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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평점 :
고통은 계절처럼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린 다만 그 다양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그 순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라고. 우리에게 시간은 전진하는 게 아니야. 순환할 뿐이지.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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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의 사소한 모든 행위들이 한 인간을 형성할 수도 해체할 수도 있고, 비밀스러운 방에서 행한 것을 언젠가는 지붕 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외쳐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 한 마디로, 난 나 자신의 주인이기를 그만둔 거야. 나는 더 이상 내 영혼의 선장이 아니었고,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지.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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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지고한 감정인 고통이 모든 위대한 예술의 전형이자 시금석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아. 예술가가 늘 추구하는 것은, 영혼과 육체가 하나이면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삶의 방식이야. 외양이 내면을 표현하고, 형식이 내용을 드러내는 삶이지. 그리고 그러한 삶의 방식이 아주 드문 것도 아니야. 어느 때에는, 젊음과 젊음에 관심을 두는 예술이 우리에게 그러한 본보기가 될 수 있지. 또 어떤 때에는, 현대적 풍경화가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인상을 표현함으로써, 외적인 사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땅과 공기, 엷은 안개와 도시를 외관에 걸침으로써, 그리고 분위기와 색조와 색채의 병적인 동조를 이룸으로써,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완벽한 조각을 통해 실현했던 것을 우리를 위해 그림을 통해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그 표현 속에 모든 주제가 녹아 있는 음악, 그 둘이 분리될 수 없는 음악은 복잡한 하나의 예이며, 꽃이나 어린 아이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단순한 예가 될 수 있어. 하지만 고통은 삶과 예술 모두에서 지고한 전형이 될 수 있지.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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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에 다닐 때 어떤 친구에게 ― 졸업 시험을 앞둔 6월의 어느 날 아침, 우린 새들이 지저귀는 모들린의 비좁은 산책로를 걷고 있었지 ―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 나는 세상의 정원에 있는 모든 나무들이 과일을 먹고 싶고, 마음 속에 그런 열정을 품고 세상으로 나갈 거라고.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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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물은 매일 겪는 일상의 한 부분이지. 감옥에서 울지 않는 날은 마음이 행복한 날이 아니라, 마음이 돌처럼 굳은 날이야. 그런데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보다 나를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어. 물론 그들이 날 봤을 때 나는 영광의 좌대 위에 올라서 있지 않았지. 나는 공시대에 매달려 있었으니까. 오직 상상력이 지극히 부족한 사람들만이 좌대 위에 올라서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두는 법이지. 좌대는 아주 비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공시대는 무시무시한 현실이지. 그들은 또한 고통을 좀더 잘 해석하는 법을 알아야만 했어. 난 고통 뒤에는 언제나 고통이 있다고 말했지. 그런데 그보다는 고통 뒤에는 언제나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게 현명했을 거야. 고통 속에 있는 영혼을 조롱하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야.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삶은 추할 수밖에 없어. 이 세상을 지배하는 묘하게 단순한 경제학적 논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는 것만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야. 어떤 세상의 겉모습을 뚫고 들어가 연민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경멸의 감정 말고 달리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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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좋은 의도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형편없는 예술은 모두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거든.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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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든 생각들이 벌거벗은 채로 생겨난다고 생각하지요. 내가 이야기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애하지 못하는 겁니다. 조각가는 자신의 생각을 대리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대리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2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