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은 달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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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번씩 눈을 돌리다보면 언제나 사극은 주중에 한번은 방영이 되더군요.. 그리고보면 대다수의 시청률의 상위권에 들어가는 작품들도 보면 대부분 사극이 많습디다.. 쉽게 생각해봐도 누구나 아는 용의 눈물이나 허준, 대장금같은 드라마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기억이 나네요.. 그만큼 역사라는 드라마틱한 사극적 요소들이 보여주는 재미가 만만찮다는 것이겠지요.. 이런 사극의 개념들이 요즘 들어 상당히 많이 바뀌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일종의 트렌드적 감성이 가미된 현실적 사극의 개념이 추가적으로 젊은이들의 눈까지 사로잡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자체를 그렇게 즐기지 않는데다가 특히나 사극에서의 드라마적 요소들이 그렇게 와닿지 못하는 관계로다가 그 유명한 허준 드라마도 띄엄띄엄 한번씩 볼 정도였으며 드라마속의 그 어투나 행동들이 저에게는 먼나라 이야기로 보여진 최초의 편견을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극의 요소가 가미된 국내소설들도 저에게는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데다가 궁금증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더군요.. 누가 이거 함 봐바라~~ 하면 안볼란다~라고 손사래를 치게 되었다는거지요..

 

이젠 생각을 좀 고쳐먹어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정은궐이라는 작가가 집필한 "해를 품은 달"이라는 제목의 가상역사소설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속의 시대는 조선의 사림파과 훈구파가 득세하는 시기를 중심으로 가상의 임금과 그 주변인물을 내세워 왕의 세상속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배신과 탐욕과 좌절과 복수를 다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애절한 로맨스가 중심이 되는 작품입니다.. 근데 줄거리를 말하자니 현재 TV에 방영중인 작품인 관계로다가 짧게(혹은 길게) 하지만 독자들이 무척이나 궁금할 수 있도록 적어보겠습니다.. 소설은 시작하자마자 이 나라의 임금인 훤이 온양행궁을 하다 사라집니다.. 임금의 운검인 제운과 함께 말이죠.. 그리고 훤은 그곳에서 무녀인 월을 만나게 됩니다..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는거죠..그리고 다시 소설은 7년전으로 돌아갑니다.. 휘리릭~~~

훤은 이 나라의 세자입니다.. 그리고 양명군은 훤의 형이지만 세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인게지요.. 나라에 두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허염은 훈구파가 득세하는 조정에서 왕권의 중심을 잡아줄 사림파의 수장격인 대제학 허민규의 아들입니다.. 물론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뛰어난 수재이지요.. 현재의 부왕은 그런 염을 훗날 훤이 임금이 되었을때 진정한 신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스승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시리고 아픈 사랑을 하게되는 연우가 등장하죠.. 염의 동생입니다.. 조선시대의 애절의 사랑놀이가 훤과 연우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연우는 세자빈으로 간택되게 되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자가 되지 못한 양명군의 애타는 사랑도 있습니다.. 삼각관계인거죠.. 훤은 알지못하지만 양명군은 이미 부왕에게 연우와 맺어지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부왕은 그럴려고 한거죠.. 하지만 역시 이 나라의 왕이 될 세자가 우선인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부왕은 결국 세자의 마음을 들어줍니다.. 그렇게 간택된 세자빈 연우는 어느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눈물바다입니다.. 왜, 어떻게, 무엇이 한순간에 연우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일까요?.. 허민규의 절규와 세자 훤의 비통의 눈물은 드라마를 보신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을겝니다.. 소설은 더 강합니다.. 뭔가 꽉 막힌듯한 시대적 감성과 더불어 터질듯 안으로 삭히는 감성적 묘사가 아주 충만하거덩요.. 죽입니다.. 전 그렇더군요.. 그리고 다시 7년후의 현재가 됩니다.. 훤은 임금이고 그의 옆에는 서자출신의 운검 제운이 있습니다.. 일종의 보디가드 되겠습니다.. 아니 현재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장정도 되겠군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늘 보아오고 설정이 식상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그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여하튼 소설은 다시 진행이 됩니다.. 아, 제가 민화공주를 빠트렸군요.. 세자의 동생인 민화는 염이 훤의 스승이 되었을때 반합니다.. 그리고 결국 7년후인 지금에는 염과 결혼을 했습니다.. 대강 인물적 구성은 다 마쳤군요.. 휴, 어지럽나?.. 여하튼 주인공은 이들인데 말이죠.. 소설은 왕이 된 훤과 훤이 이름을 지어준 무녀 월(과연 이 여인은 누굴까요?..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운, 염, 민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집니다.. 연우에게 벌어졌던 죽음과 함께 그동안 묻혔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게 되고 진실은 더한 고통으로 살을 헤집고 맙니다.. 이 구중궁궐의 음모에는  외척의 실세 파평윤씨일가의 권세가 떡 버티고 있는거죠.. 이 소설 장난 아닙니다.. 진짜루요..ㅋ

 

장난 아니라는 말을 써본적이 없지 싶은데 말이죠(있나?).. 솔직히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상당히 유치하고 어설픈 편견으로 펼쳤다고 이실직고해야겠습니다..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도 알지도 못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라는 작품에 대해 본 적도 없으면서 미리 유치한 내용이었을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떠든다고 저의 주리를 틀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건 뭐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전작은 차치하더라도 이 작품만 두고 보았을때 뭔가 감성적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며 저의 애절한 감성을 이렇게 자극해준 작품이 얼마나 있었던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눈물을 삼키지 않도록 안되도록 만들어 주셨더군요.. 말그대로 가슴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올라오는데도 조인성처럼 주먹을 입안으로 밀어넣고 소리를 죽여야될 그런 감정이었습니다.. 단순한 재미를 떠나서 독자에게 이렇게 감정을 문장으로 묘사로 상황으로 자극을 해주는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느꼈다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두 권 분량의 두꺼운 작품 내내 애절한 로맨스와 사랑의 아픔이 느껴져 과한 감정으로 오히려 작품의 내용에 해를 끼칠수도 있었겠지만 그 감정이 조절조차 작가가 독자들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듯 하더군요.. 정말 전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의 감성적 측면은 저에게 대박이었습니다.. 대중소설이 주는 감성적 재미에서는 최고로 치겠습니다..

 

사실 전 이 작가님이신 정은궐님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전 지식이고 뭐고 이 작품을 펼치면서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유치한 트렌드적 사극소설로 대중적 기반을 다지려는 어설픈 작가로 치부했던거죠..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사과드립니다,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분명 이러한 대중적 소재를 활용하고 캐릭터적 구성에 대해 온갖 좋은 부분만 짜집기해놓은 듯한 느낌을 주고 대중적 흥미감을 주게끔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캐릭터들의 생명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문장과 묘사들은 과히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에서 절대 악으로 치부되는 인물을 거의 드뭅니다.. 시대적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아픔을 겪는 인물들이 대다수죠.. 물론 파평윤씨의 외척세력의 중심인 윤대형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특히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묘사와 캐릭터의 성격 부여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캐릭터의 성격 구성이 아울러 독자의 감성에 대단한 공감을 불러일으킨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내용은 좀 어설프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죠.. 사실 로맨스라는 개념을 갖다 붙이면 사랑놀음에 뭔 긴장감을 주고 스릴러를 주겠습니까, 주거니 받거니하는 사랑의 세레나데나 읊어대고 거문고나 팅구면서 눈물 몇방울 흘리면 그 공감대만 독자에게 전달해주면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데 말이죠.. 하지만 내용이 더 빡빡합니다.. 상당히 많은 분량속에 치밀한 상황적 연결고리를 제대로 배치해서 독자들이 왕의 로맨스의 밑바닥에 깔린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틱한 사건의 구성을 놓치지 않게끔 만들어준 것이죠.. 물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시대적 상황인 외척의 권세와 왕권 약화의 역사적 사실을 절대적으로 배치시켜 국사를 배운 독자의 머리를 끄덕거려주는 작가의 재능적 얄팍함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월이라는 무녀에게서 밝혀지는 불편한 진실의 소용돌이속에 여지껏 말한 모든 로맨스와 추리와 스릴러와 긴장감들이 폭발적으로 담겨있는거죠.. 역시 장난아닙니다.. 전 그렇게 봤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구성에 있어 너무 많은 인물들이 관여를 하고 사건의 내막에 대한 구체적 진실이 어지럽게 나열된 부분이나 중심인물들 외에 수시로 등장하는 사건관련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의 상황적 설명들이 독자들의 추리적 관점에서는 조금은 무분별하게 등장시켜 보여주는 관계로다가 조금은 사건을 잡아내기가 어렵게 되었지 않았나싶구요.. 역시나 로맨스가 중심이고 대중적 감성에 치우친 소설이다보니 사건을 풀어나가다가 사랑이 등장하고 또 사건을 파헤치다가 바로 사랑이 등장하는 부분은 다듬을 필요가 있을수도 있는것 같은데 에이, 이런 말 할 필요도 없지 싶네요.. 사실 저한테는 그런거는 문제가 안되더라구요.. 잘 알지도 못하는 넘이 억지로 단점을 찾아내는것만큼 어설픈것도 없으니까요.. 그냥 좋으면 좋은건데 말이죠.. 예, 전 그냥 좋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독후평은 저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겠습니다만 그동안 사극이나 이런 사극투의 문장과 국내역사와 관련된 소설들을 외면하던 이유가 웬지 진지할 수밖에 없을것 같고 이로 인해 지루함의 부작용을 안겨줄것이라는 어설픈 편견을 새로운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해준 부분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저와 같은 독자분들이 있으시다면 충분히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많은 여성독자분들의 환호를 받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일테구요.. 내용적 측면의 사건의 구성들도 여느 남성독자분들의 독서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내소설을 많이 읽지 못하는 편협한 독자의 어설픈 독후감일 수 밖에 없지만 역시 뒤늦게라도 저의 취향적으로다가 이런 좋은 작가의 대중적 즐거움이 가득 담긴 작품을 접하게 되어서 무한한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게 더 좋을 듯 싶습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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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블랙 로맨스 클럽
아이작 마리온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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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진화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게 현실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든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존재성을 부여받았다면 언제나 그자리에 그대로 변화되지 않은체로 남아있는 것은 거의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진화라는 거창한 말로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여하튼 뭔가 바뀌어가는 것은 맞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입장으로 볼때 비롯된 저의 개인적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인간에게 아니 저에게 맞춰진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일종의 업그레이드와 변화를 하는 모습으로 많이 다가오더군요.. 생명이 있든 없든 세상이 변함에 따라 그것들도 따라서 변해가는 뭐 그런 이야기인거지요..

 

"웜 바디스"라는 제목이네요.. 따수븐 몸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살아있는 생명을 지칭할 수 있겠습니다.. 생명이 사라지면 살아있는 모든 것은 차가워진다는 의미이겠죠.. 그 의미의 중심에 좀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좀비라는 이 무지막지한 창조적 개념은 이전부터 미신적 토템이나 부두적 사상에 오랜 세월동안 있어왔지만 대중적인 의미의 좀비라는 말은 불과 몇십년전에 창조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죽은 자가 살아나는 개념을 두고 우린 좀비라고 부릅니다..  현시대에서는 일종의 바이러스적 질병의 대명사로 불리우기도 하죠.. 물리면 좀비가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어슬렁거리면서 살아있는 인간을 잡수시지만 머리만 뽀싸뿌리면 다시 죽음속으로 돌아가는거죠.. 하기사 장르소설 몇 권이라도 읽어보시고 성인분들은 누구나가 아시리라 믿습니다.. 대부분의 좀비영화들이 성인용이지 않나요?.. 피칠갑이 기본이니 말이죠.. 하지만 여기 이 작품은 조금은 색다른 방식입니다.. 청소년들이 전혀 거부감을 가지지 않을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피칠갑으로 산자를 뜯어먹는 행위들은 그대로입니다만 이 또한 소설속에서 진화와 변화를 겪는 부분이 보입니다.. 블랙 로맨스라는 개념을 제대로 맞춰 잡은 작품으로 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뭔가 아름답고 무지개 넘어 천사가 나발을 불어제끼는 희망가득한 로맨스의 모습보다는 조금은 더 암울하고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로맨스라고 봐도 될까 싶네요.. 오히려 요즘의 추세에서 또다른 로맨스의 진화라고 보고 싶군요.. 아님 말구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근데 좀비입니다.. 자신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죽음전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이름조차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성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좀비로서의 본능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그냥 자신의 이름에 R이라는 알파벳이 있었지 않을까 싶은 기억만 있습니다..그래서 R이라고 부르죠..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이성적 영역을 가진 M도 있습니다.. 그리니까 이 좀비가 이 소설의 화자입니다.. 일단 여기서부터 좀비가 좀비같지 않은 좀비의 생각이 전반적인 심리묘사를 해내는 모습조차도 좀비스럽지 않은 좀비의 진화라고 볼 수 있겠죠.. 어렵나요? 기존에 보드카 백만병 먹고 어슬렁거리던 모습에서 미친듯이 뛰면서 놀래키던 그들이 이제는 생각도 한다라는 개념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본능속에서 좀비는 늘 살아있는 인간으 피와 살을 요구하죠.. 여기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던 중 R은 인간을 사냥하게되고 우연히 발견한 그녀를 보게됩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애인인 페리의 뇌를 맛보는거죠.. 여기에서 이 소설속의 좀비는 인간의 뇌를 맛보게 되면 그들의 기억을 공유하거나 자신의 기억에 대입시킬 수 있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중에 하나죠.. 그녀의 이름은 줄리입니다.. 물론 살아있는 인간입니다.. R은 그녀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게 사랑이든 의무이든 호기심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그녀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자신의 공간이 공항으로 데리고가고 그녀와 좀비는 소통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이죠.. 그들의 세계로 돌아가야됩니다.. 세상이 파멸하고 이젠 스타디움이라는 공간에서 인간은 절망속에서 나름의 희망과 공유를 찾고 있습니다.. 그 곳으로 줄리는 돌아가려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되죠... 과연 이성을 가진 좀비 R과 인간 줄리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아주 좋습니다.. 읽어보세요

 

상당히 색다르면서도 어딘선가 많이 봐온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일종의 짜김기적 이미지가 많지만 또한 독창적 세계관의 느낌을 지울 수도 없다는거죠.. 오히려 이게 더욱더 즐거운 집중도를 이끌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뇌를 먹게되면 그들의 기억과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은 색다르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또한 그 행위로 인해 한 남자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남자처럼 자신의 이성과 기억이 변해가고 인간과 소통으로 인해 또다른 진화적 존재가 되어가는 모습이 아주 맛깔스럽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철학적이고 존재의 가치부여에 대한 심도 깊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좀비라는 개념이 이런 고차원적인 존재적 가치 영역을 대중적으로 끌어내려준다는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종말론적 세계관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존재한다는 그런 개념까지 일반적이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거죠.. 하지만 이런 존재적 진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나 구체적 설명들이 부족해서 그냥 그러려니하는 부분으로 정리해버리는 상황이 조금은 아쉽습니다.. 각 챕터의 이미지를 보면 해부학적 도면들이 나옵니다..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도같은 뭐 의학적 방법을 보여줄려나?..같은 생각을 하게되지만 딱히 그런 의도는 없더군요.. 하기사 로맨스를 중심으로한 대중소설의 관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전문적이길 바라겠습니까, 단순한 재미적 영역에 맞춰 생각하면 충분히 즐거운 작품이니 그것만 해도 만족스럽다고 봐야겠죠.. 고개 까딱거리며 갸오뚱하면 뭔가 잘못된 것이겠지만 말씀드린대로 그러려니하고 수긍하면 그걸로 된거죠.. 아님 말구요

 

영화화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군요.. 특히나 줄리라는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많은 바 괜찮은 선택처럼 보여지더군요.. 뭐 워낙 대중적 캐릭터의 성향을 보여주는 주체적 여성의 모습인지라 충분히 영화적으로도 잘 살려줄꺼라고 믿습니다.. 이 외에도 캐릭터적 모습들이 아주 영화적 이미지와 부합되는지라 상당히 멋진 작품이 나와주지 않을까 희망적 예상을 해봅니다.. 종말론적 세계관과 희망론적 신세계의 감각이 적절하게 어울려지면 비싼 영화비 주고 보아도 후회는 안될 듯 싶기도 하구요.. 남자 주인공도 아주 좀비스러운 외모인게 나쁘지 않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표지에서 받은 이미지적 예상과는 달리 내용이 상당히 진지하고 철학적 존재관을 피력하고 있어 조금은 놀랬네요.. 표지에서 받은 느낌은 생각보다는 가벼운 느낌이었거덩요 보다 로맨스에 많이 치중된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여하튼 가볍게 생각했다가 진중하고 즐거운 집중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행복한 독서였습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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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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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상속에서 삶을 이어나가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인간의 기능중에 하나가 망각이라는 것입니다.. 기억해낼라치면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그동안 살아온 삶속에서 꾸역꾸역 밀고 나오겠지만 제가 가진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이 망각이라는 것을 남들보다는 잘 사용을 하는(?) 관계로다가 나름 잊어먹고 사는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거지요.. 이 망각이라는 두뇌장치가 어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가려지겠지만 여태껏 살아온 저의 입장에서는 나름 좋은 영향을 주고 일종의 긍정의 힘도 불어넣어주더라는거지요.. 예를 들어 전 부부싸움을 심각하게 하고 나서도 잠을 자고 나면 뭐 때문에 그렇게 심각했었는지 잘 잊어먹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두뇌활용법이 구체화되어 있어 그동안 제가 받아온 수많은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상은 장기적인 경우로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거죠.. 하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상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꾸준한 기억의 생채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망각이라는 개념이 잊혀질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상처들이 흉터로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에 따라서 이 망각이라는 치료제가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더딜 수도 있으니까요.. 전 그러니까 망각이라는 약으로 인해 상처가 빨리 아무는 쪽이겠죠..

 

"벽은 속삭인다"라는 의미의 제목이 주는 감성은 무척이나 공포스럽습니다.. 물론 내용을 읽어가면서 이런 감정이 더욱 구체적으로 파고드는게 더 섬뜩하더군요..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제각각일겝니다.. 나랑 한 집에서 사는게 아닌 이상 각 건물이나 집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겠죠.. 한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출.입을 하면서 그 건물의 벽들은 수많은 가족의 이야기와 사람의 냄새와 삶을 기억하고 있을겁니다.. 그런 내용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파스칼린 말롱이라는 여인은 그런 벽의 속삭임을 정신적으로 공감하는 여린 감성을 가진 예민한 여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힘든 능력인거죠.. 그녀는 이혼의 상처를 극뽁!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면 새집으로 입주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집은 몇 년전 연쇄살인사건의  최초 피해자중 한명인 안나가 살해된 집인거죠.. 그 곳에서 파스칼린은 벽의 속삭임에 자신의 감성이 반응함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안나를 시작으로 6명이 더 살해된 사건을 알게되죠..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삶과 피해자들의 삶을 스스로 공감해가며 일체화시키기에 이릅니다.. 그 이유중의 하나가 파스칼린은 자신의 남편 프레드릭과 이혼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신혼초 돌연사로 죽은 딸아이의 사고 이후로 15년간 조금씩 벌어진 틈을 채울 수 없게되고 프레드릭은 새로운 여자를 찾게 된거죠.. 그런 그녀의 딸아이 엘레나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그녀의 삶의 대부분의 기억속에 숨겨져 있다가 연쇄살인마의 살인사건의 공간속에서 살해된 피해자의 입장과 공명하며 심각한 강박증세로 드러나게 되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파스칼린의 감정에 따라서 이어져 나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라하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극단적인 상황의 공감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경우에는 제가 외면하는 상황이 많죠..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일종의 집착과 강박증상의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선들이 저의 공감을 얻기에는 너무 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신병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어떻게 벽이 속삭이는 고통과 아픔의 기억을 인간이 반응하고 함께 공명하는지 그 상황조차도 그다지 다가오질 않습니다.. 아니, 모르겠습니다.. 보다 극단적이지 않고 진중하지만 약간은 평범한 공간적 공명이라면 또 제가 함께 감정이입이 되었을지도.. 하지만 상황 자체가 워낙 극단적인데다가 범죄적 자극성도 일반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저에게는 반감을 더 주더라카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에 대한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너무도 집착적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전 더 외면하고 싶더군요..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개인적 공감의 불균형이 오히려 작품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만은 딱히 감정이입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작가가 제시한 상황과 묘사방법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제인거죠.. 벽이 간직한 아픈 기억들이 누군가에게는 공명한다는 사실, 그리고 모르고 숨겨지겠지만 그 벽들은 삶의 역사를 모두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스칼린이 지닌 아이에 대한 강박적 상처 역시 누군가에게도 있을 수 있는 아픔이라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적 회의감, 나 또한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와 전혀 다르지 않은 주위의 인물이라는 사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피해자가 될수도 나의 딸이 살해될수도 있었을거라는 막연한 공포감들이 너무나 극적인 방법으로 구현되어 독자들에게 들이닥친다는거죠.. 그것도 아주 짧은 중편 정도 분량의 작품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아주 큰 감성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듯 합니다.. 특히나 마지막의 임팩트는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짜증스럽지만 일반적 관점에서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습니다..

 

독후감의 내용이 이중적으로 된 듯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다지 큰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려놓고 또 작품을 타인의 입장에서 볼때면 상당한 임팩트를 가진 독자적 관심을 가지는 작품으로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뭐 장난 똥때리는것도 아니고 헷갈려하실 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인 저의 입장으로는 망각이라는 두뇌의 회로를 나름 잘 사용하고 상처가 될만한 부분은 미리 회로를 차단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공감하기에는 저와 맞지 않는 주인공의 행동이 짜증스러웠구요.. 내용상으로는 무척이나 극단적이고 집착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과장 현실적인 우리의 삶과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공감성이 오히려 타 독자님들에게는 상당한 반향과 감성적 이입을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는겁니다.. 그래서 요거 애매합니다잉.. 누가 좀 정해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저의 감정보다는 일반적 느낌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짧지만 작품 자체가 주는 임팩트가 워낙 좋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게 만들어주는군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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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포칼립스
대니얼 H. 윌슨 지음, 안재권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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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묵시적 세계관이나 종말론적 계시론들은 인간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멋진 드라마틱한 소재중의 하나로 일종의 두려움적 재미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특히나 올해는 더이상의 달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던 2012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과나무를 심지는 못하더라도 사과라도 사서 꾸준히 먹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하튼 이런 파괴적이고 자멸적 호기심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더 많은 희망적 세상에 대한 발돋움을 할 의지를 가지는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니까요..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공간이 내탓이든 다른 누구 탓이든 사라진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지켜내고자하는 본능이 있으니 말입니다(생명이 있는 것들은 다 마찬가지겠죠).. 물론 이 모든 본능은 인간이 생각하는 세상의 희망일겝니다.. 자연은 인간의 역사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있는 그대로 그냥 두길 원하지만 인간은 이미 벌어진 일, 돌이킬순 없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종말이 아닌 희망으로 바꿔볼려고 하는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수백억년을 살아온 지구라는 공간이 비웃을 일이지 않습니까? 고작 몇만년밖에 안된 피덩어리들이 지구의 환경을 논하고 지구라는 존재성을 되먹지 못하게 좌지우지하는 것마냥 거들먹거리며 자신들이 지구상 유일한 종인마냥 떠들어대는 꼴이니까요.. 그러나 인류는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구의 주인인냥 수호신처럼 행동할 것임에는 틀림없을겁니다.. 그래서 지구의 모든 존재들이 하지 않는 분리수거와 재활용을 하는 거 아니거씀꽈

 

제목은 "로보포칼립"스라는 조합어로 되어 있습니다.. 못하는 영어로 풀어보면 로봇이라는 개념과 아포칼립스라는 단어의 조합이라고 보시면 되겠는데 말이죠.. 로봇은 로보트 찌빠같은 로봇입니다.. 아포칼립스는 일종의 종말적 묵시록이나 계시를 일컫는 말인데..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에 대한 의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를 합쳐 로봇이 인간을 배신하고 인간의 세상에 종말을 꾀하는 전쟁을 선포하고 대다수의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되고 살아남은 인류는 로봇과 마주한 전쟁을 치루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지옥같은 로보트묵시록인거죠.. 책을 펼치자마자 전쟁은 끝난 상황입니다.. 인류가 승리를 하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영웅인 한사람이 이 이야기를 정리해나가는 구성을 택하고 있습니다.. 코맥 윌리스라는 인류의 구원자중 한명이죠.. 터미네이터로 바꿔볼라치면 일종의 존 코너같은 인물인거죠.. 그가 우연히 발견한 로봇묵시록의 시작과 끝에 대한 블랙박스을 하나의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둘려고 하면서 로봇과의 전쟁의 연대기는 시작을 합니다.. 로봇이 인간처럼 생각을 하게되는 시점부터 시작해서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로봇들이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가 되어가는 과정과 수많은 인류의 죽음속에서 살아남은 영웅들의 변화과정과 마지막 전쟁까지 꼼꼼히 펼쳐내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미래적 사실감을 전달해줍니다.. 나쁘지 않다는 말입니다.

 

일종의 시간적 배열과 상황적 구성에 따른 다큐멘터리적 SF소설정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그 각각의 챕터에서의 사건적 구성은 소설의 전체적 연계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하고 그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변화과정과 영웅적 모습들은 인간적 느낌을 버리지 않은체 상황적 묘사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해내면서 로봇들의 비인간성과 인간성(?!)을 교묘하게 풀어나가고 있는것이죠.. 근데 사실 이러한 로보트들이 인간에게 대들고 인간이 혼줄이 나는 드라마틱한 소재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봐온 탓에 큰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들더군요.. 굳이 머리를 짜내고 생각해보지않아도 아이 로봇이나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들에서 미래의 세상에 대해 우리는 익히 파악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코맥이 펼쳐주는 로봇과의 전쟁의 상상적 역사의 기록속에서의 상황적 묘사들은 이런저런 영화적 이미지가 짬뽕스럽게 눈앞에 그려진다는 것이죠.. 이 점은 딱히 참신하지 못하다라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어 줍니다.. 게다가 숙주스러운 하나의 인공지능이 있다는 사실과 그 인공지능을 파괴하는 것이 로봇과의 전쟁의 결말을 다룬다는 내용도 많이 식상스럽죠.. 결론적으로 나쁘진 않지만 제가 생각하는 SF소설의 참신성과 독창성들의 즐거움은 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소재의 흥미는 독자들의 관심과 영화적 상상력을 극대화하기에 딱 적합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스필버그할배(이젠 할배맞음.)가 영화화를 한 것이겠죠.. 영화적 상상력과 이미지적 묘사가 오히려 소설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미래소설의 경우는 영상적 미학이 뒷받침되는게 더욱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가 더 쉬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특히나 윌슨 작가님이 표현해주신 상상적 로봇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에는 더할나위없는 방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대강의 이미지는 인지가 되지만 역시나 공학과는 거리가 멀어도 무척이나 먼 저의 입장에서 입체적 묘사가 가능할라치면 영화를 보는게 제일일테니까요.. 물론 소설속에 로봇의 움직임이나 전쟁상황속에서의 재창조된 로봇들의 묘사방식이 무척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라 치더라도 영화속에 구현되는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스필버그니까요..

 

어쩔 수 없는 소재의 중복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속에 구현된 종말적 로봇전쟁의 모습은 과히 파괴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인간과의 대치상황과 비정한 로봇의 획일적 인간말살의 묘사는 정말 살떨리게 공포스러웠습니다.. 이런 점이 식상할수도 있는 소재의 지루함을 덮어주기에 충분했던 것 같구요.. 영미쪽 얘네들이 무척이나 좋아라하는 영웅들의 모습도 나름 괜찮아보입니다.. 오버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보여주려는 인간에 대한 구원을 나름 적절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생각도 들구요.. 대체적으로 SO SO한 재미를 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거대한 로봇 묵시록을 한 권의 책속에 모두 담을 수 있다는 거는 조금 허술함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쓰잘데기 없는 군더더기는 과감히 던져버려야함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활약상이나 영웅적 행위들이 연대기적 기록이라는 이유로 묻혀버리는 부분이나 드라마틱한 부분이 거의 마지막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기도 하구요.. 중간중간 챕터에서 그런 영웅들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여줄려고하지만 뭔가 알맹이는 빠져버린듯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답니다.. 뭐 그렇습니다.. 영화적으로 꾸며놓으면 디테일적 부분에서 완급조절이 상당히 수월하겠지만 소설적으로는 쬐금 지루한 진행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다라는 뭐 그런 느낌?.. 소설 구성을 그렇게 해서 그런가?.. 뭐 하여튼 작가 똑똑하게 생겼습디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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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명 투어리스트
올렌 슈타인하우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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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부분과는 달리 스파이 활동이라는 직업은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직종중의 하나라는 이야기를 언듯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좀 있어보이고 007스러운 코드네임을 가진 액션이 난무하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피칠갑하고서도 끝내 살아남는 그런 이미지가 떠올려질지 모르지만 실제 스파이라는 직업에 있는 분들은 그렇질 않아라고 하던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있다는 말이죠.. 대부분의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은 현장직과 업무직 그리고 관리직으로 나눠지는데 말이죠.. 물론 현장직 - 여기서는 여행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디다 - 이것이 흔히 저희들이 영화나 드라마속에서 보아오던 그런 스파이들의 모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스파이분들은 우리네 월급쟁이 인생이랑 전혀 다르지 않은 의자에 궁디붙이고 하루쟁일 컴퓨터 들여다보고 자료 챙기고 복사하고 결재받는 일들을 한답디다..  뭐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실제 얘네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 댕기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국가기밀에 눈독들이다가는 국가보안법으로 잡혀들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각설하구요..

 

코드명은 "투어리스트"라네요.. 여행객이라는 말입니다.. 일종의 현장직 스파이를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는가 봅니다.. 스파이하면 그 대명사가 영국의 MI6나 미국의 CIA가 아니겠습니까, 무수한 국가 스파이들이 전세계에서 암약을 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린 얘네들이 전세계의 스파이질은 다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 작품의 조직도 CIA라는 미국정보기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중에서 한 주인공이 바로 여행객이라는 스파이활동을 하고 현장에서 은퇴한 후 업무와 관리직으로 살아가다 다시 사건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마일로 위버라는 인물인 것이지요.. 현장에서 은퇴할 무렵 자신이 대적한 암살자에 대한 단서를 찾아 6년동안 고생을 하던 위버는 우연히 미국내에 들어와 체포된 타이거를 심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일들과 단서들이 드러나면서 그 속에 또다른 진실이 있음을 알게되고 친구인 안젤라의 이중첩자행위에 대한 진실을 밝혀낼 임무를 받게 되죠..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의 내막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진실은 코딱지를 마침 손톱 깍은 손으로 빼낼려고 하지만 더욱더 안쪽으로 밀려올라가 듯 그렇게 자꾸만 손가락에서 멀어지는 듯 합니다.. 과연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곤욕을 치루는 마일로 위버는 헤쳐나올 수 있을까요?..

 

자, 이 부분은 스포일러니까 안보신 분들은 과감하게 다음 단락으로 패쓰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뭐랄까요, 전형적인 스파이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는 듯 합니다..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스파이들의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긴합니다.. 과장되게 액션스럽지도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지루하게 첩보활동만 하는 것이 아닌 현장직과 관리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네요 또 CIA와 국토안보국등의 기관들관의 알력과 문제점까지 현실적이면서 직설적으로 문제성을 던져주고 있으니까요.. 뭐 개인적으로 사실적 액션이 돋보였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본시리즈인데 말이죠.. 액션만 팍 줄었다뿐이지 전체적 흐름과 구성상의 의도는 본시리즈랑 상당히 비슷합니다.. 내부적 문제로 귀결되는 부분이 제법 꼬아주는 묘미가 만만찮더군요.. 딱히 스파이를 영웅시하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적이면서 비인간적인 그들의 생활을 천연덕스럽게 꼬집어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도 시리즈입니다.. 마이클 위버라는 인물이 만들어가는 시리즈로 보이네요.. 이 작품도 삼부작중 첫편인 듯 하구요.. 시리즈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죽질 않는 듯합니다..아마도요..

 

앞단락 패쓰하신 분들은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무척이나 꼬임이 많고 배신과 첩보의 이중성과 스파이의 세계의 무정함을 현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말이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우와,라고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깔아놓은 씨줄과 날줄의 이음새와 등장하는 인물들의 연관관계를 상당한 짜임새로 구성시켜 놓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만큼의 연관관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은 헷갈리고 정신없긴해도 뒤로 갈수록 묶여있던 매듭들이 쉽게 풀어내는 적응력을 만들어주더군요.. 예상보다 두껍습니다. 500페이지 가량으로 각 페이지도 나름 빽빽합디다.. 사실 해문출판사에서 출간한 작품들이 요즘 추세에 맞지 않게 이미지적인 면이나 보기 좋은 떡을 만드는 비법은 별로 없는지라 허접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이 작품이 나름 뽀대나는 이미지와 표지를 가진 작품으로 출시가 되었다면 조금 더 괜찮은 반응을 받았지 않을까하는 비전문적 출판관련 넘겨집기 예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상당히 알찬 내용과 구성으로 지루할 수도 있는 부분에서는 독자들의 추리적 영역을 구체적으로 끌어내며 흥미를 유발시키기도 하고 액션적 재미 또한 과장되지 않은 즐거움으로 집중시켜주고 스파이세계의 현실적 모습들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일깨워주기에 딱 좋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마무리부분에서 이상야릇하게 뭔가 허전함이 남는 것은 왜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름 충실한 마무리와 결말과 해결을 맛보게 해주지만 뭔가 야리꾸리빠꿈쌉싸부리짭쪼름한 허전함이 드는 것은 스파이들의 외로움 때문일까요?... 하여튼 제가 마지막으로 느낀 이런 감정은 읽어보시면 충분히 이해를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 감정은 절대로 나쁜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드립니다.. 스파이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한번 정도 보시면 후회하시지는 않을 듯 싶은 내용이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해볼까요?.. 아니다, 후회하신다고 해도 날 탓하지는 말아주시라능.. 니가 내가 아닌 이상 내가 니가 될 수 없으니 니를 보는 내가 아닌 니를 어떻게 내가 알수 있겠냐는, 취향은 제각각이라는 말씀을 다시 드리면서 마무리합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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