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샘터 클래식 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르네 메틀레 그림, 김주열 옮김 / 샘터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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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화 <전나무>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1844년에 발표한 책이다. <인어공주>나 <못생긴
아기 오리>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안데르센의 가장 독특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흐르는 시간과 ‘현재의 삶을 누려라’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전나무>는 안데르센의 자전적 요소를 담고 있기도 하다.

안데르센은 1805년 오덴세에서 출생하여, 1875년 코펜하겐에서 사망한다. 그의 오덴세에서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불행했다. 할아버지는 정신병으로 죽고,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아버지는 안데르센이 11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못생긴 데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안데르센은 14세 때 홀로 코펜하겐에 정착한다. 그 곳에서 그는 30여 편의 희곡, 시, 소설, 여행기와 세 편의 자서전, 160여 편에 이르는 동화를 써 전 세계인들에게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다.

안데르센은 이런 자신의 삶의 여정과 철학을 동화 <전나무>보여주고 있다. 어린 전나무는 하루 빨리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크고 늠름한 전나무로 자라나고 싶었다. 그래서 숲에 사는 다른 나무나 동물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사람들은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전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쓰려고 잘라간다. 드디어 전나무가 바라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눈부시게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하고 따뜻한 집에서 아이들과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 파티 장에 서 있게 된다. 그러나 전나무는 그 순간을 즐기기 보다는 내일도 지금처럼 멋진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다만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행복한 미래를 기대할 뿐이다. 파티가 끝난 다음날, 전나무는 다락방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다락방 생활의 유일한 위로는 어린 생쥐들에게 숲 속이야기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큰 쥐들은 베이컨이나 비계로 만든 양초 이야기 같은 걸 원했고 생쥐들은 똑같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시시하다고 했다. 다락방 생활에 지쳐갈 무렵 전나무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어느 날 사람들이 전나무를 햇빛 있는 마당으로 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전나무는 솥 단지 아래에 던져져 활활 타는 신세가 되고 만다.

어린 시절 햇빛은 젊음을 즐기라고 무럭무럭 자라는 지금이 좋은 거라고, 숲 속에서 풋풋하게 피어나는 네 젊음이 좋은 거라 말했지만, 전나무는 햇빛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을 땐, 내일도 오늘처럼 즐거울 수 있을까 걱정한다. 장작으로 쓰이는 순간은 비참하다고 생각한 다락방 생활이 오히려 나아 보인다. 전나무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들은 ‘클럼페-덤페는 계단에 굴러 떨어졌는데도 공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에 희망을 갖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 갖고 있는 것을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고 불행해 했다. 죽기직전에 ‘현재의 삶을 누려라’라는 햇빛의 말의 의미를 깨닫지만, 때는 이미 늦는다.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어요. 꼬마 아기는 가슴에 금색 별을 달고 있었어요. 전나무가 가장 행복했던 밤에 달고 있던 별이지요. 이제 모두 끝났군요. 전나무의 일생도 끝났어요.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 이제 정말 모두 끝났어요.’

어린 시절이 가장 평화롭고 즐겁다고 해서 항상 어린이로 살수 많은 없다. 세상을 살다보면 전나무처럼 화려하지만 불안한 생활을 하기도하고 다락방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산다는 것은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안데르센이 <전나무>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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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지은 집 - 세계 각지의 전통가옥
존 니콜슨 지음, 양상현 옮김 / 현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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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손수 지은 집』세계 각지의 전통가옥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 소개한 집은 대부분 수백 년이나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것 들이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전통가옥을 만드는 방법과 건축재료, 기능 따위를 그림과 함께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통 가옥들은 짓는 방법이 어렵지 않아 가족이나 이웃들이 서로 도와 쉽게 질 수 있었다. 재료 또한 생활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갈대나 풀, 흙, 나무, 돌, 얼음 따위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구조 또한 각 지역의 기후와 자연환경에 따라 생활에 편리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책이다.


3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흙벽에 기와지붕아래 살았다. 간간히 초가지붕을 볼 수 도 있었다. 그 땐 그런 집들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조상들의 지혜를 새삼 무릎을 친다. 옛날 대부분의 집 앞엔 넓은 흙 마당이 곡식이나 나물을 말리기도하고 음식재료를 만들거나 다듬었다. 이런 마당에서 돌계단을 두 개나 올라서야, 댓돌 앞에서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를 수 있었다. 마당과 집 본체의 높이 그렇게 차이가 나서 항상 ‘왜 이리 구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했는데, 이 책을 보니 집 본체가 들어설 자리에 공간을 두고 30cm정도 이상 높게 기단을 쌓는 까닭은 집안으로 빗물이 스며드는 걸 막기 위해서란다. 옛날에 그 사실을 알았다면 불평을 덜 했을 것 같다.


다른 전통가옥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우수해 보인 부분은 역시 구들이다. 우리나라 구들이 우수한 난방기능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다른 나라 전통가옥과 비교하니 더욱 두드러진다. 구들은 다른 난방과 달리 위 보다 아래 공기는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항상 방안 공기를 상쾌하게 할 수 있다. 머리를 시원하게 해야 맑을 정신을 갖을 수 있다고 하니 여간 과학적인 구조가 아니다.


다른 나라 전통가옥 중에 기능적인 면에서 부러웠던 것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에 있는 퀸즈랜더였다. 퀸즈랜더는 2미터쯤 길이의 육중한 나무기둥을 줄 지워 세우고 그 위에다 집을 짓는다. 이런 구조 덕분에 집 밑으로 바람이 통해서 집 바닥이 시원하고 그 지방의 해로운 흰 개미가 마룻바닥을 갉아먹는 것을 막아주고 위험한 뱀을 피할 수 있게 한다. 습기가 많은 계절에는 빨래를 말릴 수도 있고 아이들이 햇빛과 비를 피해 놀 수 있다고 하니 여간 부럽지 않다.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집은 터키 앙카라 남동쪽으로 250킬로미터쯤 떨어진 아나톨리아 고원 근처에 있는 카파도키아의 동굴집이다. 이 동굴집은 수천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해서 남은 화산재가 굳어서 투파(Tufa)라고 하는 부드러운 돌이 됐다. 시간이 흘러 투파는 비바람에 깎여 점점 뾰족한 모양이 되었다. 투파에 구멍을 내 살기 시작한 것은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초기 기독교인들 이라고 한다. 현재는 투파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여행자들을 위해 몇 개 개방해 놓고 있다고 한다. 뾰족한 바위를 파고 살다니, 동화나 판타지 속에나 나오는 집이 실제 한다니 정말 흥미롭다.


『손수 지은 집』읽으면서 잠깐 우리 생활 속에서 사라진 전통가옥에 대한 향수에 졌었다. 내가 경험한 전통가옥은 정서는 이런 것이다. 소 우리가 있던 마당에선 제삿날이면, 절구질을 해서 인절미를 만들고 두부를 만들었다. 사랑채 아궁이에는 커다란 솥이 걸려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소여물을 쑤었다. 댓돌 옆에는 물기를 빼느라 세워 놓은 깨끗한 고무신. 가을날 바람 부는 날이면 지붕위로 밤 떨어지는 소리 들렸고, 항상 아랫목을 소녀들에게 양보 하시던 할머니는 새벽녘에 일어나 밤을 주어 오셨다. 옛집에서 가장 좋아 했던 곳은 뒤뜰이었다. 이끼 낀 둔덕에 온갖 희한한 풀들이 자랐는데 그 곳은 나만큼 어렸던 사촌 언니와 소꿉놀이하기 좋았다.


현대 건축물의 편리함을 누리고 살면서, 전통가옥이 좋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전통가옥에는 자연과 어울리지는 아름다운 정서가 있었으며, 이것은 오늘날의 건물양식, 생활양식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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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우리말을 담는 그릇 우리문화그림책 온고지신 5
남경완 지음, 정성화 그림 / 책읽는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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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육천 가지가 넘는 말이 있지만 그 말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글자는 고작 이백 가지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한글은 세계인 언어학자들로부터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이다.


『한글,우리말을 담는 그릇 』이런 한글이 누구에 의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으며, 글자를 모르던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이와 비슷한 책으로 창비에서 나온 『초정리 편지』라 동화가 있다. 이 책은 한글 창제가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그린 작품으로 글자를 모르는 서민들의 설움을 잘 표현해 감동을 주었다..


『초정리 편지』가 초등 3학년 이상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글 창제 당시 상황을 느낄 수 있게 했다면,『한글, 우리말을 담는 그릇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한글 창제 당시 상황은 물론이고 한글이 만들어진 원리, 한글이 만들어진 이후 서민생활의 변화 따위를 조목조목 담고 있다.



저학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이라 글과 그림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만들었으며, 상황 설명이 간단하고 분명하다. 한글과 관련된 기존의 책들이 세종대왕이라는 인물과 글자체계에 집중하여 만들어졌다면, 『우리말을 담는 그릇 한글』,『초정리 편지』는 한글 창제가 서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로서 한글 창제 당시 서민들에게 한글이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오늘날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당연 쓰고 있는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을 수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의미 있는 어린이 책이 만나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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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그림책 4
다비드 칼리 지음, 세르주 블로크 그림, 안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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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동화『적』은 표지부터가 인상적이다. 가슴 가득 훈장을 단 커다란 몸집을 가진 사내의 손은 피로 물들어 있다. 사내의 가슴에 달린 훈장이 다른 사람이의 피로 얻어진 것이라는 의미가 상징적으로 전달된다.

  그림 동화『적』에서 말하는 적은 실제 전쟁에서 서로 싸우는 상대편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적이 정말로 나의 적일까? 라는 의문을 갖는다. 전쟁터에서 나와 싸우는 상대편은 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극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은 나와 같은 인간일 수 없는 짐승 같은 존재여야 한다. 내가 적을 죽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뿐이다.

  전쟁은 길어지고 상대편 참호 속에 갇힌 적 때문에 나 역시 참호 속에 갇힌다. 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참호 밖으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서로를 경계하는 총성만 간간히 울리며 길고 지리한 전쟁만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적을 죽이고 전쟁을 끝내기로 한다. 달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 적의 참호로 쳐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적의 참호에는 적이 없었다. 나처럼 굶주림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적도 내 참호로 쳐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적의 참호에서 발견한 것은 적이 아니었다. 적의 참호 속에는 내 참호 속에 있던 것처럼 말린 고기 몇 점과 막대 비타민 몇 개, 그리고 가족사진이 있었다. 적은 극악무도한 괴물이 아니라, 나처럼 가족이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괴물 같은 적은 지휘관이 준 전쟁에 필요한 지침서에만 적혀 있을 뿐이다. 적의 지침서 안에 그려진 괴물은 적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적’이라는 글자는 다의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이나 학교, 스포츠 경기에서 나와 경쟁상대에 있는 사람을 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에서의 적은처럼 극명하게 대립해 있지는 않다. 전쟁에서의 적은 생명을 담보로 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적만큼 허구적이고 ‘나’라는 개인과 무관한 존재도 없다. 전쟁에 참여하여 총칼을 들고 싸우는 이들은 애국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에게 총칼을 겨누지만, 개인적인 명분을 따져보면 그를 내 적이라 할 수 없다. 그는 국가라는 집단을 내세워 만들어낸 위정자들 적일뿐이다.

  그림동화『적』은 전쟁에서의 ‘적’의 본질을 단순한 언어와 그림으로 극명하게 보여 주는 수작이다. 그림동화라는 간결성 때문에 보는 이의 연령에 따라 느낄 수 있는 정도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지휘자들이 준 ‘지침서’의 의미를 어른들은 이데올로기의 주입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에서의 ‘적’이라할지라도 잔인한 괴물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하기엔 충분하다. 이 처럼 단순한 구조 속에 연령에 따라 다양한 범위 해석할 수 있는 책, 그러면서도 모두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잘 만들어진 그림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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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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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는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들 가운데 한 권이다. 이 중 드 보통은 70번째라는 상징적인 자리에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올리므로 산문가로써 확고한 위치를 보여준다. 이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버지니아 울프와 나란히 이름을 같이하기에 그로서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동물원에 가기』는 드 보통이 쓴 글 중 그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글만 모아 새로 엮은 책이다.
글쓰기에 관해서 드 보통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126쪽)
그의 에세이가 바로 우리의 무릎을 치게 한다. 그는 호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황량함이 외로움을 달래준다고 한다. 그림 속 황량함과 외로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외로움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부딪치는 또 다른 외로운 여행자들 있다는 것만으로도 각자에게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내게 불행이 닥치며 나와 같은 불행을 경험을 사람을 찾게 마련이니 말이다. 드 보통은 그런 공감을 호퍼의 그림으로 잘 묘사하고 있었다.
드 보통은 그림 통한 공감을 이야기하고 음악이나 풍경은 정신의 검열관이 잠시 한눈을 팔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당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외려 생각도 쉬워진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있을 때나,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을 눈으로 좇을 때, 우리 정신에는 신경증적이고 검열관 같고, 실용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의식에 뭔가 어려운 것이 떠오를 때면 차단해버리곤 한다. 이 검열관은 기억이나 갈망이나 내성적이고 독창적인 관념들을 두려워하고 행정적이고 비인격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이나 풍경은 이 정신의 검열관이 잠시 한눈을 팔게 하는 것 같다. (19쪽)
어디 그림이나 음악, 풍경만 그러겠는가, 책 또한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잠시 도피시키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훌륭한 도구가 아닌가, 이처럼 그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풀어 다시 잘 엮어 놓은 것 듯하다. 바로 내 생각이야, 하지만 그처럼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없기에 그는 작가이고 나는 독자이다.
그는 또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남자가 자아를 잊고 그녀와 동일시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산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 43쪽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이란 노랫말처럼 보편적인 감성을 드 보통 식으로 풀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보편적인 감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 코밑 솜털이 있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그 솜털을 깎자, 그녀의 수많은 다른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코밑 솜털에 매력을 느끼다니 그 다운 발상이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에세이가 모두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일과 행복’이라는 텍스트에서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유의 가벼운 문체에 깊이와 무게 있는 내용을 실고 있다. 특히, 그가 들려준 오늘날의 노동과 직업을 갖게 한 기독교적 발상은 경악스러웠다.
메사추세츠 감독과 교회의 감독 윌리엄 로런스는 1982년에 이렇게 주장했다. “결국 부는 도덕적인 인간에게만 온다. 시편 저자가 말했듯이 가끔 악한 자가 번창하는 것을 보기도 하나, 그것은 가끔일 뿐이다. 경건한 삶에는 부가 따른다.” ( 76쪽)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제일 먼저 직업을 묻는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피고용인에게 주는 임금은 “바퀴가 계속 돌아가도록 칠하는 윤활유와 같다. 일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돈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드 보통은 노동에는 사업자와 노동자의 요구가 공존하지만, 둘 중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상업적 체제의 논리에 따라 언제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늘 불안하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이런 현실에 눈감고 일에 대한 기대를 극단적인 수준으로 올려버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슬픔이라고 한다. 인생은 오히려 고통일 수밖에 없다는 고전적 진리에 의존하는 편이 더 위로가 되고 좌절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는 희망의 길로 가는 발걸음을 막아주는 보호벽이 될 거라 한다.
드 보통의 글은 사소한 것을 특별하게 묘사하는 매력이 있다. 또한 깊이 숙지한 내용을 가벼우면서 감성적인 문체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했다. 그러니 그의 말처럼(위대한 책의 묘사하는 능력) 스스로를 대가의 반열에 이름을 나란히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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