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못 말리는 여자들 -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역사 이야기
비키 레온 지음, 최재호 그림, 손명희 옮김 / 꼬마이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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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말리는 여자들’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이렇게 대단한 여자들을 소개하면서 ‘못 말린다’는 표현은 격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고대의 위대한 여걸들’로 바꿔야 마땅하다.

이 책 속에 굳이 ‘못 말리는 여자’를 찾는다면 로마 시대의 전문 독살가 ‘로쿠스타’을 들 수 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출세하고 싶은 야망을 품었다. 돈도 인맥도 없던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약초를 이용한 독약제조 기술이다. 로마에 사는 많은 귀족들이 친척이나 경쟁자들을 은밀히 제거하기 위해 그녀를 찾았다. ‘로쿠스타’은 권력을 갖은 고객들의 비호아래 승승장구하여 독살기술을 양성하는 학교를 열 정도로 세를 키웠다.

‘로쿠스타’가 고대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뽑히게 된 까닭은 그녀의 악행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네 번째 아내인 아그리피아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옹립하기 위해 남편을 독살한다. 황제가 된 네로는 적자인 어린 동생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는데 어머니처럼 로쿠스타을 고용한다. 그리고 어머니마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제거한다.

세계의 지배자인 로마황실의 살인 기술자였던 로쿠스타는 당연 악녀이다. 그녀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여겼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다른  고대 여걸 중에 유일한 악녀로 이름이 올른 이유가 웬지 천민 출신이라는 원죄 때문인 것만 같다.

‘로쿠스타’가  하트셉수트처럼 이집트 공주로 태어났다며 그녀처럼 파라오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았을까, 사포처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녀처럼 시인이나 예술가 혹은 약초를 연구하는 학자로 이름을 남겼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차라리 그녀에게 재능이 없었거나 야망을 갖지 않았다면 적어도 후세에까지 더러운 이름으로 남지 않았을 것을 것이다.

‘로쿠스타’와 상반된 인물은 ‘히파르키아’다. 그녀는 기원전 300년경 최고의 예술과 문화, 철학이 숨쉬는 도시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 필립포스 왕이 전쟁을 치르러 갈 때 머무르곤 했을 정도로 부유했다. 그녀는 철학에 심취해 있었고 키니코스학파 중 한 사람과 결혼하였다. 키니코스학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일화로 유명한 디오게네스다. 디오게네스는 죽을 때까지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 자루 한 개만을 지니고 진흙 항아리에서 살았다.

키니코스학파는 견유(犬儒)학파라고도 한다. ‘개와 같은 생활’이란 뜻을 지니 이 학파를 따르는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의 모든 질서나 관습, 사치를 ‘개가 짓는 것처럼’ 비난하고 조롱했다. ‘냉소적이다’라는 뜻을 지니 ‘시니컬(cynical)하다’라는 말이 이 학파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이유로 ‘히파르키아’는 부와 안락함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길거리에서 먹과 자는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남자 중심의 아테네 사회에서 여자 철학자로 살았다.

로쿠스타가 부와 출세를 위해 양심을 버렸다면, 히파르키아는 모든 것을 버려 자신을 찾았다. 좀 다르게 보면, 로쿠스타는 갖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얻으려 했고 히파르키아는 갖은 것이 있기 때문에 버릴 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고대에 이름이 알려진 여인들은 공통적으로 자아강하다. 그러나 그녀들은 신분을 뛰어 넘는 예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 대부분의 여걸들이 처음부터 귀족의 딸이거나 공주라는 신분을 갖고 태어났다. 물론 모든 귀족의 딸이나 공주들이 위대한 행적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대한 여인들 속에 낀 악녀 ‘로쿠스타’가 유일하게 천민 출신이라는 것이 당시, 여인이 신분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고 있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한편, 이집트의 파라오 하트셉수트, 뛰어난 외교술로 로마을 사로잡은 클레오파트라, 고대 아시리아의 정복왕 세미라미스, 수메르의 제사장 엔헤두아나, 로마를 놀라게 한 사막의 왕 제노비아, 이스라엘 해방 전쟁을 승리로 이끈 드보라와 야엘이 등은 나라의 지도자로써 남자들 못지 않게 야망과 역량을 펼쳤다.
 
동양의 인물로는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싸운 쯩 자매가 있고, 역사 책 <한서>를 완성한 반소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 속에 묻혀 좀 생소한 인물로 ‘소서노’와 ‘허황후’가 있다. 소서노는 졸본 땅의 토착 세력으로 북부여에서 도망온 고주몽 두번째 부인이다. 그녀는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소서노는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울 때 일등공신이었고 아들 비류가 백제를 세우는 것을 도왔다. 고구려와 백제 건국의 어머니인 것이다. 허황후는 가야국의 왕 김수로의 부인이다. 아유타국에서 배에 석탑을 싣고 왔다. 우리에게 최초로 불교를 전한 것이 허황후라는 설이 있다.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자손 중 한명에게 허씨 성을 물려주었다고 한다. 허황후가 김해 허씨의 시조인 것이다.  

이 외에도 소크라테스의 스승이고 페리클레스의 연인이었던 당시 최고의 지성인 아스파시아가 있고 이집트의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인 히파티아가 있다. 히파티아는 진리와 결혼했다고 했을 정도로 학문에 몰두 했다. 그러나 기독교 광신도들에 의해 이교도로 몰려 조개껍질로 살을 찢기고 불에 태워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고대의 여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인은 단연 시인 사포이다. 사포는 레즈비언이었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에게 해의 ‘레스보스 섬에 사는 사람이나 그곳에서 난 물건’을 뜻했다. 그러니 사포를 동성애자로 오해하지는 마시라. 그녀는 수금연주와 시 쓰는 것을 좋아 했다.

‘사포는 지금 우리가 ’서정시‘라고 부르는, 개인의 감정이나 느낌을 주관적으로 읊는 시를 썼단다. 그리고 시를 그냥 읊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노래로 만들어 수금을 연주하면서 불렀어. 서정시를 영어로 ’lyric poem'이라고 하는데, ‘lyric'은 수금(lyre)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른다는 뜻이란다. ’노래가사‘라는 단어를 영어로 ’리릭(lyric)'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그녀는 젊은 여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정확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받드는 모임을 만들어 합창곡이나 종교 축제에 쓸 시도 많이 지었다. 축제가 열릴 때면 말이 끄는 전차나 소가 끄는 꽃수레를 타고 다녔다. 사포가 죽은 지 200년 뒤에 플라톤은 사포를 이렇게 칭송했다.

어떤 이들은 뮤즈가 아홉 명이라고 하나 이는 틀린 말이다. 레스보스 섬의 사포를 보라. 뮤즈는 사포를 더하여 열 명이라 해야 옳다.”

동양의 여걸들이 아들의 섭정이나 남편의 조력자로써의 권력을 취했던 것에 비해, 서양의 여걸들은 대륙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품었다. 고대 여인들도 철학이나 학문, 예술분야에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몇 명의 여인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신분적 제약으로 자신의 뜻을 펴고 사는 일은 꿈조차 품을 수 없었고, 남성의 권력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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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디샤의 여섯 번째 선물 - 지혜와 용기를 키워주는 터키 환상 동화 마음이 자라는 나무 7
아흐멧 위밋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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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목 : 파디샤의 여섯 번째 선물
저자 : 아흐멧 위밋
출판사 : 푸른숲

아흐멧 위밋은 터키에서 추리 소설로 인기 있는 작가다. 추리소설 작가가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꾸민 까닭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라고 한다. 아마 터키도 우리처럼 예전엔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던 것 같다. 지금은 TV나 컴퓨터가 옛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는 것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파디샤는 이슬람교의 군주를 뜻한다. 젊은 파디샤는 불쌍한 백성에게 자애로운 왕이었다. 그런 왕에게 한 가지 약점이라면 선행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왕의 자랑에 모든 신하들이 부화뇌동하여 아첨을 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총리대신이 왕의 버릇을 고치고자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파디샤는 총리대신의 제안을 따르기로 한다. 두 사람은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책을 고를 땐 터기의 이색적인 분위가 풍기길 기대 했었다. 생각보단 특별하지 않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일부을 읽는 기분이었다. 파디샤가 평생 간직하게 된 다섯 가지 이야기는 인생을 관리하는데 지침이 될 만한 중요한 이야기들로 꾸며 졌다. 천일야화의 천 가지 이야기 중 핵심적인 것만 모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파디샤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를 수 있소 이것은 어쩌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지. 자네들이 경험한 것들은 아주 좋은 실례라 할 수 있다오.

예를 들면 자네는 탐욕 때문에 눈이 멀었고, 대장장이는 나눌 줄을 몰라서 중요한 기회를 놓쳤지. 또 보석 상인은 흥청망청 쓴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고, 뮤에진은 인내심이 없어서 사랑하는 여자를 잃지 않았소?

모자 장수는 또 어떤가? 질투심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소. 자네들은 인가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오류들의 생생한 증거들일세. 모두 내 곁에 머물면서 바른 길을 제시해 주길 바라오."

사실, 다섯가지 이야기 속에는 어리석음만 있다. 마지막 여섯 번 파디샤에게 와서야 비로써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파디샤가 다섯 가지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평생 자문관으로 모시기로 한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교훈을 주는 좋은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해서 지혜롭지 못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듣고도 자기 것으로 받아드리지 못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많은 이야기중 이 다섯 가지 이야기를 고른 까닭은 파디샤가  평생 마음에 새겨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든 것처럼, 청소년들이 후회 없이 건실한 삶을 가꾸어 나가리 바라는 뜻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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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 달콤한 맛, 철학통조림 시리즈 2
김용규 지음, 이우일 그림 / 푸른그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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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목 :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매콤한 맛)
조 리 사 : 김용규
펴 낸 이 : 푸른그대

나는 청소년기에 언제나 풀리지 않는 고민들로 괴로워 했었다.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로 밤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 친구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이 최선 인가, 고민했었다. 또, 왜 사람들은 진지한 것은 바보스럽다 여기고, 바른 것을 말하기 두려워하면, 우수게 소리만 하려 하는지 답답했다.  그 중 나를 가장 우울하게 했던 것은 ‘나’라는 존재가 어느 누구에게도 첫 번째라는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이런 고민들을 철없던 시절  쓸데없는 생각으로 여겼다. 오늘 김용규가 쓴 청소년을 위한 철학 책을 읽고 보니, 나의 고민들은 철학규명에 대해 갈망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찌감치 김용규의 ‘철학통조림’을 만났다면 나의 청소년기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철학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만약 내가 청소년기에 이 책을 보았다면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고민들을 나보다 앞서 고민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을 때,  나는 길 잃은 목동이 북극성을 찾은 기분과 같았을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어떤 결론을 얻었으며 그것들은 또 어떤 문제를 야기 시키는 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철학자들의 결론과 새로운 문제 제기들이 내 고민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줄 수 없었더라도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에서 비롯하여 현대 철학자들에게 이르기 까지 오랫동안 탐구해온 과제라는 것을 안 순간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 모파상의 비계덩어리, 사르트르의 구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따위의 다양한 서양 고전과 함께 풀어 놓은 ‘철학 통조림’은 그 핵심정리가 잘 되어 있다.  철학을 고전문학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철학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으며 고전문학에 흥미롭게 다가서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철학적 사고를 경험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 중 2권 ‘달콤한 맛’ 끝 부분에 나오는 ‘급진적 구성주의’라고 부르는 움베르토 마트라나(1928~ )는 매우 새로운 이론을 전하고 있다. 이 이론은 본래 생물학에서 시작하였다. 동물들이 주변 환경과 상황을 어떻게 알아차리는가를 연구하던 중 알게 된 것을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발벨라가 [인식의 나무]라는 저서를 통해 ‘맹점실험’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안구 뒷면 한 곳에는 ‘맹점’이라는 것이 있다. 맹점이란 ‘보지 못하는 점’이라는 뜻이야. 그곳에는 시신경들만 모여 있고 시각 세포가 없기 때문에 빛이 들어와도 그것을 전혀 인식할 수가 없어. 때문에 우리가 한 곳을 계속해서 바라볼 경우, 그 맹점에 해당하는 어느 한 부분은 전혀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공간은 사실 맹점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거야.]

[마투라나는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공간에 깜깜한 구멍이 뚫려 있다면 불안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자기에게 들어온 시각 정보를 나름대로 구성하는 마치 구멍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라는 거야.]

[마투라나와 그의 동료들은 이밖에도 수많은 다른 실험들을 통해 동물들이 주변 환경이나 상황을 인식하는 것은 ‘저기 바깥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자기들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서 그 것을 인식한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생물학으로 접근한 마투라나의 이론은 그 이름만큼이나 새로웠다.
고전철학이 현대철학으로 넘어오면서 깊이 있는 사고의 논증과 더불어 과학적 실험와 객관적인 자료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철학의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는 까닭은 이 책이 한 시대를 자세히 다룬 것이 아니라 주요철학을 통시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이런 통시적 풀이는 철학이란 인간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생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통시적으로 듬성듬성 살펴보다 보면 오직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이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이런 인류의 역사를 참고로 우리가 살 길을 모색한다면, 또 다시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자만 살아남는다, 혹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비정한 논리에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철학의 역사에서는 시대가 처한 맹점아래서도 언제나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세네카는 죽음 앞에서 초연함으로 '인간의 이성과 도덕적 가치'를 지켜냈다. 칸트는 어떤 경우라도 도덕적 잘 못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의무론'을 주장한다. 니체는 신을 부정하고 강인한 개인인 '초인'을 내세워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었다. 공리주의 철학자들은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웠다. 이 외에도 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사상 속에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 가치를 전제하고 있는 것에 주목 되었다. 그 것이 나를 기쁘게 했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우리 청소년들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철학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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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 매콤한 맛, 철학 통조림 시리즈 1
김용규 지음, 이우일 그림 / 푸른그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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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목 :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매콤한 맛)
조 리 사 : 김용규
펴 낸 이 : 푸른그대

나는 청소년기에 언제나 풀리지 않는 고민들로 괴로워 했었다.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로 밤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 친구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이 최선 인가, 고민했었다. 또, 왜 사람들은 진지한 것은 바보스럽다 여기고, 바른 것을 말하기 두려워하면, 우수게 소리만 하려 하는지 답답했다.  그 중 나를 가장 우울하게 했던 것은 ‘나’라는 존재가 어느 누구에게도 첫 번째라는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이런 고민들을 철없던 시절  쓸데없는 생각으로 여겼다. 오늘 김용규가 쓴 청소년을 위한 철학 책을 읽고 보니, 나의 고민들은 철학규명에 대해 갈망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찌감치 김용규의 ‘철학통조림’을 만났다면 나의 청소년기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철학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만약 내가 청소년기에 이 책을 보았다면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고민들을 나보다 앞서 고민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을 때,  나는 길 잃은 목동이 북극성을 찾은 기분과 같았을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어떤 결론을 얻었으며 그것들은 또 어떤 문제를 야기 시키는 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철학자들의 결론과 새로운 문제 제기들이 내 고민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줄 수 없었더라도 나만의 고민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에서 비롯하여 현대 철학자들에게 이르기 까지 오랫동안 탐구해온 과제라는 것을 안 순간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 모파상의 비계덩어리, 사르트르의 구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따위의 다양한 서양 고전과 함께 풀어 놓은 ‘철학 통조림’은 그 핵심정리가 잘 되어 있다.  철학을 고전문학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어,  철학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으며 고전문학에 흥미롭게 다가서는 계기가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철학적 사고를 경험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 중 2권 ‘달콤한 맛’ 끝 부분에 나오는 ‘급진적 구성주의’라고 부르는 움베르토 마트라나(1928~ )는 매우 새로운 이론을 전하고 있다. 이 이론은 본래 생물학에서 시작하였다. 동물들이 주변 환경과 상황을 어떻게 알아차리는가를 연구하던 중 알게 된 것을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발벨라가 [인식의 나무]라는 저서를 통해 ‘맹점실험’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안구 뒷면 한 곳에는 ‘맹점’이라는 것이 있다. 맹점이란 ‘보지 못하는 점’이라는 뜻이야. 그곳에는 시신경들만 모여 있고 시각 세포가 없기 때문에 빛이 들어와도 그것을 전혀 인식할 수가 없어. 때문에 우리가 한 곳을 계속해서 바라볼 경우, 그 맹점에 해당하는 어느 한 부분은 전혀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공간은 사실 맹점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거야.]

[마투라나는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공간에 깜깜한 구멍이 뚫려 있다면 불안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자기에게 들어온 시각 정보를 나름대로 구성하는 마치 구멍이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이라는 거야.]

[마투라나와 그의 동료들은 이밖에도 수많은 다른 실험들을 통해 동물들이 주변 환경이나 상황을 인식하는 것은 ‘저기 바깥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자기들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서 그 것을 인식한다는 결론을 내렸단다.]

생물학으로 접근한 마투라나의 이론은 그 이름만큼이나 새로웠다.
고전철학이 현대철학으로 넘어오면서 깊이 있는 사고의 논증과 더불어 과학적 실험와 객관적인 자료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철학의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는 까닭은 이 책이 한 시대를 자세히 다룬 것이 아니라 주요철학을 통시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이런 통시적 풀이는 철학이란 인간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생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통시적으로 듬성듬성 살펴보다 보면 오직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이 기억 속에 남게 된다. 이런 인류의 역사를 참고로 우리가 살 길을 모색한다면, 또 다시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자만 살아남는다, 혹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비정한 논리에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철학의 역사에서는 시대가 처한 맹점아래서도 언제나 인간의 행복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세네카는 죽음 앞에서 초연함으로 '인간의 이성과 도덕적 가치'를 지켜냈다. 칸트는 어떤 경우라도 도덕적 잘 못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의무론'을 주장한다. 니체는 신을 부정하고 강인한 개인인 '초인'을 내세워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었다. 공리주의 철학자들은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세웠다. 이 외에도 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사상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사상 속에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언제나 도덕적 가치를 전제하고 있는 것에 주목 되었다. 그 것이 나를 기쁘게 했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우리 청소년들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철학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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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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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목 : 쥐
저자 : 아트 슈피겔만
출판사 : 아름드리

인간의 뿌리는 포유동물인 쥐와 같이 자그맣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원시 포유동물은 공룡의 세상이었던 중생대 ( 2억 5000만 년 전부터 6천 500만 년 전까지)에 공룡들이 활동하지 않는 밤에 곤충 따위를 잡아먹고 조심조심 살았다. 고등영장류 3800만 년 전에 들어서야 나타난다. 4만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신인)의 출현이후 인류는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멀리서부터 본다면 인종구분이 이루어진 시기는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만해진 인간은 인종구별을 빌미로 잔혹한 행위를 자행하고 끝 없은 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아트 슈피켈만은 유대인을 쥐로, 나치를 고양이로 표현하여 포식자 관계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숨어서 살았던 유대인을 생각한다면 타당한 설정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과정을 만화로 그린 작품으로 저자의 감정개입이나 소설적 효과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쉰들러 리스트’ 와 같은 영웅이나 극적감동은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전해들은 증언만이 생생히 전해져 올 뿐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작가 의식도 설정된 인물 속에서가 아니라 비극인 역사의 파편으로 고통 받는 또 다른 생존자로 전해질 뿐이다.

‘쥐’1권에선 능력 있는 젊은 청년 블라덱과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냐의 만남으로 전개된다. 그 시절 블라덱은 타고난 수완과 처세로 능력을 인정받아 사랑도 나누며 평화로운 가운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나치 앞에서 블라덱 역시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를 밟으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뿐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블라덱은 능수능란한 처세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 평화를 되찾지만 학살시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의 메마르고 구두쇠 같은 태도는 아들 아트을 정신병에 이르게 하고 가족 간의 단절을 낳는다.

‘쥐’ 1권을 마치고 작가는 인터뷰 내용을 2권에 ‘오랄 히스토리’의 일부분에 삽입한다.

질문 : 시청자께 당신의 책에서 얻었으면 하는 메시지가 뭔가 말씀해 주시죠?
아트 : 전 이걸 어떤 메시지 하나로 축소하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누구든 제가 원하는 바에 대해 납득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질문 : 선생님의 책이 독일어로 번역되고 있다죠? 독일 청소년들은 대학살 이야기라면 이미 질릴 정도로 듣고 봤습니다. 이 사건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왜 그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아트 : 누구에게 얘기 할까요? 하지만 나치 하에서 번성했던 많은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번창하고 있죠. 모르겠어요...... 아마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 껴야죠. 전부가 ! 영원히 말이죠 !
  
나치당은 왜 유태인을 학살 했는가 ?  아트는 아버지의 회고록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어 했을까 ?

당시 독일은 소수 유태인이 독일 전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데 대한 독일인들의 거부감이 심했다. 유럽에서 야만족이라는 평을 받던 게르만 민족이 열등감을 해소 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소수의 나치당은 이런 사회적, 역사적 현상을 이용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태인 학살을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 봤을 때 우리는 독일인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아무런 가책 없이 비방할 수 있는가? 유대인은 오랜 역사 동안 떠돌아다니면서도 그 나라에 동화되지 못하고 민족주의로 집결하지 않았던가? 유대인은 나치의 인종차별로 인해 유대인을 패이스트에 감염된 쥐처럼 학살당했다. 수만 명을 발가벗겨  가스실에 쳐 넣고 살충제를 뿌린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은 블라덱이 흑인은 모두 도둑이란 편견을 갖고 있다. 이것은 블라덱 역시 나치식 인종차별주의에 떳떳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트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 까닭은 나치의 잔혹성의 근원인 인종차별의식이 희생양이였던 유대인에게도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배척하는 모든 이들이 나치를 비난하기 앞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블라덱은 언제나 공동의 가치보다 자신의 이익 우선했다. 다른 이를 죽이고 살아 날정도로 잔혹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모든 능력을 발휘했다. 아내인 아냐와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그에게 주어진 건 진정한 삶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진정한 생존자인 아들 아트에게 자신의 생존이 옳았음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 아버지로 인해 아트는 언제나 잘 못된 축에 서야 했다. 전쟁이 끝 난지 오래지만 나치의 악몽은 여전히 그들 가족을 괴롭혔다.
 
블라덱이 아우슈비츠의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수용소에서처럼 빵 부스러기 조차 아끼는 생활을 한다. 그의 행동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자식과 부모 형제들에 대한 예의였는지? 아니면 언제 또다시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는 의문이지만 아트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아우슈비츠에서 가해졌던 만행이 우리 속에 숨어 있음을 반성하게 한다.   

유대인 학살에 관하여 어떤 허구도 생존자의 증언을 대신할 수 없다. 어둡고 칙칙한 흑백만화지만 간결한 어투로 진행되는 전개와 표현 양식은 읽는 이를 책속에 빠져들게 한다. 1권만으로도 8 년간의 작업을 했다한다. 리얼리즘의 구현을 좀더 심화시키기 위하여 편집기법을 만화에 시도한 때문이라 하니 작가가 이 작품에 기울인 정성을 짐작케 한다.


- 움베르토 에코 -

쥐는 진실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다. 두 쥐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들이 고통을 받을 땐 가슴이 아파온다. 고통과 유머, 그리고 삶의 일상적 시련을 담은 이 짧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가노라면 당신은 어느덧 한 동유럽 가족의 대화에 매료되고, 그것이 주는 부드럽고 최면에 걸리게 하는 리듬에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쥐>를 다 읽고 나면 그 신비의 세계를 떠나는 데 아쉬움을 느끼고 다시 그 세계로 이끌어갈 속편을 고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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