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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선생의 격몽요결 - 조상들의 생활과 지혜, 교육편
민족문화추진회 엮음, 김영호 그림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민족문화 추진회 엮음/ 아침나라 펴냄
아이에게 잠자리에서 다시 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저학년 때까지는 꾸준히 하던 것을
슬그머니 일을 덜었다. 바쁘기도 하고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 혼자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자기 취향에 맞는 만화책을 주로 보게 되었다. 물론 요즘 만화책은 단순한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식과 지혜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잠자리에서 만큼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고 초등 5학년이면 그래야할 나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 율곡 선생이 쓰신 격몽요결이 있어 밤마다 들려주기로 했다. 격몽요결은 율곡 이이선생이 처음으로 학문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읽어 주는 격몽요결은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요즘 어린이들에게 맞게 펴낸 것이다. 어제 아이에게 들려준 내용은 ‘오래된 나쁜 버릇을 고침’이라는 소제목으로, 아이보다 내게 더 큰 깨달음을 주어 그 내용을 적어 보고자한다.
본문내용을 요약정리 할 수도 있겠지만, 해석에 재해석을 할만한 능력이 없어 본문내용을 그대로 적는다.
‘사람들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기는 하나 용감하게 나아가고 곧바로 전진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래된 나쁜 버릇이 가로막아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쁜 버릇을 조목별로 다음에 열거하겠다. 만약 뜻을 가다듬어 이것을 철저하게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을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래된 나쁜 버릇이란 무엇인가?
첫째, 마음과 뜻을 게을리 하고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 편히 노는 데만 정신을 쓰며, 얽매이기를 매우 싫어하는 것이다.
둘째, 항상 나돌아다닐 생각만 하여 조용히 있지 못하며, 늘 분주하게 드나들면서 이야기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셋째.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미워하며 휩쓸려 다니다가 그 곳에서 빠져 나오려고 해도 그 무리들의 비위를 거스를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넷째, 자기가 지은 글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하여 경전의 글귀를 여기저기서 잘라다가 알맹이 없는 화려한 문장을 꾸미는 행동이다.
다섯째, 글씨와 편지 쓰기에 공을 들이고, 거문고 다기와 술 마시는 것으로 직업을 삼아 세월을 보내면서, 이것이 선비의 품위 있는 멋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이다.
여섯째, 한가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바둑이나 노름을 즐기면서 종일토록 배불리 먹는 일로 시간을 보내다가 티격태격 다툼질이나 하는 것이다.
일곱째, 즐기고 좋아하는 욕심 때문에 나쁜 일에 끌리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돈과 이로움, 음악과 여색이 빠져들어 그 맛을 사탕처럼 달게 여기는 것이다.
오래된 나쁜 버릇으로 마음에 해를 끼치는 것들은 대개 이와 같으나 이 외에도 일잉ㄹ이 열거하자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러한 오래된 나쁜 버릇에 젖으면 뜻을 굳건히 가질 수가 없고, 따라서 행동도 도탑고 성실할 수 없게 마련이다. 오늘 저지른 잘못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후회하고 뉘우쳤던 행동을 저녁에 다시 저지르게 된다.
그러므로 용맹스럽게 뜻응 펴서 한 칼로 나무뿌리를 잘라 버리듯 해야 한다. 마음을 깨끗이 씻어야내어 터럭만한 찌꺼지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때로 깊이 자신을 반성해서 옛날에 물든 단 한 점의 더러움도 없애야 한다.
그런 뒤에야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둘째까지는 아이를 흘끔 흘끔 보며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똑같단 생각을 했다. 그런데 셋째에서부터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 네 번째 지적은 더욱 예민하게 다가 왔는데 이 대목은 요즘 글 쓰는 이들이 경계해야할 행태가 아닌가 싶다. 잔재주로 치장된 현란한 글발로 안목 없는 이들의 찬사에 도취되어 나르시즘에 빠져 어우적대는 골을 경계하는 글이다. 학문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 것은 어찌 보면 감각이요 예술이라 할 수 있으나, 학문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과는 다르다. 감각만 있는 예술을 예술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술도 아닐 것이다.
그럼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글재주도 없거니와 글을 보는 안목도 없으니 현란한 글발에 도취되어 찬사를 연발하는 우매한 독자다.
오늘 이이선생께서 들려주신 말씀 속에서 학문하는 자와 학문을 방자하여 밥벌이 하는 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성현의 말씀은 이처럼, 진정성을 간파하여 축을 이루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도 새로운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잠자리에서 성현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자신의 일상생활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