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의 파라다이스 - 불의에 저항한 아들을 가슴에 묻은 이란 어머니들을 위하여 다른만화 시리즈 5
아미르 지음, 김한청 옮김, 칼릴 그림 / 다른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무섭고 화나고 슬픈 현실이 먼 나라 이란의 이야기인지 우리의 이야기인지. 시쳇말 “안녕들 하십니까”가 “알라후 아크바르”의 메아리로 여겨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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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4-01-0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 이란 시위 도중 알라후 아크바르는 통일과 단결의 감정과 더불어 아이러니와 풍자를 전달하게 되었다. “신은 가장 위대하다”라는 반복된 외침은 신정정부의 귀에는 음악처럼 들렸지만, 실상은 신을 앞세워 불법을 자행하는 정권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었다. (245쪽)

비로그인 2014-01-05 16:58   좋아요 0 | URL
댓글의 '유용성'을 하나 더 추가하셨네요^^ 저도 한번 써먹을 생각인데 법적으로 허락을 요청합니다.ㅎㅎㅎ

에르고숨 2014-01-06 13:50   좋아요 0 | URL
셀프댓글의 유용성을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거 쓰곤 하면서 깨달은 건데, 외로울 때 '혼자 놀기' 기능도 가능하더군요. 감히 제가 허락 합니다. ㅋㅋ

다락방 2014-01-06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썼다 지웠는데 문장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혀서 안 되겠다. 다시 백지를 펼친다.


그 아이는 우울했다. 그 아이는 불안했다. 그 아이는 우울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불안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술을 많이 마셨다. 이것은 자가 약물투여라고 불렸다. 우울증 약물로서의 알코올은 주지하는 바대로 나름의 결함들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효과적인 항우울제가 아니라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다(어느 의사에게든 물어보라). (푸른 밤)


항우울제.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이것, 다시 서재로 기어들게 하는 마법의 묘약.

 

<푸른 밤>은 존(Joan, 조앤) 디디온(1934-)이 딸의 죽음을 겪고 쓴 회고록이다. 디디온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빌 헤이스가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어 간직한 사람인데, 아쉽게 번역본은 두 권이 다다. 다른 하나는 <상실>이고 그나마 품절 상태. <상실>은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푸른 밤>은 그 몇 달 후 딸까지 잃은 기록이다. 우리에겐 ‘상실’의 작가로만 알려진 셈이나, 미국에서의 평은 ‘소설처럼 읽히는 저널리즘’의 필력이라니 이전에 쓰인 다른 글들도 보고 싶다.


존 디디온의 딸 퀸타나가 알코올중독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렴풋 사인이 폐렴이라고 본 것 같은데, 저자가 딸의 임종 순간이나 병중의 모습을 세세히 그리고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상실감을 기억들과 연결해 시적으로 쓴 작품이다. 그렇지만 술 마시는 딸!이라니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드링킹>의 캐럴라인(캐롤라인) 냅. ‘술, 전쟁 같은 사랑의 기록’(구판의 제목)은 엄청나게 아름답고도 처절한 술과의 러브스토리, 냅의 책에서 죽는 이는 어머니였다.

 

나는 점심을 먹다가 와인 잔을 들고 어머니 방으로 상태를 보러 갔다. 숨소리가 전보다 가쁘고 얕아져 있었다. 몇 분 후 우리는 모두 방에 모였다. 베카와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오후 1시에 돌아가셨다. 내 와인 잔은 침대 옆 나이트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자마자 그 잔을 집어 들었다. (드링킹)


몇 년 전 저 문장을 대하고 몹시 슬퍼, 나 역시 잔을 집어 드는 수밖에 다른 일을 생각 못했다. <드링킹>을 읽을 때의 취기와 아픔과 사랑을 분간하기 힘들었던 공기가 떠오른다. 마침내 술을 끊었으나 2003년 폐암으로 숨진 작가가 너무 아깝고 가슴 저렸던 기억도 나고. 술을 끊은 냅(여전히 매력적인)을 보기 위해선 게일 캘드웰을 읽으면 된다. <먼길로 돌아갈까?>. 모든 것을 함께했던 두 작가의 우정과, 먼저 떠나보내게 되는 냅을 애도하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이는 닮은 점보다 더 깊숙한 공통점은 술에 얽힌 과거였다. 중독의 본질인 가슴 속 빈방, 우리 둘 다 그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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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라인의 죽음은 심장에 뚫린 빈자리였다. 나는 그 자리를 채울 수도 없고 채우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녀의 부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이자, 마치 범죄 현장처럼 테두리를 둘러 엄중히 보존된 기억이었다. (먼 길로 돌아갈까?)


<푸른 밤>은 알코올에 관한 책이 아닌데, 어쩌다 저 <드링킹>까지 들먹였는지 (어쩌다? 책상 위 술잔!) 살짝 후회가 된다. 언젠가 본격 술 페이퍼를 쓴다면 단연 주역을 맡으실 걸작이 <드링킹>인데. 아쉽지만, 그럼에도 지금 여기서 결국은 상실감이 세 작품을 관통한다. ‘가슴 속 빈방.’ 게일 캐드웰은 책에 실린 작가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상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고, 성급하게 훈계하려 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먼 길로 돌아갈까?)


<먼 길로 돌아갈까?>가 딱 저랬고 그래서 좋았다. 성급한 훈계, 성급한 위로 모두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음을, <푸른 밤>의 존 디디온은 이렇게 쓴다.


“멋진 기억들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나중에 내게 말했다. 마치 기억이 위안이라는 듯이. 기억은 위안이 아니다. 기억은 정의상 지나간 시간, 지나간 것들이다. 기억은 벽장에 들어있는 웨스트레이크 여학교의 교복이고, 색이 바래고 구깃구깃한 사진들이고, 더 이상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보냈던 청첩장들이고, 내가 더 이상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장례식 미사 안내장들이다. 기억은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이다. (푸른 밤)


아픈 저자(들)에게 미안하게, 아니 고맙게도 내가 위로 받는다. 가슴 속 빈방을 알아주어서, 좀체 가셔지지 않는 갈증을, 결핍감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작품들을 쓰면서 저자 본인들도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으면 무엇보다 좋겠다. 캐롤라인 냅은 지금도 몹시 그립다. 마치 내 술친구였던 것 같은 느낌으로. 자, 자가약물투여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꽐라 선생 당신들 가슴 속 빈방도 가만히- 생각해보는 새해 첫 불금.


술꾼들은 서로 알아본다. 무리 속에서도 우리는 금세 짝패를 찾아낸다. 그것은 초보 엄마나 퇴역병사처럼 공통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잘 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정 종류의 음악 -‘한 잔 더’라는 합창- 을 연주하기 위해 한 가지 음계로 조율되어 있으며, 누가 그 음악을 들으며 그 출렁거리는 유혹을 이해하는지, 누가 그러지 않는지를 판별할 줄 안다. 당장 첫 잔을 들이켜고 싶어 안달이 난 술꾼은 어김없이 그 음악을 듣는다. (드링킹)

 

tchin-tc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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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1-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에 덜깨서 읽기에 아주 좋은 글이네요. 술꾼들이 서로를 알아본다는 구절에서 제가 에르고숨님의 서재에 왜 들락거리게 됐는지 알았다는 ㅋㅋㅋㅋㅋㅋ 술꾼들의 사랑방 같아요. ㅋㅋ 여튼 오늘은 챈들러가 땡기지만 그냥 크리스티아줌마의 글이나 읽으며 시간을 죽여야겠네요. 숙취가 가실 때까지. (매번 글 내용과 상관없는 덧글 달아서 죄송ㅋㅋㅋㅋㅋ)

에르고숨 2014-01-04 19:34   좋아요 0 | URL
술꾼들의 사랑방ㅋㅋㅋ 술주정도 하시고 때로는 토!도 하세요. 등 팍팍 쳐드립니다. 숙취 중에 저는 책을 전혀 못 읽겠던데, 대단하신걸요. 크리스티 주말 좋아 보여요. 금욜술 어서어서 깨시고 슬슬 토욜잔을 들어봅시다으하하- 즐토. (글 내용과 상관있든 없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괘념치 마세욤.)

moonnight 2014-01-0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에르고숨님. 저는 달밤이라고 합니다. 다락방님 서재에서 댓글로 뵙고 찾아왔습니다. ^^

몰래 들여다보고 나가려 했건만;;; 댓글을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페이퍼네요. 오. 캐롤라인 냅. ㅠ_ㅠ
저역시 (거의) 매일밤 항우울제를 자가약물투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드링킹>을 읽었을 때의 공감과 아픔은 정말 컸었어요. <먼 길로 돌아갈까?>를 읽었을 땐, 냅이 사망했을 때 최소한 외롭진 않았구나. 하고 안심하면서 울고 웃고 했었구요.
마치 내 술친구인 것 같은 기분으로 캐롤라인 냅을 그리워하신다는 말씀, 어찌나 와닿는지요. 저도 무척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ㅠ_ㅠ

<푸른 밤>도 덕분에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에르고숨 2014-01-04 19:36   좋아요 0 | URL
오, 달밤 님, '냅'이 마치 무슨 (술꾼)접선암호 같은 이 느낌은 뭘까요. 지금 찾아보니 <드링킹>이 달밤 님 '내 인생의 책들' 페이퍼에 땋! 몰라 뵈어서-_-; 좋아서^_^ 미안하고 반갑습니다. 저는 구판으로 갖고 있는데 저 역시 인생의 (술)책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답니다.
한편 <푸른 밤>을 퍽 좋아하기에는 뭔가 좀 껄끄러운 게, 아마 존 디디온의 '이전'이 우리에게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짜고짜 마지막 말부터 듣는 느낌이랄까요. 저에겐 좀 그랬어요. 혹시 기대하실까하는 걱정에 부연하자면, 술 얘기도 저기 인용한 부분이 다예요.
냅 동지임을 알려 오셔서 고맙습니다, 달밤 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비로그인 2014-01-05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쓰든 우아합니다.
알콜에 관한 페이퍼를 '무음주' 상태에서 쓰셨을 거란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만큼, 우아하고 정교합니다.

그리하여 이쯤에서 제가 만든 표어 하나.^^;
" 무음주 알콜페이퍼는 무면허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에르고숨 2014-01-06 13:52   좋아요 0 | URL
에그머니, 견디셔 님은 칭찬이 너무 후하셔서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 페이퍼 쥐어짜면 술이 한 바가지 흐를 텐데, 엄청 절제했나 봅니다. 말짱한 눈에 심하게 부끄럽지 않은 걸 보면요. ㅋㅋ 무면허 음주운전은 안 되니까네, 저의 무음주 술페이퍼도 불가능한 것으로- ㅎㅎ
 
푸른 밤
존 디디온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위안이 될 수 없는 기억들, 사무치는 상실감, 노화의 고통과 두려움이 녹아든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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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1-04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르고숨님, 건배! (잊지 않았습니다)

에르고숨 2014-01-04 00:57   좋아요 0 | URL
오, 저 페이퍼나부랭이 쓰고 있을 때 오셨나봅니다. 당근 건배요!
 
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 정치판에서 CIA가 암약하는 게 그렇게 큰 비밀이라 할 수는 없지만 중후하고 매력적인 문장 덕에 흥미롭게 읽힌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는 아니고, 차분한 진행이 퍽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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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1-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르고숨님 건배! 나 이 책 읽었어요!!

에르고숨 2014-01-02 22:58   좋아요 0 | URL
제가 그걸 모를 것 같아요?... 음주에 열중하도록 하세욘-

다락방 2014-01-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음주중이에요 홍홍홍

에르고숨 2014-01-02 22:52   좋아요 0 | URL
건배 완료요! 맛있게 드세욤.

다락방 2014-01-02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롱-

Forgettable. 2014-01-03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락방님 꽐라네 ㅋㅋㅋㅋㅋ 귀엽 >< 전 이 책 안봤습니다.

에르고숨 2014-01-03 09:15   좋아요 0 | URL
16년 고수 꽐라 다락방 선생 다녀가셨고요, 뽀 님 이 책 안 보셨군요, 네 알고 있겠습니다. ㅋ
 
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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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해당 공간-아프리카 어느 지역 바나나 농장의 집과 마당 및 주변-평면도를 그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 사랑을 바치겠다. (사랑 외엔 드릴 게 없다) 극사실주의인 척, 건물 그림자의 각도, 테라스의 구조, 의자의 위치, 타일의 모양 등을 치밀하게 묘사하지만 머릿속에 그려보려 애쓰면 애쓸수록 전체적인 구조가 아련하게 멀어진다. 숱하게 등장하는 오른쪽 왼쪽, 동서남북, 두 번째 창문, 복도와 면한 벽, 사무실, 부엌 모두 볼 때마다 온통 낯설다. 이건 평소 방향감각과도 어쩌면 상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나 같은  ‘방향치’가 아니라 날 때부터 머릿속에 나침반을 장착하여 살고 있는 독자에게는 이 공간이 어떻게 다가갈지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또 그런 사람들은 현기증 같은 거 잘 느끼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의문도 문득 든다.

 

jalousie [ʒaluzi] : 1. 질투, 시기  2. 강한 애착, 집착  3. 미늘덧문, 블라인드

         

     

                   

                                                                                (오드리 햅번 말고 블라인드를 보셔야 한다)


 

지금 기둥-지붕의 남서쪽 모서리를 받치고 있는 기둥-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집의 정면 테라스의 중심부를 지나 바닥의 포석까지 닿아 있다. 테라스에는 저녁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도록 팔걸이의자들이 놓여 있다. 벌써 그림자의 끄트머리는 집의 정면 중앙에 있는 현관에 거의 다다랐다. 집의 서쪽 박공 위로 태양이 대략 1미터 50센티미터 높이에서 박공의 나무를 비추고 있다. 따라서 이쪽으로 나 있는 세 번째 창문에 블라인드jalousies가 내려져 있지 않았다면 햇빛이 방 안 가득 비쳐들었을 것이다. (12쪽)


jalousie가 처음 등장하는 부분이다. 각주에 ‘(…)블라인드의 틈새를 통해 아내의 부정을 감시하는 남편(화자)을 암시하는 이 작품에서, ‘블라인드’는 ‘질투’라는 감정이 물화된 표상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의 집요한 시선이 전부인 답답한 소설. 그러나 제목이 ‘질투’인 탓에(덕에) 그 시선이 끔찍하게 팽팽하면서 동시에 절망적으로 처량하다. 아내(A…)가 방에서 몰입하여 쓰는 편지, 연한 파란색 편지지는 이웃 남자 프랑크의 주머니에서 끄트머리가 삐죽 관찰되며 좀체 틈입하지 않는 화자의 아주 희박한 의견(트럭 운전수에 관한)은 그 둘의 의견과는 대립한다. 프랑크와 아내가 같은 책을 읽고 나누는 대화와 둘의 시내 외출 계획을 듣는다(듣기만 한다).

 

세 사람의 식사 장면과 식후 테라스에 모여 앉는 장면, A…가 방에서 편지를 읽거나 쓰는 장면, 머리를 빗는 장면과 벽에 출현한 지네를 눌러 죽이는 장면들은 무한 반복되며 조금씩 변주되고 살짝 틀어지기도 한다. 가장 훌륭한 변주로 꼽아 볼 수 있는 장면이 ‘지네 컷’인데, 거리를 두고 반복되는 세 장면을 연이어 옮겨본다. 모아놓고 보니 변주가 어찌나 정교하고 질투로 촘촘한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프랑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A…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손엔 냅킨을 들고 있다. 그는 냅킨을 돌돌 말아 쥐고는 벽 쪽으로 간다. A…의 숨소리가 가빠지는 것 같다. 아니,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왼손은 나이프를 점점 더 꽉 움켜쥔다. 가느다란 더듬이들이 교대로 빠르게 움직인다. 갑자기 지네는 몸을 활처럼 구부리더니 긴 다리를 전속력으로 움직이며 바닥 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오기 시작한다. 이때 둥글게 만 냅킨이 잽싸게 덮친다. 벌레보다 빠르게.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손이 나이프 손잡이를 움켜쥐고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표정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프랑크는 벽에서 냅킨을 떼고는 발로 타일 위에 있는 무엇인가를 주춧돌에 대고 짓이긴다. (44-45쪽)


벌레는 벽 한가운데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약한 불빛인데도 밝게 페인트칠한 벽 위에 그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프랑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A…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소리 없이 일어선다. A…도 지네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프랑크는 둥글게 만 냅킨을 손에 쥐고 벽 쪽으로 다가간다. 손가락이 가느다란 손이 새하얀 식탁보를 움켜쥐고 경련을 일으켰다. 프랑크는 벽에서 냅킨을 떼고는 발로 타일 위에 있는 무언가를 주춧돌에 대고 짓이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뒤쪽 찬장 위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램프의 오른쪽 자리다. (66-67쪽)


프랑크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수건을 든다. 그것을 둥글게 말아서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지네를 벽에다 짓이긴다. 그다음 침실 바닥에 대고 다시 한번 발끝으로 짓이긴다. 이어서 그는 침대로 돌아가면서 수건을 세면대 옆 수건걸이에 다시 걸어둔다. 손가락 관절이 가느다란 손이 새하얀 침대보 위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벌리고 있던 다섯 개의 손가락을 너무 세게 그러쥐어 그 사이로 천이 말려 들어갔다. 천은 다섯 가닥으로 주름이 잡혀 있다……. 그러나 침대의 모기장이 내려지면서 수많은 그물코로 이루어진 반투명의 천이 침대를 뒤덮어버린다. 사각형의 헝겊이 모기장의 찢어진 부분에 덧대어 있다. (110쪽)


차이가 보이도록 볼드체를 입혔다. 부엌의 사건으로부터 세 번째 반복지점에서는 어느새 침실의 사건으로 변모되고 있다. 냅킨에서 수건으로, 부엌 바닥에서 침실 바닥으로, 식탁보가 침대보로 은밀하게 슬쩍 바꿔치기 되는 단어들.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화자의 치밀한 시선이 그대로 독자에게도 요구된다. 미간이 다 아픈 독서가 아닐 수 없다.

지네와 관련해서 화자가 하는 일 역시 처량하여, 부엌 벽에 남은 지네 자국을 지우는 일이다. 여기서 무척 반가웠는데, 다름 아니라 저자가 4년 앞서 쓴 『고무지우개』에 대한 오마주 비슷한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고무지우개』는 화자가 골목을 한없이 배회하며 여러 문방구에 들러 마음에 드는 고무지우개를 찾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아 있는 소설이다. 『질투』가 현기증 이는 집의 공간을 그리고 있다면 『고무지우개』는 미로 같은 골목들과 수수께끼 인물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어로 읽으면 그 느낌이 얼마나 다를지, 만약 번역출간된다면 1등으로 사서 볼 생각이다. 로브그리예 전공자들이 꽤 있는 걸로 아는데 (아닌가?) 번역물들은 왜 이렇게 뜸한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벽을 닦아낸다는 것은 전혀 실용적인 방법이 아니다. 차분하게 칠해진 페인트는 분명히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이 페인트는 먼저 칠했던 아마(亞麻)기름 페인트보다도 훨씬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선의 방법은 고무지우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타이프라이터용 고무지우개같이 더러워진 표면을 조금씩 벗겨내는, 입자가 미세하고 단단한 지우개라야 한다. 그 지우개는 사무용 책상의 왼쪽 제일 위 서랍에 있다. (87쪽)

 

소설 속 화자의 존재방식이 이토록 소극적인 경우도 없을 것인데, 그나마 지네 사체와 아내 편지지의 흔적을 지우는 행동!은 그 와중 엄청난 적극성으로 보일 정도다. 보통은 식탁의 세 번째 접시로, 테라스의 세 번째 의자, 세 번째 잔으로, 그리고 집요한 시선으로만 존재하는 화자. 차곡차곡 쌓인 시선을 기억으로 반복하여 풀어내고 있는 작업. 도대체 어느 서술, 기억, 장면이 진실일까, 축적된 기억 또는 시선에 진실이 있기나 한 걸까, 단어 하나 삐긋-하니 순식간에 색깔을 달리하는 장면. 자, 한번 당해봐, 하듯 작품을 툭 던져주고 싱긋 웃는 하얀 털의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화자의 묘사에서 내게 가장 강렬한 아픔을 남긴 부분은 여기, 두 사람 사이의 10센티미터!를 관찰하는 부분이다. ‘감정이 없는 누보로망’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감정은 각자에게 나름으로 온다. ‘나’로부터는 아득한 속수무책의 거리, 아내와 프랑크 사이의 10센티미터라는 사무치는 슬픔과 절망. 이 소설을 즐기기에 머릿속 나침반이 꼭 필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선물 같은 어리둥절함, 환각을 닮은 장면들을 즐기기에 나침반은 어쩌면 거추장스럽다. 작품에서 자기장은 오직 하나, ‘질투’이기에. 그리고 그런 건 내 안에 얼마든지 있으므로.

 

A…의 양팔은 엷은 옷 색깔 때문에 옆 사람의 것보다는 덜 선명하게 보인다. 그녀의 팔 역시 의자의 팔걸이 위에 놓여 있다. 네 개의 손이 움직이지 않은 채 나란히 있다. A…의 왼손과 프랑크의 오른손 사이의 공간은 대략 10센티미터 정도다. 야행성 육식 동물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거리를 알 수 없는 골짜기 깊은 곳에서 다시 한번 짧고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22쪽)

 

한편, jalousie는 프랑스에서, 블라인드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런 페이스트리를 일컫기도 한다. 번역제목이『덧창』 또는『덧창 모양 빵과자』였다 해도 멋있을 작품이다.

 

 

 

 

Bon appé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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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une23 2023-06-24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해석~책보다 더 재밌게읽었어요

에르고숨 2023-06-24 20:33   좋아요 0 | URL
그래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10년 전 글 저도 다시 읽어보았네요.ㅎㅎ