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입니다 - 2005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대상 수상작 보림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 11
이혜란 글 그림 / 보림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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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랑 한바탕하고 난 뒤면 가끔 아들아이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

“만약에 말이야, 엄마하고 아빠하고 따로 살면 넌 누구하고 살 거야?”

엄마가 뻔히 무슨 말을 기대하는지 알면서도 매정한 아들 녀석은 매번 똑 같이 대답한다.

“그야, 할아버지랑 살지 할아버지 모시고 살사람 없으니, 나라도 같이 살아야지.”

그야 말로 우문현답이다. 내 뱃속으로 낳았지만 ‘내 자식 맞나?’ 싶다.

아이의 대답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나의 11년째인 시집살이는 결혼과 함께 시작되었다. 시아버님은 혼자 시고 고령이셨다. 게다가 남편은 외아들이다.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머리 깍고 절에 들어간 셈 치자’ 굳게 각오를 다졌다. 그럼에도 시집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일단 매일 세끼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시아버님께선 8시만 되면 주무시는 습관을 갖고 계신지라, 늦어도 7시반까지는 저녁식사를 마쳐야 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시집을 왔다고는 하나, 마치 산골 외딴집에 사는 기분이었다.

시아버님 역시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처음엔 속옷 빨래를 내 놓지 못하셨다. 옷 입는 것도 신경 쓰시는 눈치였다. 화장실 사용도 조심스러워 하셨다. 반찬이 입맛에 맞지 않을 땐, 차마 말을 못하고 수저를 내리셨다.

나는 아버님이 잔소리가 심하다 생각했지만 아버님 입장에선 하고 싶은 말씀을 많이 참고 계시는 거였다. 그러니 시집살이는 나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시아버님과 나의 침묵을 깰 아이가 바로 생겼다. 특별히 소일  거리가 없으셨던 아버님은 나의 임신상태에 대해 궁금해 하셨다. 나는 산부인과 다녀온 이야기를 아버님과 의논하기 어려웠다. 아이가 태어난 뒤 아버님은 온갖 신경을 아이에게 쏟았고 난 좀 부담스러웠다.

아이는 자라면서 친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아이가 밖에서 노는 것을 싫어 하셨다. 겨울이면 춥다고, 봄이면 황사 때문에, 여름엔 덥다고, 가을이면 바람 분다고, 걱정을 하시며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아이가 크면서 대부분의 주변 친구들이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처럼 저녁시간에 규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제법 자라 혼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였다.
 
“엄마 우리 집엔 할아버지가 계셔서 친구들이 마음대로 올 수가 없어.”

하는 것이다. 사실, 아버님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하시 것은 아니었다. 아버님 말씀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한 참 놀이에 열중인 아이들을 5시가 조금 넘으면 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 어쩔 수 없어, 할아버지도 너처럼 불편하신 거 많아, 그래도 참고 사시는 거야. 너도 그 정도는 참아야 해. 가족으로 함께 살려면 조금씩 양보해야 해. 친구랑 놀자고 할아버지를 혼자 사시게 할 수는 없지 않니?”

기특하게도 아이는 그 뒤로 불평하지 않다. 오히려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야단맞고 난 뒤 숨을 수 있는 유일한 은신처가 되었다. 가끔 엄마보다 할아버지 더 챙겨 섭섭하게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뭐, 시아버님께서 없는 찬이나마 맛있게 드시고 팔순의 고령에도 건강하시니 다행이다.

책 속 주인공의 가족은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넷 이였다. 조그만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엄마 아빠는 하루하루가 바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할머니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란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엄마 아빠도 쉽지 않은 일이였을 것이다. 그것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말이다. 할머니는 무슨 이유에선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살지 않았다. 늙고 병들어서야 마지못해 아들에게 온 것이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매일 똥 싸고 오줌 싸며 온갖 저지레를 치는 할머니를 묵묵히 받아주신다. 이런 부모님을 지켜보던 딸아이가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아빠 어릴 때도 따로 살았다면서요.
그래도 안 돼.  ...... 엄마니까,
할머니는 아빠 엄마거든.
그럼 아빠, 할머니도 우리 엄마처럼
아빠를 사랑했어요?
......,
 
아빠의 이런 태도는 어려서 내가 받아 왔던, 우리 식 가정교육이다. 부모가 잘 했든, 못 했든, 자식은 부모를 부모로 모시는 모습을 보이는 것. 그래야 혹시 나중에라도  내가 저지를 지도 모를 잘 못에 대해 묻지 않고 부모로써 받아드리게 된다는 우리 정서이다. 어찌 보면 장가적인 안목에서 바라본 자신을 위한 자식교육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효를 강조한건 아니가, 하는 속된 생각을 해 보았다. 

누군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대를 인내 한다는 의미이다. 부모만이 항상 자식을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도 때가 되면 부모를 돌봐야 한다. 아들이 못 났다고 버릴 수 없듯이, 부모가  힘없고 병들었다고 버릴 수 없는 일이다. 자식이 나의 분신이라면 부모도 또 하나의 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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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1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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