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제목 : 쥐
저자 : 아트 슈피겔만
출판사 : 아름드리

인간의 뿌리는 포유동물인 쥐와 같이 자그맣고 보잘 것 없는 동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원시 포유동물은 공룡의 세상이었던 중생대 ( 2억 5000만 년 전부터 6천 500만 년 전까지)에 공룡들이 활동하지 않는 밤에 곤충 따위를 잡아먹고 조심조심 살았다. 고등영장류 3800만 년 전에 들어서야 나타난다. 4만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신인)의 출현이후 인류는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인류의 역사를 이렇게 멀리서부터 본다면 인종구분이 이루어진 시기는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만해진 인간은 인종구별을 빌미로 잔혹한 행위를 자행하고 끝 없은 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아트 슈피켈만은 유대인을 쥐로, 나치를 고양이로 표현하여 포식자 관계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숨어서 살았던 유대인을 생각한다면 타당한 설정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과정을 만화로 그린 작품으로 저자의 감정개입이나 소설적 효과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쉰들러 리스트’ 와 같은 영웅이나 극적감동은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전해들은 증언만이 생생히 전해져 올 뿐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작가 의식도 설정된 인물 속에서가 아니라 비극인 역사의 파편으로 고통 받는 또 다른 생존자로 전해질 뿐이다.

‘쥐’1권에선 능력 있는 젊은 청년 블라덱과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냐의 만남으로 전개된다. 그 시절 블라덱은 타고난 수완과 처세로 능력을 인정받아 사랑도 나누며 평화로운 가운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나치 앞에서 블라덱 역시 수많은 죽음의 그림자를 밟으며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뿐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다. 블라덱은 능수능란한 처세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나 평화를 되찾지만 학살시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의 메마르고 구두쇠 같은 태도는 아들 아트을 정신병에 이르게 하고 가족 간의 단절을 낳는다.

‘쥐’ 1권을 마치고 작가는 인터뷰 내용을 2권에 ‘오랄 히스토리’의 일부분에 삽입한다.

질문 : 시청자께 당신의 책에서 얻었으면 하는 메시지가 뭔가 말씀해 주시죠?
아트 : 전 이걸 어떤 메시지 하나로 축소하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누구든 제가 원하는 바에 대해 납득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질문 : 선생님의 책이 독일어로 번역되고 있다죠? 독일 청소년들은 대학살 이야기라면 이미 질릴 정도로 듣고 봤습니다. 이 사건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왜 그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아트 : 누구에게 얘기 할까요? 하지만 나치 하에서 번성했던 많은 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번창하고 있죠. 모르겠어요...... 아마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 껴야죠. 전부가 ! 영원히 말이죠 !
  
나치당은 왜 유태인을 학살 했는가 ?  아트는 아버지의 회고록을 어떻게 정리하고 싶어 했을까 ?

당시 독일은 소수 유태인이 독일 전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데 대한 독일인들의 거부감이 심했다. 유럽에서 야만족이라는 평을 받던 게르만 민족이 열등감을 해소 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소수의 나치당은 이런 사회적, 역사적 현상을 이용하여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태인 학살을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 봤을 때 우리는 독일인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아무런 가책 없이 비방할 수 있는가? 유대인은 오랜 역사 동안 떠돌아다니면서도 그 나라에 동화되지 못하고 민족주의로 집결하지 않았던가? 유대인은 나치의 인종차별로 인해 유대인을 패이스트에 감염된 쥐처럼 학살당했다. 수만 명을 발가벗겨  가스실에 쳐 넣고 살충제를 뿌린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살아남은 블라덱이 흑인은 모두 도둑이란 편견을 갖고 있다. 이것은 블라덱 역시 나치식 인종차별주의에 떳떳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트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 까닭은 나치의 잔혹성의 근원인 인종차별의식이 희생양이였던 유대인에게도 있다는 것. 그래서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배척하는 모든 이들이 나치를 비난하기 앞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블라덱은 언제나 공동의 가치보다 자신의 이익 우선했다. 다른 이를 죽이고 살아 날정도로 잔혹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모든 능력을 발휘했다. 아내인 아냐와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그에게 주어진 건 진정한 삶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진정한 생존자인 아들 아트에게 자신의 생존이 옳았음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 아버지로 인해 아트는 언제나 잘 못된 축에 서야 했다. 전쟁이 끝 난지 오래지만 나치의 악몽은 여전히 그들 가족을 괴롭혔다.
 
블라덱이 아우슈비츠의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수용소에서처럼 빵 부스러기 조차 아끼는 생활을 한다. 그의 행동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 자식과 부모 형제들에 대한 예의였는지? 아니면 언제 또다시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는 의문이지만 아트는 아버지의 삶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아우슈비츠에서 가해졌던 만행이 우리 속에 숨어 있음을 반성하게 한다.   

유대인 학살에 관하여 어떤 허구도 생존자의 증언을 대신할 수 없다. 어둡고 칙칙한 흑백만화지만 간결한 어투로 진행되는 전개와 표현 양식은 읽는 이를 책속에 빠져들게 한다. 1권만으로도 8 년간의 작업을 했다한다. 리얼리즘의 구현을 좀더 심화시키기 위하여 편집기법을 만화에 시도한 때문이라 하니 작가가 이 작품에 기울인 정성을 짐작케 한다.


- 움베르토 에코 -

쥐는 진실로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다. 두 쥐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들이 고통을 받을 땐 가슴이 아파온다. 고통과 유머, 그리고 삶의 일상적 시련을 담은 이 짧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가노라면 당신은 어느덧 한 동유럽 가족의 대화에 매료되고, 그것이 주는 부드럽고 최면에 걸리게 하는 리듬에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쥐>를 다 읽고 나면 그 신비의 세계를 떠나는 데 아쉬움을 느끼고 다시 그 세계로 이끌어갈 속편을 고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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