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 - 현대과학의 양면성, 그 뜨거운 10가지 이슈 살림 블로그 시리즈 4
이은희 지음, 류기정 그림 / 살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전문분야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런 책도 좀 쉽게 쓰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요즘 들어 철학, 과학, 역사 따위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를 위해 쉽게 만들어진 책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초등학생에게 어려운 전문지식을 쉽게 풀이해 놓은 만화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에 비하면 청소년을 위한 책들은 좀 부족해 보인다.

청소년기는 지적 호기심이 가장 왕성할 때이다.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해 보고 싶을 때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관심분야의 전체적이고 대략적인 설명을 담은 책들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 꿈을 구체화시킬 수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 이은희는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에 이어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를 통해 두 번째로 비전문가와 청소년들을 위한 과학책을 냈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통해 저자 자신의 전공분야이기도 한 생물학 전반에 관해 인해를 도왔다.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에선 현대과학 중 10가지 이슈를 골라 그 양면성을 밝히고 있다. 각 텍스트는 일정한 구성을 갖추고 있어 저자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첫 째, 항생제에 대한 논란에 앞서, 알렉산더 플레밍이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플레밍이 실수로 플레이트에 핀 푸른곰팡이를 버리지 않고 배양시킨 것이 페니실린이다. 이렇듯 과학적 발견은 때로 우연한 사건을 놓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이 때 발견된 항생제는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자를 급격히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기적의 약’으로 부른 페니실린은 그 장점만큼이나 큰 단점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무분별한 항생제 복용, 동물에 행해진 무차별 항생제 투여로 체내에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병원균이 죽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간과 동물들은 더 강력한 항생제를 사용해야 만 약효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동물의 항생제 투여로 인간은 이제 항생제를 직접 투여하지 않아도 음식을 통해 체내에 항생제 내성균을 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둘 째, 유전자 조작 식품은 어떤가, 왓슨과 크릭에 의해 이중나선 모양으로 꼬여 있는 DNA의 구조가 생물체의 유전물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유전자를 마음대로 자르고 이어 붙일 수 있게 된 것은 스미스와 네이선스에 의해서다. 그들의 발견은 생명체 유전자 재조합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이로인해 인슐린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시들지 않고 병충해에 강한 농작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유전자 조적은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인 동시 자본가들에 의해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게 때문이다. 또한 지금으로써는  유전자 조작 식물이 인체에서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알 수 상태이다.

그 외에도 시험관 아기의 탄생, 장기이식의 발전, 비만 극복 프로젝트, 환경호르몬의 공격, 백색식품 과잉시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 원자력에너지의 이용, 석유에너지의 개발을 다루면서 과학적 발견과정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담고 있으며 그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학 이슈를 다루면서 저자는 과학도로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학이 주는 폐해로 인해 연구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게 자신의 입장임을 밝히고 있다.

‘그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내놓은 결과들은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고, 나아기서는 인간의 역사를 뒤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닙니다. 그 결과가 자칫 잘못 쓰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연구 자체를 막아서는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는 장독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과학자들이 장을 담가 신경써서 돌보는지 아닌지를 감시해 때로는 칭찬도 하고 때로는 질타도 하며, 뚜껑도 씌우고 햇빛도 쬐어주어 맛있는 장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과학의 양면성이란 늘 그렇듯 과학 자체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쓰는 사람의 손에 달린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과학에 대해 무조건 맹신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제대로 알아보자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낸 의도인 것이다. 그래야만 누구든 지금 벌어지는 과학 현상에 자신의 의견을 정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 한 과학지식은 이제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독점되거나 권력과 상업적 목적에 편승해서 정의롭지 못한 것에 쓰여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관심과 비판이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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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의 시인 로니
재클린 우드슨 지음, 김율희 옮김, 조경현 그림 / 다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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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클린 우드슨 지음 / 다른 펴냄

@IMG1@<지붕 위의 시인 로니>를 읽으면서 시가 동화로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시는 이제, 소설이 되고 전기가 될 수 있으며 수필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책을 읽기 전에 분명히 이 책의 저자가 어른이란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읽다가 그만 잊어 버렸다. 책을 덮을 때쯤엔

‘ 저자가 어릴 적에 써 놓은 거라고 했던가,’

하고 다시 뒤적였다.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나이를 잊게 하고 주인공 로니의 심정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시집이다.

시는 본디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을 소재로 한다고 알고 있었다. 가상인물의 경험과 감성을 표현한 것으로 따지자면 이 시집은 동화에 가깝다. 또 그것이 일정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으며 결말에 이른다는 것에서도 일반적인 시집과는 다르다. 그런데 시로 한 권의 동화을 묶어 냈다. 아주 근사한 새로운 장르의 개척하고 있었다.

어른인 저자가 있지도 않은 어린 아이의 아픔을 읽어 내어,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궁금해서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았다. 저자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전업 작가가 되기 전까지 뉴욕에서 고아들과 가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극치료사로서 활동 했다고 한다. 추측컨대, 아마도 연극치료사로 활동시절 아이들과의 만남이 <지붕 위의 시인 로니>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싶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시집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로니는 이제 겨우 11살이다. 로니가 7살이고 동생 릴리가 4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이 화재로 돌아 가셨다. 릴리는 입양되어 새 엄마와 살고 로니는 에드나 아줌마와 산다. 로니는 일주일에 한번 동생 릴리를 만나는 날이 가장 행복하다. 이런 것 말고도 이 시집은 로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려 준다. 로니가 부모님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동생 릴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 엄마
..................

인동운모 파우더라는 게 있다.
엄마에게서 그런 냄새가 났다.
사실 인동은 꽃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건 엄마 냄새가 나는 그 파우더뿐.
가끔 그리움 때문에 정말 아파오면
난 백화점으로 달려간다. 문 앞을 지키는 경비원들이
내가 뭔가 훔쳐내기라도 할까봐 주위를 맴돈다.
난 화장품 코너 아가씨에게 혹시
그 파우더가 있는지 묻는다.
네, 라는 대답이 들려오면 난 말한다.
제가 찾는 게 맞는지 향기 좀 맡아봐도 될까요?
화장품 판매원은 눈알을 굴리며 나를 보지만
그래도 허락해 준다.

그러면 그 몇 초 동안
다시 엄마가 살아와,
엄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모두
떠올라,
...............‘

‘ 릴리

가끔씩 난 릴리의 머리를 빗질해주었다.
대부분 땋은 머리였지만
하나로 질끈 묶을 때도 있었다.
릴리는 때때로 울곤 했어.
눈물이 요만큼도 안 나오는 울음.
제법 큰 속임수였지.
백만 달러를 준대도 난
릴리의 머리를 상하게 하지 않았을 거야.

가끔씩
오늘이나 어제처럼, 아니면 내일이라도
내 마음 속을 가득 메우는 건
엄마와 릴리뿐.

머리카락과 인동운모 파우더.'

로니의 추억의 편린들은 시 습작과 함께 한다. 재빨리 사라지는 연기 기둥 같은 생각들을 잡아 시를 쓰고 행을 나누고 세부묘사를 해본다. 일본의 시 형식 중  하나인 하이쿠를 배우고 일정한 각운체계인 소네트를 배운다.  랭스턴 휴즈나 리처드 라이트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 감정표현 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로니는 시로서 친구들의 아픔을 읽어낸다.  에드나 아줌마의 사랑을 알려주며 로드니 형의 든든한 팔이 커다란 나무 그늘과 같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때론 엄마의 웃음소리가 되고 노래 소리가 된다. 시는 춤을 추고 농구공이 날아 가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 로니는 자신이 고아가 되고 동생 릴리와 같이 살 수 없는 것까지도 뜻대로 하시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성경이 서간시라는 걸 알려 준다. 그렇게 로니는 시와 함께 성장해져 간다.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 간다. 그런 아픔이 자기 비하나 원망이 아니라 시로 표현될 때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로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꼭 시가 아니더라도 하고자 하는 것(운동, 음악, 미술 따위)을 통해 감정을 다스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간다면, 누구든 성숙된 인격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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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마법사 호조의 수상한 선물 가게 내친구 작은거인 11
류가미 지음, 김정민 그림 / 국민서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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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류가미 글 / 국민서관

작가는 어릴 적에 특별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법의 지팡이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신, 나는 마법의 주문을 거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 특별하지 않아도 난 괜찮아! 괜찮아!’

내가 스스로에게 ‘나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도 괜찮아’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 키가 작아 고민하면 ‘키가 작아도 괜찮아, 난 그런 네가 좋아’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TV만화를 통해 가상세계를 접하고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상상의 세계가 만들어 낼 여유 없이 어른들이 만들어 낸 가상세계에 갇혀버리고 만다. 어린아이들에게는 풋풋한 순수한 상상의 세계가 필요하다. 생활 속에 보여 지는 문제들로 접근하여 상상력을 발휘할 때 건강한 가상세계로 나아 갈수 있다. 

컴퓨터게임 속 가상의 세계와는 달리, 동화 속 상상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상상의 세계라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올바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위대한 마법사 호조의 수상한 선물 가게’와 같은 책이 아이다운 상상력을 빌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 책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 ‘각자 자신의 개성을 소중히 생각하고 키워 나가자’, 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어린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었다. 나 역시 특별한 존재가 되는 수 없이 많은 상상들을 하며 자라났다. 때로는 가짠 줄 알면서도 원더우먼 팔찌를 사서 차던 것처럼, 터무니없이 마법과 같은 힘을 빌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싶어했다.

주인공 유정이는 평범한 아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봉팔이 생일에도 초대받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특별한 아이라 해도 한 가지씩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예은이는 마음씨 착하고 얼굴도 예쁘지만 뭐든지 느리다. 봉팔이는 운동을 잘하지만 수학공부는 못 한다. 호영이는 부자집 아이지만 뚱뚱하고 외모에 자신이 없다. 민지는 똑똑하지만 가난하다. 그래도 그 아이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특별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시선을 끌 수 있다. 적어도 유정이처럼 생일파티 초대에 제외되는 일은 없다.

특별하지 못하다는 것을 늘 속상해 하던 유정이는 그림숙제를 잘 해 눈에 띄고 싶다. 유정이는 마을 그리려고 동네를 둘러 보았다. 그러다 ‘위대한 마법사 호조의 선물가게’를 발견한다.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 찬 호조 아줌마 선물가게. 호조 아줌마는 동물과 대화 할 수 있는 안테나와 영혼을 바꾸자고 유혹적인 제안을 하지만 유정이는 거절하고 돌아선다.

며 칠 후, 반 아이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느린보 예은이의 모든 행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수학공부를 못하던 봉팔이가 안경을 끼고 나타나더니  아무리 어려운 수학문제라도 척척 풀어냈다. 뚱보 호영이는 하루 만에 날씬해져 연예인 같은 외모를 갖게 되었다. 가난한 것이 불만이던, 민지는 부자가 되어 어떤 물건이든지 마음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달라진 아이들은 다음날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유정이는 다른 행성에서 온 솔트의 편지를 받고 이상한 병에 걸린 친구들을 구하러 나선다. 재치를 발휘해 마녀에게서 마법의 지팡이를 빼앗고 마녀를 물리친다. 유정이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시선을 끌지 못해 속상해 했던 것처럼, 특별하게만 보였던 아이들도 한 가지씩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유정이 눈에 아이들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천진스럽게 즐겁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민거리를 두고 무작정 상상의 세계로  떠나서도 안 된다. 유정이는 고민거리를 마법지팡이로 풀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서 자신의 고민을 해결했다. 친구들 속에서 소외감을 느꼈지만 친구들 속에서 자신을 찾았다.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내용에 상상력을 실어 담백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예쁜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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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2005-11-0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음...검색하믄 되겠지만...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는 어떨까요?

수양버들 2005-11-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학년에겐 좀 유치할 수 있습니다.
1~2학년정도 가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을 바꾼 용기있는 아이들 -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제인 베델 지음, 김선봉 옮김, 김순금 그림 / 꼬마이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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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아이들/ 제임 베델.지음/ 꼬마이실 펴냄

어떤 역사 학자는 농담처럼 말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덜 용감했기 때문이라고. 그의 농담에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나는 어린시절 무엇에 용기를 내기 이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21명의 인물은 나이는 어리지만 각자 자신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가를 명확히 판단해 냈다. 그 현실에서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도 알았다. 용기를 내어 행동에 옮겼으며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이크발 마시흐는 1982년 파키스탄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4살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공장으로 일하러 갔다. 그 후 5년 간 일을 했지만 이크발의 빚은 처음에 20배로 늘어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크발은 주인에게 아무리 가혹한 처우를 받아도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았다. <노예 노동 해방 전선>에 가입하면서 자신이 불법적인 노예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크발은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노력했다. 1년 뒤, 카펫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이크발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노예 노동 해방 전선>은 3만 명 이상의의 어른과 어린이를 강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크발은 계속해서 어린이 인권보호를 위한 캠페인에 참여 했으며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공장 주인의 착취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알렉산드라 스콧은 갓난아기 때부터 허약한 했다. 첫 번째 생일이 지났을 때 ‘신경세포 종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렉스은 자신의 병이 치료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사선생님들이 치료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겨우 4살 밖에 되지 않은 알렉스는 레모네이드를 팔아, 소아암 환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레모네이드 판매대 캠페인>으로 확대되었다. 안타깝게도 알렉스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암과 싸우는 수천 명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루이 부라이는 시각 장애인 이였다. 그래서 그는 시각 장애인에게 어떤 글자표기가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결핵에 걸려 죽은 그 날까지 점자법을 완성시키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안 촌 폰드는 열세 살의 크메르루주 소년 병이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접해 있던 캄보디아까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북 베트남의 지지받아,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군대가 정부를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부모와 형제를 잃고 안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소년 병으로 끌려 다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안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게 되었다. 16살이 되는 해에 캄보디아에서 겪었던 일을 증언하면서 전쟁에서 고통 받는 어린이들의 실상을 고발하였다. <전쟁의 어린이>란 단체를 만들어 분쟁지역에서 겪는 어린이 희생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메리 베스 팅커는 학생이 학교 내 표현의 권리를 주장해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다. 그녀는 결국, ‘헌법이 보장하는, 학생이나 교사의 표현할 권리를 학교가 막아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얻어 냈다.

아셀 아슬레는 갈릴리(팔레스타인의 북부 지방)의 아라베라는 아랍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시작 되고  아셀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매일매일 폭력과 증오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던 중 <평화의 씨앗>이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는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여, 이제껏 증오해 왔던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였다. <중동 청소년 정상 회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소년을 한자리에 모아 <빌라르 헌장>을 마련 한다. 이들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싶대들이 서로 연락을 취하는 온라인 채팅방 <씨앗망>을 통해 글을 써서 <올리브 가지>라는 잡지에 기고했다. 아셀은 이스라엘의 점령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잔인한 폭동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영토 찾고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에이즈 환자였던 라이언 화이트는 에이즈에 걸린 어린의 권리보호를 위하여 자신 짧은 인생을 바쳤다.

레오노라 시로카는 발칸 반도에 평화를 전하는 투사이다.
 
메이얼리 산체스는 40년간 내전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콜롬비아에서  1만 명 이상의 어린이 활동가와 함께 평화 운동을 이끌고 있다.

코조 지세누는 아프리카 토고 인권 운동가이다. 코조는 신문을 통해 <긴급 경보망>을 만들어, 어린이 학대, 어린이 노예 밀매, 실종된 어린이에 대한 정보를 얻어 그들을 보호 하려는 시스템을 구축해 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과 더불어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목숨을 건 위험을 불사하고 있었다. 이 주인공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회문제로 나아갔건,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사회문제로 들어섰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아직 나이 어린 순결한 영혼이 자신과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변화 시키고 있다는 데 있었다.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아이들이 처한 환경이 어떠하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알려주고 사회참여 의식을 심어주고 있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가정과 학교 교육에서 자신의 의사표현을 억누르는 습관에 길들여진다면 아이들은 성장해서 자신이 소속한 사회를 올바로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도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이 자유로운 의사표현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의 인권을 지키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자신처럼 살아갈 거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한다. 전쟁이 있는 곳에도 자신과 같은 어린아이들이 있으며 난치병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과 이웃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려고 투쟁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린이들도 사회구성원으로써 당당히 살아가는 것을 배워나가길 바란다.

* 이 책에는 세상을 바꾼 용기 있는 아이들 21명이 사는 나라가 각장마다 지도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배경지식과 사전도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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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입니다 - 2005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대상 수상작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1
이혜란 글 그림 / 보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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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랑 한바탕하고 난 뒤면 가끔 아들아이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

“만약에 말이야, 엄마하고 아빠하고 따로 살면 넌 누구하고 살 거야?”

엄마가 뻔히 무슨 말을 기대하는지 알면서도 매정한 아들 녀석은 매번 똑 같이 대답한다.

“그야, 할아버지랑 살지 할아버지 모시고 살사람 없으니, 나라도 같이 살아야지.”

그야 말로 우문현답이다. 내 뱃속으로 낳았지만 ‘내 자식 맞나?’ 싶다.

아이의 대답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나의 11년째인 시집살이는 결혼과 함께 시작되었다. 시아버님은 혼자 시고 고령이셨다. 게다가 남편은 외아들이다.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간 셈 치자’ 굳게 각오를 다졌다. 그럼에도 시집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일단 매일 세끼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시아버님께선 8시만 되면 주무시는 습관을 갖고 계신지라, 늦어도 7시반까지는 저녁식사를 마쳐야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시집을 왔다고는 하나, 마치 산골 외딴집에 사는 기분이었다.

시아버님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처음엔 속옷 빨래를 내 놓지 못하셨다. 옷 입는 것도 신경 쓰시는 눈치였다. 화장실 사용도 조심스러워 하셨다.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을 땐, 차마 말을 못하고 수저를 내리셨다.

나는 아버님이 잔소리가 심하다 생각했지만 아버님 입장에선 하고 싶은 말씀을 많이 참고 계시는 거였다. 그러니 시집살이는 나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시아버님과 나의 침묵을 깰 아이가 바로 생겼다. 특별히 소일  거리가 없으셨던 아버님은 나의 임신상태에 대해 궁금해 하셨다. 나는 산부인과 다녀온 이야기를 아버님과 의논하기 어려웠다. 아이가 태어난 뒤 아버님은 온갖 신경을 아이에게 쏟았고 난 좀 부담스러웠다.

아이는 자라면서 친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아이가 밖에서 노는 것을 싫어 하셨다. 겨울이면 춥다고, 봄이면 황사 때문에, 여름엔 덥다고, 가을이면 바람 분다고, 걱정을 하시며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아이가 크면서 대부분의 주변 친구들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처럼 저녁시간에 규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제법 자라 혼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였다.
 
“엄마 우리 집엔 할아버지가 계셔서 친구들이 마음대로 올 수가 없어.”

하는 것이다. 사실, 아버님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시 것은 아니었다. 아버님 말씀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한 참 놀이에 열중인 아이들을 5시가 조금 넘으면 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 어쩔 수 없어, 할아버지도 너처럼 불편하신 거 많아, 그래도 참고 사시는 거야. 너도 그 정도는 참아야 해. 가족으로 함께 살려면 조금씩 양보해야 해. 친구랑 놀자고 할아버지를 혼자 사시게 할 수는 없지 않니?”

기특하게도 아이는 그 뒤로 불평하지 않다. 오히려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야단맞고 난 뒤 숨을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가 되었다. 가끔 엄마보다 할아버지 더 챙겨 섭섭하게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시아버님께서 없는 찬이나마 맛있게 드시고 팔순의 고령에도 건강하시니 다행이다.

책 속 주인공의 가족은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넷 이였다. 조그만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엄마 아빠는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할머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란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엄마 아빠도 쉽지 않은 일이였을 것이다. 그것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말이다. 할머니는 무슨 이유에선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살지 않았다. 늙고 병들어서야 마지못해 아들에게 온 것이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매일 똥 싸고 오줌 싸며 온갖 저지레를 치는 할머니를 묵묵히 받아주신다. 이런 부모님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아빠 어릴 때도 따로 살았다면서요.
그래도 안 돼.  ...... 엄마니까,
할머니는 아빠 엄마거든.
그럼 아빠, 할머니도 우리 엄마처럼
아빠를 사랑했어요?
......,
 
아빠의 이런 태도는 어려서 내가 받아 왔던, 우리 식 가정교육이다. 부모가 잘 했든, 못 했든, 자식은 부모를 부모로 모시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래야 혹시 나중에라도  내가 저지를 지도 모를 잘 못에 대해 묻지 않고 부모로써 받아드리게 된다는 우리 정서이다. 어찌 보면 장가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자신을 위한 자식교육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효를 강조한건 아니가, 하는 속된 생각을 해 보았다. 

누군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대를 인내 한다는 의미이다. 부모만이 항상 자식을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도 때가 되면 부모를 돌봐야 한다. 아들이 못 났다고 버릴 수 없듯이, 부모가  힘없고 병들었다고 버릴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이 나의 분신이라면 부모도 또 하나의 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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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1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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