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원에 가기』는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문인들 70명의 작품 선집들 가운데 한 권이다. 이 중 드 보통은 70번째라는 상징적인 자리에 자신의 자리를 당당히 올리므로 산문가로써 확고한 위치를 보여준다. 이는 귀스타브 플로베르, 버지니아 울프와 나란히 이름을 같이하기에 그로서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동물원에 가기』는 드 보통이 쓴 글 중 그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글만 모아 새로 엮은 책이다.
글쓰기에 관해서 드 보통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 하는 것이다.(126쪽)
그의 에세이가 바로 우리의 무릎을 치게 한다. 그는 호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황량함이 외로움을 달래준다고 한다. 그림 속 황량함과 외로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나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외로움을 잊게 한다는 것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부딪치는 또 다른 외로운 여행자들 있다는 것만으로도 각자에게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내게 불행이 닥치며 나와 같은 불행을 경험을 사람을 찾게 마련이니 말이다. 드 보통은 그런 공감을 호퍼의 그림으로 잘 묘사하고 있었다.
드 보통은 그림 통한 공감을 이야기하고 음악이나 풍경은 정신의 검열관이 잠시 한눈을 팔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당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외려 생각도 쉬워진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있을 때나,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을 눈으로 좇을 때, 우리 정신에는 신경증적이고 검열관 같고, 실용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의식에 뭔가 어려운 것이 떠오를 때면 차단해버리곤 한다. 이 검열관은 기억이나 갈망이나 내성적이고 독창적인 관념들을 두려워하고 행정적이고 비인격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이나 풍경은 이 정신의 검열관이 잠시 한눈을 팔게 하는 것 같다. (19쪽)
어디 그림이나 음악, 풍경만 그러겠는가, 책 또한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잠시 도피시키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훌륭한 도구가 아닌가, 이처럼 그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생각들을 하나하나 풀어 다시 잘 엮어 놓은 것 듯하다. 바로 내 생각이야, 하지만 그처럼 이야기를 풀어 놓을 수 없기에 그는 작가이고 나는 독자이다.
그는 또한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 남자가 자아를 잊고 그녀와 동일시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은 유혹에 필수적인 무관심에 방해가 된다. 또 상대에게 느끼는 매력은 나 자산에 대한 열등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니,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완벽함에 자기 자신을 견주어 보기 때문이다. ( 43쪽 )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이란 노랫말처럼 보편적인 감성을 드 보통 식으로 풀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보편적인 감성에만 머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 코밑 솜털이 있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는데 그녀가 그 솜털을 깎자, 그녀의 수많은 다른 매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코밑 솜털에 매력을 느끼다니 그 다운 발상이다.
이 책에 실린 그의 에세이가 모두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일과 행복’이라는 텍스트에서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유의 가벼운 문체에 깊이와 무게 있는 내용을 실고 있다. 특히, 그가 들려준 오늘날의 노동과 직업을 갖게 한 기독교적 발상은 경악스러웠다.
메사추세츠 감독과 교회의 감독 윌리엄 로런스는 1982년에 이렇게 주장했다. “결국 부는 도덕적인 인간에게만 온다. 시편 저자가 말했듯이 가끔 악한 자가 번창하는 것을 보기도 하나, 그것은 가끔일 뿐이다. 경건한 삶에는 부가 따른다.” ( 76쪽)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제일 먼저 직업을 묻는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피고용인에게 주는 임금은 “바퀴가 계속 돌아가도록 칠하는 윤활유와 같다. 일의 진정한 목적은 이제 인간이 아니라 돈이다.”라고 말한바 있다. 드 보통은 노동에는 사업자와 노동자의 요구가 공존하지만, 둘 중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상업적 체제의 논리에 따라 언제나 경제적 요구가 선택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늘 불안하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이런 현실에 눈감고 일에 대한 기대를 극단적인 수준으로 올려버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슬픔이라고 한다. 인생은 오히려 고통일 수밖에 없다는 고전적 진리에 의존하는 편이 더 위로가 되고 좌절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는 희망의 길로 가는 발걸음을 막아주는 보호벽이 될 거라 한다.
드 보통의 글은 사소한 것을 특별하게 묘사하는 매력이 있다. 또한 깊이 숙지한 내용을 가벼우면서 감성적인 문체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탁월한 능력을 소유했다. 그러니 그의 말처럼(위대한 책의 묘사하는 능력) 스스로를 대가의 반열에 이름을 나란히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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