가장 잘 인식하죠, 하지만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행하는 모든 양육의 방식에 있어 대단히 이기적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이성적 합리화를 하는 부분 역시 아이들을 양육함에 있어 자신들이 행하는 행동이 아닐까 합니다.. 누가 뭐래든 자신들의 아이들이니까요, 그들에게 아이는 자신들처럼 되길 원하는 이기적 욕망과 자신들처럼 되길 원치않는 감성적 이성이 뒤섞여있죠,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에게 있어 행하는 모든 훈육에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곤 합니다..


    2. 자신은 과거 자신의 부모들이 자신에게 했던 훈육을 거부하고 자신의 아이에게는 보다 자유롭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살게끔 노력하곤 하죠, 하지만 과거 자신이 배우고 부모들이 가르쳤던 훈육의 방식은 어쩔 수 없이 감정적이나 습관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지않으려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않죠, 또다시 부모가 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비이성적 합리화로 아이들에게 자신만의 양육방식을 강요하곤 합니다.. 특히나 외국과 다른 가부장적 강요의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과거의 우리나라의 삶의 모순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의 과도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 역시 듭니다.. 많이 변하고 많이 깨우치고 많이 배우는 부모들이 이 시대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우리의 아이들이 삶이 보다 자유로워지고 있는 상황이 개인적으로는 저 스스로도 과거의 부모세대에게서 배운 삶의 방식이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바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누구의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말이 주는 따끔한 질책은 저에게 많은 고민거리는 남기곤 하죠, 좋은 아부지, 존경하는 아부지지만 닮고 싶지 않은 아부지의 모습이 때론 저에게서 보여진면이 있다는 것을 제 스스로 알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장 고마운 것중에 하나는 어린시절 전 부모님에게서 극단적인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과거 제 어린시절 수많은 이웃집에서 들려오던 가정폭력의 모습들이 그시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 쉬쉬하면서 그러려니 했던 시대였다면, 지금은 과연 세상의 집들이 대체적으로 안전할까요, 재미작가이십니다.. 정윤이라는 작가님이신데 한국적 양육의 방식속에서 자란 미국이라는 세상속에 놓인 한인가족의 이야기를 대단히 현실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 "안전한 나의 집"이라는 작품입니다..


    3. 나름 중산층의 틀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경과 질리언은 어렵게 대출로 마련한 집을 내놓습니다.. 집을 유지하기에 들어가는 이자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죠, 나름 지역의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경에게도 현재의 삶이 쉽지않습니다.. 아직 어린 이선은 경이 바라보기에 늘 칭얼대고 자신이 원하는 것만 찾는 이기적 욕망덩어리로만 보여지죠, 자신이 과거 부모에게서 듣고 배우고 틀에 갇혀 자라온 모습과는 다르게 이선은 산만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질리언을 통해 현실을 통해 경은 자신의 아이의 삶에 있어 많은 것을 배우고 살아가려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그는 자신의 부모인 진과 매에게서 어떠한 도움도 받지  않으려하죠, 가능하면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려합니다.. 그러던 중 집을 보려온 부동산 중개업자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다가오는 알몸의 상처투성이의 여성을 보게 되죠, 자신의 어머니인 매였습니다.. 그녀를 본 순간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던 경은 그런 상황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구급차를 부르고 정신이 나가버린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간 경은 경찰인 자신의 장인 코니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발견한 아버지의 모습과 집내부에서는 엄청난 범죄가 발생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강도가 침입한 후 자신의 부모님과 가정부까지 유린하며 무차별 폭행을 가했던 것이죠, 그리고 한 남자가 죽은 체 발견됩니다.. 경이 맞닥뜨린 현 상황속에서 그가 살아온 모든 인생의 중심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지탱해온 그의 의지는 이제부터 조금씩 그의 기억속에서 그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이라는 사회속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한인가정의 힘겨운 삶의 내면과 그들의 이야기, 경을 통해서 우린 그 삶의 일부를 느낄 수 있습니다..


    4. 겉으로 보여지기에는 어느것 하나 부족할께 없어 보이는 미국이민사회속에서도 성공한 한인가정의 모습, 하지만 그 내면속에 잠재된 폭력과 애증의 골이 쌓인 외로운 삶, 쉽지 않은 삶의 울타리속에서 자신속에 꼭꼭 갇혀서 어디에서도 풀지 못하는 혼란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나와 다른 삶이 지배하는 곳에서의 생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수많은 다큐나 영화적 이야기속에서 생경한 세상속에 놓여진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사회적 아웃사이더들같은 이민자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이 작품은 그런 세상속에서 서양인들이 가지는 인식과 동양인, 그중에서도 한인으로서 살아가는 조금은 답답하고 자유롭지 못한 가정적 틀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모순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란 동서양을 떠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단지 한 가정의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행하는 모든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잠식하고 고통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가정폭력이 주는 대단히 극단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현실적 고통을 아주 섬세하고 사실적인 심리적 묘사를 한국적 감성으로 미국이라는 사회의 외부적 배경속에 대비적으로 그려내는 영악함을 보여줍니다.. 독자들은 이점때문에 상당히 집중하고 감정적 공유를 이어나가죠, 또한 상황이 주는 반전적 요소들이 이끌어내는 가독성은 좁은 시선의 한인가정의 내면과 함께 미국이라는 사회의 범죄적 심각성도 잘 끄집어내어 작품적 구성도 매끄러워 잘 읽힙니다..


    5. 이 작품은 경이라는 인물의 시선에 따라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그의 심리와 시점과 이야기속에서 주변의 인물들의 삶과 기억과 상황들이 드러나는 방식이죠, 그렇다보니 독자로서는 경의 심리와 그의 의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보여주는 상황적 심리와 내면은 현실적인 면이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한국 독자의 감성과는 조금 괴리감이 드는 과한 설정적 심리가 자주 등장합니다.. 미국이라는 사회속에서의 한인의 삶이라는걸 체감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작품속의 경의 행동이나 그에게서 드러나는 과한 심리적 압박이나 극단적 행동은 감정이입이 깨지는 갑갑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사회속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경이라는 인물의 과거와 그에게 쏟아진 가정내의 폭력의 행위와 비교해서 현실의 주인공이 내비치는 극단적 심리적 강박은 쉽게 감응하질 못했습니다.. 현실적인 범죄적 상황 이후의 삶이 피폐해지고 누구 하나 고통스럽지 않은 인물이 없음에도 가장 직접적 당사자들의 입장을 공유하기 보다는 그 상황에서 터져버린 과거의 기억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중점을 맞추다보니 이해하고 위로는 하되 완벽한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개인적인 독서적 취향에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지 않았나 싶다는게지요, 소설속의 경의 한인가정속에서 벌어졌던 폭력적 기억이 현재의 비극적 아픔으로 극단적인 내면의 고통으로 드러나기에는 제 개인적으로는 그 가족의 이야기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는 것이죠, 만약 현실적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과거의 삶을 끄집어내려면 조금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가정적 고통을 제시하는게 더 좋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6. 작품속의 현실적 이야기와 그들의 삶을 끄집어내기 위해 발생하는 범죄적 상황등이 주는 작품적 매력은 아주 뛰어납니다.. 이로 인해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개인적 삶의 내면과 이웃의 치부가 반전처럼 수시로 독자들에게 드러나는 방식은 작가가 의도한 사회적 이슈와 현실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관점외에 대중적 즐거움의 스릴러적 감성까지 잘 묶어서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있습니다.. 특히나 중반부를 넘어서서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상황적 이야기와 진행방향은 독자들에게 아주 큰 매력으로 다가오며 후반부의 결말에서는 독자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문장적 힘이 가득합니다..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작가가 겪었든, 주변에서 경험했든, 또는 작품적 설정이든 상관이 없이 한인작가로서 그들의 삶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외로운 한인들의 아픔을 그려내는 작가적 의도는 충분히 현실적이긴 했죠,  특히나 애초에 국내 독자들보다는 미국이라는 사회라는 배경속에 살아가는 미국인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그려진 작품이니 오히려 그들의 감정이입과 공감이 더 중점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역시나 세계 어느곳에서 한국인의 내면과 그 감정적 심리는 쉽게 변하지않고 아픔이든 사랑이든 끈끈한 가족애든 공유하는 이웃이든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게끔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낸 작가의 경험이 잘 살아난 이야기적 구성은 독자로서 충분히 공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속에서 보여준 인물들의 내면적 심리와 상황적 범죄의 요소들을 중심으로 한인과 무관한 범죄스릴러소설로 한번 도전해보시면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아님 말고, 생각보다 서양의 한인사회를 다룬 작품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이런 작품으로 한번 경험해보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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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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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한부, 인간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이죠, 죽을 날이 정해지지 않긴했지만 불멸은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할 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삶에 집착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가진게 많고 원하는게 많고 자신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시한부 인생에 대한 욕심이 자꾸만 생길 지도 모를 일이죠, 사실 또 안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만, 하여튼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은 자신의 시한부의 삶속에서 남겨두는 것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일종의 그리움과 두려움과 고마움과 애틋함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제 독후감에서 씨잘데기없이 자주 남기는 말중에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죠, 솔직힌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여전히 남겨두고 가는 것에 대한 애틋함은 있을지언정 굳이 죽음이 닥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 생각해보질 못했습니다.. 닥치지않아서 그렇겠죠, 그런 상황이 나와는 별개의 세상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서 그럴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이제는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저의 삶의 끝자락에 대해 혼자 가만히 떠올려보는 것이죠, 그럴 시간이 되면, 그렇게 어른들을 보내고 내가 남겨지면, 그리고 내가 떠나고 나의 가족들이 남겨지면 어떨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참 못땐 생각이 듭디다.. 여전히 어른들의 끝을 대하는 아들로서의 저의 마음과 저의 끝을 대하는 아버지로서의 자식들에 대한 저의 마음이 달라요, 불효죠,


    2. 현실적 삶의 시계의 여유가 많이 남지 않은 부모님의 남은 삶 동안 제가 최선을 다해 챙겨드려야함에도 불구하고 전 제가 떠나는 비현실적 시계의 삶을 미리 계산하면서 내가 가기전에 나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대단히 불효막심한 생각을 더 하는 것 같아요, 참 못땠죠, 나를 나아준 부모의 삶에 대해 자식으로서 가져야되는 생각보다 내가 낳은 아이의 삶에 대한 부모로서의 생각이 앞서니까요, 내 아이의 미열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찬물에 적신 수건을 머리에 올리면서 수없이 절뚝거리시며 아이를 봐주시러 버스를 타고 매일같이 집으로 오시는 어머니의 무릎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모른척하며 살아가는가,, 있을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처럼 과연 나의 삶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가 무엇인 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물론 내용은 제가 고민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연쇄살인마와 그를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죠, 작가는 일본의 야쿠마루 가쿠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사회파적 감성속에서 대중이 공감하고 동조할 수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정서를 작품속에 너무나 잘 접목시키는 작가분들중 한명이시죠, 이번에는 대척점에 있는 살인마와 형사의 삶이 시한부라는 설정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은 삶의 미션이 주어지죠, "데스미션"입니다..


    3. 야마구치 스미노는 힘든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도쿄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대학 동창들과 만나게 되죠, 그곳에서 과거 자신의 첫사랑이자 어린시절 함께 했던 사카키 신이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금 사카키와 스미노는 재회를 하게 되죠, 사카키는 대학 졸업 후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주식으로 큰 돈을 벌어 젊은 나이에 부유한 삶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 존재하죠, 그는 어느순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여자를 죽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여태껏 그 충동을 억누르며 살고 있죠, 그런 그에게 살인충동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아는 스미노가 다가오지만 그순간 그에게 남은 시간은 몇개월밖에 되지 않습니다.. 위암 말기의 판정으로 그는 그동안 숨겨왔던 살인충동을 풀어버립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스미노를 대신해 다른 여성에게 살인충동을 풀죠, 한편 평생을 살인마와 범죄자를 잡기 위해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오이 료는 몇년 전 위암 판정을 받았으나 초기 진단에 어느정도 완치가 된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아내를 잃고 자식들과는 어색해져버리죠, 그러던 중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을 쫒던 중 아오이 역시 위암으로 인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동일한 삶의 끝자락에 놓인 두명의 남자가 남아있는 삶동안 자신이 행하는 사명에 대해서 달려갑니다..


    4. 전형적이긴하지만 제법 매력적인 설정의 작품입니다.. 게다가 야쿠마루 가쿠가 전해주는 현실적 딜레마속에 담긴 인간적인 공감이 함께라면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죠,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재미는 상당히 뛰어납니다.. 잘 읽히고 잘 느껴지고 잘 집중됩니다.. 몇달밖에 남지않았다는 판정을 받은 두명의 남자의 시한부 삶의 영역속에서 펼쳐지는 상황적 대치와 그들의 삶의 내면을 살펴보는 독자로서 이들이 전하고자하는 내면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개인적인 삶의 끝을 가진 캐릭터가 주는 극단적 강렬함은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입죠,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자신들이 남은 시간동안 어떤 삶의 결말을 가지며 살아갈 것인가라는 사명적 이유, 한 남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을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드러내지 못해고 살아온 고통과 억누림을 풀고자 합니다.. 그리고 한 남자는 평생을 바쳐온 자신의 삶을 마지막까지 이어나가려고 하죠, 이번에는 추리적 미스터리의 관점보다는 현실적 삶의 스릴러적 관점에 보다 더 집중한 것 같습니다..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범죄적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삶의 끝자락을 마주보는 두 남자의 삶과 그들의 주변의 인물들이 겪는 상황들과 그 이야기가 주를 이루죠, 이야기는 자극적이지만 그들의 내면속의 삶은 우리네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끝내 마무리를 해야될 자신의 삶의 마지막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는거죠, 갑자기 닥쳐오는 죽음의 시간동안 남겨진 이들을 위해, 아님 자신을 위해 그들이 행하는 것에는 언제나 후회가 남습니다.. 하기사 어떤 죽음앞에서도 후회가 없을 순 없겠죠,


    5. 이 작품은 미스터리적인 부분이 조금 약합니다.. 애초의 설정부터 캐릭터와 시한부인생이라는 설정을 의도한 이유때문인 지 사건을 다루는 중심이 처음부터 드러나면서 시작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보니 상당히 긴박감 넘치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독자로서 범인을 알고 그를 쫓는 형사의 입장을 바라보는 시점이 주는 매력은 흔한 스릴러소설의 즐거움과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나 범인이 저지르는 살인의 이유 역시 깔끔하게 제시하고 진행하고 있으니 독자로서는 남은 생명의 시간동안 빨리 살인마를 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수 밖에요, 그렇다보니 아오이라는 형사에 대한 공감 이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편이죠, 하지만 사카키라는 인물에 대한 입체감이 그렇게 크지 않은 점은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설정과 구도와 내용이 서로 짝짝쿵이 되어 멋진 이야기를 그려냄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구성하는 살인마의 이상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부실하다는 점은 많은 아쉬움이 남더군요, 분명히 작가는 애초부터 살인충동에 대한 사카키의 삶과 과거의 인생에 대한 복선을 처음부터 등장시키고 끊임없이 사건의 중심에서 스미노와 사카키의 관계를 중심으로 암시를 하고 그 이면의 의도를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이면서 사카키의 고민과 그의 심리적 혼란과 불안함에 대한 구체적 심리는 많이 보여주질 않습니다.. 과거의 삶과 미스터리를 풀어놓은 방식도 간결하고 몇몇의 문장과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는 점은 속도감과 긴박감을 전해주고자하는 작가의 두 주인공의 남은 삶의 시간적 사명에 더 중점을 둔 이유로 많이 묻혀버렸죠,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한 과거의 삶과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반전스러운 사카키의 삶의 고통과 공포적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공감을 시켜주었으면 좋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렇게되면 이 작품의 성향이 보다 더 자극적이고 과한 설정으로 흐를 수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말이죠, 즐겁고 재미진 작품에 대한 조금 더, 조금 더하는 아쉬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6. 충분히 감동적이고 충분히 공감적이고 충분히 재미진 일본미스터리소설입니다.. 야쿠마루 가쿠는 솔직히 말해서 제가 읽은 작품속에서는 언제나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좋았을때가 더 많았죠, 이 작품도 약간의 아쉬움속에서도 충분한 즐거움을 전달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을 날이 정해진, 그래서 얼마 남지않은 삶을 배정받은 인생의 끝자락을 바라본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이 지배적인 이야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죠, 설정이 전형적이지만 매우 매력적입니다.. 조금씩 삶의 끝으로 다가가는 인물들이 극단적으로 대치되는 행동으로 그들의 남은 삶을 조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이 작품을 통해서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이고 조금 더 스미노의 삶과 인생과 그와 관련된 애틋함이 독자들에게 다가갔더라면, 조금 더 과거의 사카키의 인생에서의 가장 두려웠던 시절이 대중에게 와닿았다면, 조금 더 아오키의 이야기의 내면의 삶과 야베가 전해주는 파트너의 경찰소설로서의 매력이 주어졌더라면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본질적 의도와 철학적 문제를 드러내는 위험을 자초하질 않습니다.. 작가 특유의 인간적 공감에 기인한 사회적 딜레마와 현실적 아픔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설정하고 그려내는데 주력한 작가의 대중적 공감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야쿠마루 가쿠를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이시라면 충분히 즐거우실테고, 일본미스터리소설을 좋아하시는 독자분들이시라면 좋은 선택이실테고, 간만에 재미진 대중소설을 원하시는 독자분들에게는 좋은 독서가 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이들이 다들 행복하고 즐겁고 아픔이 없는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되짚어보는 삶이 조금이라도 후회가 덜 되는 인생이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그렇게 삽시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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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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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말, 이 의미의 중심에는 지구나 자연이나 과학적인 전제하에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늘 하는 말인 종말의 중심에는 인간이 항상 존재합니다.. 과거에 인류가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을때에도 수많은 지구의 생명체는 자신들의 존재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공룡은 그렇게 사라져버렸고 수많은 고생대의 생물들은 화석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그시절부터 현재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는 생물들도 있죠, 지구는 인류가 살아온 세월의 수억배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종말을 겪지 않았습니다.. 물론 무엇인가의 진행이 끝이나고 마무리가 되는 것을 종말이라고 칭하긴 하지만 우린 보통 인간을 제외한 존재에 대해서는 소멸이나 멸종등과 같은 의미의 말을 쓰곤 하죠, 하지만 인류와 관계된 현실의 삶과 미래의 세상에 대해서 비극적 추측으로 인류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우린 보통 '종말'이라고 칭합니다.. 이 종말의 의미에는 단순한 소멸이나 멸망의 의도와 함께 스스로 파괴되어 사라져버린다는 의미가 덧붙여져 있는 것이죠, 인간은, 우리 인류는 스스로 자신들의 소멸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누구보다 위대한 존재감을 내세우는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지구의 생명나이의 발가락의 때만치도 못한 역사를 가진 인간들이 스스로 얼매나 대단한 족속들인냥 종말이라고 떠들어대며 인간이 사라지면 지구종말이 다가올 것이라고 외치죠, 어데다 지구를 갖다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물들도 이러한 자기 위주의 외침이 가능하면 인간을 얼매나 같잖게 비웃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르고 살아가는 짓을 압니다.. 우리가 얼마나 지구를 힘들게하고 병들게 하는 지 압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유리보다 연약한 멘탈을 유지하고자 종교를 들이밀고 어설픈 의지를 이끌어내기위해 종말론을 끌어내려고 하는 것이겠죠,


    2. 일종의 경각심이겠죠,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이 잘못되고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짓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인간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에 생각이 있고 머리가 있고 빤히 보이는 미래를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누군가들은 종말이라는 개념을 끄집어내어 그나마 인간답게 살아남을려면 조금은 걱정하고 살자라고 외쳐대는 것이죠, 그나마 다행입니다.. 누군가는 그나마 인류의 미래가 어떨 지, 나름 고민하고 생각하고 걱정하고 미친듯이 달려가는 종말적 파괴의 세상에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하니 말입니다.. 그 하나가 되든 둘이 되든 여럿이 되든 그들은 나름의 종말의 세상속에서 인류의 바른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큼직한 몸만큼 머리가 크지 못한 공룡의 소멸처럼 사라지지는 않겠죠, 기껏해야 인류가 머리를 쓰고 시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인식하고 나름의 머리를 굴려가며 공동체의 삶을 살아온 기술된 역사가 1만년도 채 되지 않는데, 수십만년도 넘게 살았던 공룡의 소멸 역사보다 빠르게 종말에 접근하고 있다니, 참 대단한 존재이기는 합니다.. 그러니 우린 끊임없이 생각하고 인식하고 가르치고 떠들어대는 종말론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요, 딴엔 좀 똑똑하다고 인간들이 끄적대는 종말론 관련 서적은 좀 있어 보입니다.. 철학적인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까지 들먹이고 하면 좀더 젠체할 수도 있죠, 그러면서도 인간들이 혹하는 비극적 미래를 담고 있으니 매력도 있습니다.. 여기 그런 작품을 한편 만났습니다.. 퓰리처상 수상자랍디다.. 그외에 다른 상도 마이 받았다니 좀 있어보이는 작가임에는 틀림엄꼬, 콜슨 화이트헤드라는 이름인데 성이 좀 예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여하튼 작가의 종말후의 세상의 황폐함을 다룬 작품 "제1구역"입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2011년도에 집필되었고 풀리쳐상 수상작인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작품은 2016년도 작품이랍니다..


    3. 최후의 밤은 아무런 기미도 없이 닥쳤습니다.. 일상의 반복과 변함없은 주변의 세상속에서 인류를 위협하는 파괴적인 전염병은 한순간에 인간에게 다가왔고 그렇게 순식간에 세상은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전염된 인류는 좀비처럼 살아남은 슬픈 인류의 살을 물어뜯고 내장을 파헤치며 의미없은 죽음후의 삶을 살아가거나 붙박이 망령은 그렇게 전염이 된 체 시간이 멈춰진 듯 세상속에서 버려졌습니다.. 인류의 대부분은 그렇게 지구에서 버려지고 삶의 이유를 잊어먹었죠, 하지만 그런 세상속에서도 살아남은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의 이유를 확인하고 생명을 지키기위해 스스로를 지켜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인류가 그들만의 안전지대를 마련하게 되죠, 과거 뉴욕이었던 맨하턴의 한 지역에 그들만의 "제1구역"을 장벽을 설치하고 보다 안전한 장소로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맨하턴의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좀비들과 같은 해골들을 수색하고 처리하고 붙박이망령들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이 팀의 일원인 오매가대원들중 마크 스피츠라 불리우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세상의 사회가 소멸되고 종말을 겪은 후 살아남은 변화의 시기에 마크 스피츠는 스스로 견뎌내고 안전한 장벽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속에서 새로운 삶이 가능할 지를 고민하며 맨하턴의 대다수인 전염된 인간들을 제거해나가고 있죠, 3일간의 수색동안 자신의 이야기와 주변의 삶과 과거로의 회귀를 끄집어내며 마크 스피츠는 과연 인간에게 종말전과 후의 삶에 있어서 어떤 가능성이 있을 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누군가는 과거에 어떠했고 누구는 그렇게 살아남아 현재를 살아가지만 과거와 종말과 현재를 견뎌내지 못한 체 대다수의 살아남은 인류는 고통받고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죠,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의 삶은 과연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4. 단락단락 끊기는 맛은 없는 작품입니다.. 하나의 상황에서 펼쳐나가는 확장성이 아주 대단한 작품입니다.. 일종의 장광설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차분하게 문장의 내용에 집중하게 되면 그 자체의 이야기들이 주는 매력이 한껏 감정속으로 스며듭니다.. 마크 스피츠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주인공의 시선속에서 주변의 상황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찬찬하게 끄집어내는 방식은 이 작품의 성향과 감성과 배경과 주제가 주는 대중적 성향과 배치되는 느낌도 다분합니다.. 상당한 긴장감과 상황적 몰입감이 주어져야한 좀비들과의 대치상황에서 뜬금없이 과거와 각각의 인생의 중심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방식은 초반에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기도 하죠, 하지만 말 그대로 찬찬히 그 내면을 들여다볼짝시면(중학교 졸업하신 분들이라면 대체적으로 그 내면이 다 보일 듯) 작가가 의도한 메타포적 은유의 이야기가 자못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다..소설의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붙박이 망령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신박하죠, 흔한 좀비적 성향의 해골들의 공격성이 아니라 이들은 전염이 된 후 자신이 살아가던 공간속에서 자신의 삶의 행동속에서 영원히 갇힌 존재들이니까요, 소설속에서 이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존재의 의미가 없는 소멸시켜도 무방한 흩날리는 재와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종말후의 세상속에 남겨진 대부분의 인류들인게죠, 살아남은 인간이 소멸시킨 죽은자들의 붙박이 망령의 재로 뒤덮인 도시는 회색빛입니다.. 하지만 이 회색빛속에 여전히 인간은 스스로를 지켜나가려고 애씁니다.. 그게 인간의 생명력이자 삶의 욕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렵다구요, 책도 어렵습니다.. 허나 재미집니다.. 진짜루,


    5. 챕터도 없고 상황적 단락도 없고 장광설처럼 이어지는 이야기가 맥락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찬찬히' 그렇다고 인상 찌그려트리며 난독증처럼 독서를 하지않아도 그 내용에 따라 눈길을 주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감성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작가의 능력이겠죠, 작가는 설정을 흔하디 흔한 좀비적 세상의 종말론을 끌여들였고 살아남은 인류의 끊임없는 존재적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안전구역을 만들고 그 속에 또다시 인간의 세상과 사회를 만들고 살아남은 인류의 삶속에서 그들의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외치지만 사라진 과거의 기억속으로 회귀하는 살아남은 종말 이후의 인간들은 종말과 함께 다가온 끔찍한 기억을 지울 수가 없죠, 그래서 미래를 바라보는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를 되새기고 과거를 원하고 과거의 삶에 애착을 가집니다.. 그렇게 건너온 과거에서 종말을 겪은 누군가가 불사조로 현재와 미래의 인생이 과거의 세상이 다시금 만들어질 거라는 희망에 혹하는 것이죠, 하지만 주인공인 마크 스피츠라는 인물이 그려내는 세상의 황폐한 현실의 모습은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는 그의 생각이 어떠한 미래적 상상으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심리적 묘사로 작품속에서 반복되는 암시를 그려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종말을 우리가 다시금 희망으로 돌릴 수 있을까, 내가 겪은 종말의 최후의 밤에서의 기억을 없앨 수도 없고 또 지울 수도 없고 그렇게 존재가 사라져버린 대부분의 인류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소멸시키는 것이 새로운 세상, 새로운 희망의 살아남은 자들만의 안전한 세상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놓습니다.. 어렵다구요, 내용도 어렵습니다.. 허나 재미집니다.. 정말루,


    6. 솔직히 대중적 흥미를 돋우는 설정과 배경이기 때문에 상황이 주는 재미가 만만찮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똑똑한 모냥인 지 작가는 나름의 똑똑한 척하는 장광설을 끄집어내어 작품이 대중들에게 쉽게 읽히고 잊어먹게 만들지 않습니다.. 찬찬히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듯, 작가는 챕터의 상황과 구분과 시간적 의도를 무시한 체 이야기를 엮어나갑니다.. 그러니 '찬찬히' 소설의 문장에 집중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그렇하고 난독증이 막 도지고 이야기의 주제나 줄거리나 내용이 전혀 이해가 안가지는 않아요, 작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종말후의 세상의 도시속에 존재하는 살아남은 인간과 죽어버린 인간으로 대체적 은유적 표현을 하는 이유가 대강은 이해가 가는 것보니 그나마 작품의 즐거움은 있다고 봐야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더 재미있었지만 객관적으로는 작품속 이야기가 지리한 것도 사실이니 그러려니 합시다.. 서지정보에는 코맥 매카시의 '로드'에 비견되는 문학이라 했드만, 그건 좀 오바인 것 같고 그 작품에 영향을 받은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만큼 매력적인 작품인것도 맞는 것 같구요, 초중반의 이야기와 내용과 은유와 산문들의 세상속에서 마지막의 결론으로 다가가면 이 작품이 제시하는 이야기의 의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의 선택이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듭니다.. 사실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치고 이렇게 불쾌감이 없는 작품도 드물지 않을까, 여하튼 대중소설로서보다는 대중문학으로서의 작품성이 있어보이는 듯한 작품이라서 한번쯤은 읽어들보셈,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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