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제가 세상속에서 삶을 이어나가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인간의 기능중에 하나가 망각이라는 것입니다.. 기억해낼라치면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그동안 살아온 삶속에서 꾸역꾸역 밀고 나오겠지만 제가 가진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이 망각이라는 것을 남들보다는 잘 사용을 하는(?) 관계로다가 나름 잊어먹고 사는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거지요.. 이 망각이라는 두뇌장치가 어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가려지겠지만 여태껏 살아온 저의 입장에서는 나름 좋은 영향을 주고 일종의 긍정의 힘도 불어넣어주더라는거지요.. 예를 들어 전 부부싸움을 심각하게 하고 나서도 잠을 자고 나면 뭐 때문에 그렇게 심각했었는지 잘 잊어먹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두뇌활용법이 구체화되어 있어 그동안 제가 받아온 수많은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상은 장기적인 경우로 드러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거죠.. 하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상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꾸준한 기억의 생채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망각이라는 개념이 잊혀질수는 있지만 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상처들이 흉터로서 자리잡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에 따라서 이 망각이라는 치료제가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더딜 수도 있으니까요.. 전 그러니까 망각이라는 약으로 인해 상처가 빨리 아무는 쪽이겠죠..

 

"벽은 속삭인다"라는 의미의 제목이 주는 감성은 무척이나 공포스럽습니다.. 물론 내용을 읽어가면서 이런 감정이 더욱 구체적으로 파고드는게 더 섬뜩하더군요..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제각각일겝니다.. 나랑 한 집에서 사는게 아닌 이상 각 건물이나 집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겠죠.. 한 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출.입을 하면서 그 건물의 벽들은 수많은 가족의 이야기와 사람의 냄새와 삶을 기억하고 있을겁니다.. 그런 내용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파스칼린 말롱이라는 여인은 그런 벽의 속삭임을 정신적으로 공감하는 여린 감성을 가진 예민한 여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힘든 능력인거죠.. 그녀는 이혼의 상처를 극뽁!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면 새집으로 입주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집은 몇 년전 연쇄살인사건의  최초 피해자중 한명인 안나가 살해된 집인거죠.. 그 곳에서 파스칼린은 벽의 속삭임에 자신의 감성이 반응함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안나를 시작으로 6명이 더 살해된 사건을 알게되죠..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삶과 피해자들의 삶을 스스로 공감해가며 일체화시키기에 이릅니다.. 그 이유중의 하나가 파스칼린은 자신의 남편 프레드릭과 이혼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가 신혼초 돌연사로 죽은 딸아이의 사고 이후로 15년간 조금씩 벌어진 틈을 채울 수 없게되고 프레드릭은 새로운 여자를 찾게 된거죠.. 그런 그녀의 딸아이 엘레나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그녀의 삶의 대부분의 기억속에 숨겨져 있다가 연쇄살인마의 살인사건의 공간속에서 살해된 피해자의 입장과 공명하며 심각한 강박증세로 드러나게 되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파스칼린의 감정에 따라서 이어져 나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라하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극단적인 상황의 공감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경우에는 제가 외면하는 상황이 많죠..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일종의 집착과 강박증상의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선들이 저의 공감을 얻기에는 너무 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신병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어떻게 벽이 속삭이는 고통과 아픔의 기억을 인간이 반응하고 함께 공명하는지 그 상황조차도 그다지 다가오질 않습니다.. 아니, 모르겠습니다.. 보다 극단적이지 않고 진중하지만 약간은 평범한 공간적 공명이라면 또 제가 함께 감정이입이 되었을지도.. 하지만 상황 자체가 워낙 극단적인데다가 범죄적 자극성도 일반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저에게는 반감을 더 주더라카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에 대한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너무도 집착적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전 더 외면하고 싶더군요..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개인적 공감의 불균형이 오히려 작품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게만은 딱히 감정이입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작가가 제시한 상황과 묘사방법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제인거죠.. 벽이 간직한 아픈 기억들이 누군가에게는 공명한다는 사실, 그리고 모르고 숨겨지겠지만 그 벽들은 삶의 역사를 모두 기억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스칼린이 지닌 아이에 대한 강박적 상처 역시 누군가에게도 있을 수 있는 아픔이라는 사실, 이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왔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적 회의감, 나 또한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와 전혀 다르지 않은 주위의 인물이라는 사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내가 피해자가 될수도 나의 딸이 살해될수도 있었을거라는 막연한 공포감들이 너무나 극적인 방법으로 구현되어 독자들에게 들이닥친다는거죠.. 그것도 아주 짧은 중편 정도 분량의 작품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아주 큰 감성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듯 합니다.. 특히나 마지막의 임팩트는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짜증스럽지만 일반적 관점에서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습니다..

 

독후감의 내용이 이중적으로 된 듯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그다지 큰 점수를 줄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려놓고 또 작품을 타인의 입장에서 볼때면 상당한 임팩트를 가진 독자적 관심을 가지는 작품으로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뭐 장난 똥때리는것도 아니고 헷갈려하실 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인 저의 입장으로는 망각이라는 두뇌의 회로를 나름 잘 사용하고 상처가 될만한 부분은 미리 회로를 차단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공감하기에는 저와 맞지 않는 주인공의 행동이 짜증스러웠구요.. 내용상으로는 무척이나 극단적이고 집착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과장 현실적인 우리의 삶과의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공감성이 오히려 타 독자님들에게는 상당한 반향과 감성적 이입을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는겁니다.. 그래서 요거 애매합니다잉.. 누가 좀 정해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저의 감정보다는 일반적 느낌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짧지만 작품 자체가 주는 임팩트가 워낙 좋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가게 만들어주는군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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